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328
00328 예정된 패배 =========================
“스스로를 천자라 생각하며 천하를 유린하는 폭도나 다름없다. 그런고로 나 원소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 죄를 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킬 것이다. 진정한 충신인 원소의 벌을 피하려면 조조가 스스로 나와 목을 내밀면…”
서찰을 천천히 읽으며 조조는 피식 웃었다.
원소의 문관 중 하나이며 명필인 진림이 보낸 격문이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허도 뿐만 아니라 연주와 사예주 전역에 퍼졌을 것이다.
“그래서… 이걸 어쩌라는 것인가?”
황가를 업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무시한 대가라고 생각해야 하나?
조조는 여유롭게 웃으며 자신을 당당히 바라보고 있는 원소의 사자에게 물었다.
이런 격문을 직접 전달한다는 위험을 안고 있으면서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당당한 기세를 보일 뿐 이었다.
“원공의 제안에 따르든, 그렇지 않다면…”
“전쟁이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요.”
“흐음…”
“미친 자식.”
조조의 옆에 서 있던 하후돈이 검을 뽑아 들었다.
이딴 더러운 격문을 보내면서 목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겠지.
하후돈이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을 벨 것임을 알면서도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신을 죽일 생각이오!?”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소리를 전하러 왔는데 살기를 바란 것이냐?”
“조공!! 사신을 죽여 당신의 무도함을 천하에 알릴 생각이오!?”
사신을 죽인다는 것은 이각이나 동탁따위가 하는 짓이다.
명색이 한 나라의 사공이라는 자가 사신을 죽일리 없다고 자신하는 듯한 그를 향해 조조는 피식 웃었다.
“물론 사신을 죽일 수는 없지.”
“그렇지요.”
“사공! 하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바쁜 사람을 불러서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게 만들었으니 말이야.”
“…그, 그럼?”
조조의 입가에 그려진 잔혹한 미소.
그것을 본 사신의 표정이 굳었다.
“죽이지는 않는다. 죽이지는… 조인. 저자를 왕자복의 옆방에 가둬라. 저자를 고문하여 원소의 상황을 알아 볼 생각이니까.”
“명을 받들겠습니다.”
심기가 불편한 것은 조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사신이라고 하더라도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이야기를 하러 온 자다.
그런 자를 곱게 보내는 것은 호구나 하는 짓이지.
조인의 잔혹한 미소에 원소의 사신은 당황하며 외쳤다.
“조공!! 그대의 무도함이 세상에 알려질 것이오!”
“이미 이딴 격문을 써서 나의 무도함에 대해서 알릴 생각이 아니었나? 자네의 일을 좀 도와주지. 데려가라.”
“조공!! 조공!! 이래서는 아니됩니다! 조공!!”
병사들에 의해서 끌려가는 그를 보며 조조는 피식 웃었다.
어디 얼마나 그 당당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웃는 일은 여기까지고… 이제 원소와 붙게 되었군.”
“장기전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뭐겠습니까?”
연주목으로서 다른 곳에 가 있다가 원소의 사자가 왔다는 말에 허도로 돌아 온 순욱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에서 원소가 이렇게 선전포고를 한다는 것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우와 공손찬과의 전쟁을 치룬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병사 하나를 정병으로 키워내는 일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소모된 자원을 보충하는 것도 보통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선전포고를 하다니.
“장기전이 아닌 단기결전을 노린다고 봐야 하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멍청한 짓입니다.”
순욱의 의견에 순유 역시도 동의했다.
지금 원소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전법은 단기결전이 아닌 최소한 삼년에서 사년 정도의 시간을 끈 후에 전쟁을 하는 것이었다.
만약 단기적인 결전을 벌이고 싶다면 유표나 원술, 혹은 유장이.
그것도 아니라면 조조군 내부에서 반란세력이 일어나게 작업을 한 후에 움직이는 것이 옳았다.
