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07
익주 촉군 팔릉현 인근의 마을.
갑옷에 뭍어 있는 피와 살점을 닦아내던 양수는 주변을 보며 말했다.
“쓸데없는 피를 뭍혀버렸군.”
“승상께서 나서실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저희만으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아무리 양수가 문무에 능해 기본 전투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는 위국의 승상이다.
고작 마을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이런 도적들과 싸울만한 사람이 아니다.
승상부 직속 무관인 노초와 풍해는 양수의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들을 향해 양수는 씩 웃었다.
“자네들 정도 되는 무인들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겠는가?”
“승상… 그…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뭐하지만 격의 차이라는 것이 있는 겁니다.”
“맞습니다. 승상께 걸맞는 적과 싸우셔도 모자랄 판국에. 이런 잡놈들과… 그 검이 아깝습니다.”
“하하하!! 어차피 신외지물이며 그저 사람 죽이기 위한 것인데. 사족을 베면 어떻고 잡놈을 베면 어떻겠나?”
그들을 향해 양수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의 말에 풍해와 노초는 송구스러워하며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너무 그러지들 말게. 자네들 정도 되는 실력자들과 함께 전투를 한다는 것도 나에게 도움이 되니까. 이런 인재들을 코 앞에 두고 써먹지 못하다니. 나도 승상으로서 실격이군.”
“아, 아닙니다!”
“위국에 워낙 인재가 많을 뿐입니다.”
중년의 나이이지만 아직까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그들이었다.
위국은 땅이 넓지만 그만큼 인재도 많은 곳.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드러낼 수 없다.
꽤 오래 무관직에 있었지만 운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줄을 잘못 잡았는지.
고작해야 최진사나 도위, 비장군 직만을 전전하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달랐다.
무려 위국의 권력 서열에서 공식적으로는 두번째 위치에 있는 승상과 함께 한다.
여기서 잘만 보이면 얼마든지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 담겨 있는 신분상승의 욕구를 눈치챈 양수는 쓰게 웃었다.
“아무튼 너무 싸고들려고 하지 말게나. 나도 나름대로 싸울 수는 있으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희는 승상께서 행여나 다치실까…”
“금이야 옥이야 키우려 하다니. 내가 무슨 양갓집 규수라도 되는 줄 아는가?”
“아이 참. 승상. 저희의 마음을 왜 몰라주십니까.”
“농담일세. 하하하!!”
“아하하하~”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처참한 시체들을 두고 꽤나 화기애애하다.
양수와 노초, 풍해가 서로를 보며 웃는 것을 본 병사들은 씩 웃었다.
그때 바깥 쪽의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그것을 들은 양수는 짙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무슨 일이냐.”
“승상을 만나고 싶어하는 이가 찾아왔습니다.”
“…뭐?”
아무리 군을 이끌고 있다지만 최대한 정보를 통제하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자신의 위치를 발견했단 말인가?
양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 익주에 이정도 되는 식견이 남아 있었다니.
양수는 풍해와 노초에게 싸늘히 말했다.
“전투를 준비하라. 그대들이 말한 것처럼 나와 걸맞는 상대와 싸우게 될지도 모르겠군.”
“예!”
그들이 자리로 돌아가자 양수는 검을 들고 병사들과 마을 입구로 향했다.
최대한 경계하며 그곳에 도착한 양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크게 반가워했다.
“이거! 윤 선생 아니십니까!”
삿갓을 쓰고 있는 노인은 양수의 반가운 어조에 씩 웃었다.
그가 삿갓을 벗자 윤묵의 옆에 있던 왕항은 자신의 검을 잡았다.
그의 행동에 병사들이 무기를 뽑으려 하자 양수는 손을 들어 막았다.
“괜찮다. 내 잘 아는 분이니.”
윤묵이라면 과거 양수가 수경원에 있을 때 자주 수경원에 찾아온 사람이다.
사마휘와 함께 지식을 교류하고, 함께 경서를 공부하던 사람.
양수 역시 그에게 꽤 많은 것을 배웠었다.
“윤 선생께서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오신 것입니까? 아니, 제가 여기 있는 것은 어찌 아시고?”
“하하하. 자네가 익주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찾지 않을 수 있어야지. 그… 뭐라고 해야하나. 이런 말이 있잖은가.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자네의 움직임 정도는 대충이나마 예상할 수 있었네.”
