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26
26화 – 검성의 방문(3)
서윤은 지금 굉장히 그리고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할아버지, 검성의 존재였다.
서윤은 검성이 언젠가 찾아올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 서윤은 먼저 서준의 존재를 밝히고 담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번이 처음이었다. 할아버지, 검성에게 서윤이 먼저 다가간 것은.
하지만 이렇게 검성이 한 발 먼저 아카데미에 찾아왔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더군다나 서준을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을 줄은…
“서준씨! 괜찮으세요?”
그렇게 둘의 싸움을 가까스로 말린 서윤이 서준에게 다가갔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검성이 일방적으로 패던 것은 뜯어 말린 것이었지만 아무튼.
서윤이 걱정스럽게 서준의 몸 상태를 살피자 살짝 비친 서준의 살갗은 멍 투성이였다.
다행히 몸은 무리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뼈가 부러지거나 그러진 않아 보였다.
그나마 검성이 사정을 둔 모양.
“크게 이상은 없습니다만··· 으윽! 아픈 건 어쩔 수 없네요.”
그 사실을 증명하듯 서준이 터덜터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윤은 미안한 마음에 입을 꾹 다물었고 그런 서윤을 보며 서준이 물었다.
“다짜고짜 왜 저러시는 겁니까?”
“정말 죄송해요. 제가 다 설명 드릴게요. 정말, 정말 죄송해요.”
서윤이 지금 서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 이었다.
그리고 그런 서윤의 모습이 탐탁치 않았던 걸까.
“사내 놈이 그 정도 가지고 엄살은.”
검성이 언짢은 표정으로 툭,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서준도 툭, 말을 내뱉었다.
“검성님한테 맞는데 사내랑 계집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똑같이 개패듯이 패실 거면서.”
“뭐라? 이 놈이···!”
“어어? 또 때리시려고!”
저릿한 살기를 흩뿌리며 다가오는 검성의 모습에 서준은 황급히 서윤의 뒤로 몸을 숨겼다.
아무리 그래도 손녀가 보는 앞에서 또 그러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윤이 오자마자 급격하게 손속이 약해지는 검성을 서준은 느낄 수 있었으니까.
“네놈…!”
역시나 소리만 지를 뿐,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 검성.
하지만 그걸 모르는 서윤은 그런 서준과 검성 사이에 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
서윤은 눈에 띄게 초조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사실 서윤이 이렇게까지 당황한 이유는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였지만 서준의 몫이 가장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서윤 자신에게는 할아버지였지만, 남들에게는 검성(劍星)이었다.
헌터들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영웅시 되는 존재.
서윤이 지난 살아온 세월 동안 보아온 할아버지의 모습은 존경받고 우상시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
“맞긴 맞더라도 그 이유라도 좀 알고 맞으면 안됩니까?”
맹세코 할아버지에게 저렇게 대드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물론 서준의 말처럼 검성이라 하더라도 다짜고짜 사람을 때리는 건 상당히 무례한 일이었다.
그러나 서윤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서윤에게 있어 검성은 할아버지면서 동시에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은 어디까지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일.
서윤은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의 할아버지, 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만하세요. 할아버지.”
들려오는 서윤의 말에도 검성은 기세를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도 물러서지 않는 서윤의 모습에 검성은 가만히 서윤을 들여다 봤다.
그리고는 쯧, 혀를 한 번 차보이고는 흩뿌렸던 기세를 거두었다.
서윤은 그런 검성을 보며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뒤돌아 서준에게 말했다.
“서준씨. 일단 병원부터 가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보이기엔 이래도 단순 타박상이거든요.”
“죄송해요. 서준씨. 정말 죄송해요.”
“아뇨. 갑자기 서윤씨가 왜 사과를···”
“제가, 제가 나중에 다 말씀드릴게요. 정말 죄송해요.”
서준의 괜찮다는 말에도 서윤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서준에게 사과를 했다.
처음 보는 생소한 서윤의 모습.
서준은 가만히 서윤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서야 서준은 어딘가 침울한 서윤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서준은 살짝 시선을 돌려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검성을 바라봤다.
서윤과는 달리 무덤덤한 눈빛.
서준은 지금 자신이 무얼 해야만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솔직히 서준은 검성의 행동이 순전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서윤이 오면 그 오해를 풀고 어느 정도 사과를 받을 생각이기도 했었다.
