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303
00303 지배자의 자질 =========================
“늦은 감이라… 하긴. 자네 말도 틀린 것은 아니겠군.”
“자세한 이야기는 저녁에 조공께서 오시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세. 저녁에는 공달도 오기로 했으니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세.”
공직에 있는 자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바로 감사다.
감사가 시작되면 잘못을 하지 않아도 두려울 수 밖에 없다.
감사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아예 대놓고 찍어버리겠다는 의미가 되니까.
털어서 먼지가 나오지 않는 사람은 없다.
특히나 이런 시대라면 더욱 그러겠지.
적당히 뇌물을 받고, 적당히 접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인 관리의 모습이었다.
“저치들이 굽신거리며 오는 것은 좋은데 말이야…”
왕자복은 꽤 높은 관직에 있는 자다.
그런 자에게서 얻은 정보가 신빙성이 있으려면 높은 관직에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황보숭이나 주준, 동승을 찍어내고 싶지만…”
쉽지는 않겠지.
애초에 황제가 그들을 내어 줄리도 없을 것이고.
황제가 필사적으로 그들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나로서도 그들을 찍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나 황보숭, 주준 같은 경우는 오랜기간동안 황실의 관리로서 일해 온 것과 황건적 토벌을 하며 인기를 올릴 것 때문에 어중간한 죄로는 그들을 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젠장. 쉬운게 하나도 없네.”
황제를 얻어 외부의 적을 처벌하고 공격하는 것은 쉬웠지만 그만큼 내부의 단속 역시도 필요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어.
“빌어먹을. 원소 개새끼.”
“후아아…”
“아이고 힘들… 오. 처남. 왔어?”
실컷 대련이라도 한 모양이다.
조앙과 조청이 방으로 들어오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오셨습니까.”
“음. 여전히 딱딱하구만. 이제 슬슬 형님이라고 부를 때도 되지 않았나?”
조앙은 싱글벙글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형님이라.
나쁘지 않지.
“그러지요. 형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만.”
“뭔데?”
“내일 관청에서 열릴 회의에 참석하셨을 때 무조건 제 편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그야 당연히 처남의 편을 들어줘야지.”
뭘 할 것인지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조앙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혈연의 힘인가.
내가 그를 빤히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듣지도 않고?”
“처남이 쓸데없는 짓을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왜? 뭐 하려고?”
“왕자복에 대한 심문, 그리고 그 처벌에 대한 것, 거기에…”
난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황제를 모시고 있는 관리들에 대한 교체.”
“쉽지 않을텐데. 황 늙은이와 주 늙은이가 보통 꼬장꼬장한게 아니라서.”
그의 말대로다.
황보숭과 주준의 관직을 빼앗으려면 한번에는 불가능할 것이다.
현재 관직에 있는 이들의 힘을 빼앗고 그들을 지지하는 기반을 천천히 무너트려야 한다.
이번의 일은 그저 사전 작업에 불과하기에 조앙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지요.”
“정 어르신은?”
조앙마저도 어르신이라고 부를 정도인 정현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정현이 소문과 같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더 편하다.
“그 역시 대응 방법은 생각해 놨습니다.”
몇가지 방법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과연 통할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하나라도 통한다면 이득이니 그때 가서 해볼 생각이었다.
“오오오~ 역시 대단해. 야. 네 남편 될 사람이 이 정도다.”
“알고 있었습니다.”
조앙이 웃으며 조청의 옆구리를 찌르자 그녀는 그것을 피하며 은근히 자랑스럽다는 듯 뿌듯함이 느껴질 정도의 어조로 말했다.
그것을 보며 조앙은 맥빠진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기집애가 좀 부끄러워하고 그런 맛이 있어야지.”
“많이 부끄러워하던데요?”
“어? 진짜?”
“예. 오늘 아침에만 해도…”
“자, 장군님!”
“왜?”
“그… 장군님 드리려고 좋은 것을 가져왔습니다! 귤입니다! 귤! 무척이나 귀한 귤!”
조청은 황급히 내 말을 막아버린 후 챙겨 놓은 작은 귤을 꺼내어 나에게 주었다.
아니!?
이 귀한 것을.
껍질마저도 향료로 귀하게 팔리는 귤을 내놓은 조청을 보자 조앙은 씩 웃었다.
“선물로 들어왔어. 아버님께 진상된 건데 그 중 몇개를 받았거든. 청이가 너 주겠다고 자기 안먹고 가져왔다.”
“형님은요?”
