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448
00448 마무리를 지을 때 =========================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다 말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영이와 함께 방으로 돌아 온 나는 그녀가 이상하게 안기려 하자 피식 웃었다.
“왜 이래? 너 나 좋아하냐?”
“네. 싫어요?”
“아니. 좋지.”
돌직구로 나오니까 할 말이 없군.
그냥 순순히 안아주었다.
내 품에 안겨 얼굴을 비벼대던 영이는 시무룩히 말했다.
“음… 뭐라고 해야할까.”
“왜?”
“허도에 가면 이렇게 하기는 힘들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으음… 그런가?”
“예. 그렇죠.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으니까요. 그리고 청이나 견희, 그리고 완이도 생각해야하고.”
“그, 그렇군.”
삼종지도라는 말이 있다.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시집 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말.
이유하의 기억 때문일까?
딱히 공감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내 주변의 남자들이 다 잡혀 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건 의외로 중요한 문제였다.
개인적인 취향이야 어쨌든 이것이 사회적인 규범이고 문화였으니까.
“산양군에서야 괜찮지만… 허도에서 제 마음대로 행동하고, 질투하고, 당신을 속박하려 하면 그것이 오히려 당신의 발목을 잡게 될거에요.”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슬프네. 하아.”
허도로 가게 되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암투가 벌어질 것이다.
조앙을 후계자 자리로 공고히 하려는 나.
그리고 후계자 자리에 오르려는 조비.
지금이야 조비의 세력이 일천하다지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게 정치판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최대한 몸을 사리는게 옳다.
“그냥 다 때려치울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지금와서 그러면 어떻게 하려구요? 그러려면 청이와 결혼하기 전에 때려치웠어야 했어요.”
“그렇지.”
“청이를 버리려구요?”
“설마.”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내 사람, 내 가족을 버릴 일은 없을거다.
날 시험하는 듯한 영이의 말에 그녀의 볼을 꼬집어 주었다.
“날 그런 놈으로 보지 말라고.”
“헤헤헤~”
베시시 웃은 영이는 내 품에 안겼다.
오래간만에 그녀와 함께 자게 되었다.
“그 전에.”
“에… 네. 다녀오세요.”
약간 시무룩해하면서도 영이는 순순히 날 보내주었다.
견희를 데려왔는데 아버지에게 인사도 드리지 않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금방 올게.”
“천천히 와도 되니까 들어오기나 해요.”
“하하. 알았어.”
영이를 방에 두고 밖으로 나갔다.
견희가 머무르고 있을 손님 방으로 향하던 나는 죽간을 들고 걸어오는 교완과 마주쳤다.
으.
어색하다.
“후후후…”
완이는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얘 왜 이래?
난 나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났다.
“왜?”
“아뇨. 아무것도. 후후후… 이렇게 사람을 애태우게 하실 줄은 몰랐네요. 역시… 제 예상을 아득히 뛰어 넘는…”
“그, 그래?”
완이의 미소가 어째 무섭다.
영이랑은 좀 다른 모습인데.
그녀의 미소에 내가 움찔했을 때 그녀는 죽간을 옆에 놓은 후 양 손으로 팔을 꽉 끌어안았다.
“아아… 제 기대를 한번에 이렇게 무너트리실 줄이야. 대단하시네요.”
빈정거리는거야 아니면 진심으로 이러는거야?
빈정거리는 거면 무섭고.
진심이어도 무섭다!
완이의 뜨거운 시선에 난 고개를 숙였다.
어째 산양군에 와서 난 빌기만 하네.
이게 바로 한의 진동장군이다!
“어우야. 미안. 사정이 그렇게 되었어.”
“알고는 있습니다. 알고는 있지만.”
내게 살며시 다가온 그녀는 내 귓가에 속삭였다.
“정말이지… 대단하신 분이네요.”
“뭐, 뭐가?”
“장군님께서 이정도로 하실 줄이야.”
“저기… 괜찮니? 혹시 머리라도 다친…”
얘 어디 아픈가?
완이의 얼굴 앞에 손가락을 몇번 튕겨보았다.
일단은 제정신인 것 같은데.
“헤헤.”
“….”
“더욱 기대하고 있겠어요. 하지만… 너무 기다리게는 하지 말아주세요.”
“…어, 으응.”
어째 좀 이상하다.
완이는 내 옆으로와 작게 속삭인 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버렸다.