아무리 검성이라도 서준에게 한 행동은 무례한 것이 사실이었고, 검성 또한 이름값이 있었기에 단순 사과로만 넘어가지는 않을 터.
하지만 지금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건 나중에 꺼내야할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검사는 한 번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지금 그럼 바로 병원에 가보겠습니다.”
“네… 치료비는 걱정마시고 연락주세요. 정말 죄송해요.”
다시 한 번 고개를 푹 숙이는 서윤의 모습에 서준은 주저없이 아카데미를 나섰다.
검성은 서준이 아카데미를 나설 동안 아무런 행동도, 말도 하지 않았다.
서윤 또한 별 다른 행동도, 말도 하지 않았다.
서준이 시야에서 사라지고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둘은 입을 열지 않았다.
적막한 분위기.
“수상한 놈이다. 가까이하지 말거라.”
그 적막한 분위기를 깬 것은 다름 아닌 검성이었다.
사실 검성은 서준이 그렇게 못 되먹은 놈이 아니라는 것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대저 나이와 함께 이 정도의 경지에 올라와 보면 사람한테서 나는 개냄새 정도는 구별할 수 있었다.
흔히 깜냥이 보인다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방금 봐온 서준은 놈팽이처럼 보일지언정 풍기는 기세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서윤을 대하는 서준의 태도에도 검성은 조금 눈을 감아주었다.
그럼에도 검성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숨기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 놈이다.
특히나 검성인 자신조차 파악하기 힘든 것들은 드물었으며, 그런 놈이 서윤과 가까이 있는 것을 검성은 용납할 수 없었다.
“…수상한 사람이 아니예요.”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느냐.”
듣기 싫다는 듯 들려오는 검성의 말에 서윤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네가 뭘 아느냐. 너는 아무것도 모르니 이 할애비의 말을 따라라.
이것이 서윤이 지난 31년 간, 검성에게 듣던 말이었다.
서윤의 의견은 언제나 묵살되었다.
그리고 서윤 또한 그것에 익숙해져 할아버지에게 좀처럼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 않았다.
서윤에게 있어 할아버지는 아니, 검성은 너무도 두려운 존재였고 또 항상 옳은 말만 하는 존재였으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영웅시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러니 내일 당장 정리하거라. 정 뭐하면 이 할애비가···”
“싫어요.”
서윤은 이번만큼은 그런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사실 할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간 서윤이 데려온 여러 수강생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찾아왔었다.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수강생들을 윽박질렀다.
그때마다 수강생들은 버티지 못하고 떠나갔고, 행여 버티는 이들은 할아버지의 충고에 따라 묵묵히 떠나갔다.
그리고 서윤은 떠나가는 그들을 붙잡지 못했다.
그녀 또한 할어버지가 왜 그러는지, 사실 그들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뭐라? 서윤이 네가 지금···”
“싫어요!”
하지만 서준은 아니었다. 서준만큼은 아니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서윤은 지금 이 심정을 뭐라 설명해야할지 알지 못했다.
그저 서준이라는 사람을 떠나보내기가 싫었다.
물론 서준과 만나온 시간은 짧았다. 한 달도 되지 않은 시간.
이렇다 할 추억을 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하지만 서준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서준을 봤을 때만 해도 정말 미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는 행동들이 특이해도 너무 특이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서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고 무엇보다 며칠 전 있었던 아카데미 경합.
서윤은 문득.
서준이라는 사람과 조금 더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서윤은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까지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행여 서윤이 그의 발목을 붙잡는 날이 온다면 그땐 주저없이 보내줄 의향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싫어요! 싫다고요! 제가 왜 할아버지 말을 따라야하죠? 여긴 제 아카데미지 할아버지 아카데미가 아니란 말이에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인해 떠나보내기는 싫다.
“그렇게 떼를 쓸 일이 아니다! 서윤이 너는 잘 모르겠지만 저 놈은···”
“네! 몰라요!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요! 모르니까 알고 싶은 거예요! 제가 대체 뭘 모르는지!”
서윤은 계속해서 소리쳤다.
“언제까지 할아버지 그늘 아래서 살 수는 없어요!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지금도··· 지금도···!”
그러다 퍼뜩.
“핫!”
서윤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대저 지금 누구에게 소리치고 있는지 서윤은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소리쳐서 죄송해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할아버지 말에 따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서윤은 말을 번복하지 않았고 저 말을 남긴 채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
검성은 아무말 없이 그런 서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만 봤다.
