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897
———–
조회가 끝났지만 쉽게 자리를 뜨는 이들은 없었다.
다들 당혹스러워하거나 한숨을 내쉬거나.
분위기가 딱히 좋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조의 은퇴 문제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발표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이 오늘 밝혀졌다.
그것도 조조의 입으로 말이다.
이제는 번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전하께서 은퇴하시면 어떻게 되는거지?”
“아직 익주와 오 놈들이 건재한 판에… 괜찮으려나?”
“전하께서 은퇴하신다면 당연히 승상도… 하아 이거 다른 노신 중에서도 은퇴할지도 모르는 이가 생기겠군…”
언제까지 이곳에 모여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삼삼오오 모여 빠지는 관리들 중에서 난 양 사형과 사마의를 찾아 구석으로 불렀다.
“아 진짜. 양 사형. 거기서 그런 실수를 하면 어떡합니까?”
“미안. 미안.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군.”
십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양 사형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와 양 사형을 번갈아 보던 사마의는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뭐가. 또.”
“왜 전하께서 은퇴하신다는 말에, 그리고 그 자리를 전장군에게 넘긴다는 말에 저들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지?”
“상소 공격이라도 하려는 것 아닐까? 전처럼.”
“위왕께 바쳐지는 상소는 모두 승상부를 통한다. 전과 달라. 우리 측에서 전부 잘라버리면 의미 없어.”
예전에도 채옹을 비롯한 황실파 신료들이 상소를 냅다 올린 적이 있었다.
그때 순욱은 성실하게 그 모든 부분에 대해 대응했지만 양 사형이나 나라면 그냥 다 불사질러 버릴 것이다.
바빠죽겠는데 그딴 쓸데없는 소리에 뭐하러 대응하냐.
그냥 교사원의 요원들이나 흑귀대 좀 보내면 끝나는 일을.
“아무튼 한 고비는 넘겼으니 안심해도 되려나.”
“그랬으면 좋겠는데… 저들이 너무 얌전한게 거슬린단 말이지.”
솔직히 나도 그 문제는 마음에 걸렸다.
저들 입장에서는 정쟁에서 패배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도 분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만약 숨긴 것이라면 진짜 경계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뭔가 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을 해보자.”
사마의, 나, 그리고 양 사형.
셋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보았다.
저것들이 다음에 무슨 수를 쓸까?
그리고 한번에 답이 나왔다.
“일단 조앙의 호위를 신뢰할 수 있는 이들로 바꾸자.”
“창기대는 신뢰하기 힘드나?”
“창기대가 아무리 조앙이 키운 부대라고 하지만… 그들 중에 조가와 연이 깊은 이들이 있어. 그런만큼 빼는 것이 낫지. 날 호위하기 위해 온 이들은 함진영이다. 그들을 조앙의 호위로 넣는다. 그들의 충성심은 믿을 수 있어. 아예 조가와 상관이 없는 이들이니까.”
“그럼 외적으로는 교사원의 요원과 흑귀대를 보내놓는 것이 낫겠군.”
“교사원에는 내가 요청하지.”
나온 답은 하나다.
조앙의 암살.
극단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안걸리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결론을 내린 사마의는 바로 자리에서 이동했다.
“이번 일로 조앙을 축하해주기 위한 이들이 많이 몰릴 거다. 그리고 그의 파벌에 들어가고자 하는 이들도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서 틈은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지. 너는 그를 옆에서 잡고 있어야 해.”
“어… 그렇지만 난 상서부 복야 업무를 맡아야 하는데.”
양 사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분간 그 공백은 내가 메우도록 하지. 장합이나 서황은 어디 있지?”
“지금 좌풍익에 있을겁니다. 이제 금방 올 것 같기는 한데.”
“그들이 오는 즉시 그들 전부를 조앙의 호위로 붙여.”
“알겠습니다.”
나와 사마의, 양 사형은 멀찍이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곽영 일파, 그리고 조비 일당.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며 양 사형은 천천히 말했다.
“긴 여정이었다. 이제 마지막 순간이야. 방심은 금물. 다 된 밥에 코빠트리지는 말자고.”
그래야지.
저기 코흘리면서 재를 양 손에 들고 있는 놈들이 있으니.
최대한 조심해야지.
양 사형과 사마의는 일단 자기 일을 하러 가버렸다.
그들이 가고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고민을 하다가 조앙에게 향했다.
종요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조앙은 내가 오자 손을 흔들었다.
“야. 축하한다.”
“지금 팔자 좋게 축하니 뭐니 떠들 때가 아닙니다. 종 상서령. 죄송하지만…”
“아아. 예. 다음에 또 뵙지요.”
종요가 떠나가자 조앙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던 이들 중에 한명이 나왔다.
