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304
00304 지배자의 자질 =========================
“아셨습니까?”
“그림자가 보이더라.”
아차.
내가 이걸 눈치채지 못하다니.
난 쓰게 웃으며 조앙에게 다가갔다
조비가 걸어간 곳을 보며 조앙은 머쓱해하고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쯧. 짜식이 형님이 걱정되면 그냥 걱정된다고 하지.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라니까.”
“저런 태도를 그냥 놔두시는 겁니까?”
“놔두지 않으면? 동생인데 어쩌겠어?”
조앙은 어깨를 으쓱인 후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옛날에는 저러지 않았는데 요 근래 드러서 변했다니까.”
“권력이라는게 무섭지요. 원소의 아들들을 보십쇼.”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서로를 배제하려는 모습.
그것을 떠올리며 내가 말하자 조앙은 볼을 긁적거린 후 한숨을 내쉬었다.
“거 좋지도 않은거 왜 자꾸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네.”
“하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이러면 나가린데.
내 질문에 조앙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계자는 내가 해야 한다.”
늘 장난스러운 모습이었던 그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것에 놀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일단은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일단은’이 뭐냐? ‘일단은’이.”
“조비의 말대로 지배자로서의 자질이 영…”
“너도 그러네.”
조앙은 싱글벙글 웃으며 내 어깨를 감쌌다.
든든한 팔로 어깨동무를 한 그는 그 특유의 여유있고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지배자라는 것이 꼭 피도 눈물도 없을 필요는 없단 생각은 안해봤냐?”
“예?”
“결국 지배자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냐. 자신을 잘라내고 짓뭉개가는 것이야. 지배하며 군림하는 자이며 또한 자신의 사람을 지키는 자지. 지배자는 결코 칼이 되어서는 안된다네. 처남.”
“그게… 무슨 소립니까?”
조앙은 히죽 웃었다.
“나도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단다.”
그는 날 보지도 않은 채 터벅터벅 걸었다.
나보다 힘이 훨씬 강한 그라서 그런지 그에게 잡힌 채 나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처남. 정치라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글쎄요.”
“모략과 정략을 다루며 상대방을 함정에 끌어들이고 파멸로 이끌어 정적을 제거하는 것 역시 정치라면, 그들의 공격을 웃으며 받아내어주고 그들을 끌어안아 나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 역시 정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은 어떻게 바른 방향으로 다스릴 수 있는지가 중요할 뿐이야.”
“…..”
“거기서 잘라낼 수 있니 마니, 누구를 버리니 마니 떠들 필요는 없는 것이지. 다들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해. 단순하게.”
이 인간에게서 정치의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항상 일 안하고 뺀질거리며 탈주하는 것 좋아해서 그냥 아무 생각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앙은 웃는 얼굴 그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보기에 정치란 결국 간단한 것이야. 글자 그대로지. 바르게 다스린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면… 바르다는 것. 시대에 따라 바르다는 것의 기준은 달라지지.”
“그렇지요.”
어떤 시대에는 배신이 옳을 수도 있엇다.
어떤 시대에는 인신공양이 옳을 수도 있었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바름의 정의는 항상 달랐다.
“그 바르다는 기준만 명확하게 잡을 수 있고, 그 기준에 따라 다스릴 수만 있다면 그것이 정치가의 기본이며 왕도가 아니겠나?”
“그…렇죠?”
“지배자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자신을 공격하는 이를 단번에 찔러 죽일 수 있고, 공격할지도 모르는 이의 사지를 찢어 죽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며 자신의 기준을 바로 잡고 있다면… 적 마저도 자신의 아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결국 그것이 진정한 지배가 아닐까? 적도, 아군도 지배할 수 있는 위대한 지배자.”
“쉽지 않을텐데요.”
조조의 아들 답지 않은 말이다.
거대한 그릇을 보인 조앙은 실실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애초에 지배자가 된다는 것 자체가 무시무시한 일이지. 그런 무거운 짐을 그 녀석에게 넘길 생각은 없어. 지배자의 장자로 태어나 그 권리를 누리며 살아 온 내가 힘들고 괴롭다고 해서 그 책임과 짐을 버릴 수는 없어.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나름대로의 선은 있었구나.
