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835
“헤에. 그랬냐?”
관평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의 공적에 대해서 떠들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지휘를 받던 이들 중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들이 황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저희가 했습니다!”
“마굿간에 불을 지른 것은 접니다!”
뭐야?
아무리 봐도 건달에 날도둑놈들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규율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워보이는 그들을 가리킨 내가 학소를 보자 학소는 피식 웃었다.
“진창의 의협들입니다.”
“호오. 의협들이 도왔단 말이지?”
“예!”
“위국을 위한 충정! 경조윤을 향한 존경! 그것이 저희들의 진심입니다!”
무시무시한 인상의 사내들이 나에게 눈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니 부담스럽기 그지없군.
예전에 흑귀대원이 되고 싶다며 달려들던 놈들의 시선 같다.
난 그들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작게 말했다.
“그거 잘 했군.”
의협들이라면 그런 식의 공작은 잘 할 수 있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의 입가에 웃음이 걸린다.
내 칭찬에 만족한 듯한 그들이 다시 무기를 꽉 잡고 전의를 다진다.
사기는 좋고.
그럼 가는 것만 남은 건가?
내가 움직이려고 할 때 적 부대의 움직임이 보인다.
이제와서 방어진형을 꾸리려는 것은 아닐 것이고.
뭐 꾸려도 상관은 없지만.
전차에 타고 있는 이들에게 손을 들고 이동을 명하려고 할 때 적군의 부대에서 흰 깃발을 든 이들이 나왔다.
“백기?”
“항복… 은 아닌 것 같고. 사자라고 볼 수 있겠군요.”
히야~
대단하다.
이 상황에서 사자를 보낸다?
“참 뻔뻔해. 그렇지? 이제 본격적으로 붙어야 하는데 대화를 요청하다니 말이야.”
“하지만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당장 전투를 회피하고 쉴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면 오히려 저희가 더 유리합니다. 병사들의 피로가 상당하니… 여차하면 진창성을 방패로 싸울 수도 있고. 정란을 파괴한 것만으로도 꽤나 이득을 보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쩝… 그렇긴 하지만. 아직 투석기가 남았잖아? 일단 전투를 한번 하면서 투석기는 다 박살내줘야지 진짜 이득이지.”
당장 한번 정도의 전투는 괜찮겠지만 전투가 길어진다면 이쪽의 피해도 크다.
특히나 이번에 데리고 온 보병들은 군역을 통해 막 훈련을 끝마친 이들이다.
실전 경험은 거의 없다시피한 이들인 만큼 이런 식으로 강행군을 한 후 전투를 치룬다면 피해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건…”
“약 팔천 정도…?”
장합의 보고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적병은 지금 이만 칠, 팔천 정도 된다.
아까 교전을 통해 꽤 많은 이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지만 빠르게 후퇴를 하여 피해를 줄였다.
우리는 후방에 있는 지원부대까지 친다면 삼만이 넘고.
숫적으로는 유리한 상황이지만 우리는 그 삼만 중 절반이 넘는 수가 이제 막 훈련을 마친 초병이었고 대부분이 강행군을 하느라 지쳐있었다.
“시간을 끄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군.”
“예. 그게 좋습니다.”
“병사들에게 일단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있으라고 해둬. 협상이 결렬되면 바로 전투 들어갈거니까.”
“알겠습니다.”
점점 다가 온 백기가 중간쯤에서 멈추자 난 학소와 서황을 보았다.
장합은 뒤의 인원들을 통솔해야 하지.
관평도 따라오고 싶어하는 듯 보였지만 서황이 있는 이상 자신이 방해만 된다는 것을 깨닫고 뒤로 물러났다.
“넌 장합이나 도와.”
“알겠습니다.”
시무룩히 고개를 숙인 그가 장합과 함께 병사들을 통솔하러 가버린다.
그를 잠시 보던 나는 몸을 돌렸다.
“가자.”
“예.”
학소와 서황, 그리고 오십여명의 기병만 이끌고 앞으로 나간다.
거리를 벌린 채 대화를 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한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는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참. 내 예상이 빗나갔군. 경조윤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말이야. 나도 내가 이렇게 오게 될 줄은 몰랐지. 그런데 뉘신지? 댁은 나를 알고 있는데 나는 댁을 모르는걸?”
“한차례 본 적이… 아. 없군.”
뭐지?
그는 가볍게 웃은 후 양 팔을 벌렸다.