원소가 유우와 공손찬을 잡으며 힘을 소비하는 동안 오히려 힘을 비축하고 있었던 조조인 이상 그것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시간을 끌며 자원을 모으는 것이 더 나았는데 원소가 이렇게 나와버리니 순욱과 순유로서는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이각이 잡혀서 저희가 연주와 사예주, 서주와 청주 일대에서 힘을 모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일텐데…”
“사예주의 명사들을 생각한 것일까요? 이각 토벌과 주준, 정현이 조공을 따르게 되고 황실의 신하들이 조공에게 붙는 것을 생각한다면 단기결전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연주나 서주에서 반란이 일어나야 타격이 크다는 것인데… 반란을 일으킬 만한 이들이 없다는게 문제지.”
순욱과 순유는 상황을 모르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지.
조조는 그들을 향해 빙긋 웃었다.
“자네들은 모르는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 그리고 그들 내부에도 일이 있고 말이야.”
“그렇습니까…?”
순욱과 순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곽가와 진유하가 또 무슨 수를 쓴 것일까?
그렇다면 믿고 맡기는 수 밖에.
“원소를 상대하는 일군은 곽가와 진유하에게 맡기기로 했네. 자네들은 이군을 유지하며 그들을 지원해주길 바라겠네.”
“알겠습니다… 다만 문제는.”
“왕자복과 황제파 신료들입니다.”
왕자복에 대한 심문은 벌써 한달째 계속되고 있었다.
끔찍하다 생각될 정도의 고문이 이어졌지만 왕자복은 자백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대단한 충성심이다.
“황제의 움직임은 조용합니다만…”
“장안에서 보내 온 궁녀들 중에 저희의 사람을 심어두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렇군.”
“그리고… 황제가 외유를 가길 원하고 있습니다.”
“외유? 웃기는 소리를.”
이제 곧 전쟁이 벌어진다.
원소가 암살자를 보내서 황제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큰 타격인데 외유를 쉽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가?
조인의 말에 조조는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락할 수 없다.”
“예. 그렇게 말해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장안에서 보내 온 약을 유비에게 써보았습니다. 그것은 순 군사께서 담당하셨습니다만…”
진유하의 부탁.
유비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면 폐인으로라도 만들자는 것 때문에 장안에서 약을 받아 그 약의 효과를 시험한 순욱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위험한 약입니다. 유비는 계속해서 약을 원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저 약만 원하는… 끔찍한 약입니다.”
“반드시 없애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장안에서 위험한 약이라며 보내와 그것이 위험해봤자 얼마나 위험하겠냐 생각했지만 상상을 넘어버렸다.
그 유비가 저렇게 되어버리다니.
유비에 대해 알고 있는 순욱은 신기함보다는 공포를 느꼈다.
그저 향처럼 피웠을 뿐인데 저리 되어버리다니.
“그 약이 저희에게 쓰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그 약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알아보았다고 했나?”
“서주목의 이야기로는 그 약이 들어오는 곳은 한중이라고 합니다. 오두미도에 의해서 약이 유통된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한중을 정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후돈은 거친 목소리로 말했지만 순욱과 순유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 이었다.
원소를 상대함에 있어서 물량의 여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여유가 있다 하여 그것을 다 쓸 수는 없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유표와 유장, 원술이 얌전히 있다지만 그들이 언제 마음을 바꾸고 치고 올라올지 몰랐다.
그렇다면 최대한 방비를 해야 할 수 밖에 없었다.
산양군과 동평군에 모든 것을 맡겨 둘 수 없었기에 순욱은 하후돈의 제안을 차분히 만류했다.
“장군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시행하기에는 지금 많은 것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원소에 대한 일이 어느정도 일단락이 난다면…”
“내가 직접 가서 한중을 정벌하는 것은 어떻겠소?”
“허도는 누가 지키고?”
하후돈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조조는 빙긋 미소지었다.
그의 말에 하후돈은 볼을 긁적거렸다.
“지금 자네가 해야 할 일은 허도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거야. 네가 있기에 황제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전위와 허저에게 남쪽의 방비를 맡겨두는 수 밖에 없어.”
“…끙.”
“저들이 단기 결전을 생각했다는 것은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후 장군께서는 허도에서 계속 머물러주셔야 합니다.”
“언제까지 그래야 하지?”
장군은 전장에 나가야 한다.
전장에 나가지 않는 장군이 무슨 장군이란 말인가.
하후돈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순욱은 쓰게 웃었다.
“적어도… 황제의 팔다리를 자를 때까지는 그래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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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됐군요.”
“그래.”
