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770
곽가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곽가 정도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아들을 효렴이나 무재로 추천할 수 있었고 쉽게 요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거기에 곽가는 조조의 신뢰를 받는 이다.
비록 순욱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도 이른 시기에 조조에게 합류하여 세력 내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신뢰를 받는 사람이다.
그런만큼 자신이 힘들다면 다른 이들에게 부탁을 해도 충분히 곽혁을 관직에 올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가는 곽혁에게 관직을 주기는 커녕 다른 이들에게 추천을 부탁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걸 떠나서 모든 정무와 정사를 할 때 조차 데리고 온 적이 없었다.
공식적인 자리에 단 한번도 소개한 적이 없을 정도로 곽혁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다.
일설에는 곽혁이 곽가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사마의는 곽혁을 보자마자 그 이야기가 다 헛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게 닮았는데 친아들이 아닐 수가 있나.’
곽가와 비슷한 날카로운 눈매.
오똑한 코.
굳게 닫힌 입술까지.
단단한 의지를 보이는 듯한 얼굴을 가진 곽혁은 사마의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빙긋 웃었다.
“행군사마? 왜 그리 보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네.”
중요한 것은 곽혁이 아니다.
사마의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관 선생께서는 언제쯤 오실 것 같은가?”
“근처에 잠깐 나가신 것인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이곳에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차를 내오겠습니다.”
꼬장꼬장한데다가 조조에게마저도 쓴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곽가와는 다르다.
곽혁은 공손히 허리를 숙여 말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자 장료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어딘지 모르게 기분나쁜 상대로군요.”
“자네가 처음 본 사람에게 그리 말하는 것은 처음이군.”
“인물상에 대해서 요새 병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들에게 배운 반골상의 특징과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허 참.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자네도 믿는 것인가? 그리고 나도 낭고상으로 반골에 해당하는 상인데. 이 사람. 이거 나도 기분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군.”
늑대가 고개를 돌아보는 상인 낭고상을 가지고 있는 사마의는 어이없어하며 투덜거렸다.
사마의의 말에 장료는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됐네. 이상한 소리는 말게나. 관상은 그저 얼굴의 형질에 불과한 것. 그리고… 진유하 역시도 관상으로 따진다면 그리 높은 위치에 올라갈 상은 아니야. 그런데 보게. 그는 이미 한의 시중이 되지 않았던가.”
“죄송합니다. 실언을 했습니다.”
“자네가 북방의 이민족들이나 병사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네. 허나 자네의 위치를 생각하도록 하게나. 이제 자네는 단순히 정북부의 교위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을 걸세.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거야. 관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다간 언젠가 크게 당할지도 모르네.”
“예.”
장료가 고개를 숙여 사죄하자 사마의는 입을 다물었다.
관상으로 인물평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었다.
당장 조조 같은 경우도 허자장에게 난세의 간웅이라는 관상과 인물평을 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사마의는 그것과 사람의 삶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마가의 비고에도 있었지만…’
사마가의 비고에도 관상에 대한 학문은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같은 말이 있었다.
사람의 삶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연과 우연이 만나 필연이 되고, 그 필연이 운명을 만든다.
비고에서 꾸준히 공부하며 내린 사마의의 생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관상만으로 사람의 재능과 재지를 결정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관상으로 따진다면 원소 역시 패왕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지. 하지만 그는 결국 간웅의 상을 가진 위왕께 패배하고 말았네. 잘 기억해두게나. 관상따위는 그저 얼굴의 형태에 불과하고, 길흉화복을 세는 점 따위 역시 사람의 기분을 조정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하겠습니다.”
장료의 답변에 사마의는 빙긋 웃었다.
장료가 관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가 관상학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배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북방의 공포로 이름을 알리고, 많은 이들에게 그 무로 존경을 받지만 장료는 권위와 허례의식보다는 계급이 낮은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는 것을 즐긴다.
스스로 자신의 말을 돌보고, 병사들을 일일히 살펴 독려하는 모습.
‘걱정은 없겠군.’
