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82
00182 가문을 위하여 =========================
“절친한 친구분이신가봅니다.”
“음?”
“저기…”
조청은 쓰게 웃으며 방통을 가리켰다.
잠깐 나갔다가 온 사이에 술을 왕창 퍼마셨는지 정자에 누워 코를 골고 자고 있는 방통이 보였다.
“하아…”
“그래도 성주님께선…”
“음? 내가 뭐?”
“아무것도 아닙니다.”
“야. 그냥 할 말 있으면 해. 그렇게 숨기는게 더 싫거든?”
난 조청이 또다시 말을 삼키자 그녀의 손을 잡았다.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본다.
불안한 듯 흔들리는 그녀의 예쁘장한 눈을 마주하며 똑바로 말했다.
“너도 내 사람이 된다면 나에게 숨기는 것이 없었으면 한다. 확실하게 말해. 조청. 너는 내 사람인가?”
“…그건.”
“아직은 좀 힘든가보군.”
온지 며칠이나 됐다고.
영이처럼 날 보고 혹시 한눈에 반했나 싶어 물어봤지만 조청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말을 꺼내지 못했다.
군인으로서 명령은 받겠지만 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예를 들어 조조가 명령한다면 그녀는 곧장 조조에게 가버릴 것이다.
그래서인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한 부하들이나 사람들이 너무 가족같이 지내서 그런걸까?
이런 거리감이 되게 낯설다.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아무튼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난 어지간한 걸로는 화 안내니까.”
“으음… 실례가 될지도 몰라서.”
“네가 하는 말 정도면 절대 실례 아니야. 감녕이나 흑귀대, 다른 애들이 나한테 대하는 거 보면 네 기준으로는 걔들 목을 쳐야 할거다. 아마…”
“솔직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성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뭐랄까. 성주님은 다른 사람들보다 방 군수님과 함께 있을 때 더욱 신나보이는 듯 싶습니다. 가장 즐거운 상대가… 저 분이십니까?”
“혹시 눈이 어떻게 된 것 아니니?”
방통과 같이 있을 때 즐겁다니.
영이가 아니라?
내가 묻자 그녀는 붕붕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니와 함께 계실때는…”
“언니?”
“아, 영 아가씨와 함께 계실때는 그 뭐랄까.”
“언제 또 그런 관계가 된거야?”
와… 언니라니.
영이 무섭다.
벌써 서열정리를 끝냈어.
내 질문에 조청은 얼굴을 살짝 붉게 물들인 후 작게 헛기침했다.
“크흠! 영 아가씨와 함께 계실때는 성주님께선 행복해보이셨습니다. 하지만 방 군수님과 계실때는 무척이나 즐거워하시더군요.”
“흐음…”
그녀의 말에 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영이랑 있을 때는 행복하다.
어쨌든 미소녀와 함께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영이가 날 사랑하고 나도 영이를 사랑하니까.
행복한 것은 사실이다.
“즐겁다라…”
“좋은 동료 같습니다.”
“그래?”
“네.”
“너는 어떻게 되고 싶은데?”
“예?”
조청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난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천천히 깍지를 끼고 잡았다.
나보다 크고 울퉁불퉁한 손을 깍지끼고 잡자 조청은 당황했는지 내 시선을 회피했다.
“영이처럼 행복해지고 싶은 거냐… 아니면 방통처럼 즐거워지고 싶은거냐.”
“…아직은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최소한 즐거워지고는 싶습니다.”
좋은 동료는 될 수 있겠지만 아내로서는 자신이 없다는 거군.
조청의 말에 난 어깨를 으쓱였다.
좋은 동료도 나쁘지는 않다.
어쨌든 조청과 나는 정략의 관계로 맺어진 것이니까.
정략결혼을 했다고 해서 딱히 대면대면하게 지낼 필요는 없지만 대체적으로는 초반에 이런 분위기를 가진다고 한다.
영이와의 경우가 좀 특별한 것이다.
