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074
귀빈실에 도착하니 삼십대 후반 쯤 되어보이는 큰 덩치의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의 예복과는 다른 형태의 옷이다.
내가 들어가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목례했다.
“반갑습니다. 고우루라고 합니다.”
어색한 한어로 나에게 정중히 인사한다.
그를 위 아래로 흝어 본 나는 자리를 권했다.
“위국 승상부 승상대리, 승상부주 진유하요.”
지금까지 고구려와의 만남은 조조, 아니면 순욱.
그것도 아니면 곽가가 거의 맡아왔었다.
물론 나 역시 고구려 사람과 만나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꽤나 억세보이는군.
자리에 앉은 그는 담담히 말했다.
“다른 분들께 들었습니다. 승상부주께서 아주 바쁘신 분이라고.”
“아니 뭐 그렇게까지 바쁜 건 아닌데.”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우루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고구려와 위국과의 계약을 바꿨으면 싶습니다.”
“너무 단도직입적인 거 아니오? 전 재상인 을파소는 어디갔소?”
“작년 겨울, 귀천하셨습니다.”
“하… 이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겠소.”
을파소가 죽었다라…
을파소는 지금까지 위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고구려 재상으로서 고구려의 왕권 강화를 위해서 위국과 거래를 해왔다.
왕의 권력에 도전하는 귀족들의 후계자들을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이곳으로 보낸다.
그리고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킨다.
그 덕분에 교역면에 있어서 우리가 상당히 유리한 측면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철과 소금을 받고.
우리는 식량을 내어준다.
농법의 발전으로 식량의 여유는 상당히 있었다.
그런만큼 교역에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웠는데…
이제와서 갑자기 거래를 파기하겠다?
내가 가늘게 눈을 뜨고 바라보자 고우루는 비단을 내밀었다.
그 비단에 적힌 글귀를 읽은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고구려와 계약한 날짜가 지났다.
이제 새로운 계약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뭐라고 해야하나. 친구는 오래되면 오래 될 수록 좋다고 하지 않소.”
“그렇긴 합니다만…”
“솔직히 우리 위국 입장에서는 고구려와 거래를 지속했으면 하는데. 이제와서 바꾸자는 이유가 뭐요?”
이유나 알자.
솔직히 고구려와 거래를 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큰 문제가 없다는거지 아예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다른 곳에 신경쓰고 싶지 않다.
내가 웃으며 묻자 고우루는 침울한 표정으로 답했다.
“전년, 저희 고구려에 풍년이 들었습니다. 식량 비축도 안정적으로 시행되고 있는데다가 몇몇 귀족가가 멸문하였고…”
뒤는 듣지 않아도 되겠군.
식량사정이 나아졌고 왕권이 안정되었다 이건가?
“그리고 왕자님께서 정식 후계자로 지명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이상 위국의 도움은 필요가 없을 듯 싶습니다.”
“흐음… 그래서?”
“그렇기에 전 재상과 하신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계약을 했으면 좋겠다고 저희 측에서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우루의 말에 난 볼을 긁적거렸다.
이거 난감하군.
“그래서 뭘 원하는거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저희는 위국의 비단을 원합니다.”
“비단. 좋지. 그리고?”
“누에를 얻었으면 합니다.”
“헛소리 마시오.”
기가 막히는군.
일단 질러보는 건가?
비록 파촉 수준은 아니지만 위국에서 기르는 누에로 만드는 비단은 품질이 상당히 좋다.
그 누에를 달라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다.
누에를 주면 그걸 가지고 고구려에서 비단을 생산할텐데.
우리가 미쳤다고 누에를 주겠나?
내가 고개를 젓자 고우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었다.
“고작 철과 소금따위로 비단과 누에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
“철과 소금만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철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겠지요. 제가 알기로 서주에서 고구려의 명철과 비슷한 수준의 철기가 생산된다고 들었습니다.”
서주에서 양산되는 철은 고구려의 철 수준은 아니지만 지금 천하에 있는 철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철이 생산된다.
그런만큼 우리도 더 이상 고구려에 철을 납품받지 않아도 되었다.
대량생산의 측면에 있어서는 어쩌면 우리가 고구려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럼 고구려에서는 무엇을 주시려고?”
“이것을 드리지요.”
고우루는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는 하얀 돌이 들어 있었다.
“…이건 석회?”
