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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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은 무균실이라 공기 중에 균이 없지만, 응급실은 공기 중에 균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수술방이 열리려면 삼십 분은 더 있어야 하는데 그 전에 이 환자 숨넘어가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개복하는 건 아니지! 헛소리하지 말고 어서 교수님이나 불러.”
“손 들어갈 정도만 열 거예요. 출혈 부위만 잡을 테니까 잠깐 옆으로 비켜 봐요.”
“야, 이 미친놈아. 아무리 최소한이라고 해도 ER에서 오픈은 안 돼. 그리고 아직 이 환자 보호자에게 수술 동의서도 받지 않았잖아.”
“형님, 이 환자 숨넘어간다니까요?”
“이민호 선생, 개복하면 출혈 잡을 수 있겠어?”
그때 뒤쪽에서 장태주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흉부외과와 콜라보레이션 스케줄을 조율하고 이제 온 듯했다.
“네, 교수님. 해 봐야 알겠지만,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다.”
“짐작 가는 곳이 있다고?”
장태주 교수는 마치 바람 들어간 복어의 배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는 환자의 배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 상태는 자신도 환자의 배 속 어디에서 동맥이 파열됐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건 어떤 경험 많은 의사라도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CT 찍으며 수술방이 열리길 기다리다간 이민호의 말처럼 정말 환자의 숨이 넘어가게 생겼다.
환자를 살리려면 모험을 해야 하는 상황.
“짐작 가는 곳이 어딘데?”
“환부의 위치와 벌어진 각도로 봐서 superior mesenteric arterial(위창자 간막 동맥)이나 inferior mesenteric arterial(아래창자 간막 동맥)이 파열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이민호의 말을 들은 장태주 교수의 표정이 심각하게 바뀌었다.
위창자 간막 동맥이나 아래창자 간막 동맥은 대동맥에서 나오는 굵은 줄기 동맥으로, 파열됐다면 출혈 양이 엄청난 곳이다.
“superior mesenteric arterial이나 inferior mesenteric arterial이 파열됐다면 duodenum(샘창자)나 jejunum(빈창자)도 파열됐을 가능성이 높겠군!”
창자가 파열됐다면 안에 있는 내용물이 흘러나와 피를 오염시키기에 패혈증이 발생한다. 옆에 온몸이 피투성이인 환자보다 이 환자가 훨씬 위급한 것이다.
“duodenum와 jejunum뿐만 아니라 kidney(콩팥)이나 ureter(요관) 파열까지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야?”
이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태주 교수는 이민호가 출혈 부위를 귀신처럼 잘 찾아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간호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선생님, 메스 좀 가져다 주세요.”
“네.”
“교, 교수님!”
장태주 교수가 간호사에게 메스를 요청하자 출혈 부위를 누르고 있던 신현수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태주 교수는 신현수를 무시하고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구급대원님, 이 환자의 보호자와 연락 됐습니까?”
“네, 병원으로 호송하는 중에 연락은 했습니다.”
“그럼 연락처 좀 주십시오. 응급이라 전화로 먼저 수술 동의를 받아야겠습니다.”
“아, 네. 여기 있습니다.”
구급대원이 연락처를 건네주자 장태주 교수가 직접 연락을 했다.
“여보세요. 여기 S대학 병원인데요. 공지혁 씨 보호자 되십니까? 지금 공지혁 씨의 상태가 위급해서…….”
장태주 교수는 통화 내용을 녹음하며 현재 수술실이 없어 급하게 응급실에서라도 개복을 해야 한다는 설명까지 하고 수술 동의를 받았다.
장태주 교수가 통화를 하는 동안 이민호는 수술 장갑을 끼고 생리식염수를 환자의 복부에 들이부어 피를 씻어 내고 있었다.
“보호자에게 수술 동의 받았…….”
장태주 교수는 말을 하다말고 이미 메스를 들고 환부를 쭉 가르고 있는 이민호를 봤다.
“수술 동의했다는 말을 듣고 움직인 겁니다.”
메스를 깊숙이 넣어 환부의 안쪽까지 가른 이민호는 지체하지 않고 환부로 손을 집어넣었다.