“나도 염이가 있으면 챙겨줄텐데 염이는 지금 낙양에 있지. 귤은 금방 상한다고. 그래서 다 먹었다. 껍질을 말려서 향낭으로 만들어 가져다 줄 생각이야.”
“드시겠습니까?”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조청은 허둥거리며 귤껍질을 까서 내 입에 넣어주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입 안에 감돈다.
“어떻습니까?”
“맛있네.”
“헤에…”
“오오~ 보기 좋은데? 진짜 부부 같아.”
“그렇습니까?”
조앙의 놀림에도 조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그냥 신경쓰지 않는 것 같은데?
“후후후. 맛있으십니까? 하나 더 드릴까요?”
“고맙네. 넌 괜찮아? 너도 먹지 그래?”
“네. 장군님이 드시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네요.”
내가 귤 하나를 다 먹는 동안 그녀는 하나도 먹지 않고 하나를 더 까고 있었다.
음.
이런 것만 보면 어제의 그 모습이 진짜 거짓말만 같다.
혹시 환각은… 아니겠지?
“자. 아~”
“내가 먹을게.”
“예에.”
조청이 입에 넣어주려는 것을 말리며 내가 직접 집어 먹었다.
아쉬워하는 그녀를 보며 조앙은 킬킬 웃었다.
“뭐야? 너희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달달하냐?”
“이런 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형님도 그러잖습니까.”
“하하하. 나야 뭐. 아무튼 보기 좋구만. 딱히 문제는 없지?”
문제라…
있지.
난 조청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는 히죽 웃어버렸고 그것에 난 한숨을 내쉬었다.
“뭐. 밤이 좀 무서워 질것 같..”
“더 드세요! 더!”
“읍읍!”
저녁이 되자 조조와 함께 순유가 찾아왔다.
예전에 한번 본 적이 있었던 그는 날 향해 환하게 웃었다.
“이야~ 이거 정말 오래간만이군! 잘 지냈나? 아니지. 이제 진동장군님이시니 하대를 하기도 힘들구만. 잘 지내셨소이까?”
“편히 말씀해주십시요. 순 어르신.”
“하하핫! 그럴까?”
순욱의 조카이지만 나이는 그보다 더 많았다.
당연히 나보다 훨씬 많았기에 난 그에게 웃으며 하대를 청했다.
물론 조조의 부하가 된 순서로 따진다면 나보다 그가 더 느렸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괜히 이런 것 가지고 기싸움 벌일 이유는 없었다.
“내 숙부께서 자네의 칭찬을 아주 많이 했지. 그리고… 문화. 그 사람도 그랬고. 혹시 그 친구와 연락을 하고 있는가? 아주 대단한 친구인데.”
일전 내 결혼식때 가후와 함께 찾아왔었던 순유의 말에 조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화라면 이각의 휘하에 있던 가후를 말하는 것인가?”
“예. 아주 대단한 자였지요.”
“허어… 그런 사람을 알고 있었다면 나에게 먼저 소개를 해줬어야지.”
조조가 아쉬워하며 말하자 순유는 머쓱한 표정으로 변명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곧 그가 사라져버려서…”
“아쉽구만. 자네가 인정할 정도라면 아주 대단한 사람 같은데.”
대단하지.
어떻게 보면 사마의와 함께 이 난세를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조조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것을 보며 말했다.
“들어가시지요. 언제까지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 자자. 오늘은 같이 저녁이나 한끼 하세들.”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인원이 많았다.
조가의 사람들이 다 모인 듯 넓은 연회장에 마련된 자리였다.
조조가 가장 상석에 앉았고 그 다음은 조인과 조앙, 순유, 그 밑의 자리는 나와 조청이 앉았다.
반대편에는 조조의 부인들과 아들들이 앉았다.
우연인지 아니면 노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비와 나는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웃어보이자 나 역시 그를 향해서 웃었다.
“자. 많이들 들게.”
“어? 오늘은 술 안마십니까?”
화신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조앙은 술이 없는 것에 이상해하며 물었다.
그의 말에 조조와 조인, 그리고 조청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으음. 매일 술을 마실 수는 없지 않냐.”
조조는 질린 듯 떨떠름히 말했다.
“그래. 넌 오래간만에 와서 술 먹자는 소리만 하고. 너희 아버지 얼굴이 궁금하다. 이 녀석아.”
조인은 인상을 구기며 짜증을 내었다.
“서주목께선 좀 자중해주십시요.”
