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17
뭔가 성경 구절과 기도문을 인용한 낯간지러운 칭송들이 이어지니 에드워즈는 급히 표정을 바꿔 감동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대들의 충성심은 잘 알았습니다. 손님들을 위한 숙소는 레닌그라드에 언제나 마련되어 있으니 부디 그곳에서 여독을 풀고 쉬십시오.”
“예, 전하. 전하의 환대를 언제까지나 영예로 여기겠습니다.”
그리고 플레스코프에서 온 사절단들이 알현실을 나서고, 드디어 이번에 방문한 모든 사절과의 알현이 끝났다는 사실에 안심하여 에드워즈는 기지개를 켰다.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 듯하다.
“‘주님께서 축복하실 전(全) 루스의 총관 전하’라? 괴력난신(怪力亂神)에 축복받는 사회주의자로서 기분이 어떻소?”
“…이미 굉장히 거북스러우니 놀릴 필요는 없습니다.”
에드워즈는 저들이 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과민하게 반응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순식간에 당장 산적해 있던 모든 대외 문제가 해결되어 버렸으니까.
루스의 영주들은 각지에서 충성을 맹세해 오며 부디 자신들의 영지에도 공장과 기관총 진지를 건설해 달라 애원하고 있다.
유럽에서의 소소한 약탈과 습격 역시 뚝, 끊겼고 그 대신 몽골과 에드워즈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동력 삼아 힘을 최대로 비축하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고민이었던 주치인 울루스의 개입이 원천 봉쇄되었으니 이건 이반 셰먀킨의 공로가 컸다.
이제 총관부는 명실상부하게 루스 전역을 손에 넣었다 말할 수 있겠다.
“이반 셰먀킨 그 작자에게 키스라도 퍼부어 주고 싶은 기분이오.”
“그자는 결국 반역자가 아니오? 카간의 신하가 어찌 반역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는다는 말이오? 아무리 농이라 할지라도 말을 조심하시오.”
“반… 역자?”
“…음?”
고르바초프가 호탕하게 말하자, 권람이 말을 조심하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일갈하는데 뭔가 반응이 이상하다.
뭔가 분위기가 묘해지자, 에드워즈가 귀족 출신인 바토르스키에게 설명을 부탁한다. 바토르스키는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권람에게 말을 건네었다.
“엄밀히 말하면 반역자는 아니오. 아직도 우리에게 세금을 내고 있으니.”
“…뭐라고 하셨소?”
“말 그대로요. 그가 리투아니아 국왕과 우리를 약탈하였고, 그로 인해 국지적 전쟁이 일어났으니, 전쟁세를 납부하였소.”
“자기가 전쟁을 일으키고서 자기가 세금을 낸다는 말이오?”
“그게 이중 봉신이라는 것이오.”
“…사이군(事二君)한다는 뜻입니다.”
에드워즈가 해설하자, 평생 ‘두 임금을 섬긴다’는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여 온 권람은 복잡기괴 구주천지의 봉건제에 충격받은 듯했다.
하기사, 지방 행정 관련한 업무는 김시습이 지도하는 향민계원들과 군사 고문들이 도맡았으니 그럴 만하다.
“뭐, 어찌 되었건 이반 셰먀킨 덕분에 다른 영주들의 이탈은 염려할 바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 작자는 줄 잘못 탔다며 아직도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을 겁니다.”
“아… 이제야 많은 것이 이해가 되는구려…. 아니, 그게 그런….”
“아무튼.”
여전히 헤롱거리는 권람은 놔두고, 에드워즈는 주의를 집중시켰다. 자리에 모인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돌린다.
“앞으로는 전쟁 준비입니다. 에센과… 그리고 여전히 묵묵부답인 조선에 한 번만 더 서신을 넣어 보죠.”
전면전을 준비해야 한다.
고국은 뭐 망했는지, 우주로 날아갔는지, 공중에서 폭발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아무튼 적들은 다가온다.
* * *
두 사람이 깔고 앉은 다다미 위에는 좌탁 하나가 다소곳이 놓이고, 그 위에 간단한 안주들이 올라가 있다. 그 외에 눈에 띄는 가구는 없다.
그런 언뜻 작고 소박해 보이는 방이지만, 멀리 창밖으로 이끼와 잔디가 잘 다듬어진 정원이 내다보인다. 그렇다. 오로지 정원 감상을 위해서 지어진 방이다.
이 소박한 사치의 주인인 아시카가 요시미가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내려놓는다. 그의 입꼬리는 긴장에 차서 들어올려져 있다.