“한때 전홍성에서 당신과 싸울 뻔 했던 자요. 이엄이라고 하지.”
“아…! 이엄!”
전홍성에서 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이엄이다.
유장군에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이엄은 빙긋 웃은 후 말을 이어나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떻소?”
“뭐가 어때?”
“이쯤해서 그만할 생각은 없소?”
“이제와서 그만하겠다고!? 제정신인가!?”
분노한 학소의 외침에 이엄은 그를 비웃었다.
“시끄럽다. 어린 놈이. 어르신들 이야기 나누는데 끼어들지 마라. 성주의 인장도 없는 놈이. 쯧.”
이엄은 손에 들고 있던 도장을 나에게 휙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상아 도장을 본 기병이 나서 그것을 나에게 돌려준다.
“이건 댁이 왜 갖고 있나?”
“곽준이 사기를 쳤거든.”
사기?
“사기라니. 책략이지.”
“뭐. 성주의 인장을 주면서 시간을 끌기라도 한거야?”
“곽 도위의 계책이었습니다.”
학소가 떨떠름히 대답한다.
그 이야기에 난 웃었다.
“하하하! 이거 참. 훌륭한 장군이 되겠군.”
“….”
이걸로 내가 곽준을 욕하기라도 할 줄 알았나보지?
“훌륭한 장군이 되려면 책략을 쓰는데 있어서도 불만을 가져서는 안된다. 스스로 나서서 이런 책략을 쓸 줄 안다면 인정해줘야지.”
마음에 든다.
전홍성에서 우리를 상대로 그렇게 버틸 때부터 꽤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다니.
만약 그가 이렇게 시간을 끌지 않았더라면 이미 진창성은 함락됐겠지?
난 진창성주의 인장을 학소에게 돌려준 후 웃었다.
“성주라는 자는 자기 인장도 내어주질 않나… 상급자가 있는데 버럭 소리를 지르질 않나. 한심하기 그지 없구만.”
어디 저따위 저급한 격장지계를 써?
부들부들 떨던 학소가 천천히 한숨을 내쉰 후 말없이 이엄을 노려본다.
그래.
굳이 분노는 할 필요 없잖아?
죽일 놈이라면 그냥 죽이면 되는거다.
쓸데없이 화를 낼 이유는 없지.
학소가 검자루에 손을 가져가는 것을 가볍게 말린 후 난 이엄에게 물었다.
“뭐 싸우고 자시고는 둘째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라면 괜찮지. 혹시 그딴 싸구려 격장지계 쓰려고 부른거는 아니겠지? 그런 것이면 얘기는 끝이고… 바로 끝장을 보는게 낫지 않겠어?”
솔직히 지금 싸워도 우리에게 큰 이득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이득 없이 전투를 멈출 수는 없다.
내가 웃으며 말하자 이엄인 싱글거렸다.
“역시 대화가 통하시는 분이군. 물론 이딴 이야기나 하려고 바쁘신 분 시간을 뺏으려는 것은 아니오. 제안은 아까 그대로. 진창성 공략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우리는 물러나겠소.”
“맨입으로? 남의 집 앞에서 깽판을 이렇게 쳐 놓고서 그냥 물러가겠다는거면 너무 개념 없는 것 아니야? 양심. 어디?”
“흠… 뭐. 투석기를 드리지. 어떻소? 저거 비싼거요.”
선심쓰는 척 하네.
어차피 교전이 일어나면 투석기는 파괴 될텐데.
요격을 나갈 수 있는 병력이 충족된 이상 고정되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공성병기는 첫번째 전투에서 거의 반 이상이 파괴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것을 내어준다는 말에 내가 콧방귀를 뀌자 이엄은 난감해하기 시작했다.
“그걸로는 성이 안차시나보군. 그럼 뭘 드린다…”
“당신 모가지면 참 좋을텐데.”
“이건 너무 귀한 것이라서 말이지.”
“거기 옆에 계신 분들? 지금 저 인간 목만 베어서 주면 너희들이 물러가는 것을 쉽게 봐줄 생각인데? 어떠신가?”
내 제안에도 이엄을 호위하기 위한 병사와 장수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엄은 비릿하게 웃었다.
“당신이나 다른 이들을 보고 생각컨데… 전투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한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거 굉장히 급하게 오신 것 같은데… 쉬어야 하지 않을까?”
“흥.”
예리한 놈인군.
한번 교전을 한 것만으로 우리 군의 상태를 파악했다.
