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87
87화 – 교류전(4)
짧은 한 마디였지만 서준은 수연이 이렇게까지 긴장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수연은 이하윤을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수강생이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수연이었기에 이하윤이라는 이름조차 아직 생소할 터였다.
하지만 본 적이 없다고 해서, 생소하다고 해서 알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커뮤니티만 살짝 뒤적여봐도 이하윤이라는 이름이 있었으며.
가장 큰 예로 이하윤이 서준과 비교된다는 것 자체가 수연에게는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수연이 봐온 서준은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수준이었으니까.
당장 수연 자신만 하더라도 서준과 비교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확실히 수연이 감당하기엔 이하윤은 상당히 버거운 상대였다.
그것이 아직 마성의 가르침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나, 나… 잘할 수 있을까?”
수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던전 레이드 가는 것도 아닌데 뭘. 지면 지는 대로, 이기면 이기는 대로. 마음 편히 가져. 승부욕은 좋지만 너무 집착하는 것도 좋지 않아.”
“하지만···”
서준의 조언에도 수연은 쉽사리 긴장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런 수연의 모습 때문일까.
서준은 수연에게서 초조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해.’
서준의 예상처럼 수연은 어떤 강박에 가까운 집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건 지난 레이드 배틀에서의 일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그 레이드 배틀에서 수연이 즐거움이라는 것을 느낀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드림팀이라는 것도 좋았고, 같이 무언가를 해나간다는 것 자체도 좋았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갈고 닦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마지막엔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수연은 즐거웠다.
그렇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던 사실이 수연에겐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욕심일지 모르나 수연은 그 둘과 계속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까.
이제 프로 헌터 시험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서준과 민율은 어렵지 않게 프로 헌터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 터였다.
그 둘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실력자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자신은?
수연은 스스로 묻는 질문에 확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만일 나만 프로 헌터 시험에 떨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설령 붙는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그 둘의 곁에 설 자격이 되나?
물론 서준이라면 내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런데 그런 동정심과 정을 바라는 게 정말 맞는 걸까?
수연은 이미 서준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받았다.
이제 수연은 더 이상 받는 것이 아닌 서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스스로가 서준 곁에 설 자격을 갖추어야했다.
아니, 어깨를 나란히 하지는 못할망정 발목을 잡지는 않아야 했다.
그래서 수연은 잠까지 줄여가며 강박처럼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다.
그리고 지금.
“드림 아카데미의 석수연 수강생. 준비 되시면 자리로 올라오시길 바랍니다.”
그 자격을 확인받고 싶었다.
“잘하고 와.”
“후우···!”
서준의 격려와 함께 수연은 심호흡을 내뱉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서준은 대기실로 가려던 생각을 고쳐먹고는 수연의 경기를 지켜봤다.
“헌터밀의 이하윤 수강생. 준비 되시면 자리로 올라오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수연이 자리에 서자 심판이 재차 말을 이었다.
웅성웅성.
그와 동시에 경기장 내부에는 작은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헌터밀의 이하윤.
그 이름 석자로 만으로도 장내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경기장 위로 이하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소란 또한 더욱 격했지만, 이하윤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며 걸음을 옮겼다.
냉혹하리만치 차가운 얼굴.
당연하겠지만 입구에서 봤던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서준은 이하윤의 표정에 묘한 짜증이 깃들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서준의 시선을 의식한 것일까.
일순간 이하윤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마주보는 두 사람.
둘 사이에 묘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이내 이하윤은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다시 시선을 돌렸다.
“두 분 모두 준비되셨습니까?”
이하윤이 수연의 맞은편에 서자 심판이 곧장 둘을 향해 물었다.
심판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둘의 모습을 확인한 뒤 소리쳤다.
“그럼··· 경기 시작하세요!”
심판의 외침과 동시에 수연이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마력을 이끌어내며 마법을 준비했다.
그런데.
“……”
어째서인지 이하윤은 어떠한 움직임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동자로 수연의 행동을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툭, 이하윤이 말을 내뱉었다.
“해봐.”
“……네?”
이하윤은 자신의 무기인 도(刀)를 천천히 꺼내들었다.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봐.”
“그게 무슨···?”
이하윤은 도를 길게 늘어뜨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해야 본인 스스로의 하찮음을 깨닫더라고. 그러니 한 번 할 수 있는 데까지 발악해봐.”
그리고는 정말 먼저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듯, 이하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자신감을 넘어 오만에 가까운 발언이자 행동이었다.
“……그 말씀. 금방 후회하게 해드리죠.”
“어떻게 하나같이 다 똑같은 말만 하는건지.”
수연은 이를 까득, 깨물며 정신을 집중했다.
