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어쩐지 승태는 유엽이 할 말을 대강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사실 지금 당장 요하에 건넨 만큼의 군량을 뽑아내려면 백성들을 수탈하거나, 서주와 양주에 있는 호족들의 재산을 뺏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가지 다 승태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킬 게 불 보듯 뻔할 터. 가장 좋은 방법은 호족들이 자발적으로 군자금을 바치는 것뿐이었다.
“혹시 말씀하시려는 방법이 호족들의 ‘기부’ 맞습니까?”
승태가 기부라는 단어에 힘을 줘서 말하자, 유엽이 눈을 반짝였다.
“기부라… 후께서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호족들은 전장에 나설 기회를 얻고자 기꺼이 재산을 바칠 것입니다.”
노숙은 이들의 대화를 듣고 슬며시 웃었다.
기부라는 명목하에 호족들의 재산을 빼앗겠다는 의도가 뻔하게 드러났지만, 노숙이야말로 승태의 정책에 가장 찬동하는 인물이 아니던가.
그동안 노(魯)가에서 얼마나 기부를 많이 했는지, 수로와 도로의 입구에 세워진 감사비에 노씨의 이름이 빠진 적이 없었다.
우스갯소리로 수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항상 노가의 이름을 봐야 한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게다가 단순히 재산을 헌납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한 만큼 수춘에서 시행하는 새로운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호족들도 토목공사가 생기기만을 기다리기까지 했다.
“이보게, 자양.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네만… 그러나 이번 일은 조금 다르지 않은가. 전장에 나가는데 재산을 바칠 이들이 나오겠는가?”
“이미 양주의 주씨가 군자금을 조달하며 부탁해 왔네.”
승태는 둘의 대화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부탁? 재미있군.”
유엽은 순간 등에 땀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승태는 서주와 양주를 다스리며 호족들의 부패를 가혹하게 때려잡았는데, 지금 자신이 청탁을 받았다고 오해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그는 당황했지만,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사실 호족들에게 승태는 은근히 빡빡한 인물로 여겨지고 있었다. 많은 재산을 바치더라도 관직을 내리지 않았고, 호족이 자신의 힘으로 일군을 정벌하여도 통치권을 주기는커녕 사전을 일으켰다고 벌을 내린 적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호족들은 승태의 눈치를 보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기준이 승태에게 통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나중에는 그저 노숙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공사 현장에 기부하고, 감사비 가장 윗줄에 누가 이름을 남기느냐의 싸움이 된 것이다.
“별일 아닙니다. 그저 조가의 자제분들이 공을 세울 수 있도록 전장에 세워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승태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집안사람 중에서 전장에 나갈 만한 인물은 조창과 조식 정도였다.
사실 조창과 조식, 두 사람은 걱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큰돈을 들인 만큼 분명 주씨 같은 후원자들도 참전할 텐데, 그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장수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지도 모르는 게 염려될 뿐이었다.
그렇다 해도 그들이 내놓을 물건이 충분히 가치 있다면 고려해볼 만했다.
“주씨만 있던가?”
“사실은… 오의 사성을 필두로 양주의 뭇 가문들이 모두 나섰습니다.”
승태는 순간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양주의 귀족들이 어째서 전쟁에 참여하려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의 사성이라, 장씨와 주씨는 조식과 조창의 처가이니 당연히 참가했을 테고, 육가는 육손이 있고, 고씨는… 모르겠군. 그리고 다른 호족들은 가만히 힘을 기르기만 해도 이득일 텐데, 어째서 그들을 따라서 전장에 나서려는 것이지?’
혼란스러운 승태의 눈에 노숙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다들 이번이 기회라 생각한 듯합니다.”
“기회라고요?”
“예. 주군의 행보를 살펴보면, 그간 하북을 정리하며 많은 장수들에게 관직을 내리고 공과를 세우게 해 주지 않았습니까? 특히 태사자에게는 청주목 대리를 맡기셨으니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노숙은 잠시 말을 멈췄다. 계속 이어 가도 괜찮을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계속 말해 보시지요.”
“…사실 주군께서 새로운 인재들을 등용하면서 본래 관직에 나아가던 이들의 길이 좁아졌습니다.”
승태는 호족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각지의 한사(寒士)와 평민들에게 자신이 필요한 학문을 교육시켰다. 그리고 시험도 기존과는 다르게 진행하니, 도리어 각지의 명망 높은 이들이 점차 밀려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승태가 시행하는 공직 시험과 기술을 개발하는 개발자들을 제외하면 큰 직위로 이동할 기회가 사라져 기존의 관리들도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런 감정은 돈이 많건 적건 다들 같았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며 다들 수긍하려고 할 때, 하북 정벌이라는 큰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즉, 전쟁이 일어난 뒤 승태가 관직을 마구 뿌리는 걸 본 이들이 이번 유비와의 싸움도 출세할 기회라고 생각했을 거라는 의미였다.
사실 승태는 이미 조정에서 허락한 내용이었고, 직접 다스리기에는 귀찮은 곳이라 여겨 그냥 떠넘겼을 뿐인데, 양주에서 바라보던 이들의 눈에는 달리 보인 듯싶었다.
“그래도 하북과 지금의 형주는 좀 다른 상황일 텐데요. 그때는 원가에서 지배하는 영역을 점령하기 위해 공세를 폈고, 지금은 방어하러 가는 길이니 말입니다.”
