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118
“대단하시군요. 승상부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하하. 별 것 아닌 재주에 불과합니다.”
“아니요. 아니요. 그 괴질은 교주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병이었습니다. 저희는 병이 퍼지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데… 어떻게 치료하신 것인지 그저 놀라울 뿐 입니다.”
처음 만나는 것이지만 사섭은 꽤나 분위기가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예전에 만났던 정현과 비슷한 분위기다.
노인이지만 차분하며, 그리고 눈에는 현기가 감돈다.
저런 사람이니 저 망나니를 제대로 교육시킨 것이겠지.
사섭의 옆에 앉아 있는 손상향을 힐끔 본 나는 빙긋 웃었다.
“이제 교주도 위국과 한몸이나 다름없는데. 화타의방의 의원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다만…”
“다만?”
“교주로 의원들을 보내는데도 저희 나름대로의 소요가 필요한지라.”
“하하하. 필요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교주에서 나는 것들이 좀 필요합니다. 저희가 왜국과 고구려와 거래를 하는데. 교주의 물소뿔을 아주 좋아하더군요. 고구려에서 받아오는 것들을 의방에서도 원하는지라…”
“교주에 살고 있는 백성들을 지킬 수 있는데 고작 그런 것들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서주만 못하지만 목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상품의 물소뿔을 얻을 수 있으니 되는대로 바로 올려보내드리겠습니다.”
“물소를 양식하시는 겁니까?”
“방목에 가깝지만… 나름대로 양식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오오… 그렇다면 안정적으로 물소뿔을 공급받을 수 있겠군요.”
“예. 그리고… 부끄럽습니다만 저희도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교주는 양주보다 따뜻한 곳이라 위국의 농법에 큰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아무렴요. 농법도 전수해드려야지요.”
고구려나 왜국과는 다르다.
교주는 형주의 바로 밑에 붙어 있으며 문제가 생기면 바로 군대를 보낼 수 있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비잔이 강남에서 더 남쪽에 있는 묘족과 산월족을 설득하여 끌어들이고 있다.
그 지역의 개간과 더불어 교주에 있는 이들을 흡수할 수 있다면 차후에도 크게 어렵지 않게 성장할 수 있다.
내가 웃으며 말하자 사섭은 부드럽게 웃었다.
“언제고 한번 찾아뵈야지…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늦게 찾아뵌 것 같아 그저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이렇게라도 만나게 되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아니요. 워낙 바쁘실텐데. 그리고 양 사형… 양 승상은 뵈셨을 것 아닙니까?”
“아주 훌륭하신 분이더군요. 비록 나이는 어리시지만 식견이 저 이상인데다가. 저희들이 십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마 건드리지 못한 일남군을 단번에 제압하셨지요. 그 군략이나 사람들을 통솔하는 모습은 과연 위국의 승상다운 면모였습니다.”
사섭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덕과 힘이 일치된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라는 말을 이 사모가 죽을 때 쯤이나 되어서 겨우 양 승상을 뵙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많이 정정하신데 그런 말씀은 말아주십시요.”
사섭의 나이는 일흔이 훨씬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정정한 것을 보면 몇년은 더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는 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저 나이만 먹고 이룬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승상부주나, 방 공과 같은 분들에 비하면 제가 가진 명성은 그저 허명일 뿐이지요. 존경스럽습니다.”
“이번에 가서 관인들의 발목만 잡았습니다만. 허허. 존경이라니요.”
방 숙부님이 고개를 젓자 사섭은 다시 상냥히 말했다.
“그런 위험한 곳에 목숨을 걸고 가신 분을 어찌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이 사모는 목숨에 대한 욕심이 깊은지라… 저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여러모로 위국의 위인들께는 그저 감탄 밖에 할 수 없겠군요.”
사섭은 힐끔 하후상의 옆에 앉아서 머쓱한 얼굴로 술을 홀짝거리는 관평을 보았다.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글귀도 듣게 되고.”
“…그 이야기는 제발 그만…”
관평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다.
진짜 마음에 든건가?
사섭은 웃으며 관평에게 물었다.
“관 도위님. 괜찮으시면 나중에 교주에 와주시겠습니까? 조금만 다듬으면 대문호가 되실 것 같습니다. 문무를 동시에 취하시는…”
“아. 거… 그…”
관평이 저러는 건 처음보는군.
차마 성질을 내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던 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부탁이니 그 이야기는 언급하지 말아주십시요…”
저러다 울겠군.
관우의 얼굴과 비슷한 수준으로 관평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왜 그리 부끄러워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가슴을 울리는 글이었습니다. 이 사모 역시 나름 문에 재능이 있다 생각했는데… 관 도위님에 비하면 저는 정말.”
“사 주목님. 제발…”
“허허허!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그럼 약속이십니다. 천하가 안정된 이후에 꼭 교주에 들러주십시요.”
“예에…”
빼도박도 못하게 생겼군.
관평이 고개를 푹 숙이자 사섭의 옆에 앉아 있던 손상향은 빙긋 웃었다.
“훌륭한 글이었습니다. 너무 참담해하지 마세요.”
“…제발 언급하지 말아주십시요…”
벽에 구멍이라도 뚫어주고 싶다.
관평이 숨는 걸 보게.
그를 한심하다는 듯 응시하던 당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섭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저희 사부님께서도 일전 교주에 몇번 가신 적이 있다고 하십니다. 교주에는 천하에 없는 신기한 동물들이나 식물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교주목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전쟁이 끝난 후 저도 교주에 가고 싶습니다.”
“오오! 괴질을 고쳐내신 위대한 의원께서 내려와주신다면 저희야 환영이지요.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괴질을 고친 것은 승상부주의 덕이 큽니다. 저희가 한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 외에 다른 이들도 한마디씩 한다.