조앙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호불호 갈려서 사람 대하는 성격 고쳐야 되는 거 아시죠?”
“윽.”
“이각 잡을 때 중달의 도움은 반드시 받으십쇼. 저랑 혈연이 된거면 중달도 가족인데 자꾸 그러실겁니까?”
바르게 다스리고 적도 아군도 지배하고.
다 좋지만 조앙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이거였다.
호불호가 심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잘 대해주지만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일정 선 이상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
내 말에 조앙은 인상을 구겼지만 자기가 한 말이 있으니 별다른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가 시무룩히 고개를 숙이자 난 피식 웃으며 그의 팔에서 벗어났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방으로 돌아 온 나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조청을 발견했다.
세상에.
조청이 책이라니.
내가 궁금해하며 몰래 다가갔을 때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엄청 집중하고 있는지 문 여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무언가 보이지 않는 길쭉한 것을 잡고 위 아래로 흔들며 열심히 책을 보는 그녀에게 다가간 나는 그녀의 예쁜 귀에 속삭였다.
“뭐해?”
“우악!”
“….”
과하게 놀란다.
허둥거리며 책을 덮은 그녀는 황급히 엎드려 책을 숨기려 했다.
그녀의 벌개진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무슨 책을 보시길래 그런 행동을 하냐?”
“아, 아, 아무것도…”
“그래?”
“네!”
“아무것도 아니라면 줘봐.”
“…..”
“뭐해?”
“그, 그게.”
얘가 이렇게 당황하다니.
뭐지?
더 궁금하다.
난 싱글벙글 웃으며 조청의 옆구리에 손을 가져갔다.
“꺅?”
“빨리 안내놓으면 네 몸에 물어… 아니, 미안.”
조청의 시선이 뜨거워지자 난 얼른 손을 떼었다.
그렇게 보지 말라고.
내가 얼른 떨어지자 오히려 아쉬워하는 조청을 향해 웃으며 난 한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알았어. 안볼테니까.”
“예에…”
안도하며 책을 치운 조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버님과 만나기로 하신 것 아닙니까?”
“응. 그렇긴 한데 지금은 아니고…”
좀 더 늦은 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나름대로 정리가 필요할테니까.
내가 침상에 걸터앉자 조청은 책을 숨긴 후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뭐가?”
“요새 무리를 하시는 것 같은데…”
무리라.
딱히 무리랄 것도 없다.
날 걱정하는 조청을 향해 피식 웃은 나는 침상에 벌러덩 누웠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내 모습이 걱정스러웠는지 조청은 머뭇거리며 다가와 침상 옆에 앉았다.
“영이 언니처럼 저는 머리가 좋지 않아서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힘 쓰는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영이는 영이고 너는 너지. 괜한 것으로 고민하지는 말라고.”
“그렇습니까?”
“응. 무릎베게나 해줘.”
“예.”
성실하게 고개를 끄덕인 조청은 자신의 허벅지를 탁탁 쳤다.
그녀의 다리에 머리를 기댄 후 생각했다.
조앙은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조비는 후계자 자리를 원한다.
결국 문제는 일어날 것이다.
그것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내올것인가.
쉽지 않네.
제일 좋은 것은 지금 깔끔하게 조비를 비롯한 나머지를 쓸어버리는 것이다만 그렇게 했다간 죽도 밥도 되지 않겠지.
유비의 문제도 있다.
약을 먹음으로서 자신의 몸 상태를 일부러 안좋게 만들고 있는 유비.
두통이라고?
웃기는 소리다.
두통을 잡을 때는 어혈초가 아닌 다른 약을 써야 한다.
화타에게 육초본기를 받아서 공부를 끝낸 나다.
어지간한 약초에 대해서는 잘 아는데 어혈초를 쓴다니.
이건 그의 개수작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얼마든지 안전하고 좋은 약이 많은데 굳이 어혈초를 쓸 이유가 없었다.
일단 약부터 끊게 해야겠군.
자기 목숨 버려서 우리의 평판을 깍아먹으려는 것일까?