“을 재상께서 말씀하셨지요. 위국에서는 석회석을 이용해서 많은 일을 하신다고. 곽 대부께서도 전에 석회를 요청하신 적이 있습니다.”
“흐음…”
“석회석은 마침 저희 고구려에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납품하겠습니다. 어떠십니까?”
이유하의 기억을 보면 한국에 석회석이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특히 태백 인근에 많다고 했는데.
저것을 제시한다는 것은 태백산맥이 있는 곳까지 영토가 확장되었다는 건가?
고우루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놈.
이거 머리 굴릴 줄 아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낸 듯 싶다.
“이걸 어디서 구한거요?”
“저희의 영토에 있었습니다.”
“고구려가 힘이 아주 강해진 모양이오? 남쪽으로도 영토를 늘리고.”
아직 고구려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만큼 넘겨짚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질문에 고우루는 살짝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리고 만족스레 웃었다.
“예. 몇몇 귀족가가 멸문하며 얻은 비용과 병사들로 영토 확장을 실시했지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위국에게 있어서 이 석회석은 아주 쓰임새가 많소. 솔직히 석회석을 많이 공급받을 수 있다면 우리 입장에서도 나쁠 것은 없어. 하지만…”
난 고우루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고구려가 예국을 계속 압박할 수 있을지도 의문인데…”
예국은 이유하의 시대를 비교하면 태백산맥.
즉 강원도 일대와 경상북도 정도에 위치한 나라다.
저번까지만 해도 고구려의 영토가 그정도는 아니었다고 들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이정도 품질의 석회석을 내놓는다는 것은.
그들이 예국의 영토를 어느정도 차지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저희 쪽에 대한 정보가 있으시군요.”
“친구의 주변은 알아둬야 하지 않겠소? 언제 새로운 친구가 생길지 모르는 건데.”
고구려의 남쪽.
삼한 일대와 낙랑, 대방, 백제, 그리고 예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는 있었다.
물론 완벽한 지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알아둬야 했다.
고구려가 부여를 잡게 되면 고구려가 날뛰는 것을 견제해 줄 세력은 필요하니 말이다.
“내가 알기로 이 석회가 많이 나는 곳은 예국이 보유하고 있던 산에서 나는 것일텐데.”
“…그걸 어떻게.”
고우루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어떻게 알았냐 싶지?
이건 이유하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도 정확히 알지 못해서 나도 대충 넘겨잡은 정도였는데.
맞아 떨어졌나보다.
속으로 안도를 하면서도 난 최대한 여유를 가장했다.
“완전히 고구려의 영토도 아니고, 몇년 전에 차지한 것이라면 예국, 그리고 대방국이나 삼한의 문제도 있을 터. 그것은 어찌 생각하시오?”
“그것은 저희가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예국과 대방국 따위. 고구려가 힘을 발휘하면 순식간에 짓밟을 수 있습니다.”
약간 사나운 어조로 고우루가 말하자 난 손사레를 쳤다.
“워. 오해하지 말아주시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고구려의 힘이 약하니 마니를 떠들려는 것이 아니니까.”
상자 안에 있는 석회석을 만져보았다.
품질이 좋다.
그것을 살짝 긁어 본 후에 난 고개를 저었다.
“석회석은 혼응토를 만드는데 쓰이는 중요한 재료. 혼응토는 우리 위국에서도 아주 여러 곳에 쓰이는 것이라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러겠지.
고구려의 조의와 선인들이 위국에 들어왔고.
또 혼응토를 사용하는 것 정도는 봤을테니까.
“하지만 그만큼 흔히 쓰이는 것. 안정적인 공급이 되지 않는다면 거래 품목으로 써먹을 수 없소.”
“음…”
“한두번 써먹고 말 것이 아니오, 석회석은 우리에게 있어서 소모품이고 구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 굳이 고구려에 손을 벌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손에 넣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나는 상자를 닫았다.
고우루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고 난 그를 향해 차분히 말했다.
“석회석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상황이 되려면… 적어도 예를 잡아야 할 터. 아직 예국은 남아 있지 않소?”
“그렇습니다.”
“석회석에 대한 거래는 그때 하는 것이 낫지 않겠소? 단기간의 거래 정도라면 받아주겠지만. 이것을 안정적인 공급 계약에 넣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는데.”
그냥 왕창 가져와서 파는 것 정도는 이해해주겠다.