칭찬과 배려.
마치 성현들의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훈훈한 자리도 해가 지니 마무리가 되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 주목께서는 업에 올라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다면 사람을 불러드리겠습니다만.”
“아. 아닙니다. 지금 업에 올라가봤자 위왕 전하는 뵐 수 없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구가 가봐야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저따위 인물을 호위하고자 병사들만 힘들 뿐이겠지요.”
그의 말대로 사섭이 업에 가면 우리쪽에서는 소요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참 괜찮은 사람이다.
말도 편하게 하고, 또 배려심도 있고.
서로의 이익이 맞는 만큼 사섭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만 나간다면 굳이 교주목의 교체에 대해서는 당분간은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
사섭이 들어가고 방 숙부님도 모옥으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것은 관인들 뿐.
난 자리에서 일어나 관평에게 다가갔다.
“평아.”
“…주군.”
“이번에 내려오면서 익주 공략의 선봉을 장합과 관평에게 맡기려고 했는데. 관평은 빼야겠다.”
“이제 몸은 괜찮습니다!”
“아니. 넌 이제 문관으로 움직이라고.”
“…아아…”
평소에 아무리 놀려도 시큰둥하던 놈이 이러니까 재밌네.
그가 시무룩해하자 난 웃으며 등을 쳐 주었다.
“농담이야. 하지만 선봉을 맡기기는 좀 힘들것 같다.”
난 장합과 감녕을 보았다.
역시 선봉은 저 둘에게 맡기는게 맞겠지?
“감녕. 너 이 근처 길 다 알지?”
“음… 뭐 대충은? 형주에서 산지 꽤 되었으니까.”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병 때문에 통제를 잃은 지역을 되찾는 것이 우선이야. 당지야. 역병을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너도 합류해.”
“예.”
역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원들, 그리고 의녀들고 그들을 돕기 위한 하인과 하녀들 중에서도 역병이 옮은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열명 정도?
그나마도 오래 앓지 않고 금방 기운을 되찾았다.
“저번에 얼음 구하러 화용현에 들어갔었는데. 그쪽에 꽤 많은 도적들이 있더군.”
내가 손짓하자 장합은 챙겨 온 견갑 하나를 꺼냈다.
감녕은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이건.”
“나도 알아보니까. 이 철. 익주의 철이라더라.”
익주 특유의 방식으로 제련된 철이기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철을 툭 던지자 감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럼 그 도적들이…?”
“적어도 익주군을 습격했든, 아니면… 익주에게 무기와 장비를 받았든. 어쨌든 그들이 역병에 혼란에 빠진 다른 현을 공격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
자세한 진위여부는 캐묻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저렇다면 어떻겠는가.
중요한 것은 지금 남군에 있는 도적들이 제대로 된 무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길을 정확히 알고 있는 강한 이들이 필요했다.
내가 장합과 감녕을 선발대로 내세운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그런 것입니까…”
“그럼 진짜 문관으로 쓸 줄 알았냐?”
관평이 휙 고개를 돌려버리자 방통은 팔짱을 끼고 있다가 툭 내뱉었다.
“일군과 이군으로 나누자는 건가?”
“일단은. 지금 형주에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지?”
“바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약 사만. 그리고 수귀단을 움직인다면 이만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그럼 됐군. 방통. 네가 일군을 맡아라.”
“내가?”
“그럼 내가 맡으리? 나는 원래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야 해.”
원래 내가 형주에 내려 온 이유는 역병 때문이다.
익주 공략전에 참가할 이유는 없었다.
“이번 전쟁에서 내가 활약하는 것보다는 다른 이들이 움직이는게 나아. 어쨌든 나는 중앙의 관료이고, 승상부를 대표하는 자니까. 익주 공략에 대한 공은 최대한 나눠야 한다.”
“형주목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겁니까?”
“형주목이라기보다는… 지방관의 위엄을 보여줘야겠지? 괴 가주도 형주목에게 합류했으면 하는데.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지금 위국의 정치 구조는 승상부와 상서부, 왕부를 중심으로 한 중앙관료들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에 태학에서 봤던 지원서를 떠올렸다.
대부분의 태학 졸업생들이 중앙관직을 원했다.
물론 중앙관직이 힘들어서 이년 정도 근무하면 나가 떨어지긴 했지만.
선호도를 보았을 때 지방관에 대한 무게가 점점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균형을 맞추려면 지방관에 힘을 실어줘야 했다.
“익주를 잡고나면 전체적인 내정에 중심해야 해. 그런 상황에서 지방관들이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키면 골치아프니까. 사전에 차단하자고.”
그 지방관들에 대한 구심점을 누군가 맡아야 하는데 그만한 공을 세울 사람은 방통 정도 밖에 없었다.
“경조에는 지금 전하가 가 있어. 그리고 남만에는 양 사형이 있지. 결국 네가 움직여줘야 한다는 거다.”
“흐음… 그럼 내가 익주로 파고 들어야 한다는 건가?”
“아니. 그럴 필요는 없고.”
“뭐야. 그게.”
“단순하게 전투가 아니라 전쟁을 보자면… 지금 익주는 세곳에서 공격을 받고 있어. 하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공격하기 편한 길은 형주에서 영안을 통해 익주로 들어가는 길일거야. 하지만 그런만큼 저들은 죽어라 벽을 쌓고 막으려 하겠지. 부딪혀봤자 피해는 생긴다.”
“그럼?”
업에 있을 때 양 사형, 조앙, 하후돈, 그리고 종요까지 불러 놓고 우리끼리 한 회의다.
이번 전쟁의 주공에 대한 상의는 이미 끝난지 오래.
난 궁금해하는 이들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이번 전쟁의 주공은… 가맹관을 공격하는 경조의 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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