“미, 미친! 야! 정말 이렇게 해서 출혈 혈관을 찾을 수 있겠어?”
이민호가 환자의 배 속에 손을 넣은 채 눈을 감고 내장을 더듬고 있는 듯하자 신현수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민호는 대답하지 않고 오직 손끝의 촉감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이쪽 줄기가 샘창자고 이어진 오른쪽이 빈창자. 위쪽 지라, 콩팥은 무사하다.’
장기를 지나 연결되어 있는 혈관을 더듬다 보니 뚝 끊어져 있는 혈관이 느껴졌다.
‘찾았다! 위창자간막 동맥과 정맥이 같이 파열됐구나. 요관도 파열됐고. 다행히 아래창자간막 동맥은…… 괜찮은가?’
이민호는 대동맥에서 나온 줄기 쪽 위창자간막 동맥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 위창자간막 정맥은 중지와 약지 사이에 끼워 피가 더 이상 새어 나오지 않게 했다.
정맥은 손가락 사이에 끼인 순간 피가 멈춘 것이 느껴졌지만 동맥은 엄지와 검지로 누르고 있음에도 압력이 세기 때문인지 조금씩 피가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한 손을 더 넣을 수 있다면 클리핑을 해서 출혈을 완전히 막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 당장은 손가락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 heart rate(심박수) 좀 살펴봐 주십시오.”
“보고 있어.”
띠. 띠. 띠…….
130에 가까워졌던 심박 수치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심박수가 120을 지나 110대로 내려가자 장태주 교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출혈 부위가 잡혔군.”
이제 계속 잡고만 있으면 수술실이 열릴 때까지 환자가 버틸 수 있다.
그때 신희철과 홍아남이 응급실로 들어왔다.
“신희철 선생.”
장태주 교수가 앞서 들어오는 신희철을 부르자 신희철이 빠르게 다가오며 대답했다.
“네, 교수님.”
“신희철 선생과 홍아남 선생이 CS와 콜라보레이션 해서 임성훈 환자 수술하도록 해.”
“네? 저희가요? CS와 콜라보레이션은 교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는데, 이쪽 환자가 더 심각해.”
신희철과 홍아남은 공지혁 환자의 복부에 손을 집어넣고 있는 이민호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홍아남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민호 선생, 지금 출혈 부위를 잡고 있는 거야?”
“네.”
“허어! 감각이 미쳤네. 사람의 배 속을 투시해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두 사람은 이민호의 손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교수님, 마취과에서 수술방 나왔다는 연락 왔습니다.”
“그래, 그럼 공지혁 환자부터 옮겨.”
“네.”
신현수가 스트레처카를 밀자 이민호는 엉덩이를 슬쩍 스트레처카 한쪽에 걸터앉았다. 수술실에 도착해 환자의 배를 개복할 때까지 손을 뺄 수 없기에 조금 민망한 자세로 스트레처카를 타고 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수술실에 도착하고 신현수가 환자를 수술할 수 있게 포지션을 잡는 동안 장태주 교수가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후 손을 씻고 들어왔다. 잠시 뒤 마취과 의사의 신호와 함께 장태주 교수가 메스로 환자의 복부를 갈랐다.
빠르게 복부를 가르고 리트렉트로 환부를 벌리자 핏물에 잠겨 있는 이민호의 손목이 보였다.
“석션! 출력 최대로 높여 주세요.”
“네.”
흡입기의 출력을 높였음에도 복부에 고여 있는 피의 양이 상당했다. 간호사는 재빨리 거즈를 뭉텅이로 집어넣어 핏물을 흡수시켰고, 그제야 장기가 윤곽을 드러냈다.
“이리게이션 더블.”
생리식염수가 들이부어지고, 피와 혈전들이 흡입되자 이민호가 잡고 있는 위창자 간막 동맥과 정맥이 드러났다. 장태주 교수는 이민호의 손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손끝 감각만으로 저 혈관들을 찾아낸 거지?’
신현수도 이민호를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체를 보는 듯한 눈으로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클립!”
“클립.”
