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 영웅 소집(5)
지금 당장 영웅들을 소집해야 한다는 서준의 말.
리스베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묻고 싶은 말은 많았다.
정확히는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이 많았다.
리스베리는 시선을 들어 서준을 바라봤다.
서준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리스베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불가하다.”
리스베리는 서준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런데 이런 답을 예상이라도 했던 걸까.
서준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예정된 일정을 갑자기 당길 수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미국에 도착하지 않은 영웅들이 있었다.
2일 뒤로 예정되어있던 일정을 갑자기 변경한다는 것은 그 영웅들을 싸그리 무시하는 행동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베세르크의 심장.
그리고 그 심장을 취한 리치.
문제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만일 서준의 말대로 일정을 당겼다 치자.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리스베리의 몫이었다.
“영웅들의 반발 때문입니까?”
“그것도 문제지만···.”
“행여 반발하는 영웅이 있다면 제게 말씀해주시죠.”
“······”
리스베리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지금 서준이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반발하는 영웅들을 찍어 눌러주겠다는 뜻이었다.
뭘로 찍어 누를지는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나 또한 포함한다는 뜻이겠지.’
반발하는 영웅.
그 범주에는 방금 ‘불가하다’ 라고 말을 내뱉은 리스베리를 포함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세상 어느 누가 대격변의 영웅들을 상대로 저런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저급한 농담 취급도 받지 못할 이야기였다.
하지만 리스베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스피어 마스터, 콜린의 개박살.
지금 서준의 행동이 무례하고 오만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만일 서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단순히 미국 하나만 걸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제 2의 대격변.
아니, 그 이상을 바라봐야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영웅들을 소집해야함은 옳았다.
그러나 단순히 그럴 수 없는 이유에는 영웅들의 반발만 있지 않았다.
이건 일개 프로 헌터가 전세계 대격변의 영웅들은 물론이고, 미국 전체가 움직이는 꼴이었다.
명분도 명분이건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미국은 세계적인 프로 헌터 강대국.
명령을 내리는 것은, 소집을 내리는 것은 미국이어야만 한다.
미국은 그 누구의 말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미국 스스로가 움직일 뿐.
그러니 서준의 말에 움직일 수는 없─.
그러다 문득.
리스베리는 저도 모르게 피식, 실소가 흘러 나왔다.
지금 이 상황에서 자존심을 따지고 앉아있다니.
‘나이를 먹은 건지, 이 자리에 오래 있던 건지. 나도 하얀 집의 양복쟁이가 다 되었군.’
리스베리는 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루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통화음이 이어지고 루카스가 전화를 받았다.
-네. 국장님. 상황이 어떻게─.
“지금 당장 영웅들을 소집해.”
-네, 네?
뜬금없는 리스베리의 말에 루카스가 크게 당황하며 반문했다.
분명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리스베리는 설명하지 않았다.
애초에 설명하고 싶어도 리스베리 또한 완벽히 알지 못했으니까.
리스베리는 서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은 2시간 뒤. 우리도 지금 출발하지.”
-자, 잠깐만요!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급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영웅들이 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각하께서···!
“리처드가 지랄하면 내가 시켰다고해. 그래도 지랄하면 그냥 무시하고. 그 이후의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그렇게 진행해.”
-하, 하지만 갑자기 이렇게─!
툭.
리스베리는 그대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서준은 그런 리스베리의 모습에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무리한 요구였는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리스베리는 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솔직히 무리한 요구는 맞았다.
일이 잘못된다면 국장직을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리스베리가 일을 강행한 이유는 별 다른데 있지 않았다.
이탈리아와 영국을 구원한 영웅.
콜린이 쪽도 못쓰고 당해버린 실력자.
그리고 지금 보이는 풍경.
이 정도의 존재가 뭘 얻을 게 있다고 거짓말을 할까.
무엇보다 리스베리의 오랜 감각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서준이 저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오는 이유는 반드시 있다.
후우우, 내뱉은 담배 연기와 함께 리스베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히려 우리가 더 감사해야할 것 같은데.”
#
영웅 소집의 일정이 변경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갑작스러운 결정에 미국 언론은 의아함을 표출했다.
미 정치권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자아냈다.
이번 영웅 소집은 전세계의 영웅들이 모이는 이례적인 행사.
이를 이용해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소집은 그 계획이 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영웅들의 불만이 가장 거세었다.
특히나 아직 미국에 도착하지 않은 영웅들의 불만이 압도적이었다.
이에 대해 리스베리는 이렇게 답했다.
‘좀 일찍일찍 다니지. 그러게 누가 늦게 오래?’
불만은 곧 분노로 변질되었다.
미국에서 소집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렇다치자.
하지만 이들은 같은 대격변의 영웅이 아닌가.
이런 식의 대우는 아니었다.
분노는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어진 리스베리의 한 마디에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꼬우면 김서준한테 가서 따지든가.’
하늘을 치솟았던 목소리들이 싹, 사라졌다.
영웅들의 분노는 그 어떠한 반향도 없이 사그라 들었다.
이유는 별 다른데 있지 않았다.
김서준.
단 세 글자였다.
자존심을 챙기기엔 스피어 마스터, 콜린.
그가 서준에게 시비걸었다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들어버렸다.
동시에 목숨값으로 50조가 지출되었다는 사실 또한 알아버렸다.
자신의 목숨에 조국이 50조로 목숨값을 지불할 여유가 있던가?
영웅들은 입을 꾹,다물었다.
하지만 입을 다물었다는 것이 불만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되려 불만이 외부로 표출되지 못하니 내부에서 썩어 곪아갔다.
“하! 사람들이 치켜세우니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군.”