동구항의 관리자가 된 이후 곽가가 자주 찾아와 그와 만났다.
허도에서 오는 소식은 모두 복양성으로 왔기 때문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원소군 내부에 있는 내통자에게 정보를 받는 것도 오로지 곽가 뿐이었기 때문에 그 상황을 알기 위해서라도 곽가를 자주 만날 수 밖에 없었다.
“인신공격을 하다니. 치졸하기 그지 없군요. 자기도 그렇게까지 신분이 좋은 것은 아닌데.”
진림이 쓴 격문의 내용은 조조의 조부가 고자이고 조조 역시도 고자라는 식의 욕설까지 적혀 있었다.
아오.
내가 답문을 적었어야 했는데.
조조는 그저 사신을 잡아 가뒀을 뿐 딱히 답문을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성격도 좋으시지. 저였으면 그냥 그걸로 안 끝냈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그정도로 속이 긁혔으면 원소 양친 안부 정도는 물어줘야 하는데.”
조조의 온건한 반응에 우리는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투덜거렸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이야 어쨌든 조조는 사신을 가두는 것으로 대응을 해버렸으니 이제 시작할 수 있었다.
누가 먼저 치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 모두 준비하고 있었다.
“괜찮겠나? 내가 제안한 것이지만…”
“필요하다면 해야지요.”
곽가는 씩 웃으며 나에게 서찰 한통을 주었다.
서찰에 쓰여 있는 내용.
그리고 직인.
그것을 받아 읽은 나는 눈쌀을 찌푸리며 곽가를 보았다.
“심배와 연락을 하고 계셨습니까?”
“응.”
서찰의 주인은 바로 원소군의 책사인 심배였다.
조조군의 군사인 책사인 곽가가 심배와 이렇게 서찰을 나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웃음기를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적과 내통한다는 죄로 그를 잡아 쳐 넣었을 것이다.
이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가 나를 신뢰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떨떠름히 바라보자 곽가는 즐겁게 웃었다.
“어느정도는 거래가 필요했으니 말이야.”
“그 거래라는 것이… 저와 곽 성주님의 패배를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그래. 심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지. 원소군에 있는 내 사람의 말로는 심배가 복귀한 후 굉장히 열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하더군. 그를 지원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
“쩝.”
어쩐지 이상하더라.
잡혀 있다가 복귀한 주제에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을 포섭하고 이름을 날릴 수 있었나 싶었는데.
곽가가 지원을 해 준 것이었군.
그럼 원소군이 이렇게 움직인 것이 이해가 간다.
“그 비밀항구에 이미 병사를 보내 놓았네. 문직과 장료가 그곳에 가 있을 걸세.”
“그렇습니까?”
장안의 조앙에게 장수들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장료만 왔을 뿐 이었다.
사마의가 그만 보냈다는 것은 당장 장안에 다른 이들이 필요하다는 것이겠지.
딱히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내 부하인 모개와 이전, 여건이 그들을 지원할 것이야.”
“그렇습니까…”
“문제는 자네인데. 괜찮겠나?”
“서성과 위정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요. 실제로 싸우는 것은 얼마 되지 않을테니까요.”
서성이 한때 수적이었던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수군을 움직이는데 나름대로 자신이 있는 그를 수군대장으로 삼아 백마항을 공략한다.
그것이 내 역할이었다.
“그곳에 아마 원담과 심배가 있을걸세. 자네가 그들과 싸우는 동안 병력들을 비밀항구로 보낼 생각이야. 지금 그곳에 있는 것은 고작해야 오천에 불과하니…”
“본격적으로 치고 올라가야겠지요.”
원담과의 첫 대결에서는 내 패배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심배와도 이런 거래를 한 것이겠지.
심배의 힘이 강해질 수록 원소군의 분열이 강해진다.
“당장 청주쪽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곳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고 하더군. 전풍은 그쪽으로 갔을거야.”
“그렇습니까?”
“청주에는… 미안하지만 지원을 해 줄 수 없을 것 같네.”
“그쪽은 신경쓰지 마십시요.”
“서복과 방통이라고 했던가? 자네의 동문이라면 확실히 믿을 수 있겠지. 그들에게 연락은 해놨네. 자네는 패배해도 괜찮지만…”
“그들은 반드시 이겨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