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81
00181 가문을 위하여 =========================
보고서를 읽으며 주유는 고민했다.
여강군의 서현은 흑염단인지 검은수염단인지 하는 이들이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식량창고는 식량을 포함해 모두 불살라버리고 백성들이 사용하는 모든 우물에는 똥과 함께 이물질들이 잔뜩 들어가 쉽게 쓸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뿐인가?”
밭에도 불을 지르고 숲에도 불을 질러놔서 도저히 이 상태로는 거점으로도 쓰기 힘들었다.
“이것만이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기존 서현에 살던 백성들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인망이 있는 여강군수 육강의 목숨을 빌미로 그들이 떠나게 했다.
그들은 쫓겨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청했다.
그리고 그 요청에 서현을 점령하고 있는 손책과 주유로서는 난감할 뿐 이었다.
돌아오는 것은 좋다.
하지만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텅 빈 곳을 그냥 쓰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곳에 백성들을 놔봤자 나오는 것은 떼죽음 뿐이다.”
물도, 밭도, 그리고 집도 제대로 된 곳이 없다.
식량이야 서현을 점령하기 위해 가져 온 치중을 쓰면 된다지만 나머지는 어찌 할 것인가.
이를 갈며 주유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흑염단.
과연 누구일까.
밤에 이루어진 일이고 흉수라 불릴만한 이들은 첫날 외에는 계속 관아에 머물렀으며 나머지는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분해하는 서현 병사들이 쫓아내버렸다.
“…그 자인가.”
주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 흉수의 얼굴을 제대로 본 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기존 서현의 병사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몇몇 이들이 예상되는 인물의 이야기를 꺼내보았지만 주유 자신이 생각하는 인물과는 달랐다.
“팽성군수 방통.”
이유는 없다.
증거도 없다.
하지만 주유는 그가 이런 짓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읽어낼 수 있었으니까.
저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필요하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어이. 공근. 뭐해?”
여강을 점령하기는 했지만 서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결국 여강의 다른 현을 순회하며 식량을 징발하고 병사를 모으기 위해 유훈이 움직였고 손책과 주유는 서현에 남아 서현을 복구시키는데 집중했다.
땀방울을 송글송글 맺은 채 손책이 들어오자 주유는 그에게 물었다.
“우물은?”
“하나는 팠다만…”
“하나가지고는 곤란한데.”
“우물 파는게 쉬운 줄 아냐.”
손책이 투덜거리자 주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을 구하기 어렵다.
그것은 군대 뿐만 아니라 백성들 역시도 오래 머무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곧 서현의 백성들이 돌아올거야. 그들을 다독이지 못하는 이상 이곳을 계속 거점으로 삼을 수 없어. 만약… 그들을 정착시키는데 실패하면 너의 이름은 최악이 될거야.”
주유의 말에 손책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영악한 놈들이다.
자신들의 목적이 여강을 점령하고 서현을 차지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 아예 못쓰게 만들어버렸다.
차라리 서현 백성들이라도 몰살시켰다면 모르겠지만 서현의 백성들은 그냥 주변의 현으로 내쫓기만 했을 뿐 이었다.
그들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도록.
서현을 점령한 자신들에게 서현의 복구를 요청하도록.
단순히 치고 나가는 곳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여강군은 차후 서주와 강동을 공략하기 위한 중요한 거점이다.
그곳을 그냥 둘 수만은 없었기에 손책과 주유는 유훈을 설득하여 여강에 대한 점령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피해는 예상 이상이었다.
여강군수의 직인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주변 현의 협조라도 받겠지만 여강군수의 직인마저 가지고 튀어버린 덕분에 여강군의 현령들은 손책과 주유들에게 무척이나 비협조적이었다.
나이도 나이거니와 육강에 대한 신망이 너무 크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육강이 아닌 다른 군수는 인정할 수 없다.
정 군수로 명령을 하고 싶다면 여강군수의 직인을 가져오던가 아니면 황제 폐하의 임명장이라도 가져와라.
들어 온 서현의 백성들은 돌려주겠지만 지원은 해줄 수 없다.
그 지원으로 우리를 공격할지 어떻게 아냐.
손책으로서는 난감할 뿐 이었다.
아무리 공격할 생각이 없고 그저 서현을 복구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해도 원술이 군대까지 이끌어 서현을 공격한 이상 여강의 다른 현에서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훈은 불같이 화를 내며 다 죽여버리겠다고 나가버렸지만 그로서도 쉽게 여강군 내의 현을 공격할 수 없었다.
만약 진짜로 공격했다간 각 현에서 모두 들고 일어나버릴테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싸우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훈은 씩씩거렸지만 현실에 순응하여 군대를 이끌고 협조를 구하러 다녔고 그 협조에 각 현은 마지못한 수준 정도의 지원만을 해줄 뿐 이었다.