노숙과 승태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 이번 전쟁에서 호족들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엽이 곧 그들의 속내를 알려 주었다.
“호족들에게도 다른 꿍꿍이가 있습니다. 주군께서 서주 호족들이 가진 노복들을 풀어주고 평민으로 만든 적이 있으니, 자신들의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같은 꼴에 처할까 봐 나섰을 테지요. 또한, 주군께서 언제나 실리와 효용을 이야기하시니, 그들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게 분명합니다.”
유엽의 말을 듣자, 승태의 뇌리에 번개가 친 듯했다. 그동안 승태는 사전을 틀어막고, 감녕과 주환을 중용하여 관의 수군을 강화한 뒤 각지에 주둔시켰다. 그러다 보니 호족들은 자칫하면 승태가 자신들이 가진 사병 모두를 흡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승태는 가만히 유엽의 말을 곱씹었다. 솔직히 아직은 호족들에서 사병을 모두 빼앗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예전에야 승태가 가진 힘이 호족들이 뭉친 것보다 밀리니까 조그만 잘못이라도 보이는 족족 때려잡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승태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세력도 커졌으니, 호족들의 사병을 빼앗기보다는 그들이 각지를 방어하게 만드는 편이 도움이 될 터.
“뭐, 어찌 됐든 우리에게 좋은 쪽으로 흐르고 있으니 해가 되지는 않겠군요. 지금 당장은 말입니다.”
평온한 어조였지만, 유엽과 노숙은 순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승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승태는 언젠가 호족들이 가진 사병을 모조리 흡수할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주군, 하나 그것은…….”
“뭐, 저도 알고 있습니다.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분명합니다. 아직 태호 이남에서는 월족의 후예라고 자칭하는 도적들이 있고, 또 손가의 통치를 그리워하며 반발하는 이들도 있지요. 그리고 저들을 모두 제거하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비슷한 무리가 나올 테니 말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승태는 자기 뜻을 꺾지 않았다. 그러자 노숙와 유엽, 두 사람은 승태의 무미건조한 눈을 바라보며 느꼈다.
‘이것이 주군께서 생각하는 옳은 일인가.’
“하하하, 지금 당장 벌일 일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맙시다. 우선은 여건의 일부터 처리하지요. 아, 호족들은 원하는 바를 들어주도록 합시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승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올라온 문서들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유엽과 노숙은 가장 먼저 여건이 요구한 군량을 어찌 채울 것인지 이야기하였다.
그다음은 호족들의 가문에서 어떤 인물을 데려갈지, 조창처럼 후원을 받는 사람들은 어디로 배치할지를 논의했다. 마지막으로 군을 통솔할 장수는 누구로 선정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두 사람이 한참 동안 격렬히 토론하는 동안, 승태는 보고서를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들자 노숙과 유엽도 정리가 끝난 것처럼 보여 승태는 종을 흔들어 내관을 불러들였다.
노숙은 살며시 들어온 내관에게 서신을 작성하기 위한 물건들을 부탁했다. 이윽고 내관이 물건을 가져오자, 노숙은 유엽과 대화한 내용을 정리해 승태에게 올렸다.
승태는 그것을 한 번 슥 훑어본 뒤, 노숙에게 다시 건네며 말했다.
“이대로 진행하지요. 역시 두 분이 힘을 합치니 좋은 결과가 나온 듯합니다. 그리고 덕분에 저도 잠시 쉴 수 있을 테고 말입니다.”
노숙이 서신을 받아 들자, 승태는 노숙에게 무어라 귓속말을 건넸다.
“이제 우리의 꿈을 하나하나 이루어 갈 때가 온 듯합니다. 서주의 진 공께서 목숨을 바쳐 판을 깔아 놓았으니 말입니다.”
노숙은 승태의 말에 순간 몸이 굳어졌다. 진 공이라는 말을 꺼낸 순간, 승태의 눈에서 지금껏 보이던 무심함이 사라지고 불타는 의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 * *
온현.
여혜의 둘째이자 승태의 셋째 아이가 물려받게 될 온현은 사마씨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사마가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랜만에 사마씨가 아닌 다른 세력에서 주둔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군사를 조련하는 훈련장에서 계속해서 굉음이 들려왔다. 고요하기만 하던 현에서 어느새 고요함이 사라진 것이었다.
퍼버버벅!
그 소란스러움의 주인공인 마초는 손에 피가 날 정도로 거세게 나무창을 휘두르며 병사들과 대련을 하고 있었다.
아니, 대련을 빙자해서 병사들을 구타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마초를 말리지 않았다.
도리어 마씨 가문의 사병들은 마초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는 듯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전신전령을 다해 마초와의 대결에 임하였다.
“유비! 내 하늘에 맹세컨대 반드시 네놈의 생살을 씹어 먹을 것이다!”
마초의 포효에는 분노와 살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들었다면 마초의 살기에 오줌을 지렸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마가의 병사들은 끊임없이 마초에게 달려들었고, 마초는 굉장한 무예를 발휘하며 병사들을 때려눕혔다.
그때, 갑주를 입은 병사들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방덕의 모습이 갑주를 입은 병사들 사이로 보였고, 그는 마초의 앞에서 무릎 꿇고 예를 표하였다.
“조정에서 유비의 목을 베어 오라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마초는 곧바로 나무창을 내팽개치고 방덕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서신을 받아 들고 크게 광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크하하하하하! 복수다! 마침내 형제들의 복수를 할 기회가 찾아왔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