진림이다.
그는 껄껄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야~ 축하드립니다.”
“허… 별 말씀을. 그나저나 진 부조. 잠깐 얘기 좀 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지요.”
“그럼 나는 좀 다른 곳에 가서 얘기나 좀 하고 있을테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따라오십쇼.”
이 인간은 진짜 바본가?
지금 가장 위험한 사람은 조조도, 순욱도 아니고 바로 조앙이다.
그런데 저렇게 속없이 웃고 있다니.
그를 질질 끌고 구석으로 간 후 진림에게 물었다.
“진 부조. 저는 진 부조께서…”
“아아. 압니다. 저도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사람이니까요.”
원소의 밑에 있다가 조조의 밑으로 오게되며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며 줄타기를 하는 진림이다.
그런 진림인 만큼 현 사태에서 어느쪽이 유리한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서간과 응창, 유정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습니다.”
“그거 좋군요.”
눈치빠른 그는 차분히 그들에 대해서 나에게 말해주었다.
소속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누구와 관계를 맺었는지.
그의 정보를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 부조께 부탁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만.”
“어떤 것이든지 말씀해주십시요. 승상복야.”
“사예교위에 대해서 좀 알아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공식적으로 진 부조께서는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으신 분이니만큼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아. 예. 그러지요. 그거면 됩니까?”
“그 외에 아직 파벌에 속하지 않은 이들을 좀 파악해주셨으면 합니다. 아, 혹시 무리가 된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나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양 사형도 가지고 있는거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진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지 않지요. 저번부터 좀 분위기가 요상해서 다들 이래저래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조조와 순욱의 은퇴.
그것은 세대교체를 의미했다.
그들이 은퇴하면 다른 노신들 중에서도 은퇴하는 이들은 속출할 것이다.
당연히 빈자리가 생긴다.
그리고 이것은 높은 자리를 원하는 진림에게는 기회였다.
나와, 그리고 우리와 친해지면 그 자리 중 하나가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 만큼 진림은 의욕이 넘쳐보였다.
“이거 참. 진 부조께서 함께 하시니 마음이 참 든든해집니다. 그럼 다음에 진가에서 술이나 한잔?”
“그거 좋지요~”
선선한 미소를 지은 진림은 나에게 살짝 목례한 후 자기 일행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형님. 그럼 우리도.”
“야. 술이나 마시러 갈까? 이렇게 좋은 날 술 안마시면 어떻게 버티냐?”
“…거 진짜 사람 속도 모르고.”
누구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똥줄타고 있는데.
조앙은 실실 웃으며 내 어깨를 잡았다.
“좋은 날이잖냐.”
“좋은 날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술마시면서 놀 날은 아니거든요? 술 드시고 싶으시면 내년에 아주 진탕 먹여줄테니까 쓸데없는 소리는 좀 하지 마십쇼.”
다른 이들이야 통제가 된다지만 이 인간은 어쨌든 나보다 위다.
정 안되면 흑귀대나 백귀대를 이용해서 가택구금시킬 수 있는 이들과는 상대하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형님. 솔직히 까놓고 한번 얘기해봅시다.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죠?”
모른다면 철저하게 가르쳐주자.
내가 이를 갈며 묻자 조앙은 피식 웃었다.
“사태의 심각성? 이 사태가 심각하기나 한가?”
“아 진짜. 그러니까…”
“지금 나를 공격하는 놈들만 잡아내면 되는거잖아. 그럼 차후가 아주 편해지겠군.”
“…어?”
이 인간이 지금 뭐라고 한거지?
조앙의 입가에 미소가 더욱 진해진다.
“나를 공격할 이들이 누굴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어. 이런 말 모르냐? 맹수를 잡기 가장 좋은 때는 맹수가 사냥감을 물려고 할때라는 걸.”
잠깐만.
지금 이 인간.
웃는 얼굴로 싸늘히 말한 뒤 그는 내 어깨를 감싸 잡았다.
“그러니 지금은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순식간에 어조가 바뀐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유한 목소리로.
“어… 어어.”
당황한 나를 보며 조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진짜 귀신을 본 것이면 차라리 낫지.
맨날 보던 속 없고 철 없는 남자인 조앙이 이런 말을 꺼낼 줄이야.
내가 당황하자 조앙은 키득거렸다.
“크크크~ 뭐야?”
“아니… 형님께 그런 식견이 있을 줄이야.”
“날 너무 무시하는구만.”
내 머리에 꿀밤을 먹인 그는 느긋하게 걸었고 난 황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도착한 곳은 허도 중앙에 있는 기사원이라는 술집이었다.
엿듣는 이가 없게 관평을 문 밖에서 지키게 했다.
