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549
00549 절대란 건 없더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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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유하와의 만남을 마치고 양양현으로 복귀하는 마차의 안.
채모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잘도 고개를 조아리는구만.”
침묵을 깬 것은 괴량이었다.
그의 빈정거림이 섞인 말에 채모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럼? 숙이지 않고 뻗대다가 멸문당하라고?”
“물론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가문이고, 또 가족이네.”
자존심?
그따위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말을 내뱉고 다시 입을 다물어버린 채모를 보던 괴량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 역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가문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자존심?
그딴 것 살려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나저나 생각보다 대단하더군.”
“뭐가.”
“진유하.”
괴량은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 수경원이 크게 부흥하고 수경상점이 생겼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 수경원의 부흥과 수경상점의 운영을 주도하던 수경원의 제자.
그 어린 제자가 벌써 이렇게 커서 자신들을 압도하게 될 줄이야.
앞날은 모른다더니.
괴량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자 채모는 투덜거렸다.
“대단하긴… 그래봤자 어린 애에 불과하지.”
이제 막 이십대를 넘긴 진유하를 떠올리며 채모는 빈정거렸다.
그런 그를 향해 괴량은 키득거렸다.
“그런 어린 애한테 고개를 조아린 너는 뭐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조아릴 수 있지. 가문만 구할 수 있다면 말이야.”
“진유하를 인정하지는 않겠다는 건가?”
“인정이고 나발이고… 아니 그런 건 왜 묻는 거지? 혹시…”
자신까지 제껴버릴 생각을 하는 것일까?
채모가 의심암귀에 빠져 자신을 바라보자 괴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말도록 하게. 지금 우리가 상대해야 할 것은 유표야.”
“그, 그렇지.”
둘이 힘을 합쳐야 한다.
전체적인 세력의 규모를 따진다면 유표나 채가, 괴가.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군권의 문제가 있었다.
군권은 유표와 괴량이 가지고 있었고 자금에 관련된 부분은 채모가 관리하고 있었다.
“문빙이 없다고는 하지만 유표의 밑에는 아직 그들이 남아 있어.”
유표를 따르는 황충과 위연.
그들을 배제하지 못한다면 자신들만으로 유표를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적당히 자네가 그들을 이끌어내주지 그래?”
“그들을 이끈다?”
“음… 사실 이런 소식이 들어왔지.”
품에서 손바닥만한 종이를 꺼낸 괴량은 그것을 채모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 읽은 채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런 개새끼가!”
강하의 황조가 도적들에 의해서 죽고 그 대신으로 반준이 임시 강하성주가 되었다.
황조와 황조의 다른 부하들을 죽인 도적들을 처벌한 것은 반준의 집에 초청받아 쉬고 있던 노숙과 그 부하들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걸 지금 믿으라는 건가!?”
뜬금없이 황조가 죽긴 왜 죽어.
아니, 황조는 적어도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강하군의 군수로 있었던 자다.
비록 그가 욕심이 과하다고 하지만 훌륭한 장군이며 많은 공격으로부터 강하성을 지켜낸 이였다.
그런 그가 고작 도적들 따위의 습격에 죽어?
황조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
“침착하게나.”
“침착하게 생겼어? 이놈들. 내가 바로 군대를 이끌고 가서 그놈들의 대가리를 부숴버리…”
“하지만 그들은 꽤나 강하다고.”
“강하다고 해봤자지! 지금 그들을 잡지 못하면 우리의 후방이…”
“이것을 이용하지.”
괴량이 천천히 말하자 채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을 이용하자고?
어떻게?
무슨 방법을 쓰려는 것일까.
“첩보에 의하면 강하성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는 오의 군사인 노숙, 그리고 그의 부하들이며 시상의 군대까지 들어왔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들은 강해. 그런 만큼 그들을 일단 빼놓는 것이 좋을거야.”
“…잠깐만.”
지금 적군은 코앞에 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황충과 위연을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일텐데.
채모의 표정을 보며 그가 할 말이 무엇인지 눈치챈 괴량은 씩 미소지었다.