우우우우웅!
그러자 엄청난 마력의 파동이 수연에게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수연의 입이 몇 번 달싹였고 뒤이어 엄청난 살기와 함께 수연의 기척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짙은 살기를 피워 상대를 압박하는 마법, 피어(Fear).
그리고 자신의 기척을 지우는 마법, 기척 차단이었다.
물론 부동심과 케이론의 감각이 있는 서준에게는 아무런 의미조차 갖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충분한 의미가 될 수 있었다.
“이 압박감은··· 뭐, 뭐야?”
“게다가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수연의 마법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이어 수연은 손에 뇌전을 일으키며 이하윤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수연의 모습에 서준은 수연을 상대한 에일 아카데미의 수강생들이 왜 그렇게 놀라워했는지.
마성이 어째서 수연을 극찬했는지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마법사라 함은 대체로 후방에 빠져 강력한 마법을 사출하는 귀한 인재였다.
그 뿐만 아니라 마법이 갖는 각종 편의와 활용성은 레이드 팀에서 필수적인 인재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서 보통 마법사들에게 재능이라 하면 지성(知性)을 꼽는다.
지각된 것을 정리 및 통일하여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정신 작용.
현상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마법사에게 지성은 더없이 중요한 재능이었다.
애초에 마법 자체가 그러하다보니 마법사들은 연구와 탐구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마법사들의 신체 능력은 비교적 수수하거나 허약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렇기에 후방에 빠져 보호받는 것이 마법사들의 보편적인 특징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하윤을 상대로 근접전을 하겠다는 건가?”
지금 보이는 수연의 모습은 그런 마법사들의 편견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었다.
수연은 여타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과감하게 이하윤에게 달려들었다.
수연이 직전에 펼친 피어와 기척 차단 또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기척 차단은 은신술과는 달리 말 그대로 기척만 지워주는 마법이었다.
따라서 시야에만 놓치지 않으면 별 문제가 없었지만, 반대로 시야에서 놓치면 별 문제가 된다는 뜻.
수연은 피어와 기척 차단을 이용하여 손에 일으킨 뇌전으로 직접 타격을 줄 심산이었다.
파지지지직!
수연은 뇌전을 이하윤에게 꽂아 넣었다.
이하윤은 가볍게 피했지만 근접으로 붙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이하윤의 눈빛에 잠시 당황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화륵!
파지지지직!
그리고 수연은 그 기회를 놓칠세라 연이어 마법을 시전했다.
“마법사가 왜 굳이 근접전을?”
“저럴 필요가 있나?”
그런 수연의 모습에 사람들이 저마다 의문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물음에 답을 하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자존심 상하지만··· 우리 수강생들이 왜 그렇게 고전했는지 알겠네요.”
다름 아닌 에일 아카데미의 대표 차혜인이었다.
이하윤을 보러 온 것인지 아니면 수연을 보러 온 것인지.
차혜인은 경기장 한 쪽에 서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철저한 실전 위주의 마법사였다니…”
사실 엄밀히 따지면 마법사가 굳이 저럴 필요는 없었다.
후방에 빠져 강력한 마법만 구사하면, 마법사로서 할 일은 다한 셈이었다.
하지만 실전이 과연 그러한가.
실전에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만일 마나가 뒤틀린 상태라면? 영창이나 마나를 제약당한 상태라면?
법칙마저 뒤흔드는 거대한 마력의 폭발이 발생한 직후라면?
자신을 보호해줄 다른 헌터들이 없다면?
언제고 뒤틀리고 틀릴 수 있는 것이 실전이다.
변화무쌍한 환경에 따라 상황도 변화한다.
그렇기에 케이론 또한 마법 직종의 초시생들에게도 직감과 신체 단련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그래도 수강생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격동적인 움직임과 동시에 마법 연산을 할 수 있는 것부터가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했으니까.
더하여 전투적인 센스마저 요구되니 마법 연구와 더불어 신체 단련까지.
다른 것들에 비해 몇 배의 노력을 필요로 했다.
수연은 밤잠까지 줄여가며 그 노력을 반복해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저런 식으로라면 어찌되었든 자신의 마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부분적인 배리어를 펼쳐 자신에게 오는 데미지를 흡수하거나.
어쩔 때는 그런 데미지조차 감수하면서 공격을 감행하는 판단력도 필요했다.
여러모로 고려할 것도 많고 비효율적인 방법이었기에 선호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괜히 후방에 빠지는 지금의 마법사 스타일이 정착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딱 한 명.
“마성(魔星) 이후로 거의 사장되다시피 한 방법인데…”
대격변의 영웅이자 마법사들의 정점이라 불렸던 마성(魔星)이 저런 전투 방식을 사용했었다.