깔끔하게 상이 차려진 자리에 앉자마자 조앙은 술병을 들어 한모금 마셨다.
“독은 없군.”
순둥이처럼 보이지만 조앙도 전장에서 구를대로 구른 장군이다.
그런만큼 독에 대한 훈련은 마친 사람이다.
어지간한 독은 혀만 대도 다 알아차릴 수 있는 그는 술잔의 술을 한모금 마셨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까?”
“무슨 생각?”
“자기를 공격하니 마니.”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어보자 조앙은 반찬 한두가지를 으적거리며 씹었다.
“생각한지야 좀 오래됐지.”
그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아, 전에 독살당해서 죽을 뻔 했거든. 어휴. 진짜 해독제를 상비하지 않았다면 진짜 조부님 만나러 갈 뻔 했다니까.”
“뭐요!?”
자기 죽을 뻔 했다는 이야기를 저렇게 쉽게 하다니.
난 기겁하며 그를 보았지만 조앙은 정말 별 일 아니라는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야. 살다보면 죽을 뻔한 경험 수십번도 넘게 하는 것이 무관이야. 당장 황건적 때도 얼마나 죽을 뻔 했는데. 그때는 하루에 세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아니 그것과는 다르잖습니까.”
전장에서 칼맞는거랑 독살당하는거랑 비교를 하다니.
어이가 없어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흉수는 잡았습니까?”
“못 잡았지. 만약 흉수를 잡았다면 너도 알았을 것 아니냐. 그리고 내가 이런 식의 공격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거의 십년 정도 전부터야. 좀 근래가 되서 많아지기는 했지만.”
하긴 그랬다.
지금부터 십년전이면 한참 원소랑 치고 박고 싸울 때였다.
하지만 그때 조앙이 죽을 뻔 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었다.
“조비입니까?”
“몰라.”
“숨기지 말고.”
“진짜 모른다니까?”
조앙은 짜증섞인 어조로 말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의심가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야.”
“조비?”
“넌 나한테 뭔 일만 생기면 그 녀석 얘기를 꺼내는 것 같다?”
“아닙니까?”
내 질문에 조앙은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씩 웃었다.
“야야. 마셔.”
“형님!!”
“아이. 깜짝이야.”
저 인간은 진짜.
내가 이를 갈자 조앙은 술병을 내려 놓았다.
“맞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없어.”
“조사 안했습니까? 교사원에 의뢰하면 금방 알아낼 수 있을겁니다.”
“내가 안해 본 줄 아냐?”
조앙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술을 마셨다.
내가 알던 조앙은 저런 사람이 아니다.
늘 태평하게 안전한 곳에서 낄낄거려야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저런 웃음을 지을수가 없다.
내가 모르는 조앙의 면모가 너무나 많이 보인다.
난 그를 지그시 응시하며 물었다.
“답은 나왔습니까?”
“호표기 중 하나라고 하더군. 다만… 그 뒷배는 몰라. 교사원의 요원이 찾아갔을 때 그는 자결했으니까.”
호표기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
조앙에게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호표기는 조가의 정예병들.
그런만큼 조앙이 아닌 조비를 따르려는 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 조비의 사주를 받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다.
조앙이 지금 말만 하지 않고 있지 조비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 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하지마라.”
“장난하십니까?”
그토록 조앙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이 고생을 했는데 그가 독살당해 죽는다면 나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나를 향해 조앙은 웃었다.
“장난이라니. 난 언제나 진심이었다.”
“그럼 어쩌시려구요. 그냥 죽어주시게요?”
내가 짜증 섞인 어조로 외치자 조앙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지워졌다.
그것만으로도 인상이 변한다.
난 그의 차가운 눈을 말없이 응시했다.
“그럴리가.”
“그러니까 빨리 잡자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때 일을 빌미로 비 녀석에게…”
“너는 그럼 지금 내가 권력 때문에 동생을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라고 말하는거냐?”
“못하겠으면 관두십시요.”
내가 하면 되니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조앙은 천천히 말했다.
“앉아.”
“못 앉겠다면?”
“앉아. 나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어.”
그의 말에 난 결국 자리에 앉았다.
그런 나를 지그시 응시하던 조앙은 술을 한모금 마셨다.
“그래. 네 말대로 내가 지금 조비를 죽인다고 치자.”
“….”
“그럼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할까?”
“그게 중요합니까?”
사람들의 시선 신경써서 무슨 큰 일을 하겠다고.
이렇게 사람이 달 수가 있나?
“중요하지. 아주 중요해.”
조앙은 자신의 반상을 톡톡 두들겼다.
“천하를 잡으려면 적어도 만인이 보기에 덕있는 왕이 되어줘야 하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