“걱정 말라고. 나에게도 수가 있으니 말이지… 물론 네가 날 좀 도와줘야겠지만. 어때?”
괴량의 제안에 채모는 떨떠름해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양양현에 도착하자마자 괴량은 관청으로 향했다.
화려하기 그지 없는 관청에 들어간 괴량은 유표의 방문을 열었다.
혼자서 술을 홀짝거리고 있던 유표는 괴량이 들어오자 인상을 찌푸렸다.
“어딜 갔다온거지? 지금 상황이…”
“진유하를 만나고 왔다.”
“…뭐?”
진유하라면 진동장군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유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검을 잡았다.
“네놈!”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라.”
지금 상황에서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표는 이를 갈며 검을 뽑았지만 괴량은 그저 시큰둥할 뿐 이었다.
“이걸 봐라.”
“이건…”
괴량이 건넨 종이를 본 유표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강하가 오에게 넘어갔다는 내용이다.
“잠깐만… 그럼 우리는 지금.”
“그래. 우리는 지금 백척간두의 상황에 처해졌다는 것이지.”
서쪽의 유장, 남쪽의 오, 그리고 북쪽의 조조.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게 되었다.
유표가 종이를 잡고 부들부들 떨다가 무거운 숨을 내쉬자 괴량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진유하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그는 과거 수경원의 제자로서 양양에 살았었다.”
“…알고 있어. 그딴 건.”
수경원과 수경상점.
자신이 양양현을 잡으려고 할 때 방해가 되던 이들이다.
그렇기에 수경상점을 망하게 하고 수경원이 불탔을 때 그들을 보호하는 대신 내치기로 했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양양현의 많은 이들이 수경원을 의지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그들이 양양에 남아 있으면 자신이 양양현을 잡는데 거슬리고 방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수경원이 불탔을 때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그때 재건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내쫓고, 수경원의 재산을 야금야금 빼앗아 자신의 부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를 떠올리던 유표는 의아해하며 괴량을 보았다.
“그런데 그걸 왜…?”
“그때 너는 돕지 않았지만 나는 수경원을 도왔었지.”
“뭐? 그랬단 말야!?”
그때라면 괴량과 채모를 끌어들여 형주를 집어삼킬 계획을 짤 때였다.
수경원이 방해가 된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을 텐데 수경원을 도왔다고?
그럼 그때부터 자신을 속이고 있었단 말인가.
유표가 이를 갈았지만 괴량은 그저 심드렁하니 걸어 유표가 마시던 술병을 잡아 그 술을 마셨다.
“후우. 뭐 과거의 일은 중요한게 아니야. 중요한 것은 나와 진유하가 꽤나 돈독한 관계라는 것이지.”
“그래서? 네놈의 목숨이라도 살려달라고 빌러 갔다온거냐?”
적의가 실린 유표의 말에도 괴량은 그저 피식 웃을 뿐 이었다.
“뭐가 우습지?”
“멍청하긴. 너는 반역죄인이다. 그리고 그 반역죄는 연좌죄에 속하지. 아무리 진유하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막아 줄 수는 없다.”
“그래서?”
“한가지 제안을 했을 뿐이지. 너를 설득하여 네 스스로가 벌을 받게 한 후, 오를 공략하기 위한 첨병으로 삼겠다고.”
“하지만 그건…”
“그래. 조조의 밑에 들어가는 것이다.”
괴량의 말에 유표는 인상을 찌푸렸다.
조조의 밑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황족인 자신에게 있어서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조조는 황족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하지만 쓸데없는 싸움 역시 좋아하지 않지. 만약 우리가 항복하고 그들의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조조로서도 우리와 싸우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
“또 한가지 생각해야 하는 점이 있지. 조조군은 수전에 약하다는 것.”
“으음…”
“지금까지 그들이 치룬 수전은 얼마 되지 않아. 업성을 공략하기 위해 백마항을 몇번 친 것? 그 외에는 없을거다. 그리고 그나마도 진유하는 한번 패배를 경험했지. 알고 있잖나. 그의 유일한 패배가 백마항 공략전이었다는 것을.”