“하아… 정말 쉬운 일이 하나도 없구만.”
그저 서현을 복구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던 첫날의 자신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을 정도다.
손책은 우울해하는 주유를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네 고향이 이렇게 만들어졌는데 넌 화도 안나냐?”
“그렇게 화 낼 시간 있으면 주변에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한장이라도 더 만들겠어. 그리고 백부. 너도 쉴 시간 없다. 이건 어찌보면 기회니까.”
“음?”
“흉악한 도적에게 폐허가 된 서현을 훌륭히 복구한다면 너의 명성은 올라간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에는 원술의 부하는 없어. 오로지 너와 나 뿐이야. 그러니까 이 명성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들어 올 것이다. 그러니까 쉴 시간이 있으면 우물 하나라도 더 파.”
“그렇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끙. 병사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저들을 지휘할 만한 사람이 너무 부족해. 애초에 우리는 천인장으로 전투에 참여한 것이지…”
“그건 어쩔 수 없다.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만 좋게 될 수는 없어. 그렇게 되는 자는 하늘에게 사랑받는 자 정도에 불과하겠지.”
손가의 사람들이라도 좀 지원을 받는다면 모를까.
손책이 우울해할 때 막사의 문이 열렸다.
지금 관아를 복구하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있어서 서현에 들어왔음에도 막사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손책과 주유는 막사로 들어 온 이를 보며 깜짝 놀랬다.
“맙소사! 공복! 덕모!”
“오셨습니까.”
황개와 정보.
막사의 문을 열고 들어 온 남자들을 보며 손책은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인 손견 때부터 그를 모시던 손가의 가신들이다.
그들이 이곳으로 왔다는 것에 놀라며 손책은 주유를 보았고 주유는 쓰게 웃었다.
“여강을 복구하는데 사람이 모자르다고 하니 보내주더군.”
“아아… 역시 공근!”
씨익 웃는 그들을 보며 손책은 주유의 등을 팡팡 쳤다.
기뻐하는 그의 모습에 도 주유는 정보와 황개를 보며 살짝 눈쌀을 찌푸렸다.
“두분만 오신 겁니까?”
“음.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의공은 오는 길에 도적들을 토벌하고 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여강을 한바퀴 돌기로 했어. 정병들을 만들 수 있겠군.”
정보와 황개가 느긋하게 말하자 주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견 때부터 그를 모시던 역전의 용사인 정보와 황개, 그리고 한당이 자신들과 합류하게 된 것이다.
“병사를 이천 더 데리고 왔네. 예전 주공을 따르던 이들이니…”
“병사까지! 원술 그자가 드디어 우리의 힘을 돌려주려는 것입니까?”
아직 손견을 따르던 이들을 모두 데리고 온 것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매우 괜찮은 정도다.
그것에 기뻐하는 손책에 비해 주유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만큼 병사를 준 것은 이유가 있을텐데… 무엇입니까.”
“이것을 받게.”
황개는 품에서 꺼낸 서찰을 주유에게 주었다.
그것을 받아 읽어 본 주유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황개는 난처하다는 듯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서현을 복구시키는 것을 유훈에게 양보하고 우리는 병사들을 챙겨서 곧장 수춘으로 돌아 온 후 바로 서주로 가라고 하더군.”
“이런 미친…”
손가의 힘을 돌려받은 것은 좋지만 서주로 가라니.
자신들을 화살받이로 쓰겠다는 것 아닌가.
지금 자신들이 이끄는 이천의 병사를 합치더라도 고작 사천.
하비가 어떤 곳인데 고작 사천으로 치라는 말인가.
“이곳에서 여강군을 다스리며 힘을 모으려고 했건만…”
여강의 식량창고가 불타지 않아 군량을 제대로 보급받을 수 있다면 모를까 그것이 아닌 이상 서주로 공격해 들어가라는 것은 가서 죽으라는 얘기 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 자신들이 죽도록 싸운 이후 유훈을 시켜 서주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려는 속셈일 것이다.
그러니 아쉬움 없이 손견의 부하들 중 가장 강한 이들을 보내주었지.
주유가 빠득 이를 갈자 정보는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네.”
“원술에게서 벗어날 것인지 말것인지… 입니까?”
“그래.”
육강을 죽였다면 그 충성심을 인정받아 손가의 힘을 모두 돌려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육강을 죽이지 못했고 서현을 점령했지만 군량은 얻을 수 없었다.
이도저도 아닌 결과가 되어버렸으니 원술은 다른 방법으로 충성심을 시험하고자 했다.
“만약 네가 원술에게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이곳 여강을 거점으로 삼을 수 있겠지.”
“아니면 장사로 가도 괜찮아. 도망가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되니까. 그곳에서 손가의 힘을 다시 모을 수 있을거다.”
