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215
00215 목적과 수단 =========================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장패와 함께 곧장 낭야군으로 향했다.
하비군, 팽성군, 산양군을 잇는 유통망을 개선하기 위해 정비된 관도와 다르게 낭야군으로 가는 관도는 그리 좋지 않았다.
덜컹거리는 마차 속에서 난 심각해졌다.
장패가 세금을 정당히 지불하겠다면 그것을 원활하게 받기 위해서라도 관도의 정비가 필요할 것 같은데…
“여기서 하비까지의 거리가 어떻게 되나… 아니면 그냥 동해군을 통하게 해볼까?”
확 콘크리트로 도배를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석회 구하는게 보통 일이 아니다.
보통 양으로는 택도 없을텐데 어중간하게 콘크리트로 도배를 했다가 중간에 석회가 모자라게 된다면 어디는 멀쩡한 길인데 어디는 흙길이라는 이도저도 아닌 골치아픈 상황이 발생한다.
내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리자 장패는 입맛을 다셨다.
“쩝.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천천히 하쇼. 천천히. 곧 죽을 사람처럼 뭐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거요?”
“그래도 할 수 있을때 바짝하는게 낫지 않을까?”
“가끔씩 하비에 가서 사람들 일하는 거 보면 너무 여유가 없어.”
장패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여유?
지금은 여유 찾을 때가 아니다.
뭐 하나 불을 꺼버리면 다시 불이 붙어버리니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없다.
당장 원술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더니 유요가 밑에서 까불지 않는가.
내가 쉬면 쉴 수록 백성들을 갈고 닦을 여유가 줄어든다.
서주는 지금 내 최대의 지지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을 잘 이용하려면 이정도로 일하는 것은 약과다.
조조가 황제를 차지하면 그것에 대한 경계로 유표, 원술, 그리고 익주의 유장이 조조를 공격할 위험도 있었다.
지금 연주가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다고 치더라도 연주 혼자서 그들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원소까지 치고 내려오면?
최악의 경우 서주의 힘으로 청주와 기주를 공략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놀 여유가 없었다.
“위정자는 쉬면 안된다.”
“물론 그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위정자도 사람 아니오?”
“그렇긴 하지.”
“너무 과하게 일을 하는 것도 보기 좋은 것은 아니요. 뭐든지 적당히가 중요한거지.”
“흐음…”
장패의 말대로일까?
나는 확실히 조급했다.
“내가 서주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을테니까.”
아마 조앙이 오면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연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중앙의 일을 하게 되겠지.
그렇게 된다면 서주를 발전시키는 일은 거의 물건너 간다고 보면 된다.
그 전에 최대한 많은 것을 이뤄두려는 날 안타깝게 응시하던 장패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그렇게 열정적으로 백성들의 삶을 개선해나가려는 이들은 내가 알기로 단 셋 뿐이요. 연주목, 기주목, 그리고 서주목인 당신. 댁들이 바쁘게 움직이면 움직일 수록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겠지. 하지만 그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좋겠군.”
“무슨 소리야?”
“당신이 무리를 하다가 쓰러지게 되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하라고? 서주의 백성들은 지금 불안해하고 있소.”
“내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나?”
“음.”
원술의 경우를 떠올렸다.
원술은 수춘을 마음대로 점거한 후 자신의 명분을 내세웠지만 수춘의 백성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그가 여남으로 물러났고 그의 잘못된 지배는 백성들의 환호를 불러왔다.
누가 와도 원술보다는 낫겠지.
그러한 상황은 반대로 생각하면 큰 위험을 불러 올 수 있는 것이다.
나와 내 당여들. 내 사람들이 선정을 베풀어 서주를 다스려 백성들의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계속 서주목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당연히 서주를 떠나서 중앙으로 가야 하고 그 뒤를 이어 조앙이나 다른 이들이 서주목으로 오게 될 것이다.
그때 과연 서주의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아무리 조앙이 선정을 베푼다 하더라도 그들은 결국 나와 비교를 하게 될 것이다.
현 서주목이 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 서주목만 못하지.
역시 서주목은 진유하가 되어야 한다.
이런 말이 나온다면 열심히 노력해도 안된다는 것에 새로운 서주목은 고생할 수 밖에 없었다.
“하긴 그렇군.”
너무 앞만 보며 달리느라 놓쳐버렸다.
장패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목적을 가지게 되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을 선택하게 되고. 당신이 선정을 베푸는 것처럼 당신의 후임자가 선정을 베풀기를 바라는 거요. 그리고 그 기대치는 더욱 높아지기 마련. 사람들은 새로운 것이 기존의 것보다 낫다는 기대감을 은연중에 품게 될테니까.”
“그래.”
“그러니 적당히 하시오. 적당히. 후임자가 할 일도 남겨두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댁도 꽤나 경험이 있나보군.”