뭐지?
으…
모르겠다.
왜 나랑 얽히는 여자들은 다 이러는 건지.
참 나도 여자 복이 되게 복잡하다.
어쨌든 완이도 무사히 넘어간 듯 하네.
난 한숨을 푹푹 내쉬며 견희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보니 견희는 홀로 앉아 죽간을 보고 있었다.
“뭐 보는거야?”
“산양군의 역사입니다.”
“헤에. 그런걸 따로 만들었나.”
그녀가 보고 있던 죽간을 보았다.
산양군이 언제부터 이렇게 발전하게 된 것인지에 대한 글이었다.
대체적으로 아버지와 나를 찬양하는 글에 가까웠기에 난 피식 웃었다.
이런 식으로 백성들의 충성심을 받아가려는 건가?
“재밌어?”
“나름대로… 그래도 원가와는 다른 방식이군요.”
“그렇지?”
원가는 지난 과거의 영광을 기준으로 백성들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우리 진가는 달랐다.
오로지 실적!
다 필요 없다.
과거의 영광이고 나발이고 우리가 잡아야 하는 백성은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과거에 사대가 삼공이었니 뭐니 해도 당장 지금 배불리 먹여 줄 수 있는 관리를 백성들은 더 좋아하기 마련이다.
“장군님과 산양군수님. 의외로 닮은 구석이 있군요.”
“아버지에게도 많이 배웠으니까. 자. 그럼 가볼까?”
“예.”
아마 내가 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견희를 데리고 아버지의 집무실로 향했다.
아직 퇴청하지 않은 것인지 집무실은 여전히 밝았다.
“아버지. 접니다.”
“들어오거라.”
견희와 함께 들어가자 아버지는 읽고 있던 죽간을 내려 놓은 후 작게 미소지었다.
“어서 오시오.”
“말씀 편히 해주세요. 저도 이제는 진가의 사람입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앉거라.”
내가 견희와 결혼을 했다는 것은 아버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허락을 받지 않고 내 멋대로 처리를 한 것이 걸리기는 했지만.
뭐 괜찮겠지.
“그래…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군. 이 녀석과 잘 살아갈 수 있겠나?”
“진동장군이 말하길… 행복은 서로 만들어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맞아. 부부간의 행복은 만들어가는 것이지. 그래도 이 녀석이 부인의 마음을 살피는 재주는 있는 녀석이니까… 다만.”
“예.”
“너도 알겠지만 이 녀석의 위치가 좀 그렇단다. 정략을 위해서 결혼을 이제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어.”
“각오한 바입니다. 저 역시 같은 경우인지라.”
“알아주니 다행이군.”
귀인이 되기 위해서 많은 공부를 한 견희였다.
예법에 걸맞는 대답을 하는 그녀를 향해 아버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그리고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아버지는 머뭇거렸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대충 예상이 간다.
“앞으로 일년 간은… 조심해주기 바란다.”
“…예.”
그녀의 무거운 대답.
내가 결혼한 다른 여인들과 다르게 그녀는 원희와 이혼을 하고 나와 결혼을 한 것이다.
만약 나와 결혼을 하고 나서 바로 임신을 한다면 그녀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그것을 걱정하며 말한 것이다.
“미안하구나. 이런 말을 해야 하다니. 하지만 다 너를 위해서이기도 한 말이니…”
“아버님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담아두겠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무거워진 분위기다.
음… 내가 여자 데리고 와서 이런 분위기 만든 건 처음이네.
“저… 아버님.”
“그래.”
“죄송하지만 한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너 역시 이제 진가의 사람이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너의 아비가 된다는 것이지. 딸아이가 아비에게 묻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겠느냐.”
견희는 답지 않게 머뭇거렸다.
뭔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걸까?
아버지는 침착히 견희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아시겠지만. 저는 한때 원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십니까?”
얘가 뭔 소리를.
난 견희의 손을 잡았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었을까?
오히려 스스로를 상처내는 질문을 한 견희를 향해 아버지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핫!! 진가의 사람은 그런 쓰잘데기없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아가. 지금 네가 묵고 있는 곳은 귀빈실이겠지?”
“예.”
“그곳에 있는 죽간을 봤느냐?”
산양군에 대한 죽간을 말하는 건가?