“신쿠로! 간레이(管領, 관령)가 나를 도와주기로 하였네. 명분이 나에게 있으니 곧 휘하로 갖가지 세력이 집결하지 않겠는가?”
“그야 당연한 일입니다. 명예를 아는 이들이라면 누가 진정 권좌에 올라야 하는지 잘 알 터입니다.”
환희에 차서 말하는 아시카가 요시미를 적당히 축하해 주며, 모리토키는 머리를 굴렸다.
간레이의 직책을 차지한 호소카와 가쓰모토(細川勝元)가 요시미를 후원한다.
그렇다면 자연히 아들을 쇼군으로 세우려는 히노 도미코는 가쓰모토의 대적자, 야마나 소젠(山名宗全)에게 붙을 터, 아니 이미 붙어먹었으리라.
호소카와 가쓰모토, 그리고 야마나 소젠.
…일본의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대영주들끼리의 승부라.
“분명 도노께서 쇼군직에 오르지 않으시겠습니까? 명분이든, 뭐든, 저 어린 아이보다 뒤쳐지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자네의 말이 옳네!”
요시미가 박수까지 치며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모리토키는 잠시 다른 생각에 잠긴다.
…과연 그럴까?
야마나 소젠 휘하의 인물들과도 착실히 인연을 쌓아 놓은 지난 세월이다. 출세 하나만을 바라보고 떠돌았으니 그럴 만했다.
즉, 들려오는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많다는 말이다.
양측의 군사 규모로 보나, 작금의 정치적 구도로 보나 이 미묘한 균형 상태에서 갈등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쇼군의 의지가 무엇보다 불투명하다.’
저 결단력 없는 요시마사가 쇼군으로 있는 가운데 뭐가 제대로 일어날 리가 없다.
게다가 모리토키 본인이 몸담고 있는 이세 가문이 친위 세력으로서 그나마 건재하게 쇼군을 보좌하고 있으니….
양측의 제대로 된 정치적 충돌? 아무리 허울뿐으로 보여도 쇼군은 쇼군. 그의 권위 아래 정쟁은 적절히 억눌러지리라.
‘이 불안한 듯, 안정된 균형 상태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질 수나 있으려고…?’
그렇다. 불안한 듯 아닌 듯 이어지는 조정의 미묘한 균형.
호소카와 가쓰모토와 야마나 소젠의 양 세력이 언제든 격돌할 듯 으르렁거리지만, 미약하고 우유부단해 보이는 쇼군이 마지막까지 놓지 않은 최후의 친위 세력들 덕분에 막부의 권위는 유지되고 갈등은 유예된다.
그리고 그 친위 세력의 핵심인 이세 사다치카(伊勢貞親),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모리토키의 양부(養父) 모리사다(盛定) 등 이세 가문의 일원들.
이들이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고 있다. 조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균열을 애써 봉합하고 있다.
…만일 이렇게 우유부단한 쇼군이 후계자에 대한 결정을 계속 미룬다면? 그 가운데 두 세력의 상호 견제가 계속된다면?
자연히 쇼군 직위의 향뱡은 어디로 갈지 모르게 된다. 오롯이 쇼군 개인의 의향에 따라 결정될 것이 뻔하다.
그러면 누가 차기 쇼군이 되든, 양 가문의 막부에 대한 영향력은 크게 축소하리라.
그리고… 아마 차기 쇼군의 집권에 혁혁한 공을 세운 공신 가문으로서 쇼군의 친위 세력인 이세가가 힘을 키울 테고, 그러면 자연히 이세의 양자인 모리토키 자신도 지위의 상승을 꾀해 볼 만….
…잠깐.
‘이세가의 힘이 그렇게 강성한가? 양 세력의 갈등을 계속 억누르고, 양 세력의 무력 행사를 제압할 만큼?’
그럴 리가. 일본을 반절씩 장악한 대영주들을 상대로 누가 감히?
“…그러면”
“음, 신쿠로? 무슨 일인가?”
“아닙니다. 그저 소승의 머리에 작은 번뇌가 잠시 날아들었을 뿐입니다.”
―달그락.
“하하, 뚜껑이 계속 흔들리는군. 국이 끓고 있으니 이것부터 들게나.”
“아, 감사합니다.”
이로리(囲炉裏, 일본에서 마루 가운데를 들어내고 모닥불을 올린 시설) 위에 올라가 있던 냄비가 부글부글 끓더니 곧 그 뚜껑이 흔들거리다, 그 안에서 넘쳐 오르는 거품과 증기가 뚜껑을 결국 쓰러뜨린다.
