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33
(33)
“송 선생님, 이 환자 혈액 배양하게 2세트 채혈해 줘요.”
“알겠습니다. 과장님.”
간호사가 토니켓(채혈 밴드)을 환자의 팔에 묶어 채혈하는 동안에도 봉 과장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환자분 어디 특별히 아픈 곳이 있습니까?”
“열이 나서 그런지 온몸이 다 아프고 힘이 없어요.”
“제가 몇 군데를 눌러 볼 건데 많이 아프면 말씀해 주세요.”
“네.”
봉사길 과장은 환자를 눕힌 후 배 여러 곳을 지그시 눌러 보고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청진을 한 후 피부를 등까지 살펴봤다.
배를 눌러도 아프다 하는 곳이 없었고, 청진기로 병을 특정할 수 있는 숨소리를 찾을 수도 없었으며 발진이나 상처 부위도 없었다.
열이 나고 컨디션이 떨어졌다는 것을 빼면 거의 무증상에 가까운 환자였다.
“송 선생님, 이 환자분 소변배양검사도 부탁할게요.”
“네.”
간호사가 환자에게 종이컵을 주며 화장실로 안내를 하자 봉사길 과장이 이민호에게 물었다.
“이민호 선생이 보기에 어떤 병인 것 같아?”
“혈액배양의 결과와 소변배양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증상으로 보면…… 패혈증이 의심됩니다.”
“패혈증이라. 그럼 어떤 균에 감염됐을까?”
이민호는 질문하는 봉사길 과장의 눈을 보고 그가 이미 환자의 병을 추측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자신 또한 이미 환자의 병을 추측하고 있었다.
그는 아마 이런 질문을 통해 환자의 병을 추론하게 한 다음, 자신이 추측하는 병을 도출해 내고 검사 결과가 도출한 대로 나오는 모습을 보여 주려는 게 분명했다.
이민호는 속으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럴 땐 겸손하게 구는 것보다 정확하게 맞추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야 장태주 교수처럼 특혜를 주지 않겠는가?
“윤복희 환자의 경우 고령인 데다 몸에 특별한 상처도 없습니다. 숨소리도 고르고 복부의 압통이나 반발통은 없지만 여환이라는 걸 생각할 때 대장균에 의한 UTI(Urinary tract infection, 요로감염)일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로감염은 신장, 요관, 방광, 요도와 전립선 등 비뇨기계가 세균에 감염된 것이다.
주로 여자들이 볼일을 보고 나서 화장지로 항문을 닦을 때 닦는 방향이 뒤에서 앞쪽으로 향할 경우 요도가 대장균에 오염될 가능성이 높았다.
순간 봉사길 과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직 혈액배양검사 결과도 소변배양검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대장균에 의한 요로감염을 추측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자신처럼 오랜 경험이 있는 의사라면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그런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민호는 인턴이지 않은가.
“크흐음, 만약 소변배양검사에서 그램 음성 간균의 탐식 소견이 나올 경우 대장균에 의한 UTI(요로감염)이라고 봐야지. 물론 탐식 소견이 확실치 않거나 양성 구균을 보이는 경우도 있으니 아직 단정 지으면 안 되고.”
“네.”
“음성 간균의 탐식 소견이 나오면 어떤 약을 써야 할까?”
“세파졸린(CEZ)이나 세프타지딤(CAZ)을 써야 합니다.”
“만약 양성 구균이 나오면?”
양성 구균은 녹농균이나 ESBL(expanded spectrum beta-lactamase, 광범위 베타락탐 항생제 내성균)을 말한다.
이민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곧장 대답했다.
“녹농균이라면 피페라실린(PIPC)/타조박탐(TAZ)에 반코마이신(VCM)을 섞어 써야하고 ESBL 생산균까지 나오면 타조박탐 대신 메로페넴(MEPM)을 써야 합니다.”
“허, 참. 병을 나 못지않게 예측하는 것도 놀라운데 처방할 약까지 꿰고 있다니!”
봉사길 과장은 잠시 혀를 내두르며 지금까지 응급실을 거쳐 갔던 인턴들을 떠올려 봤다.
단언컨대 이민호 같은 인턴은 없었다.
환자가 돌아오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소변배양검사 결과가 나왔다. 이민호의 예상대로 그램 음성 간균이 있고, 탐식 소견도 볼 수 있었다.
대장균에 의한 요로감염인 것이다.