대격변의 전성기 시절, 그런 마성은 가히 재해와도 같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의미로 외국에서는 마성(魔星)을 ‘워 메이지(War Mage)’라 칭했었다.
그리고 지금.
파지지지지직!
수연은 지금 그런 워 메이지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수강생들이었다면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할 수연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크윽···!”
상대가 좋지 않아도 너무 좋지 않았다.
후욱!
이하윤은 수연의 움직임을 예측이라도 하듯 가볍게 공격을 흘렸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효율적인 움직임이었다.
이하윤은 아주 작은 빈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어떤 경지에 이른 것만 같은 움직임.
“고작 이게 네 전부니?”
누가 봐도 수준의 차이가 확실해 보였다.
마성조차 감탄한 수연이었지만 이하윤은 그런 수연의 재능마저 압도해버렸다.
프로 헌터 역사상 가장 역대급 재능이라는 이하윤.
“끄윽…!”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수연은 이하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수연의 패배는 확실시 되어보였다.
아마 수연의 체력과 마력이 고갈되는 기점으로 승부는 명백히 갈릴 것이 분명해보였다.
어쩌면.
퍼억!
마력이 고갈될 시간도 필요없을 지도 몰랐다.
“끄으윽!”
이하윤은 기막힌 움직임으로 수연의 공격을 피하고는 수연의 복부를 가격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무기인 도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격차.
이하윤은 끔찍한 고통에 괴로워하는 수연의 멱살을 틀어 쥐었다.
“이제 좀 알겠니? 네가 얼마나…”
그런데.
“잡았…다…”
“뭐?”
파지지지지지직!!!
돌연 수연의 손에서 뇌전이 사출되며 이하윤을 뒤덮어갔다.
휘몰아치는 마력의 폭풍과 뇌전.
하지만.
“……”
이하윤은 살짝 그슬리기만 했을 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수연의 마법에 직격당했음에도 이하윤은 그저 수연의 멱살을 틀어 쥔 채 오연히 서있을 뿐이었다.
“세, 세상에···”
“이건 말도 안되는 격차잖아···”
애초에 승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그 순간, 이하윤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기 시작했다.
차갑게만 유지하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지더니 멱살을 틀어 쥔 반대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리고.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쿠당탕!
수연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
“…”
“…”
싸늘한 정적이 내려 앉았다.
이하윤은 그 정적을 가로지르며 쓰러진 수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멱살을 틀어 쥐어 올리더니.
짜──악!
짜──악!
연이어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짜──악!
한 번의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수연의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수연은 반항할 힘이 없는지 아니면 기절한 것인지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꽈득!
서준은 창을 움켜쥐며 뛰쳐나갔다.
그런데 그때.
“하··· 하지…마··· 오빠···”
실낱같은 수연의 목소리가 서준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서준은 저도 모르게 뛰쳐나가던 몸을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아직 심판의 승리 선언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금 서준이 이대로 경기에 난입하면 서준은 실격패를 당할 수 있었다.
그러면 서준이 그토록 원하던 상금도 물건너가는 상황.
“괘··· 괜찮···”
짜──악!
수연은 자신이 서준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서준은 차마 난입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이하윤 수강생!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당장 그만두세요!”
결국 심판의 승리 선언이 들려올 때까지 서준은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하윤도 그제서야 수연을 놓아주었다.
정확히는 휙, 수연을 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콰당탕!
다시 허공을 날며 쓰러지는 수연의 모습에 서준은 황급히 뛰어갔다.
수연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어 있었다.
“……짜증나게.”
뒤이어 들려오는 이하윤의 목소리.
서준은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수연이 그런 서준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퉁퉁 부은 얼굴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 내가 못나서··· 그런 거니까···”
수연은 끝내 말을 맺지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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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급히 의료진들이 달라붙었고 다행히 수연은 큰 이상은 없었다.
치료만 잘 받으면 괜찮을 거라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듣고 서준은 그때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더하여 그런 행위를 한 이하윤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누가 봐도 이하윤이 한 행동은 다분히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당연히 그에 따른 처벌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하윤에게 내려진 처분은 경고. 그것이 전부였다.
명분은 ‘어디까지나 수강생들 간의 결투였고, 그로 인한 부상이었다.’ 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미안··· 대장. 수연이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나도 당해버렸네.”
민율 또한 이하윤을 상대로 큰 부상을 입었다.
그나마 민율이었기에 수연처럼 당하지만은 않았지만, 왼팔과 갈비뼈 몇 대가 부러진 것 같았다.