“흐으으음…”
“천하에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후로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진유하다. 무려 천하 최강이라 불리던 여포도 잡았고, 또 업성의 공략도 성공했다. 그 뿐인가? 하북 최강자라 불리던 안량과 문추 역시 그들이 잡아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번 패배했다. 수전에서. 당연히 그의 입장에서는 수전을 할 수 있는 우리가 탐날 수 밖에 없어. 그리고 그의 뜻은 곧 조조의 뜻이 되기도 한다.”
“끄으응…”
“육전에 있어서는 그들을 이길 수 있는 세력은 이제 없다고 보는 것이 좋아.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지. 익주와 강남은 단순히 육지전을 잘한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전장 자체가 다르다.”
강남은 장강을 통한 수전이 대부분이고 익주는 산지가 많아 조조군이 자랑하는 그 막강한 기병을 제대로 쓸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따진다면 확실히 괴량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로써도 어지간하면 싸우고 싶지 않을거다. 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수전을 치뤄왔을 뿐만 아니라 익주의 산악병들과도 싸워왔지. 우리가 밑으로 들어간다면 오히려 조조는 웃으며 반길걸?”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우리를 믿어줄까?”
유표의 불안감 섞인 표정을 마주하며 괴량은 여유있게 말했다.
“선전포고문을 받았을 때 항복하고 죄를 청하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최선의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자. 이렇게 하자.”
“어떻게?”
궁금해하는 유표를 향해 괴량은 천천히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전부 들은 유표의 표정은 깊은 고민으로 물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지도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며 괴량은 싸늘히 웃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가 영안을 공격해야 한다는 말이네.”
다음날이 되자 유표는 황충을 불러 명령했다.
지금 코앞에 조조군이 와 있는데 다른 세력을 공격하라니.
가당찮은 말인가?
황충은 어이없어하며 괴량을 보았다.
“설명해주실 수 있겠소?”
“어제 진유하와 만났지. 그와 약조를 했네.”
“약조? 무슨 약조를?”
“우리가 유장과 오를 공격한다면, 그리고 그들과 적대적인 관계가 되는 것을 보여준다면 우리의 항복을 받아주겠다고. 그리고 그에 따른 처벌은 없을 것이라고.”
“…..”
이걸 믿어야 하나?
황충이 의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괴량은 피식 웃었다.
“날 의심하는 모양인데. 뭔가 착각하고 있군. 나로서는 지금 해야 하는 일을 말하는 것 뿐이야. 유가와 괴가는 혼인으로 얽혀 있는 집안이며, 유가가 없으면 괴가 역시도 위험해.”
“…그럼 채가는?”
“우리는 강하를 치러 갈거다.”
문을 열고 들어 온 채모는 이미 출진을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가 갑옷을 입고 들어오자 유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길 수 있겠나?”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에서는 일상적인 일. 자신은 할 수 없으나 하구항에 있는 수군들을 끌어들이면 승산이 아예 없지는 않을것이다.”
“으으음… 그럼 부탁하지.”
채모가 장윤과 함께 나서자 황충으로서는 더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괴량은 한숨을 내쉬었다.
“황 도위. 아니면 자네가 강하를 공격할텐가?”
“…영안을 공격하지요.”
그동안 꾸준히 익주 방면의 공방을 막아왔던 황충이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괴량은 담담히 말했다.
“위 부장도 데리고 가게나. 그리고 자네들을 이끌 이는 한 가좌가 할 것이니 그의 명령을 따르도록.”
한현을 자신의 상급자로 모셔야 한다.
과거에도 몇번 영안을 공격하러 갈 때 그가 이끈 적이 있었으니 불만은 없다.
황충이 고개를 끄덕이자 괴량은 차분히 말했다.
“반드시 영안과 강하를 손에 넣어야 한다… 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 전투는 조조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투야. 최선을 다해주게나.”
“명을 따르겠습니다.”
황충이 나가자 채모는 괴량에게 살짝 눈짓한 후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는 것을 보던 유표는 자리에 앉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이면 되겠지?”
“물론.”
‘이것이라면 너를 지켜 줄 자들을 확실히 배제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