“제 멋대로인 놈팽이 주제에.”
영웅들 사이에서 서준에 대한 시선과 인식은 악화되어갔다.
영웅 소집은 이런 상황 속에서 시작되었다.
영웅 소집은 생각보다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본래는 백악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정이 갑작스레 변경되는 바람에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그렇게 모인 영웅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끽해야 100여명 정도 될까.
물론 원래는 이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아직 오지 못한 대격변의 영웅.
이탈리아의 안드레아처럼 사고로 사망한 대격변의 영웅.
콜린처럼 모종의 일이 있어 오지 못한 대격변의 영웅.
영성과 마성 그리고 의성처럼 오지 않은 대격변의 영웅.
이들을 포함시키면 더 많았다.
그럼에도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인간의 정점.
대격변의 영웅이라는 경지는 그만큼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다.
“보시는 영상은 뒤틀림으로 추정되는 영상들입니다.”
거대한 스크린 앞으로 루카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중앙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영상이 재생되었다.
그건 서준이 이미 봤던 영상들이었다.
뒤틀림의 폭주로 인한 10성 이상의 몬스터 출현.
베세르크로 추정되는 괴물의 등장.
중간중간 서준이 보지 못했던 영상도 있었다.
하지만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어···.”
“어찌 이런···.”
영웅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영상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영상 마지막에 보인 괴물.
그건 베세르크와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전세계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뒤틀림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짐작하시는 것처럼···.”
영상이 끝이 나고 루카스가 부연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어떤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루카스의 설명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 2의 대격변.
알 수 없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그래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웅들의 시선이 일제히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짙은 썬글라스를 쓴 한 노인이 앉아있었다.
다름 아닌 미국을 대표하는 대격변의 영웅 중 한 명인 알렉이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알렉은 살짝 언짢은 표정으로 재차 입을 열었다.
“사안이 심각한 것은 알겠어. 우리들을 이렇게 불러 모은 것 또한 인정해. 그런데···.”
알렉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약 50여명에 달하는 대격변의 영웅들.
본인을 포함해 각기 나라에서 최고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알렉은 툭, 말을 내뱉었다.
“이렇게 다짜고짜 끌고 올 이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그 말과 동시에 영웅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윽고 알렉에 향했던 시선들이 다시금 루카스에게로 향했다.
“그, 그것이···.”
루카스는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격변의 영웅이 한 두명도 아니고 무려 100이었다.
인간의 정점이라 불리는 이들.
세상 어떤 이가 그 압박감을 견딜 수 있을까.
루카스의 볼 위로 주륵,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건 제가 답해드리겠습니다.”
누군가 루카스가 있는 단상으로 터벅, 올라왔다.
검은 머리의 동양인 헌터.
다름 아닌 서준이었다.
수많은 영웅들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모이는 시선들에 깃든 감정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루카스를 향했던 압박감이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서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압박에도 아무렇지 않다고?’
‘콜린이 개박살 난 이유가 있었군.’
영웅들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서준은 그런 영웅들을 훑어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짚고 넘어갈 것부터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저와 팀원들이 영국에서 대적한 것은 베세르크가 확실합니다. 그리고 소멸한 것까지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영웅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은 아직도 베세르크 패퇴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세르크는 그 어떤 영상이나 기록으로도 남아있지 않다.
오직 영웅들만이 그 존재를 기억할 뿐.
그렇기에 서준이 어떻게 베세르크를 확신하냐는 문제는 남아있었다.
영국의 영웅들이 증명해주면 줗으련만.
엘리스와 레바논은 이제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럼 왜 영상에서 본 뒤틀림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나?”
누군가 그 의문을 돌려서 물었다.
다름 아닌 알렉이었다.
서준은 고개를 돌려 알렉을 바라봤다.
한시가 급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리치는 베세르크의 힘을 흡수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영웅 소집도 일종의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서준이 영웅 소집을 고집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한시가 급할수록 상황 설명은 반드시 필요했으니까.
왜 한시가 급한지를 알아야 그에 맞춰 영웅들이 급하게 움직인다.
서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군가 베세르크의 소멸 직전. 그 심장을 추출했습니다.”
드래곤 하트는 드래곤,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힘의 결정체.
베세르크는 소멸했으나 그 힘은 세상에 남았다.
그로 인해 뒤틀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동시에 이곳, 미국에 그 베세르크의 심장을 품고 있는 리치가 있다.
“그 무슨 말도 안되는···.”
“헛소리 하지 마라.”
서준의 설명이 끝나자 영웅들이 저마다 말도 안된다며 소리쳤다.
솔직히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다.
베세르크는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끔찍한 괴물이었다.
서준이 베세르크를 패퇴시켰다는 말도 믿을 수 없거늘.
베세르크의 심장을 누군가 추출했다?
게다가 그 심장을 품은 리치가 이곳에 있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우리들을 끌어모은 건가? 같이 그 놈을 찾아달라고?”
이어진 알렉의 물음에 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거절한다면?”
뭐, 예상은 했었다.
이들은 어중이 떠중이들이 아니다.
무려 인간의 정점이라 불리는 대격변의 영웅들.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움직일 존재들이 아니었다.
아무리 콜린이 개박살이 났다고 한들.
하라는 대로 움직일 이들이 아니었다.
“베세르크의 끔찍함을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네 말이 말도 안된다는···.”
흠칫!
알렉은 말을 차마 맺을 수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기세가 서준의 전신으로 터져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것은 비단 알렉 뿐만이 아니었다.
‘이, 이 무슨···?’
‘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소집장의 분위기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사이로 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지 못한다면 어차피 다 죽습니다. 그러니···.”
그 뒷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