“태산장에 머무르며 많은 이들을 보았으니까. 지금 당신이 서주에서 열렬히 환영받을 수 있는 것도 당신의 전 서주목이었던 도겸이 하비만을 발전시키고 다른 곳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점도 있소. 낭야군에 대한 발전, 그리고 동해군에 대한 발전은 후임자를 위해서 남겨두시오. 당신이 그와 사이가 좋지 않다면 모를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에게 큰 선물이 되겠지.”
“그렇겠군.”
장패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후임자를 위한 것도 준비를 해야 한다.
너무 달리는 것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내가 서주에서 해야 할 일은 그들을 나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과 동시에 조조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오로지 나의 편으로만 만드는 일에 너무 집중을 했다.
“조언 고맙군.”
“우와~ 그 잘난 하비성주에게 조언을 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후후.”
내 인사에 장패는 씩 웃으며 대꾸했다.
“슬슬 도착한 것 같은데… 음. 이제부터 낭야군이요. 조금만 더 가면 내 치소가 나오겠군.”
마차의 창을 보며 장패는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그를 따라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보았다.
아직 아무것도 심어지지 않은, 개간되고 있는 밭이 보인다.
사람들은 농기구와 소를 이용해서 밭을 갈고 있었고 길을 통해 이동하는 군세를 보며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뭘 심을 생각이지?”
“글쎄? 뭐든지 심겠지. 나는 당신과 다르오. 모든 것을 통제할 수도 없고 통제하고 싶지도 않수. 청주의 백성들은 오랜 시간 지배받지 않고 살아왔소. 그들의 삶에 개입을 하는 것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해야 하는 법. 나는 제시할 뿐이고 그들은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지.”
장패는 차분히 대꾸했다.
원한다면 종자 정도는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어떤 농사를 짓든 그것은 백성들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농법에 대한 전수는 끝났으니 알아서 하라는 태도였다.
너무 손 놓은 것 아닌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세금, 그리고 부역과 군역을 요구하는 정도요. 그리고 그것이면 되었지. 저들이 법을 지키고 살아가는 이상 그 이상으로 건드리고 싶지는 않소.”
“무슨 도인이냐…”
“왜냐하면 그것이 당신들이 말했던 계약과 같은 것이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그것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오. 저들은 계약에 따라 밭을 개간하고 농사를 짓소. 그리고 계약에 따라 세금을 바치지. 그리고 나는 계약에 따라 저들을 보호하고 저들이 살아갈 기반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것. 나는 양 군수나 당신처럼 많이 공부하지도 않았소. 싸움은 할 수 있지만 다스리는 것은 못하지. 그러니 그냥 풀어 놓을 생각이오.”
양 사형과 나는 수경원에서 많은 공부를 했다.
백성을 다스리는 법.
그들을 이용하는 법.
그리고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법.
하지만 장패에게는 그러한 지식이 없었다.
그는 무장이지 위정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장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거 이 인간에 대한 욕심이 자꾸 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거요. 그러니 성주. 당신에게도 제안하겠수.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시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뭐야. 결국은 날 걱정해주는거냐?”
“허. 그럼 당연하지. 당신이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서주는 난리가 날걸? 적어도 후임자는 제대로 정해주고 쓰러지라고.”
내가 웃으며 놀리자 장패는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음.
탐난다.
나에게도 꽤나 호의를 가지고 있는 듯 한데 한번 꼬셔볼까?
내가 서주로 간다고 하더라도 장패가 낭야군수직을 벗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차후를 대비해서 그를 지금 꼬셔 놓는게 낫지 않을까?
“군수님!!”
장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낭야군수의 치소가 있는 개양현의 입구에 도착했다.
성이 아닌 거대한 마을이 눈에 보이자 난 휘파람을 불었다.
“은근히 크네.”
“일만호가 넘수.”
마차가 멈추자 장패는 마차에서 내렸다.
원래라면 말을 타고다니는 이이지만 나 혼자 있어서 심심할까봐 마차에 타고 있었던 그는 관도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녀왔다!”
“뒤의 군세는…?”
“아아. 하비의 흑귀대다. 훈련을 도와주기로 했지.”
“와… 그렇습니까? 그런데 왠 마차요? 답지 않게?”
바깥의 소리를 들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내가 내리고 그들에게 걸어가자 장패를 맞이한 이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 성주님 아니십니까!”
“오래간만에 뵙겠수다.”
아는 얼굴이다.
전에 나와 거래를 위해 하비성에 왔던 유벽과 공도였다.
험상궂은 얼굴.
그리고 그들의 몸을 두르고 있는 관복.
난 피식 웃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관복이 안 어울리는 사람들은 또 처음일세.”
“뭐, 뭣!?”
“하하하… 저희도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벽과 공도는 얼굴을 붉혔지만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꽤나 여유를 가진 듯 하다.