수적으로는 유리하지만 병사들의 숙련도에서는 밀릴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지금 군의 대다수는 막 훈련을 마친 초병에 불과하니까.
이엄은 싱글벙글 웃었다.
“예전 전홍성에서 당신들이 이끄는 군을 봐두길 잘했군. 그때는 좀 더 일사분란했는데… 지금 당신의 군은 지휘를 쫓아가기 바쁜 정도니까. 기병들은 꽤 숙련되어 있는 듯 싶지만 수는 적은 듯 싶고.”
“그래서? 그럼 덤벼보지 그래? 왜 이리 혓바닥이 기실까?”
“나는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원하지 승패를 자신할 수 없는… 특히나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의 괜한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아. 우리의 목표는 진창성을 뚫은 후 좌풍익을 공략하는 것인데… 이렇게 빠르게 경조윤이 움직일 줄은 몰랐거든. 그리고 댁도 지금 안심할 수는 없을텐데?”
“왜 그따위 생각을 하는거지?”
“기곡은 완전히 손을 놓은 건가? 기곡에 있는 놈이 어떤 놈인데.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곳을 쉽게 막지는 못할걸? 어디의 현령이라도 보내놨나본데…”
이엄의 말에 난 웃으며 대꾸했다.
“아. 위연 때문에?”
“후. 한번 교전은 했나보군. 맞아. 그가 있는 이상…”
“걔 죽었어.”
“…거짓말.”
속고만 살았나.
가늘게 눈을 뜨고 내 말을 부정하는 그를 향해 난 품에서 꺼낸 호패를 던져주었다.
“자.”
바닥을 구르는 호패를 받아 든 이엄은 그것을 천천히 살폈다.
그제서야 내 말이 진짜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이엄은 빠득 이를 갈았다.
그것에 난 작은 통쾌함을 느꼈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잡은 것이 현명한 판단인듯 싶었다.
그가 남아 있었다면 이렇게 빨리 올 수 없었을테니까.
“기곡 쪽은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듣자하니 황충이 한중으로 갔으니까. 밖에서 떠돌고 있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것이 아닌 이상에야…”
이엄의 주먹이 쥐어진 것을 보며 난 천천히 말했다.
황충을 한중으로 뺀 것 까지 내가 알고 있을지는 몰랐던 모양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굴리는 그를 향해 난 차분히 말했다.
“자.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볼까? 너희가 물러나는 것을 순순히 지켜봐주는 대신 뭘 줄래?”
“하하하… 뭘 원하시오?”
여유있는 척 하기는.
이엄의 이마에서 한줄기 땀이 흐르는 것이 보인다.
“댁의 모가지.”
“그건 비싸서 안된다니까.”
“그럼 이렇게 하자고. 너희가 가진 치중의 절반을 내놓도록. 어때? 많이 양보해주는 것 아닌가?”
“…욕심이 많군.”
“그래도 당신 모가지보다는 싼 것 같은데? 아니면 한번 붙어볼까? 자신 있나?”
도박이다.
만약 싸우게 된다면 승리는 할 수 있지만 이쪽의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위연과 싸워 이긴 후 얻은 정보에서 익주의 후발대는 존재한다고 들었다.
그들이 올라오는 것을 생각한다면 진창성과 기곡을 지킬 병력은 반드시 둬야 했다.
지금 저들과 싸워 병력을 낭비하는 것보다 차라리 저들을 일단 물러나게 한 후 진창성을 수리, 그리고 기곡에 간단하게나마 진채를 구성하여 기곡을 습격할지도 모르는 적들을 막을 준비를 하는 것이 낫다.
“흐음… 뭐 좋아. 그럼 투석기는…”
“그것도 두고 가고. 뭘 그리 바리바리 싸들고 가려고 그래? 죽을 때 싸가지고 가려고?”
투석기 한대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한다면 그냥 주고 싶지는 않다.
저게 있으면 진창성을 수비할때 써먹을 수도 있고.
투석기도 챙겨가려는 그를 향해 웃으며 말하자 이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다가 피나겠다.
“크… 욕심쟁이로군.”
“꼬우면 한판 뜨든가. 난 아쉬울 것 없어.”
사실 지금 한판 뜨면 꽤나 아쉬운 상황이 된다.
하지만 더 아쉬운 것은 이엄이다.
지금 싸우면 이엄은 필패라고 할 수 있을테니까.
다 죽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목숨이라도 챙겨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바보가 아닌 이상 이 협상을 그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거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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