남들이 보면 나와 영이는 어렸을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며 결혼을 약속한, 굉장히 오래된 연인이라고 생각하더라.
실제로 같이 있었던 건 얼마 안되는데.
“연주목께서 혼인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너무 부담갖지 말았으면 하는데. 아직 시간도 있고 천천히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 되니까. 부부의 정이 동료의 정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조청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름대로 굉장히 고민이 많았나보다.
“뭐… 그건 됐고. 쟤는 어떻게 하느냔데…”
“시녀를 부를까요?”
“음. 그게 낫겠다. 저렇게 취해서 자고 있는 놈 깨워봤자 남는 것도 없을 것이고.”
방통과 이야기하며 원술에 대한 대응을 어찌할 것인지를 떠올렸으니 이번 만남은 나름 가치가 있었다.
조청이 시녀들을 데려와 방통을 옮기는 것을 보며 난 한숨을 내쉬었다.
“저 자식과 떠드는 것이 재밌긴 한데… 그나저나 서복 이자식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길래 서찰 하나 없는거야?”
또다른 수경원의 형제인 서복이 떠올랐다.
이쯤 되면 슬슬 뭐라고 연락이 와야 할 것 같은데 이자식은 아직도 소식이 없다.
혹시 어디가서 칼맞고 죽은건 아닌지 걱정된다.
전에 서복의 어머님에게 서찰을 보내봤지만 집에도 제대로 서찰을 보내지 않는 듯 싶었다.
효자인 그 녀석이 어머님께 서찰조차 보내지 못할 정도면 이거 진짜 뭔 일이 터진게 아닐까?
“에휴.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성주님. 가시지요. 슬슬 시찰을 나가실 시간입니다.”
“벌써 이렇게 됐나? 그럼 가자.”
시찰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몇가지 업무를 끝낸 후 난 눈을 주물렀다.
오래 집중한 탓인지 눈이 아프다.
피곤함을 느끼며 의자에 등을 기댔을 때 문이 열리며 조청이 들어왔다.
“음? 오늘은 그만하고 들어가서 쉬라고 하지 않았나?”
“요 도위에게 들었는데 오늘 야시장에 가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응. 가야지. 근데 왜?”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어… 저녁에는 감녕과 같이 다니기로 했는데?”
산양군에서 꽤나 효과가 있었던 야시장을 하비성에도 열었다.
물론 산양군보다 좀 더 비싸고 품질이 좋은 물건들이 많지만 그래도 야시장에서 파는 것은 낮에 파는 것보다 질이 훨씬 떨어지는 물건들이었다.
가끔가다 완전한 불량품도 나오기는 했지만 이 역시 복불복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좋은 물건을 사고 싶으면 낮에 가라.
한달에 한번 열리는 야시장이기에 감녕과 여영기는 기회다 싶어했고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내가 따라가기로 했었다.
안 막으면 다음날 근무가 힘들 정도로 퍼마시니까.
둘이 아주 죽이 잘 맞는 것이 이제는 누가 보면 진짜 남매인 줄로만 안다.
그냥 사겨라. 좀.
“알고 있습니다만… 감 도위에게 부탁받았습니다.”
“…걔가? 왜?”
“오늘 야시장에 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여 도위와 함께 갈 곳이 있다고…”
“호오… 어딜 가시려고 둘이… 따라가볼까?”
이거 둘이 오늘밤 물레방앗간이라도 가는 거 아닌가?
내가 흥미진진해하자 조청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요 도위도 따라갔습니다. 셋이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하던데… 아마 야시장에 개입하여 이권을 얻으려는 몇몇 건달들이 있는 듯 싶습니다. 그것을 잡으러 간 것 같더군요.”
“이걸 훌륭하다고 해야 할지 안타깝다고 해야할지… 그런데 왜 나한테는 보고 안했지?”
내가 궁금해하자 조청은 품에서 임무 요청서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방금 얻은 정보였던 것 같더군요. 빠르게 나가야 하니 저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럼 됐고.”