낭야군에서 머물게 되고 관직을 얻은 것 때문인지, 아니면 관도 주변에 개간되고 있는 밭들과 그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백성들 덕분인지 그들은 전과 다르게 무척이나 밝은 표정으로 날 반겼다.
“어서 오십시요. 하비성주님.”
“응. 오래간만이네. 별 일 없었지?”
“별일… 사는 것 자체가 별 일인데 무슨 다른 별 일이 있겠습니까. 마침 잘 되었습니다. 드리고 싶었던 말도 있었는데.”
흑귀대들과 다를바 없이 험상궂은 얼굴로 빙긋 웃은 그는 나에게 허리를 숙이고 뒤를 보았다.
“자! 하비성주님과 군수님을 모셔라! 그리고 뒤에 오신 흑귀대 분들도! 우리를 도와주실 분들이니까!”
공도와 유벽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낭야군의 관청 회의실에서 난 무뚝뚝한 인상의 하녀가 따라 준 차를 한모금 마셨다.
정말 못탔다.
“시녀들의 수준을 기대하지는 말아주십시요. 그저 청주의 여아들에게 저희 나름대로의 교육을 시켰을 뿐이니까. 저희는 물 대신 차를 마시는 것입니다.”
“알아. 그래도 못 탄 건 못 탄 거지.”
영이나 두열이 타주던 차만 즐겨 마시다가 이렇게 쓰기만한 차를 마시려니 찝찝하다.
내가 웃으며 말하자 공도는 고개를 끄덕인 후 나에게 몇가지 서류를 내밀었다.
“글자 모른다더니 배웠나보네?”
“그래도 관아의 일을 해야 하는데 계속 까막눈일 수는 없지요. 저희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비성주님만큼은 아니겠지만.”
“하하하… 그래. 고생했어.”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장합의 제자로 들어갔던 요화가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나에게 서신을 보냈던 일.
그때 얼마나 우스웠던지.
그리고 얼마나 뿌듯했던지.
내 사람들이 성장한다는 것을 보는 재미가 이런 것이라는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글씨체는 뭐 그렇다고 치더라도 실제 해야 하는 일들은 잘 하고 있나보네.”
공도가 준 죽간을 읽은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려주자 그는 빙긋 웃었다.
“하비에서 제안한 농법을 시도하니 확실히 농사가 잘 되긴 하더군요. 그리고 몇가지 더 저희들이 연구를 한 것이 있습니다. 그… 품종개량이라고 하셨습니까?”
작물 중에서 씨알이 굵은 것을 종자로 하고 나머지는 먹는다.
지금 할 수 있는 품종의 개량은 이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럭저럭 효과를 보고 있었다.
그것을 전수해주었던 나는 공도가 웃으며 말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그게 뭐 어쨌다고?”
“소들과 말들에게도 그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양마와 양우를 이용해서 새끼를 낳게 했는데 꽤나 크고 건강한 소와 망아지가 나왔습니다.”
“오… 그래?”
좋은 말이나 소를 이용해서 번식을 하는 것은 몇몇 지방에서 하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좋은 말을 많이 배출하는 양주 같은 경우에는 벌써 그것을 시행하고 있었는데 강망의 말로는 익주 역시도 그 방법을 통해 좋은 소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다.
딱히 어려울 것이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것을 생각해냈다는 것이 대견하다.
“그럼 소의 지원은 좀 끊어도 되려나?”
“양마와 양우의 교배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아직은 연구중입니다. 이번에 군수께서 동해군에 간 것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하비에서도 지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렵지는 않지만 많이는 힘들어.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할 일이 있거든.”
강망은 조만간 하비로 가서 그곳의 마굿간과 우사를 돌보게 될 것이다.
그의 경험과 지식을 받아 다른 이들도 그의 절반만큼만 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난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공도는 아쉬워했다.
“쩝.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세금에 관해서는 군수님께 들었을 것 같은데…”
“응.”
“그럼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청주에 가야하거든. 바쁜데 미안하지만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청주에…? 성주님의 말씀이라면 도와드리는 것은 문제가 안됩니다만… 거긴 왜 가십니까? 딱히 얻을 것도 없을텐데. 지금 청주는 무법지대입니다. 원소가 보낸 청주목이 또 도적들에게 살해당했다고 하더군요. 위험한 곳입니다.”
“그래도 가야해. 북해군에 볼 일이 있거든.”
내 말을 들은 공도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딱히 좋은 감정이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며 쓴 차를 한모금 마셨을 때 공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혹시 공융을 만나러 가시는 겁니까?”
“응.”
북해에 있는 공자원은 공도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말했다.
“그들은 쓰레기입니다.”
“너무 대놓고 말한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공자의 후손이라… 전혀 공자의 후손답지 않은 행동만을 취하는 이들입니다. 북해에 가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혹은 공자원의 주변에 가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 가본 적은 없는데.”
공도는 가본 건가?
내가 궁금해하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빴는지 인상을 팍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