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 치닫는 운명(4)
멘토는 이리저리 방 안의 모든 공간을 헤집듯이 돌아다녔다.
두 손을 높이 치켜든 채,
만세를 부르듯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멘토.
사실 돌아다녔다기보다는 날뛰고 있다는 것이 바람직했다.
[뭐, 뭐냐 저건.] [무슨 일이라도 난 겐가?]그런 멘토의 발광하는 모습에 초월자 3인방 마저 토론을 멈추고는 이쪽을 바라봤다.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은 이리저리 날뛰는 멘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서준 또한 멘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 멘토님? 잠깐 진정을···.”
어째, 멘토는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지 발광을 멈추지 않았다.
저 발광을 어떻게 멈추게 해야하나··· 싶은 그때.
꿍!
갑자기 멘토가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그대로 철푸덕,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날뛰면서 눈이라도 감고 날뛴 것일까.
크게 부풀어오르는 이마를 보아하니, 정말로 세게 부딪힌 모양이었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멘토는 그때서야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멘토는 작은 손으로 이마를 연신 문질렀다.
서준은 작게 고개를 흔들어 보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찮으세요?”
그러자 갑자기 멘토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허리에 손을 척!
아주 당당한 얼굴로 소리쳤다.
“······”
그런 멘토의 모습에 서준은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주륵.
“이마에서 피가··· 나는데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멘토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다시 소리쳤다.
주륵.
“······”
서준은 다시 한 번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뭐, 그래도.
본인이 괜찮다니 크게 신경쓸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게 보이지 않기는 했지만···.
괜찮다는데 굳이 호들갑 떠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멘토의 모습이기도 했다.
어떻게 부딪히면 이마에서 피가 날 수 있는지는 의문이긴 했지만··· 크게 중요한 건 또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하나.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난리치신 거예요?”
그러자 멘토가 퍼뜩, 고개를 치켜들어보였다.
바라보는 얼굴.
그 얼굴 안에는 보기 드문 다급함이 묻어나 있었다.
#
새하얀 백광만이 가득한 공간.
차원 밖, 경계 선 상에 위치한 공간이자,
인과의 흐름을 관장하고 또 얽매이지 않는 이곳, 경계의 공간.
따악─!
그 경계의 공간에 때 아닌 손님이 찾아왔다.
공간 한쪽 구석이 일그러지며 한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태양빛을 닮은 긴 금발의 미녀.
다름 아닌 초월자 학원의 원장, 이리나였다.
일그러진 공간 사이로 이리나가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지?』
그와 거의 동시에 공간 한 어귀에서 관조자의 의지가 들려왔다.
다만 그 의지에는 어딘가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이리나의 표정 또한 썩 좋은 기색은 아니었다.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건가요?〕
아니나 다를까 이리나의 목소리에 날이 서있었다.
그런 이리나의 물음에 관조자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이리나가 왜 찾아왔는지,
뻔히 알고 있었으니까.
이리나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백광(白光)의 세계.
이리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원에 걸린 인과의 제약을 해방하시다니.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신건가요?〕
쏘아붙이는 이리나의 말투였지만 관조자는 여전히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이 또한.
역시 모르지 않았으니까.
차원에 걸린 인과의 제약을 해방한다.
이는 곧 인과에 얽매인 한계를 풀어준다는 것과 같았다.
그로써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들은 많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이것.
〔그의 제약이 해방되면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것을 몰랐다고 하시진 않을테고···.〕
위대한 목소리에게 걸린 제약.
그것이 해방된다는 것이었다.
〔저한테는 감당할 수 있냐고 비아냥거리실 땐 언제고,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죠?〕
이리나의 목소리는 더욱 날카로워져 있었다.
관조자는 여전히 아무런 의지가 없었다.
내려앉는 묵직한 침묵.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렇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관조자가 천천히 의지를 내뱉었다.
〔모르셨다고요? 지금 그걸 저보고 믿으라는 건가요?〕
이리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관조자가 어떤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주의 전차원을 관조하며 관리하는, 말 그대로 관조자(觀照者).
격(格)으로만 따져도 초월자 상위의 존재였다.
관조자를 어찌할 수 있는 존재는 이 우주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초월자 원장인 자신조차도 말이다.
태초의 맹약이 아니었다면,
자신조차 관조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관조자를 어찌할 수 있는 존재는 딱 하나.
태초이자 최초의 초월자.
하지만 그는 인과의 기록이 사라져 소멸되었다.
그러니 현재로서 관조자를 어찌할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명도 없다고 보는 것이···.
아니, 어쩌면.