“…혹시.”
“자네가 있는 곳을 유장에게 말했냐고? 그럴리가 있는가. 내 수경선생과의 친분이 있고, 또한 자네와 알고 지낸 것이 몇년인데. 유장의 손을 들 것 같은가?”
“진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과거의 연은 과거의 연.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바뀌지 않았다.
양수가 경계하는 것을 눈치챈 윤묵은 어깨를 으쓱였다.
“정 뭐하면 내가 여기 머무는 것은 어떤가?”
“설마 위국의 손을 잡아주시러 오신 것입니까?”
“역시 자네는 눈치가 빠르군.”
“하하… 다행입니다.”
윤묵은 익주에서도 이름난 명사다.
그가 합류 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익주를 점령하는 것이 더욱 쉬워진다.
“그런데 이쪽은…”
“익주목 휘하의 도위 왕항이라 합니다.”
“이정도 되는 자가 도위라… 유장이 사람 보는 눈이 없군요. 위국에선 적어도 아장까지는 올라갈 것 같은데.”
“그러니 말이야.”
한눈에 왕항의 능력을 눈치챈 양수가 웃으며 말하자 윤묵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내 괜찮은 인재라 데리고 와 추천을 했는데 고작해야 도위라니.”
“이렇게 와주신 것은…”
“이 친구도 함께하려는 것이지. 그보다.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서서 이야기 할 생각인가?”
“당연히 아니지요. 자. 드시지요.”
경계하는 병사들에게 주변의 정찰을 맡긴 후 양수는 그들을 데리고 막사로 들어갔다.
지휘부 막사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윤묵은 씩 웃었다.
“과거 자네 사부인 수경선생께선 전장에서도 책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어째 책은 찾아 볼 수도 없구만.”
“실제 전장을 겪다보니 책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더군요.”
“그런가. 하하… 맞아. 세상은 항상 이론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
양수가 준비한 차를 한모금 마신 윤묵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망해가는 나라에 목숨을 다하는 충신이 되라는 성현의 말씀이 마냥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말이야.”
눈을 빛내는 그를 향해 양수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그를 향해 히죽 웃은 윤묵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론부터 말하지. 나와 왕항은 위군에 투항할 생각이네.”
“윤 선생이시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말씀하십시요. 아. 관직을 원하신다면…”
“이 나이 먹고 관직에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그런 것은 젊은 친구들에게나 주게. 내가 원하는 것은 한가지야.”
윤묵은 눈을 번뜩였다.
“이제 이런 짓은 그만두게나.”
“이런 짓이라면…”
“조호이산의 계. 성도를 차지하고 있는 익주군을 잡기 위해서 주변 백성들을 공격하는 행위를 그만 하라는 것이네.”
“하하하…”
역시 윤묵이다.
자신의 수를 눈치챘구나.
지금 아군에게는 공성장비가 없었다.
몇몇의 공성장비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남만병이 군의 대부분인 지금 공성전을 쉽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적이 숨어 있는 산에서 끌어내면 된다.
그것을 위해 양수는 일부러 백성들의 식량을 약탈하고 그들을 성도로 쫓아냈다.
수성전에서 가장 뼈아픈 것은 식량이 부족해지는 상황이다.
성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식량 공급도 힘들어진다.
성도 내부에 있는 밭과 비축한 식량만으로는 결코 수성전을 치룰 수 없다.
익주는 결코 익주의 백성들을 버릴 수 없다.
만약 그들이 성으로 들어 오는 것을 막게 된다면?
익주의 민심이 반전한다.
만약 그리 된다면 위군 입장에서도 나쁠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래준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빠르게 민심을 장악하고 성도를 규탄하며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만들 수 있을테니까.
“지금 성도의 상황은 무척이나 좋지 않아. 백성들끼리 식량을 두고 싸우기도 하고…”
“그렇군요.”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벌써부터 앓는 소리를 하다니.
촉군의 다른 현들도 공략해 나가고 있는 양수는 여유롭게 답했고 윤묵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
“사실 저도 무척이나 가슴이 아픕니다. 백성들이 우는 모습을 보아서 뭐하겠습니까. 하지만…”
말꼬리를 흐리는 그를 향해 윤묵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들이 원하는 것은 성도에 머무르고 있는 군이겠지?”