쫓아 가려면야 지금 당장이라도 쫓아갈 수 있었다. 얼마나 멀어져 있든 자신의 감각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검성은 그러지 않았다.
검성은 가만히 시선을 내려 방금 서윤이 했던 말을 돌이켜보았다.
‘싫어요! 싫다고요! 제가 왜 할아버지 말을 따라야하죠? 여긴 제 아카데미지 할아버지 아카데미가 아니란 말이에요!’
처음이었다.
서윤이 이렇게까지 소리치며 자신의 뜻을 내비쳤던 것은.
검성은 서윤이 헌터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교육자로서의 평범한 삶을 원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묵살했던 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갑작스러운 던전 브레이크 사고로 떠난 아들 내외와 고아가 된 서윤을 보며 다짐했던 생각 때문이었다.
서윤이 최소한 자기 몸 하나 정도는 지킬 힘을 갖고는 있어야 한다고.
그렇기에 검성은 서윤을 엄격히 가르쳤다.
서윤이 썩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았음에도 검성은 강요했고, 서윤은 그래도 검성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깊어지던 감정의 골은 계속해서 깊어져 갔지만 검성은 무시했다.
그래서 몇 년전.
서윤이 자신에게 찾아와 아카데미 강사가 되고 싶다 말했을 때도 검성은 끝까지 반대를 했었다.
그러나 주변의 만류와 그간 무시했던 서윤의 고백에 결국 검성은 서윤을 놓아주었다.
그렇게 서윤은 헌터의 길을 접고 아카데미 강사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고 서윤은 그 사실에 못내 괴로워했다.
검성은 애써 방관했지만 하나 둘 씩 그런 서윤을 이용하려는 놈들이 생기기 시작.
검성은 그것마저 차마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결국 검성은 그럴 때마다 지금처럼 몸소 나섰고 그 시간이 어언 수 년.
“…”
검성은 서윤이 뛰쳐나간 문을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서준은 오늘도 어김없이 드림 아카데미로 향했다.
경합도 끝난 마당에 이제 서준이 해야할 일은 두 가지.
던전 레이드를 해서 돈을 벌던가, 초월자 강의를 듣던가였다.
어느 쪽이든 현재의 서준에게 필요한 일이었고 어느 쪽이든 일단 아카데미를 가야했기에 이제 서준의 하루 일과는 언제나 드림 아카데미에서 시작했다.
그렇게 드림 아카데미로 가면서 서준은 몸 상태를 한 번 점검했다.
다행히 어제 검성에게 맞은 상처들은 대부분 회복되어 지금은 별 이상이 없었다.
뭐, 애초에 타박상에 불과한 것들이었고 자연 각성자의 회복력과 더불어 부동심의 자연 치유력 향상까지 생각하면 당연한 일.
그래서 서준은 어제 병원에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 때문에 병원에 찾아온 서윤이 어디에 있냐며 걸려온 전화에 당황했지만, 그래도 뭐.
서준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어제 잠시 통화로나마 들었던 서윤의 사정을 되뇌였다.
‘그런 사정이 있었을 줄은…’
물론 서윤이 서준에게 모든 사정을 전부 말한 것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대강이나마 들은 사정으로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고, 그렇기에 서준은 서윤의 심정도, 그리고 검성이 왜 자신에게 그러했는지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하는 건 이해하는 거고, 검성이 서준에게 했던 행동이 무례한 건 무례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서준은 검성에게 어떤 의미로든 사과를 받을 생각이긴 했다.
그리고 그건 서윤이 아닌 검성이 해야할 몫.
‘뭐… 계속 무례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서준은 저 혼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검성과의 대련에서 강의 진행률이 상당히 올랐기 때문이었다.
멀린은 거의 시작하자마자 7%를 얻고 시작한 셈.
하나 의문인 것은 항우와 케이론의 강의 진행률은 오르지 않았는데, 석가모니 강의 진행률은 올랐다는 점이었지만 아무튼.
몇 대 맞아주고 얻은 대가치고는 상당히 수지맞는 장사였다.
어쨌거나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든 그것이 어떤 의미든.
그건 둘 사이에서 해결해야할 일이었다.
서준이 끼어든다면 그건 정말 쓸데없는 오지랖이자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서준은 그 문제에 대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는 어느새 도착한 아카데미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중앙에 버젓이 앉아 있는 검성의 모습과 함께.
“뭘 그렇게 멀뚱멀뚱 서있느냐.”
서준은 지워버렸던 그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