순간 이리나의 생각으로 한 명의 존재가 스쳐지나갔다.
조금 특별한 초시생.
그러나 학원에 등록된 수많은 초시생 중 한 명에 불과한 이였다.
갑자기 그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튼.
그런 관조자가 인과의 제약을 해방한다는 것.
그로써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를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당연히.
『난 제약을 완전히 해방하지 않았다.』
관조자 또한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관조자는 천천히 의지를 이었다.
『그 녀석에게 걸린 인과의 제약을 풀어주려 했던 건 사실이다. 위험부담이 있기는 해도 그 놈팽이를 견제할 필요성은 있었지. 누구 덕분에 말이다.』
관조자는 누군가를 바라보듯 잠시 의지가 없었다.
이리나는 어떤 묘한 시선을 느꼈으나,
이리나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과의 제약을 푸는 것은 나조차도 쉽사리 할 수 없는 일이다. 정확히는 ‘할 수 없는 일’이라 함이 정확하다. 그건 인과율(因果律)을 틀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말이다.』
한 차원에 걸린 인과의 제약은 인과율(因果律)에 의거한다.
따라서 인과의 제약을 푼다는 것은,
인과율 자체를 틀어버리는 것과 같은 일.
그 말은 즉.
세계의 법칙을 뒤틀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태초 이래로 규정되어온 세계의 법칙.
아무리 관조자라도 법칙에 간섭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조율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해서 나는 다른 차원에 얽힌 인과를 지구와 통합시켰다.』
법칙 자체를 간섭할 수는 없으나.
그 안의 흐름을 조율할 수는 있었다.
해서 관조자는 두 차원에 얽힌 인과를 합쳐버렸다.
A라는 차원과 B라는 차원의 인과를 합친다.
그럼 A+B의 인과가 하나로 어우러지게 되며,
세계의 법칙은 이를 상위 차원이라 판단.
새로운 인과율을 적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인과율은 기존의 인과율보다 월등히 높은 것은 자명한 일.
따라서 인과의 제약 또한 어느 정도 상승하게 되며,
그로써 인과의 제약이 ‘해방’ 된 것처럼 보이게 된다.
하지만 엄연히 한계는 존재한다.
인과의 제약이 누그러지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상승한’ 것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그것이 초월(超越)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다.
초월의 경지에 들어선다면 제약이 걸려 선택을 해야만 했다.
초월성을 포기하며 누그러진 인과의 제약을 받고 차원에 남아있던가.
초월을 하여 차원 밖으로 추방되거나.
제약을 풀어주되,
안전 장치를 만들 수 있는 방안.
관조자는 당연하게도 위대한 목소리를 완전히 믿지 않았다.
이로써 위대한 목소리의 제약은 어느 정도 풀린다.
그러나 완전한 해방은 아니었기에 지금과 같은 제약은 엄연히 존재하게 되는 격.
그렇기에 완벽한 방안이라 생각했건만.
『그 녀석은··· 이미 알고 있었다.』
위대한 목소리는 관조자의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하고있었다.
그리고 관조자가 취한 방법의 허점을 정확하게 눈치채고야 말았다.
우주에는 수많은 차원이 존재한다.
허나, 그들 모두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 차원에 얽매인 인과는 단독으로 존립할 수 없다.
쉽게 말해 모든 차원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있다는 뜻.
초월자 학원이 모든 차원의 초시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이러한 것에 기반한다.
따라서 멸망 또한 마찬가지였다.
1개의 차원이 멸망하면,
해당 차원 뿐만 아니라 우주의 전 차원에 영향이 미친다.
그리고 이것이 관조자가 차원의 멸망을 방관할 수 없는 사정이었다.
그 때문에 어떤 한 놈팽이에게 된통 물리기는 했지만··· 뭐, 어쨌든.
여기서 핵심 포인트는 모든 차원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있다는 것.
관조자가 두 차원의 통합을 위해 인과의 흐름을 조정하느라 틈이 발생했다는 것.
그리고 위대한 목소리는 위의 두 가지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
이에 위대한 목소리는 그 허점을 맹렬하게 파고 들었다.
〔서, 설마···.〕
굳어지는 이리나의 표정.
관조자는 천천히 의지를 열었다.
『그 녀석이 모든 차원의 인과를 하나로 묶어버렸다.』
위대한 목소리는 찰나의 틈을 노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차원의 인과를 하나의 차원으로 엮어버렸다.
그로써 현재 모든 차원의 인과가 묶이는 중이었다.
당연히 그에 따른 인과의 제약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 상태.