조청은 싸늘한 어조로 타박했다.
그냥 술 한잔 하자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 공격 받을 줄 몰랐는지 조앙은 당황하며 날 보았지만 내가 무슨 힘이 있겠냐.
“그냥 서주 가서 드십쇼.”
“아니 왜 이래!? 다들. 그리고 숙부님. 저희 아버지 얼굴은 저기 있잖습니까. 허.”
“앙아. 너무 그러지 말거라. 어제 술자리때문에 다들 고생하셨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느냐.”
정부인은 쓰게 웃으며 조앙을 작게 타박한 후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사위. 자네 형님이 이리 철이 없네.”
“알고 있었습니다.”
“어이! 동생! 이러기야!?”
조앙이 끼었을 뿐인데 자리가 무척이나 유쾌해졌다.
술 한잔 마시지 않고 다들 웃는 와중에 난 힐끔 조비를 보았다.
그 역시 웃고 있었지만 눈만은 웃지 않고 있었다.
“에이! 비야. 역시 나에게는 너 밖에 없다.”
“형님께선 조금 과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자식… 너마저.”
조비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조비는 칼같이 잘라버렸다.
조앙이 시무룩해하자 변 부인은 부드럽게 미소지은 후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장자인데 너무 그렇게들 나무라지 마십시요.”
“나무라기는. 이게 무슨 나무란거요? 형수님.”
“암. 저 녀석은 좀 혼이 나야 해.”
조조와 조인의 타박이 시작되자 조앙은 히죽 웃었다.
스스로 놀림감이 됨으로써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한다.
조비는 나를 보았다.
그의 시선은 한가지를 묻는 것 같았다.
지배자가 될 사람이 저렇게 광대처럼 스스로를 비하하여 인기를 끄는 것이 과연 제대로 하는 것인가? 라는 의미가 담긴 시선을 보낸다.
조앙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인정하지 않는 듯한 그를 보며 난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그만들 하시고 어서 드시지요.”
“그러지. 앙이 너는 저녁 식사 후에 따라오거라. 너에게도 할 말이 있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조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오늘 저녁에는 내일 회의를 대비한 준비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것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식사에 집중했다.
조앙의 유쾌한 농담이 주도한 저녁 식사가 끝났다.
조금 쉬었다가 회의를 하기로 하고 난 소화를 위해 간단하게 오금희를 하려고 건물의 뒤로 향했다.
오금희가 딱히 비밀스러운 훈련도 아닌 건강체조에 불과한 이상 보여줘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명색이 장군 쯤 되는데 상의 탈의하고 수련하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긴 그렇지.
오늘 아침에 했던 것처럼 내가 머무는 건물 뒤에 숨어서 홀로 오금희를 한 후 밖으로 나가려 했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넌 왜 또 그렇게 입이 한댓발 나와 있냐?”
조앙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누구에게 하는 이야기일까?
살짝 고개를 내밀어보니 얼굴 가득 싱글거리는 미소를 짓고 있는 조앙과 뚱한 표정의 조비가 서 있었다.
“딱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형님.”
“딱히 그런 것은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길가는 사람 잡고 물어봐라. 지금 네 표정이 어떤지. 저 완전 삐졌습니다. 라고 하고 있잖냐. 오래간만에 형을 보고서도 그렇게 나올 거냐?”
“형님께서…!!”
조비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것을 들은 조앙이 씩 웃자 조비는 그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아. 아닙니다.”
“뭔데 그래? 한번 해봐.”
“…형님. 꼭 아버님의 후계자가 되셔야겠습니까?”
대놓고 말하는구나.
조앙도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이 이런 의미일까?
조비의 도전적인 질문에 조앙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누가 하게?”
“형님께서는…”
“또 자질이 없다고 하려고?”
“…잘 알고 계시는군요.”
“글쎄… 과연 지배자의 자질이란게 무엇일까?”
“형님께선 늘 그런 대답만 하시더군요. 형님께는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형을 생각하는 마음은 고맙다만 사양하마.”
조비의 날카로운 어조에도 조앙은 그저 싱글거릴 뿐 이었다.
그런 그를 노려보던 조비는 휙 몸을 돌렸다.
“형님을 위해서라도 저는 형님께서 후계자의 자리를 스스로 놓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워워. 사랑스러운 동생아. 너무 그러지 말려무나.”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조비가 휙 가버리자 조앙은 입맛을 다시며 뒤통수를 긁적거리다가 내가 있는 쪽을 보며 말했다.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