조청에게 받은 요청서를 읽은 후 서랍에 넣었다.
여영기와 요화, 그리고 흑귀대 숙련병 오십을 데리고 갔으니 특별한 문제는 없겠지.
이런 일 한두번 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네가 날 호위하겠다는거야?”
“네. 성주님 혼자 보낼 수는 없으니까…”
“흐음…”
조청을 위 아래로 흝어보았다.
내 시선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난 피식 웃은 후 말했다.
“그건 좋은데 그렇게 갑옷입고 가면 야시장의 분위기를 망치니까 간단하게라도 다른 옷을 입고 가도록 해.”
“하지만 갑옷은 군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갑옷을 입지 말라는 것이 아니야. 최소한의 무장만을 하라는 것이지. 그렇게 갑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상인들이 두려워한다. 야시장의 본질이 무너져. 정 싫으면 호위는 관두고. 서황과 함께 가면 되니까.”
내 말에 조청은 살짝 인상을 쓰고 고민했다.
딱히 내가 조청이 다른 옷을 입은게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야시장은 낮의 시장보다 좀 더 위험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만큼 그들이 파는 물품들은 장물이나 혹은 불법적인 물품인 경우가 많았고 그런 것을 파는 놈을 잡으려면 최대한 경비인 것을 숨겨야 했다.
“내 얼굴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야시장에는 하비의 상인만 오는 것이 아니야. 엄한 놈이 이상한 것을 파는 것을 발견하면 바로 잡아야 하니까.”
“으음… 알겠습니다.”
“생활복 정도는 가지고 있겠지? 백귀대 병영에 가면 옷 안에 입을 수 있는 갑옷을 줄거야. 그것을 착용해. 검 한자루 정도만 챙기고.”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조청이 옷을 갈아입고 온 것을 보며 난 감탄했다.
“이야~! 제법인데!?”
“예?”
“잘 어울리네.”
“가… 감사합니다.”
검은색 계통의 싼 천 옷이다.
하지만 훈련으로 다져진 그녀의 몸에 잘 어울렸다.
약간 사나워보이는 인상도 틀어 올린 머리 때문인지 조금은 순해보인다.
“화장같은 건 안했나보지?”
“네. 굳이 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니. 없어.”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일하러 가는건데 굳이 화장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조청은 시큰둥히 대꾸했고 난 그녀의 말에 답해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예.”
순찰 한번만 돌고 난 후 성으로 돌아와 영이와 같이 나가야 한다.
같이 나갔으면 좋겠지만 오래간만에 외출을 하는 것이라고 한껏 치장을 하겠다고 한 영이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그럼 그 전에 한바퀴 도는게 낫겠지.
그리고 괜찮은 것이 있으면 좀 알아두고.
조청과 함께 관아 밖으로 나가자마자 보인 골목에 들어갔을 때 휘황찬란한 빛이 보였다.
“이번엔 좀 많네.”
“이런 시장을…”
거리 하나를 완전히 시장골목으로 만들었다.
좌판을 깔고 있거나 낮에 상점을 한 후 저녁에 물품을 바꿔 야시장에 참가하는 상인들.
그리고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
낮보다 오히려 많은 듯한 거리를 보며 난 작게 중얼거렸지만 조청은 야시장을 보는 것이 처음인지 놀랄 뿐 이었다.
“이런 건 처음보나?”
“네. 원래 밤에 이런 시장을 열지 않으니까…”
“그렇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은근히 밤을 활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지.”
낮에 일을 하고 밤에 잠을 자는 이유는 어둡기 때문이다.
분명히 잠이 안오는 이도 있을 것이고 오붓하게 연인끼리 밖에 돌아다니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시장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준 것 뿐이야.”
백성들의 삶은 힘겹다.
그들의 삶 속에 즐기는 것은 가끔씩 탁주 한잔을 먹는 정도에 불과했다.