유비가 그정도로 자기 보신을 하지 않는 인간은 아닐텐데.
망할 자식.
그냥 확 죽여버리고 병으로 죽었다고 우겨버릴까?
“에이. 씨.”
생각할 것도 많은데 왜 저렇게 아득바득 살아남아서 날 힘들게 하는 걸까?
지금 아파서 비실대고 있을 때 그냥 독으로 죽일까도 생각을 해봤다.
으으… 절로 유비에 대한 증오심이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장비라…”
거기에 장비가 떠났다?
그가 왜 떠났을까?
관우조차도 아직 유비와 한 결의를 잊지 못해 아직까지 내 편이 되지 않았다.
꽤나 유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꼬장꼬장한 관우를 생각하면 장비가 홧김에 나갔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도대체 뭔 개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것일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에휴.”
“너무 고민하지 마십시요.”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조청이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는 것을 느끼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날 잡아먹으려는 눈빛이 아닌, 소중한 것을 만지는 것처럼 그녀는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고민할 수록 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지. 그렇다면 그것을 멈출 수는 없어.”
“방 도독님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자기가 도움이 못된다고 생각한 것인지 조청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난 쓰게 웃었다.
“네가 있음으로써 많은 도움이 되니까 그리 생각하지 말라고.”
“정말입니까?”
내 대답에 조청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는 방실방실 웃으며 물었다.
“어떤 점이 도움이 됩니까?”
“어…”
솔직히 생각해보니 지금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머뭇거리자 조청의 얼굴이 순식간에 더욱 어두워졌다.
“이, 이런거! 이야~ 네 다리는 잘 빠져서 매번 이렇게 얼굴을 가져다 대고 싶다니까!? 응!? 최고야!”
“그, 그렇지요!? 아하하하~!”
조청의 매끈한 다리를 만지작거리며 외쳤다.
내 필사적인 대답에 그녀는 애써 다시 환하게 웃었다.
입이 다물어진다.
난 그녀의 긴 다리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하다가 물었다.
“만약 말야.”
“예.”
“조공과 내 손에 의해서 피바람이 분다면 어떻게 될까?”
“왕자복과 장억의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응. 그들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가져오게 된다면 나는 조공 휘하에 있는 각지의 관리들을 감사하고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될거야. 그럼 본격적인 피바람이 불겠지.”
“그럴까요?”
“그럴걸.”
왕자복의 일로 감사를 하게 되는 주 대상은 황실측의 신하겠지만 조조를 따르지 않는 신하들을 배제하기 위함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일이 벌어진다면 허도에는 곡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당장 제거해야 하는 동승 뿐만 아니라 황실에 충성하는 황보숭과 주준도 실각을 시켜야 하고 그 외에 다른 이들 까지 쳐야 한다.
“두려우십니까?”
“그럴리가.”
“장군께선 항상 두려움 없이, 자신감이 넘치시지요. 보기 좋습니다.”
“글쎄…”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실패를 할 수 있었다.
가 사형은 실패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말했지만 그 실패를 통해 돌아 올 피해를 생각하면 함부로 실패에 발을 들이밀기는 어려웠다.
곽가가 말했지.
정치가와 책사라고 했던가.
그의 말대로 나는 승리보다는 이득이 더 중요했다.
그렇기에 실패에서 성공을 찾기 보다는 성공을 통해 이득을 얻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아… 골치아프군.”
“장군님.”
“뭐냐?”
“저… 장군님을 찾는 분이…”
이 늦은 시간에?
누가 날 찾아왔지?
진월의 말에 조청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예의도 모르는 자군. 돌아가라 전해라. 내일 오라고 말..”
“그 분께선 자신을 중달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앞의 다원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바로 가지.”
중달?
사마의가 여기 왔단 말야?
난 당황하며 벌떡 일어났다.
“중달이 누구길래…?”
내가 별다른 말 없이 나갈 준비를 하자 조청은 이상해하며 물었다.
조청은 모르나?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난 히죽 웃었다.
“영이의 오빠다. 옷 챙겨. 이번 기회에 너도 만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