“이민호 선생의 예상대로군. 이런 진단은 책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비슷한 증례를 경험한 적이 있나?”
“네. 몇 번 비슷한 증례를 경험해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몇 번이 아니라 화타로 사는 동안 수천 번도 넘게 경험했었다.
“그래. 훌륭하네. 패혈증도 확인됐으니 이제 혈액 가스검사 결과를 기다리면 되겠군. 이런 경우 혈액 가스검사에서 가장 중심적으로 봐야 하는 게 무엇일까?”
“lactate(젖산치)입니다.”
“그렇지. 만약 4 mmol/L 이상이면 중증이니 신장 기능 검사까지 해야 하네.”
시간이 지나 여자환자의 혈액가스검사 결과가 나왔다.
젖산치가 4.5 mmol/L였다.
“이 수치라면 신장도 검사를 해 봐야겠군. 이민호 선생 복부초음파 준비해 줘.”
“알겠습니다.”
이민호가 환자의 복부에 젤을 바르고 초음파 검사를 할 준비를 하자 환자가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의사 선생님, 제가 어디가 아픈 겁니까?”
“초음파를 해 봐야 어디까지 감염됐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결과로는 대장균에 의한 요로감염입니다.”
“대장균에 의한 요로감염이요? 대장균이라면…….”
환자가 머뭇거리자 이민호는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해 줬다. 화타로 살던 시절엔 이런 환자에게 똥독이 올랐다고 했었다.
“많은 여성분들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난 후 휴지로 뒤처리를 하는데 그 방향이 뒤가 아닌 앞쪽으로 향할 경우 종종 대장균에 의해 요도 쪽이 오염되곤 합니다. 보통은 소변 볼 때 균이 씻겨 나가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대장균이 방광을 넘어 신장까지 오염시키기도 합니다.”
이민호의 설명을 듣던 환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과장님, 초음파 준비 끝났습니다.”
“음, 수고했어.”
봉사길 과장은 초음파로 환자의 복부를 검사하며 신장을 비추었다.
“이민호 선생이 보기엔 어떤 것 같아?”
“신우신염인 것 같은데요.”
“그렇지, 소변검사에서 다행히 녹농균이나 ESBL(expanded spectrum beta-lactamase, 광범위 베타락탐 항생제 내성균)이 검출되지는 않았으니 음성 간균만 커버하면 되겠어.”
“URO(urological section 비뇨기과)에 연락할까요?”
“이 정도는 약만 써도 되니 URO까지 컨펌 할 필요는 없어.”
“그럼 입원을 시켜야겠군요.”
“그렇지.”
* * *
봉사길 과장은 이민호를 데리고 환자를 2명을 더 진단한 뒤에야 자신이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했는지 깨달았다.
정말 믿기지 않는 실력의 인턴이었다.
‘장태주 교수가 왜 그리 오버하는지 알겠군.’
처음 환자의 대장균에 의한 요로감염을 진단해 냈을 때는 비슷한 사례를 많이 본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두 번째 환자는 뇌졸중으로 보였는데, 자신조차 긴가민가한 부분을 이민호는 검사 결과와 일치하는 예상 소견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세 번째 환자의 폐혈전 색전증까지 검사 결과와 일치하니 이건 가르치기는커녕 이대로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장태주 교수가 탐내는 인재를 자신이 가로채겠다는 마음 정도였는데, 이제는 꼭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다음번 환자는 이민호 선생이 단독으로 진찰을 해 봐.”
“네?”
순간 이민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레지던트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다, 단독으로요?”
이민호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자, 봉사길 과장은 레지던트들의 얼굴을 쭉 훑어본 후 말을 이었다.
“단독으로 진찰해서 병을 제대로 진단하고 조치까지 마음에 드는 수준으로 한다면, 앞으로 이민호 선생이 단독으로 검진할 수 있는 재량을 주지. 아, 물론 조치를 취하기 전 치프나 펠로우에게 보고해서 허락은 맡아야 하고.”
“감사합니다.”
“실력이 출중하니 기회를 부여하는 거야. 다른 선생들도 단독진찰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내게 테스트를 받도록 해.”
봉사길 과장의 말을 들은 레지던트들은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이민호가 기회를 얻은 것이 부럽긴 하지만, 봉사길 과장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그렇게 진단을 잘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 구급차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대원이 스트레처카에 환자를 싣고 들어왔다.