한반도쪽과 교역을 위해서 청주에 항구를 만들고 있으니까.
고우루는 눈을 감았다.
깊게 생각을 하던 그는 천천히 말했다.
“그렇다면… 그 외에는… 글쎄요. 금 정도군요.”
“금이라. 좋군.”
금은 여기저기 많이 쓰이는 광물이다.
사치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쪽에서도 화폐로 쓰이는 것이니까.
또한 나중에 서역과의 교역을 위해서라도 금은 넉넉하게 마련해두는 것이 좋았다.
“그럼 금, 그리고 소금을 받고 우리는 비단과 약재를 공급해주지.”
“감사합니다.”
“일단 계약은 이정도면 되려나? 그리고 교역도시에 대한 일인데. 이건 예전에 을 재상과도 이야기했던 거요.”
“청주에 만들어지고 있는 교역도시라면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도 꽤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라…”
“그럼 됐군.”
“예. 이 삼년간 이 계약을 유지하는 것으로 하지요. 상세한 것은 저희 쪽도 상의 한 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개념없이 날뛰는 놈은 아니라서 다행이네.
을파소 수준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니 훌륭한 사업 동료가 될 수 있겠다.
고우루가 만족한 듯 웃자 난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좀 애매하긴 한데.”
“예?”
“잠시 기다려 주시겠소?”
난 승상부주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서랍에 있는 상자를 가져온 나는 궁금해하는 고우루에게 상자를 보여주었다.
“이건… 물소 뿔이군요!”
고우루의 눈이 반짝거린다.
물소 뿔은 고구려의 각궁을 만드는데 있어서 중요한 재료 중 하나다.
“오가 위국에 패해 무너지고, 오와 거래하던 삼한 쪽 놈들이 더 이상 물소뿔을 공급받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고우루는 대놓고 탐이 난다는 듯 물소 뿔을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승상부주께서 이 물소뿔을 저희에게 보여주신다는 것은… 이제 위국이 물소뿔을 취급하게 된 것입니까?”
“그렇소. 교주에서 오에 보내지던 공물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었지.”
“이것에 대한 거래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야 물론. 하지만 물소 뿔은 고구려도 알다시피 중요한 전략적인 물자이기 때문에 쉽게 내어주기 힘드오. 그리고 우리도 써야하고.”
“끙… 그렇다면.”
“무엇을 내어주시겠소?”
고우루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했다.
“지금 내어드릴 수 있는 것 중에 위국의 마음에 들 만한 것은 몇가지 없습니다만.”
“흐음?”
“현재 보유하고 있는 석회석과 거래를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저희가 예국을 완전히 잡아내고 안정적으로 석회석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물소 뿔로 제대로 된 계약을 하시지요.”
나쁘지 않은 거래다.
튕기기는 했지만 솔직히 석회석은 있으면 어디든지 쓸 수 있는 것이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물소뿔 몇개와 대량의 석회석을 거래할 수 있다면 대환영이었다.
“굳이 줄다리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 일단은 그리 하도록 합시다.”
이래저래 시비를 걸고, 계약을 틀 수도 있지만 고구려는 해외에 있는 든든한 우방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여기서 시비걸 필요는 없다.
양 사형이 교주에 간 이상 그곳에서 안정적으로 물소 뿔을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럼 석회나 잔뜩 받아서 그것으로 다른 작업을 하는게 더 이득이다.
“감사합니다!”
아니.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하지.
저수지를 만들거나 수로를 더 정비할 수 있겠군.
“물소 뿔을 대량으로 얻게 된다면 고구려도 좋겠구려?”
“하하… 예.”
그리고 고구려가 더 많은 각궁을 만들게 된다면 한반도 내에 영향력을 넓히겠고.
고우루는 내 말의 의미를 깨닫고 빙긋 웃었다.
좀 더 키워서 제대로 된 거래를 하자는 내 제안을 그는 웃으며 받아들였다.
“아까 내가 했던 말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오?”
고우루는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역시 친구는 오랜 친구가 좋은 것이군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런 거래는 상호간의 신뢰가 바탕에 깔려야겠지. 우리 위국과 고구려는 오랜 시간 손을 잡았던 사이. 이제와서 다른 곳에 손을 벌리지는 맙시다.”
그러니까 부여랑 손잡고 개수작부리지 마라.
확 다 엎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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