“예. 그들이 나와준다면 다른 현을 공략하는 일을 멈추지요.”
“그것을 우리가 해주겠다면?”
“윤 선생께서 그리 해주신다면 저야 고맙지요. 하지만 가능하십니까? 제가 알기로 윤 선생께선 관직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양수는 힐끔 왕항을 보았다.
고작해야 도위인 왕항이 수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무슨 수로 그들이 출진하게 만든단 말인가.
양수가 웃으며 말하자 윤묵은 천천히 말했다.
“성도에 있는 몇몇 관리들이 나와 뜻을 함께 하고 있네.”
“그렇습니까…?”
“내부에서 성문을 열기는 조금 힘들거야. 무관들은 유장에게 매우 충성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출진하게는 할 수 있다는 겁니까?”
“그래.”
이적과 그를 따르는 다른 몇몇 관리들이 힘을 쓴다면 성도에 있는 주력군이 성도에서 나가게 할 수 있다.
윤묵의 제안에 양수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되겠습니다.”
“욕심도 많구만.”
“지금 상황은 저희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이렇게 촉군의 백성들이 성도로 향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자동에서 식량이 온다면 지금의 수는 통하지 않을텐데?”
“그 식량이 성도에 도착할 수나 있을 것 같습니까?”
양수의 입가에 그려진 자신만만한 미소.
그 미소를 본 윤묵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예나 지금이나 영악하기는 여전하군.”
“좋은 사부님 덕분입니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하라는 수경원의 방침을 따라야지요.”
“허 참. 수경 선생은 좋겠군. 이렇게 가르침을 잘 따르는 훌륭한 제자가 있어서 말이야.”
작게 투덜거린 윤묵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좋네. 자네가 그런 말을 할 것 같았지. 그럼 이렇게 하세. 성문을 열어주고, 출정한 병력의 군량을 최소화 시키겠네. 그리고 그들이 성에 복귀하지 못하게 해주지.”
“가능합니까? 그게?”
“불가능하지는 않아. 물론 우리쪽에서도 좀 무리를 해야 하지만.”
“흐음… 지금 성도에는 동윤이 있지 않습니까?”
“그를 아나?”
진유하가 극도로 경계하는 자다.
그가 있다면 아무리 내부에서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쉽게 그런 상황을 만들지는 못할텐데.
그것을 어찌 할지가 의문이다.
“그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든 해주지.”
“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윤 선생께서 그리 자신하신다면 믿어드려야지요. 내부에서 함께 움직여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산양 사람 이 기백, 이적일세. 과거 유표의 밑에 있던 자지. 그 외에도 유표 휘하의 항장 출신들과 젊은 장수들이 꽤 있어. 그들이 나서 줄 것이야.”
“호오… 하지만 괜찮겠습니까?”
과거 위국은 유표를 쓰러트렸다.
그것에 대한 원한을 품고 익주로 도망친 이들인데.
이제와서 그들을 신뢰할 수 있겠냐는 양수의 말에 윤묵은 단호히 말했다.
“적어도 익주 백성들이 떼죽음 당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윤묵의 표정은 진지했고 양수는 웃을 수 있었다.
이 사람이 허튼 소리할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번 정도는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자신들에게 불리할 것은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곳, 비현으로 적어도 이만의 병력은 보내주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엄안이라고 하던가요? 그를 쳐냈으면 싶습니다만.”
이번 수로 익주 최고의 노장인 엄안을 쳐낼 수 있다면 성도 공략이 한층 더 쉬워진다.
양수의 말에 윤묵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말게.”
양수의 군에서 걸어나오며 윤묵은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그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양수를 만나러 갈 때 이적은 자신들이 내어줄 수 있는 최대치를 말해주었다.
엄안의 군이 출병하게 할 것이고 그것은 약 일만에서 이만 정도.
그리고 번현으로 보내라.
이적이 예측했고 양수는 따랐다.
하지만 윤묵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장강의 윗물은 언제나 아랫물을 밀어낸다더니. 하하… 이제 나도 그만 나서야겠어.’
“윤 선생. 괜찮으십니까?”
“음. 괜찮으니 걱정말게. 자. 어서 가세나.”
“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