이민호가 서둘러 다가가자 구급대원이 환자의 상태를 보고했다.
“58세 김미선 환자입니다.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가 갑자기 좌측 복부의 통증을 느꼈다고 합니다. 30분 정도를 참았는데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저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쪽 베드로 옮기게 좀 도와주세요.”
이민호는 간호보조사의 도움을 받아 환자를 베드로 옮긴 다음 펜라이트를 꺼내 환자의 동공을 비췄다.
“송 선생님 환자 바이탈 좀 체크해 주세요.”
“네.”
“동공 4/4, 대광 반사 정상. 환자분 바이탈을 체크하는 동안은 잠시 가만히 계셔야 합니다.”
“네.”
잠시 시간이 지나자 간호사가 바이탈 체크를 끝내고 수치를 알려 줬다.
“이민호 선생님, 환자 혈압 90/47, 맥박 100회, 호흡 24, SpO2 98, 체온 38.5입니다.”
낮은 혈압에 빠른 맥박 가쁜 호흡 그리고 발열. 전형적인 패혈증 증상이었다.
아까 처음 봉사길 과장이 봤던 환자와 비슷한 케이스지만 증상은 훨씬 위중해 보였다.
이민호는 바이탈을 차트에 기록하며 질문을 던졌다.
“환자분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김미선이요.”
“환자분께서 직접 구급대에 전화하신 거예요?”
“네. 선생님 왼쪽 배가 너무 아파요.”
“잠깐 눌러 볼게요.”
이민호가 환자의 좌측 배를 지그시 누르자 환자의 입에서 ‘악’소리가 터졌다.
‘바이탈 싸인을 봐서는 패혈증인데 복부 통증을 동반했으니, 요관 결석도 있겠군!’
“환자분 잠시 앉아 보세요.”
“네.”
이민호는 환자가 복통을 호소했던 좌측 등과 허리 사이에 왼손을 대고 오른손으로 왼손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려 봤다.
“아악! 의사선생님 아파요!”
아픈 부위가 담관 쪽이 아닌 요관 결석을 시사하고 있었다.
“네, 이제 다시 누우셔도 됩니다. 송 선생님, 제가 정맥라인 잡을 테니 노말셀라인(N/S 수액) 1리터 달아 주고 혈액배양 2세트 의뢰해 주세요.”
“네.”
“소변배양검사도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환자분 혹시 드시는 약이 있으세요?”
이민호가 왼팔에 정맥라인을 잡으며 질문을 하자 환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제가 류마티스 관절염이 있어 약을 먹고 있어요.”
“아,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계시군요. 다른 약은요?”
“다른 약은 없어요.”
이민호가 정맥라인을 잡아 채혈하고 간호사가 수액을 다는 동안 뒤쪽에서 보고 있던 봉사길 과장이 다가왔다.
원래는 이민호에게 온전히 진료를 맡기려고 했지만, 환자가 많이 급해 보여 개입을 한 것이다.
“아까 처음 왔던 환자와 증례가 비슷한 것 같군.”
“네, 바이탈은 비슷한데 좌복부 통증을 동반한 요관 결석도 있는 것 같습니다. 소변 채취 끝나면 복부 초음파 후 CT까지 찍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간호사가 수액을 라인에 연결한 후 환자를 화장실로 데려가자 봉사길 과장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요관 결석이면 소변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는데?”
“아! 저도 그것 때문에 수액을 급하게 달긴 했는데, 만약 시도해 보고 안 되면 혈액 가스 검사하고 복부 초음파를 할 생각입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빈 종이컵을 들고 돌아오더니 보고했다.
“선생님, 환자의 소변을 채취할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복부 초음파 좀 준비해 주세요.”
“네.”
잠시 후 환자가 돌아오자 환자의 복부에 젤을 바른 후 초음파로 좌측 신장과 우측 신장을 비춰 봤다.
우측 신장은 정상인데 좌측 신장이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결석으로 인해 신장에서 방광으로 가는 길이 막혀 신우와 신배가 팽창한 것이다.
수신증이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혈액 가스 결과지를 가져왔다.
“과장님, 혈액 가스에서 lactate(젖산치)가 9mmol/L로 나왔습니다.”
순간 이민호보다 봉사길 과장의 눈이 더 커졌다.
젖산치가 4mmol/L 이상이면 패혈증으로 보는데 두 배 이상이니 위험한 중증 패혈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