무뚝뚝하고 사람들에게 정을 보이지 않는 장료지만 낮은 곳에서부터 그들과 함께하는 장료라면 충분히 합비에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높이 올라가는 것은 의외로 낮은 곳을 보는 이이니까.’
그리 생각하던 사마의는 곽혁이 차를 들고 나오자 웃으며 그것을 받았다.
“잘 마시겠네.”
“별 말씀을. 그리 좋은 차는 아닙니다.”
겸양하며 말하고 있지만 차는 꽤나 좋은 차였다.
사마의가 차를 홀짝이다가 꽤나 훌륭한 다도실력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을 때 곽혁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그런데… 스승님은 무슨 일로 찾으시려는 것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자네에게 그것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 듯 보이는데.”
“죄송합니다. 다만 제자로서 스승님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설 뿐입니다.”
“스승을 생각하는 마음은 좋구만.”
“감사합니다.”
“허나.”
“….”
“자네 부친은 생각하지는 않는 것인가?”
사마의의 질문에 곽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미소를 마주하며 사마의는 천천히 말했다.
“곽 대부께선 지금 무척이나 몸이 좋지 않으신 듯 한데. 옆에서 돌봐드리지 않고 제 스승을 모신다라… 혹 곽 대부와 뭔가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정녕 그리 생각하십니까? 제가 아버님을 원망하고 있다고?”
“뭔가 이유라도 있나?”
지금 시대에서 불효는 중죄다.
비록 조조가 유재시용을 언급하며 재능있는 이들이라면 얼마든지 관직에 도전하라고 말했지만 아직까지는 유학과 유교적 도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유학의 중심이 바로 효다.
오죽했으면 효렴이라 하여 효심이 깊다는 이유로 글자 하나 몰라도 관직에 오를 수 있겠는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제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효는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본적인 도리.
인의를 저버린 자가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벌어지는 현상따위는 이미 황건적의 일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곽혁이 불효를 저지르는 이라면,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 관녕에 대해서도 한번정도는 재고해보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행군사마께서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관직에 나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소문에는 제가 아버님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내가 보기에 그것은 헛소문인 것 같군.”
“감사합니다. 저를 보신 분들은 다들 같은 말씀을 하시더군요.”
곽가는 자신의 위치 치고는 다른 이들과 크게 교류하지 않았다.
사적으로 그나마 교류하는 이들이라고 해봐야 조조, 순욱, 그리고 진유하 일당들 정도?
그 외에는 업무적으로만 교류할 뿐 사적인 만남조차 잘 갖지 않는 이였다.
그런만큼 곽가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아는 이들이 드물었다.
사마의 역시 다를 바가 없었기에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아버님께서 하시는 일은 공무입니다. 제게 아버님을 돕고, 아버님을 돌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공무라는 이유로 곽 대부께서 자네의 접근을 막은 것인가?”
“예. 서주에 계실 때도 몸이 좋지 않으신 분이라 몇번이나 찾아가 도우려 했지만 아버님께서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셨고… 이곳까지 쫓아왔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곽혁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를 마주하던 사마의는 쓴웃음을 지었다.
곽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곽혁이 관직과 멀어지게 하려는 것일까?
“제가 관 스승님의 제자가 된 것도… 아버님을 돌보기 위해서 왔다가 관 스승님의 마음에 들어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럼 제자가 된지는 오래 되지 않은 모양이군.”
“예.”
“그런가…”
잠시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장료도, 사마의도, 그리고 곽혁도.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차를 홀짝였다.
“뉘시오?”
그때 안으로 중년의 사내가 걸어들어왔다.
꽤나 허름하고 여기저기 누빈 자국이 남아 있는 문인의 옷을 입은 사내가 들어오자 사마의는 찻잔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정북부 행군사마 사마의입니다. 관 선생되십니까?”
“그렇소만. 무슨 일이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사마의의 말에 관녕은 살짝 눈쌀을 찌푸렸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혁아. 미안하지만 마을에 좀 다녀와주었으면 싶구나.”