조정 내에서 곧 끓어 넘칠 듯 칼날을 세운 두 세력이 맞부딪히기 직전이다.
그것도 무려 쇼군의 후계 문제라는, 거대한 화산 같은 사안을 둘러싸고서. 마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냄비와 같은 모양으로.
헌데… 그를 방해하는 이세가를 남겨 둘까?
알량한 쇼군의 방해 따위에 그저 사태를 좌시만 하고 앉아 있을까?
막을 수 없는 파국을 막으려다 나동그라질지도 모르겠다. 바로 저 냄비 뚜껑처럼 말이다.
그는 잠시 먼 발치에서나마 보았던 두 남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두 눈이 부리부리한 소젠과 온몸이 꼿꼿하게 화살처럼 펴져 있던 가쓰모토.
그렇게 강고한 이들이 과연 포기라는 말을, 양보라는 말을 알기나 할까?
저들이… 이세 가문을 살려 둘까?
그 뒤로도 이어지는 무수한 질문들, 수많은 의문.
그에 대한 모든 대답이 ‘아니오.’라고 나오자 모리토키의 시선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의 행진 속에서 마지막으로 제시되는 하나의 질문.
만일, 두 세력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그리하여 결국 그 분쟁을 ‘해소’하는 방도가 오직 칼과 칼, 피와 피의 대화밖에 남지 않는다면….
‘교토는 안전할 것인가?’
교토 인근에서의 마극종 토벌로 크게 명성을 쌓아 얻어 낸 것이 ‘이세’라는 성씨다. 그가 지금까지 구축해 낸 인맥과 권위와 권력 역시 모두 교토라는 도시를 빼놓고는 성립할 수 없다.
그렇기에 모리토키는 머릿속으로 최선을 다했다. 눈앞에 선명히 다가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는 노화와 죽음처럼 엄습해 오는 대답을 외면하려 애를 썼다. 모든 지혜를 다했다 말하더라도 부끄럽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는 졌다. 인간이라면 운명에 질 수밖에 없듯이.
그는 결국 답하고야 말았다.
‘아니오.’
교토에서 펼쳐질 야마나 가문과 호소카와 가문의 시가전.
전국에서 몰려드는 양 가문의 동맹 세력들과 강을 물들일 정도의 혈류, 연못을 끓여 낼 정도의 방화, 벌레 새끼 하나 남겨 두지 않을 약탈.
그 모든 광경이 눈에 선하다.
이제 교토는 없으리라.
이세 모리토키는 무심결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눈앞의 요시미는 그의 긴 침묵과 이상한 반응에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무것도 모르고서 말이다.
모리토키는 그 무지를 경멸했다. 자신처럼 앞날을 대비할 수 없는 이들의 지능을, 그리고 요시미와 같이 혈통을 잘 타고나 낭인인 자신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을 경멸했다.
그러나 그만큼, 몹시도 부러웠다.
모리토키는 지금 이 참혹한 순간, 요시미의 무지와 핏줄이 너무도 부러웠다.
* * *
“그대들은 어찌 보는가?”
오닌의 난.
곧 쇼군 직위의 계승을 둘러싼 문제가 이어지고 일본 전역이 동군(東軍)과 서군(西軍)으로 나누어진다.
그 와중에 기존의 막부 체제는 붕괴되고 곳곳에서 하극상과 통제되지 않는 전투가 이어지니 곧 100년이 지나고 나서야 하나의 깃발 아래 뭉치게 되리라.
…물론 그 ‘하나의 깃발로 뭉치게’ 할 도쿠가와 가문이 지금 마극종의 후원을 받으니 미래는 더욱더 미궁 속으로 빠지겠지만.
렌뇨가 갑작스레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은 거기에 대한 의견을 묻고 있었다.
가장 먼저, 렌뇨의 맏아들 준뇨(順如)가 나아가 말했다.
“마땅히 반동들을 징치하고 그로써 조선 땅과 같은 공산 사회를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의 세력 강건하고 적들의 세력 분열하니 어찌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
렌뇨는 아들의 말에 잠시 찻잔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훑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올바른 대답이 아닌 것이다.
그러자 그다음으로 치고 들어오는 것은 신로, 그의 수제자 세 사람 중 한 사람.
“이제 우리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곳으로 발을 내디디게 됩니다. 전란을 피하여 몸을 숙이고, 세력을 온존한 채 당분간 사세를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리 병화(兵禍)를 피하며 차근차근 반동들의 약점을 찔러 가지 않는다면 언제 난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 세력을 잃게 될지 모릅니다.”
…안타깝다.