노는 것 자체가 자신의 삶을 줄이는 행위나 다름없었기에.
그렇기에 그들은 낮에는 열심히 일했고 밤에는 낮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잠들곤 했다.
그런 그들에게 쉴 만한, 즐길만한 거리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백성들의 충성심을 일으킴과 동시에 그들의 호감을 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지금 야시장에 대한 계획은 하비성 뿐만 아니라 팽성군, 그리고 동해군에도 시행되고 있었고 방통은 극단과 악단원을 좀 더 고용하여 화려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중에 낭야군에서도 해야 하니 인원은 어느정도 많은게 좋겠지.
“이야~ 역시 연주목이 최고라니까~!
“기주목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지. 저 공연은 벌써 세번째 보는건데 볼때마다 속이 다 시원하네 그려. 다음에 갈 곳은 동해군인데 동해군에서도 야시장에 맞춰서 가면 이런 공연을 공짜로 볼 수 있으니 이거 참 좋구만~”
“팽성군에서도 공연을 볼 때 마시라고 술을 한병씩 공짜로 준다던데?”
“히야~ 이거 좋구만~ 좋아!”
거리 중앙에 마련된 극장에서 행상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걸어나오는 사람들의 말을 들은 조청은 깜짝 놀라며 극장을 가리키고 물었다.
“저기 중앙에서는 뭘 하는 겁니까?”
“공연.”
내용은 연주목과 나를 찬양하고 원소를 비방하는 내용의 공연이었다.
격문을 백날 천날 떠들어봤자 백성들은 모른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원소가 누군지, 조조가 누군지 제대로 정의되지 않고 있으니까.
그런 백성들에게 확실한 정의를 만들어준다.
아무리 지자들이 날뛰고 떠들어봤자 그들의 힘의 기반은 결국 다수의 백성들이다.
그 백성들의 마음을 잡을 수만 있다면 위기시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프로파간다.
이유하의 기억에 있는 단어다.
전형적인 선전이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선동이다.
하지만 아무런 즐거움이 없는 백성들이기에 이것이 오히려 잘 먹혀나갔다.
야시장을 염으로써 백성들이 가지게 되는 즐거움
그리고 그 즐거움 속에 싸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기회와 평소에는 보기 힘든 화려한 분장과 신기한 움직임의 극단.
귀인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는 귀한 악기를 이용한 연주까지.
야시장에서만큼은 백성들이 즐길 수 있었고 그 즐기는 것 속에 조금씩 조조와 나에 대한 신뢰가 늘어가며 현재 우리의 최대 적인 원소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을 심어준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고 할 수 있지만 단순하기에 오히려 백성들에게 잘 먹혀나갔다.
물론 서주의 백성들만을 노린 것은 아니었다.
야시장이라는 특수성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상인들에게 간단하게 잡다한 물품들을 팔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자신의 상단, 상점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전국을 돌아다닌다.
그런 그들에게 공연을 보면 술을 공짜로 마실 수 있다는 것은 반드시 공연을 보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들은 자신들에게 인상깊었던 공연의 내용을 자신이 가는 곳에 퍼트릴 것이다.
자연스럽게 상인들의 입에서 연주목이 최고고 기주목이나 다른 세력의 군주들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퍼지게 될 것이다.
물론 실패해도 큰 타격은 없었다.
어쨌든 야시장에서 공연을 여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술을 한병정도 공짜로 주는 것만으로도 백성들의 피로를 달래게 할 수 있으니까.
“가봐도 됩니까!?”
방통과 열심히 머리를 굴려가며 연극의 대본을 짜서 극단에게 떠넘겼던 나는 조청이 이렇게 좋아하는 것에 당황했다.
내용 자체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이고 백성들을 겨냥했기에 대놓고 조조가 최고고 원소는 쓰레기다를 부각시켜서 네가 보기에는 좀 유치할텐데.
“우리는 지금 순찰을 하러 온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