장태주 교수가 출혈 부위를 클리핑하자 이민호는 비로소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고생했어. 이 환자는 이민호 선생이 살린 거나 다름없어.”
“운이 좋았습니다.”
이민호는 혈관을 누르고 있던 손이 저려 생리식염수로 씻으며 쥐락펴락했다.
“운 같은 소리 한다. 나가서 손이나 씻고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들어와.”
“네.”
이민호가 수술실 밖으로 나가자 장태주 교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시 후 이민호가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들어오자 간호사가 헤드라이트와 장갑을 끼워 줬다.
“내가 혈관 문합하는 동안 이민호 선생이 duodenum(샘창자)와 jejunum(빈창자) 봉합하도록 해.”
“네. 현수 형, duodenum 위로 이리게이션 한 번 더 부어 주세요.”
“응.”
생리식염수로 샘창자를 씻어 내고 흡입기로 빨아들이자 창자의 관통당한 부위가 좀 더 선명해졌다.
“니들홀더.”
간호사가 건넨 니들홀더를 받은 이민호는 포셉으로 샘창자를 잡고 신중하고 빠르게 봉합을 하기 시작했다.
신현수는 이민호가 봉합하는 것을 보며 또 한 번 혀를 내둘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수님이 그래도 좀 나았던 거 같았는데…… 솔직히 이젠 민호가 더 나은 것 같잖아.’
* * *
“현수 형, 컵라면 다 익었으니 얼른 와서 드세요.”
“고맙다, 괴물아.”
이민호가 부르자 소금에 절인 파김치처럼 의자에 축 늘어져 있던 신현수가 일어나 비틀거리며 다가와 철퍼덕 앉았다.
후루루룩…….
이민호는 컵라면을 먹으며 삼각김밥을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컵라면을 휘휘 저어 한 젓가락 먹던 신현수는 힐끔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곤 다시 이민호를 바라봤다.
벽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새벽 4시 50분.
어제 오후부터 수술을 하기 시작해 20분 전인 새벽 4시 30분까지 무려 네 건의 수술을 했다.
신현수는 씹던 면발을 삼킨 후 입을 열었다.
“넌 어떻게 그렇게 쌩쌩할 수가 있는 거냐?”
자신은 어시스트를 했지만, 이민호는 장태주 교수와 손을 맞춰 집도를 했다. 그것도 집도의 자리에서 집도를 한 것이 아니라 퍼스트 어시스트 자리에서 집도의 역할을 했기에 훨씬 힘들 수밖에 없다.
“시골 가서 좋은 거 많이 먹었더니 체력이 좋아졌나 봐요.”
“좋은 거? 뭘 먹었는데.”
“장어랑 회랑 낙지, 굴 같은 해산물 위주로 먹었어요. 고향이 바닷가라 가면 거의 그런 것밖에 안 먹어요.”
“젠장! 몸에 좋은 건 다 먹고 왔구나. 그러니 그리 힘이 펄펄 나지.”
“형, 라면 불어요.”
“젠장, 누구는 몸보신을 하고 왔는데…… 갑자기 라면 먹기 싫어진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홍아남과 신희철과 변희웅이 들어왔다.
“뭐야! 라면 먹고 있었냐?”
“네. 신 선생님도 드실래요?”
“아니, 나는 아까 2시쯤에 먹었어.”
“아, 그래요? 홍 선생님은…….”
“신 선생님과 같이 먹었으니 우린 신경 쓰지 말고 먹어.”
“네.”
세 사람은 의자에 앉자마자 조금 전 신현수가 늘어졌던 것과 비슷한 자세로 늘어졌다.
“아하! 이제 더는 환자 안 왔으면 좋겠다.”
“그러게요.”
부르르르…….
그때 홍아남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콜폰이 진동하는 줄 알고 긴장했던 사람들을 홍아남이 개인 전화라고 안도시켰다. 홍아남은 핸드폰에 뜬 발신자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며 전화를 받았다.
“네, 심 원장님. 아, 이번 명절 연휴는 병원을 옮기는 바람에 해외의료선교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여름휴가 때는 당연히 나가야죠. 그런데 무슨 일로 이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