견희는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을 읽어보았다면 알 것이다. 우리 진가는, 그리고 나는 적어도 과거에 얽메여서 현재를 망가트리는 짓을 하지 않는다.”
“아버님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잘 알아주니 오히려 내가 더 고맙구나. 그래. 오늘은 피곤할테니 가서 푹 쉬거라. 유하야. 네가 데려다주도록 하거라.”
“예. 아버지.”
허락받지 않고 한 결혼이지만 아버지는 딱히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애들처럼 웃으며 받아주실 뿐.
나와 함께 나온 견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 뭐야.”
“기, 긴장했습니다.”
“진짜!?”
전혀 그렇게 안보였는데?
무표정한 얼굴로 견희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내 손을 잡았다.
“조금… 무서웠습니다. 아버님께서 원가의 일로 저를 책망하실까봐.”
“우리 아버지가 그런 분은 아니신데.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 나한테라도 물어보지 그랬어?”
“그렇지만…”
“살다보면 이혼도 할 수 있는거지. 그리고 그 이혼을 주관한 사람이 난데.”
진짜로 긴장했던 모양이다.
견희는 살짝 흐트러지며 내 어깨에 기댔다.
얘가 이러는 걸 보니 진짜 긴장하긴 한 모양이다.
“하하. 오늘은 가서 푹 쉬어.”
“저… 한번 더 만나뵙고 싶은 분이 있는데.”
“영이?”
“예.”
아서라.
오늘 만나면 너 쓰러질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만날때보다 더 긴장할텐데.
난 견희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무, 뭡니까?”
“한번에 너무 많이 먹으려다가 체한다.”
“…알겠습니다.”
“천천히 해. 말했지만 영이가 너한테 화를 내거나 차갑게 대하거나 하지는 않을거야.”
그냥 날 때리겠지.
이건 나만 알고 있자.
내 말에 견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영 아가씨와 만남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게 낫겠네.”
“오늘 장군님께선…”
“영이랑 자려고. 왜?”
“아닙니다.”
아쉬운걸까?
견희는 살짝 고개를 돌려 표정을 숨기려 했다.
그런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미안하지만 좀 봐줘. 영이도 잔뜩 기대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욕심을 부릴 수는 없지요. 그리고 저는 업성에서 함께 잤으니까…”
“알아주니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다.
내 마누라들이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는 않아서.
투기와 질투가 사람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 것인지는 이유하의 기억에 있는 아침드라마로 알고 있었다.
견희가 납득을 해준 것에 안도하며 그녀를 방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자. 오늘은 혼자 자도록.”
“…네.”
“왜?”
들어가지 않고 머뭇거리는 견희의 모습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할 말이라도 있나?
표정 변화가 있어야 뭘 알아먹지.
한참동안이나 아무런 말도 못하고 내 손을 잡고 놔주지 않던 그녀는 작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늘은… 없는 겁니까?”
“응? 뭐가?”
“… 밤마다 해주시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다.
허.
부끄러워하는건가?
밤마다 내가 뭘 해줬지?
아하.
난 피식 웃은 후 견희를 끌어안고 입맞춘 후 귓가에 속삭여주었다.
“잘자. 좋은 꿈 꿔.”
“네.”
그제서야 만족한 듯 견희는 살며시 내 손을 놓고 허리를 숙였다.
“그럼 간다.”
“좋은 밤 되세요.”
견희를 보내놓고 영이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초에 불을 밝힌 채 죽간을 읽고 있던 영이는 내가 들어오자 웃으며 날 반겼다.
“이야기는 잘 했어요?”
“응. 아버지도 딱히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어.”
“다행이네요.”
“네가 말해줬지?”
“글~ 쎄~ 요~?”
개구장이처럼 히죽거린 영이는 침상을 팡팡 치며 말했다.
“자. 이리 들어오도록 해.”
“예이. 예이.”
대충 옷을 벗어 걸어 놓고 그녀의 옆에 누웠다.
오래간만에 내 품 안에 폭 안기는 영이의 향기를 맡는다.
“왜요?”
“음. 아니. 확실히 네 옆에 있으니까 마음이 편하네.”
“후후후… 당연하죠. 제가 당신의 첫번째인데.”
“하하. 그러게. 아. 허도에 가면 말이지…”
오늘 밤은 그동안 영이와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동안 있었던 일, 그리고 앞으로 해야할 일을 나누며 우리는 느긋하게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