어찌 젊은 자식들보다 제자들이 더욱 영민하다는 말인가?
물론 자식들이 한창 어릴 때 렌뇨는 일본 66국 각지를 떠돌며 교육에 신경 쓰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그러나 렌뇨의 눈에는 점차 후대에 권력을 잃고 마극종의 변두리로 밀려나는 자식들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운 뿐이었다.
아무튼, 장래의 일은 장래에 생각할 바이고.
“그래, 네 말이 옳다. 우리의 세력은 진보씨와 마쓰다이라씨의 영지를 중심으로 재편성될 터다. 그러니 두 영주와의 협력 관계를 굳히면서도 마극종의 우위를 잃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전란을 빗겨 가겠다는 말은, 곧 거점을 정해 틀어박히겠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전국에 널리 퍼진 세력들 중 기반이 약한 것은 청산하고, 오직 강하고 튼튼한 것을 남겨야 할 터.
“그리하여 이 일본에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설하게 될 때까지, 너희는 힘써 싸우라.”
“예, 스승님! 천하무산자합일!”
“…천하노동자합일.”
에티앙블에게서 받은 ‘예언서’ 또한 이젠 한낱 종이쪼가리가 되었다.
공산주의자 진보 가문과 마쓰다이라 가문. 반공주의자들의 성자가 된 호조 소운, 아니 이세 모리토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렌뇨는 그저 조선으로 또 하나의 전보를 띄울 뿐.
―“. . . 전쟁이 . . . 가까워 . . . 진다.”
역사가 그 육중한 몸을 뒤척이니, 피가 바다를 이루리라.
부디 마극종은, 그 풍파 속에서 굳건히 서 있길 바랄 뿐.
전쟁은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 (6)
1477년 여름, 치중 물자를 실은 거대한 수레의 무리가 다시금 카라코룸을 방문한다.
카라코룸의 시민들은 이제 또다시 조선인들이 방문하는 것이려니 하며 첫 번보다야 무덤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 관심 없을 사실, 그리고 사실 조선인과 원산인 당사자들도 관심 없을 사실이 한 가지 있었으니.
“…휴, 젠장. 카지미에시를 적대하려고 물자를 실어 간다니. 착잡하구만.”
“그래도 자넨 사회주의자일세. 잊지 말게.”
바로 폴란드인들이 끼어 있었다는 것.
그렇다. 해외 원정을 담당한 스피리도노바와 각 민족주의 세력이 연정을 이루면서, 폴란드인들 또한 전쟁 참여에 지분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다들 기억하시게나. 그대들은 폴란드 민족이기 이전에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 세력의 일익일세. 만일 혁명과 애국심이 충돌한다면 어느 쪽이 우세가 될지는….”
그러나 그리 말하는 이도 약간 말꼬리를 흐리는 모습이, 말의 설득력을 팍팍 떨어뜨리고 있었다.
당연하다. 폴란드 역사에서 그럭저럭 국정 운영을 잘했던 카지미에시 4세가 갑자기 루스 총관부에 침을 바르고 있다 하니 다들 기겁을 하지 않을 수가.
러시아계 인사들이 호들갑 떨 때 빈정거리던 폴란드인들은 이제 마찬가지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까놓고 말해 에센이 폴란드를 폴/란/드로 만들어 버릴지, ㅍ/ㅗ/ㄹ/ㄹ/ㅏ/ㄴ/ㄷ/ㅡ로 갈기갈기 찢어 버릴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만큼 급하게 트로츠키와 스피리도노바에게 울고불고 애원하여 이곳에 끼여온 폴란드인들이다.
적국이 된 자기 민족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국익에 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 생각에 다들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카간 폐하를 뵈옵나이다.”
“그대들을 환영하노라. 조선국과 예케 몽골 울루스의 화목함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기를 짐은 바라노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심지어 에센을 직접 알현하는 그 순간까지 울상을 겨우 감추던 이들이 많았으니 말 다 했다.
하지만 소수의 폴란드인들이 고뇌하거나 말거나 숱한 군수품들을 실은 거대한 무리가 카라코룸에서 간단한 연회를 거쳐 서방으로 향했다.
“여기 이 조선인과 원산인들이 나의 친정에서 함께 활약할 것이다!”
“카간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카간의 군세와 말머리를 나란히 한 채,
루스 땅을 향하여.
* * *
“그대들은 주님의 기사들이다! 종군하는 우리의 곁에는 천사들이 함께할 것이며, 우리에게 날아드는 칼날과 화살은 천사들이 입김으로 그 방향을 바꿔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