“마을에는 무슨 일로…?”
“오늘 귀인께서 오셨으니 제대로 대접을 해야 할 것 같다. 가서 고기 두어근을 사가지고 오렴.”
“알겠습니다.”
소매에서 은전 하나를 받은 곽혁이 밖으로 나가자 관녕은 사마의를 지그시 응시하다가 말했다.
“들어오시구려.”
“예. 관 선생.”
관녕의 집은 허름하기 그지 없었다.
청렴과 결백으로 이름 높은 관녕다운 집이다.
죽간이나 서책으로만 가득 차 있는 집을 살피던 사마의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말을 돌리는 것은 취향도 아닌만큼…”
“정북부로 들어오라는 제의라면 사양하겠소. 허나 정북부 행군사마인 사마 중달에 대해서는 나 역시 알고 있소만.”
“그렇습니까?”
“유주에서 행군사마의 업적을 모르는 이들은 없으니까. 저 밖에 있는 것이 북방의 공포라 불리는 장 문원이겠군.”
“잘 아시는군요. 무관의 업무를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실은 무관을 좋아하는 것 아닙니까?”
“뭔가 오해가 있구려. 문관이든 무관이든, 결국은 사람. 사람의 행동에 따라 호오가 결정되는 것일 뿐이지 그의 업무에 따라 호오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오.”
“그렇습니까?”
어째 이야기가 쉽게 풀릴 것 같군.
사마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 정북부라… 그렇다면 이제 유주에서 떠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행군사마가 일을 잘 못하거나,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영전이라고 볼 수 있겠구려. 축하드리오.”
“예. 아마…”
“지금 행군사마가 움직인다는 것은… 좌풍익, 아니면 우부풍 아니겠소?”
“….”
사마의가 입을 다물자 관녕은 빙긋 웃었다.
“몸은 탁군에 있으니 과거 정북장군 진유하가 북방 정벌을 성공한 이후로 기주나 서주, 연주의 상인들이 자주 올라오고 있다오. 그들에게 그 방면의 소문 정도는 쉽게 들을 수 있었지.”
“그렇… 습니까?”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닌 듯 싶다.
관녕의 말에 사마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둘 중 하나를 제가 맡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확실히 영전이겠구려. 축하드리오.”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나를 데려가고 싶다는 것이오?”
“예.”
사마의의 말에 관녕은 빙긋 웃었다.
“좋소.”
“…에?”
“좋다고 말했소. 군문의 일이 아니라면 나도 제대로 도울 수 있겠지. 정북부의 요청을 거절한 이유는 그들의 일이 군무에 가깝기에 내가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거절한 것 뿐이라오.”
맥빠지는 대답이다.
서복에게 들었던 것 치고는 너무 쉬운데?
사마의가 떨떠름해하자 관녕은 히죽 웃었다.
“한때는 관직이니, 돈이니, 그러한 것들은 천한 것이라 생각하며 고고하게 살려고 해보았소이다.”
“그러십니까.”
화흠과의 일화에 대해서는 사마의도 알고 있었다.
그 일화와 더불어 스스로 청렴과 결백으로 세상을 살아오며 존경을 받은 것이 바로 관녕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더군. 행군사마. 알고 계시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사람의 삶이란 그리 청렴하지도, 결백하지도 않다는 것을. 이것은 군자들이나 할 수 있는 삶이라오. 백성들은 그렇지 않지.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돈이고, 식량이고, 그리고 자신의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권력이오.”
“그것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성현의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만… 나 혼자 성현의 말씀을 따라 무엇을 하겠소? 성현께서도 배우지 못한 이를 가르치는 삶을 살라 말씀하셨는데.”
“현명하신 생각이십니다.”
“그리하여 나도 생각을 바꾸고 있소. 스스로 흙탕물에 더럽혀지기 싫어 늪에 빠져드는 아이를 구하지는 않을 수 없는 것 아니오. 그러니… 함께 합시다. 내 미약한 힘이 행군사마를 얼마나 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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