지켜본 수강생들의 말을 듣자하니 이하윤이 일부러 그런 것 같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대장… 조심해. 사람들이 역대급이라 하는 이유가 있더라고.”
그럼에도 민율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쯤되자 서윤이 강력히 항의를 하려 했다.
하지만 서준은 되려 그런 서윤을 말렸다.
“네? 어, 어째서···?”
“그냥 두세요.”
서준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두세요.”
그저 이 말만 반복하며 서윤을 말릴 뿐이었다.
그 이후로 서준은 계속해서 교류전 토너먼트를 진행했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듬성듬성 떠오르는 기억으로.
“서준씨···”
서윤의 걱정 어린 표정과 창을 몇 번이나 갈아치웠다.
이 정도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그렇게 서준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덧 교류전 결승전에 올라온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상대는 다름 아닌 이하윤.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장내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교류전에 참가한 모든 수강생들이 모여들었다.
심지어 해당 관계자들까지 죄다 모이는 바람에 장내는 말 그대로 미어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범접불가의 이레귤러, 김서준.
프로 헌터 역사상 가장 역대급 재능, 이하윤.
모두가 기다리고 또 궁금해하던 경기가 지금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드, 드, 드림 아카데미의 김서준 수강생. 주, 준비 되시면 자리로 올라오시길 바랍니다.”
경기 진행을 맡은 심판 또한 긴장되는지 말을 더듬었다.
서준은 말없이 자리로 올라갔고 심판이 이어 말했다.
“허, 헌터밀의 이하윤 수강생. 주, 준비 되시면 자리로 올라오시길 바랍니다.”
이하윤 또한 말없이 자리로 올라왔다.
그렇게 마주한 서준과 이하윤.
“두, 두 분 모두 준비되셨습니까?”
심판의 말에 이하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서준은 손을 들어 잠시 경기 진행을 막았다.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갑작스러운 서준의 행동에 장내의 모두가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하나만 묻자.”
서준이 이하윤을 바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
이하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차가운 표정을 일관하며 서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네가 잘났다고 사람을 그렇게 무시해도 되는거라 생각하는건가?”
하지만 서준은 이하윤의 답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프로 헌터 사상 역대급의 재능. 너는 좌절같은 걸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겠지. 그렇기에 그게 상당히 개같다는 걸. 아마 잘 모를거야.”
서준은 다시 한 번 말한다.
“그거 진짜 개같아.”
서준의 지난 10년은.
프로 헌터가 되기 위해 발악을 한 세월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되는 현실을 견디고.
확실치도 않은 미래를 바라보며.
남들은 저만치 앞서 가지만, 자신은 언제나 제자리인 현실에 수없이 절망한 시간.
서준은 그렇게 10년이란 세월을 발악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에 있어서 혼신의 힘을 다해라.
그러면 설령 그게 안되더라도 후회는 남지 않으니까.
미련없이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서준은 10년 간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미련이 남지 않게.
그럼에도 안되는 현실에 서준은 그때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살면서 최선을 다했는데도, 그래도 안된다면.
“그땐 내가 진짜 못난 것 같은 생각밖에 안들어. 그거 정말 무서워. 진짜 두려워.”
후회가 아닌 절망을 한다는 것을.
되려 더욱더 짙은 미련과 절망만이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아 끊임없이 괴롭힌다.
사람들은 그것을 좌절이라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것을 경험해본 자는 알고 있다.
그건 사실 좌절이 아니라.
“그게 노력이라는 이름의 진짜 실체야.”
노력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을.
노력은 열정이 아니다. 그렇기에 뜨겁지 않다.
차갑고 또 정적이다.
어둡기는 또 더럽게 어두워서 그 끝이 보이지조차 않는다.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한 발 내딛는 것은 그 어떠한 것보다 두렵고 또 무섭다.
서준은 수연의 마지막 말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는 그런 노력들을 짓밟은 거야.”
그래서 서준은 이하윤에게 화가 났다.
재능이 뛰어난 자가 다른 이들보다 앞서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들이라고 저 차갑고 정적인 노력을 안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 어디에도 다른 이의 노력을 폄하할 자격 같은 건 없다.
“네 알량한 재능 따위로 감히 무시할 게 아니라고.”
이하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래, 말로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지?”
서준은 창을 길게 늘어뜨렸다.
“해봐.”
그리고 툭, 내뱉었다.
“……뭐라고?”
그때서야 이하윤은 유의미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준은 그런 이하윤에게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라고.”
와락, 일그러지는 이하윤의 표정.
“너도 한 번 발악이라는 걸 해봐.”
서준은 냉기보다 더 싸늘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그게 얼마나 개같은지 직접 느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