관조자는 황급히 흐름을 바꾸었으나,
이미 법칙으로 적용된 인과를 뒤집기란 불가능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이렇게 나올 줄은··· 나도 몰랐다.』
관조자가 관리하는 인과율에서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가 없었다.
〔······〕
이리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전 차원의 인과를 하나로 묶는 일.
이리나 또한 위대한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리나는 위대한 목소리의 목적이 무엇인지 대강 알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차원을 멸망시키려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스승, 최초의 초월자 또한 위대한 목소리의 목적과 같다고 알고 있었다.
뜻은 같으나,
그 방법은 다른.
허나, 최초의 초월자에 대한 인과는 소멸되어 사라졌다.
해서 이리나는 지금까지 최초의 초월자가 실패했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위대한 목소리의 행동.
스승님은 정말 실패했던 것일까?
아니, 애초에 스승님은 무얼 바랐던 걸까.
〔이렇게 된 이상 들어야 겠어요.〕
이리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체 스승님이 소멸하신 이유가 무엇이죠? 그리고 어떻게···.〕
바라보는 시선.
〔사형(師兄)께서는 스승님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거죠?〕
이리나의 표정은 어딘가 착잡해보였다.
#
“······ 그러니까 지금 지구는 물론이고 차원의 인과가 모두 얽히고 있다는 뜻인 건가요?”
서준의 물음에 멘토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로써 지구에 걸린 인과의 제약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보면 모든 차원의 제약 자체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정확히는 제약의 한계는 존재하나,
그 한계의 허용치가 가히 무한에 가까운 격.
물론 아직 모든 차원의 인과가 통합된 것은 아니었다.
우주에는 셀 수도 없이 수많은 차원이 존재했고,
그 수많은 차원의 인과를 통합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시간 문제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각기 다른 인과의 법칙이 얽히며 꼬이게 된다.
한 두 차원이야 어찌 조절이 가능하다만,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차원을 조절하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차원의 현상들이 얽히고 설킨다.
각 차원의 존재들간 이동이 자유로워진다.
대혼란이 초래될 것은 자명한 일이며,
어쩌면 전 차원의 붕괴까지 고려해야할 심각한 사안이다···.
멘토는 다시 한 번 힘차게 소리쳤다.
그런 멘토의 말에 서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바로 그때.
“서, 서준씨!!”
“오빠!!”
갑자기 문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서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나섰다.
밖으로 나서자 저 멀리.
서윤과 수연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둘.
서준은 서윤에게 물었다.
“또 무슨 일이 생겼나요?”
“그, 그게···.”
하지만 서윤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보아하니 뭐라 설명하기가 어려운 모양새였다.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빠를거야.”
주저하는 서윤의 뒤로 수연이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서준은 둘의 안내에 따라 길드 건물 밖으로 나섰고,
서준은 몇 발자국 떼지 않아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시꺼멓게 물들여진 서울의 상공.
곧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진한 먹구름이 빠르게 하늘 위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순식간에 서울 하늘 전체를 뒤덮어버렸고, 더 나아가 끝을 모르듯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이윽고 서울 하늘 전체가 진한 먹구름으로 뒤덮어졌다.
아니, 서울 하늘만이 아니었다.
이 상상도 못할 구름들은 경기권을 넘어 한국의 전체를 뒤덮어 가고 있었다.
주위로 지나가던 사람들마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준은 일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서윤도, 수연도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나온 민율과 하윤까지.
팀원들 전부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꺼먼 하늘이 지구 전체를 집어삼킬 것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저것은 먹구름 같은 것이 아니었다.
먹구름은 스스로가 일렁이지 않으니까.
저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사상 초유의 게이트.
하늘 위로 생성된 거대한 게이트가 한국 전역을 뒤덮고 있었다.
“마, 말도 안돼···.”
“어떻게 저런 게이트가···.”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크기의 게이트.
꽈득!
서준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결과적으로.
이미 차원의 통합은 이루어지고 있다.
하늘을 뒤덮는 게이트가 바로 그 증거.
그리고 그것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엎질러진 물은 어떤 방법을 써도 담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사실상 끝이 난 상황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서준은 아직 끝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말 끝이 났다면 위대한 목소리가 사도식이라는 번거로운 짓을 할리가 없었으니까.
아무런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사도식이고 뭐고 그냥 이대로 내버려두면 되었다.
그러나 진리회는, 위대한 목소리는 그러지 않았다.
마치 단 하나의 방법이 아직 남아있다는 듯이 말이다.
유일하게 인과의 흐름에 종속되지 않는.
통합되는 차원의 인과, 그 거대한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서준이라는 가능성.
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바라본 시선.
그곳엔 멘토가 조심스럽게 서준에게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