“허나 원술의 명을 무시하고 도망간다 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 오히려 위협만 늘어날 뿐이야. 수춘에 있는 병력은 많다.”
정보, 황개, 그리고 주유.
셋 모두 의견이 달랐다.
현재 손책과 주유는 유훈의 편제 아래 그의 명령을 받고 있었다.
서현이 이렇게 되어버리고 군량의 확보에 실패한 이상 많은 병력을 데리고 있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기에 있던 병력을 줄여 다시 원술에게 돌려보낸 유훈이 데리고 있는 병력은 고작해야 일만.
그 중에 이천이 손책과 주유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데다가 정보와 황개가 데리고 온 병력을 합친다면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유훈을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후에는 뭘 어쩔 것인가.
아직 원술의 병력은 많고 그 휘하의 맹장인 기령 뿐만 아니라 다른 장수들은 많이 있었다.
그렇다고 장사로 도망간다?
손견의 영향력이 아직 남아 있는 장사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이득은 없었다.
장사의 호족들이 자신들의 손을 들어 준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원술은 이것을 기회로 자신에 대한 악평을 널리 퍼트릴 것이다.
아직 제대로 된 힘을 갖추지도 못한 상황에서 악평이 퍼진다면 오히려 손해일 수 밖에 없다.
“…..”
셋의 의견을 들으며 손책은 고민했다.
조언은 받지만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다.
고민을 하던 그는 한숨을 내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수춘으로 돌아가자. 그곳에서 보급을 받은 후에 이야기를 나누자고.”
“어이. 백부. 그건 현명한 선택이 아닌 것 같은데? 그저 회피라고 밖에는…”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행동에 주유는 인상을 찌푸렸고 손책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따라와줘.”
손책이 짐을 챙기는 것을 보며 주유는 생각을 하다가 물었다.
“원술과 거래를 할 생각은 아니겠지?”
“왜 그렇게 생각해?”
“옥새를 네가 가지고 있으니까.”
주유의 말에 손책은 짐을 꾸리던 손을 멈췄다.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주유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문대 어르신께서 낙양에 갔을 때 옥새를 얻은 것은 나도 알고 있어. 그리고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 그 분의 짐에서는 옥새가 나오지 않았지. 그 말은 네가 따로 챙겼다는 것 아닌가?”
“역시 너는 못당하겠네.”
쓰게 웃으며 손책은 짐꾸러미 밑에 있는 작은 상자를 꺼내었다.
옥으로 만들어진 도장
용과 봉황이 새겨져 있는 옥새를 보며 주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을 원술에게 준다고 해서 원술이 우리를 놔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아. 지금 원술은…”
“알아.”
“…그럼?”
“거래를 할 상대는 원술이 아니야.”
“너 설마.”
주유는 당황했다.
이 인간이 드디어 맛이 갔구나.
거래를 할 사람이 없어서 그자와 거래를 한다?
거래는 커녕 잡혀서 죽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서주로 가야해. 그래야 원술의 눈을 피할 수 있지. 그렇다면 거래를 해야 할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손책은 옥새가 들어 있는 상자를 닫은 후 말했다.
“내가 거래를 시도 할 사람은 하비성주. 진유하다.”
“그가 거래를 받아들일까? 옥새를 준다하여 그가 우리를 도와 줄 의무는 없어.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옥새는 그다지 필요한게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거래는 무엇이지?”
“옥새를 주고 병력과 군량을 얻어 원술을 치는 것…?”
“아니.”
손책은 고개를 가로저은 후 차분히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거래는 그것이 아니야. 옥새를 주고 하비성주와 동맹을 맺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힘을 이용해서 원술을 치는 것이다.”
“……”
과연 그가 그 거래에 응할까?
주유는 손책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기대감 역시 담겨 있었다.
“내가 가지.”
“아니. 내가 간…”
“하비성주는 현명한 자다. 그리고 그의 휘하에 있는 팽성군수 방통 역시 보통은 아니지. 그렇다면 내가 가는게 나아. 병사들만 조금 붙여다오. 수춘으로 가는 길에 몰래 빠질테니까. 그리고… 만약 네가 간다면 하비성주는 당장 너를 잡지 옥새 따위로 거래를 하지 않을거야.”
여강에서 만난 방통의 눈을 떠올리며 주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자신들에게 탐욕을 드러냈었다.
그런 그가 있다면 반드시 손책은 사로잡힐 것이고 그를 빌미로 자신 뿐만 아니라 손가의 모든 이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원술따위에게 잡혀 있는 것 이상의 위험 곁에 있게 된다.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간다.
천하는 넓고 책사는 많았다.
하지만 손가의 가주는 하나에 불과했다.
주유의 시선에 손책은 우울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그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아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오셔도 저런 눈을 한 주유의 뜻을 꺽을 수는 없다.
오랜 친우이기에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손책은 주유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옥새가 든 상자를 내밀었다.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