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24
“….”
“가독께서 어디 계시는지 가신들이 모두 찾고 있습니다! 호조즈성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이 광경만 조금 더 보다 가겠네.”
나가노부는 한동안 고개도 돌리지 않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눈앞에 커다랗게 뚫린 구멍을 지켜보았다.
전투가 끝난, 어느 진보 씨 휘하 가문의 성.
이제 막 시신들은 매장하고 장사 치렀으니 핏자국이 조금 남아있을지언정 시선을 잡아끄는 잔인한 풍경이 남아있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나가노부를 데리러 온 가신은 조급한 마음에 대체 주군께서 무엇에 정신이 팔리셨나 돌아보니… 성곽의 문제였다.
하늘에 떠오른 섬이나 초록색의 바다처럼, 성곽 한켠이 깔끔하게 잘려나간 모습은 마치 초자연적인 광경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곳곳에 흩어진 잔해들은 마치 자연석처럼 원형을 알아볼 수 없게 쪼개져 있었으니, 성의 한쪽 면만 억겁의 세월이 흘러 제풀에 무너지고 그 자재가 바위와 모래로 흩어져 버린 듯했다.
얼굴의 한쪽 면만 늙어버린 젊은이를 보는 듯한 기묘함.
저곳으로 병력들이 침투해 들어갔다. 안에서는 기관총이 난사되었고, 그렇게 반역에 찬동하던 이들은 자결의 기회나 구명의 기회 한번 가져보지 못하고 도륙되었다.
사람의 살려달라 구걸하는 말 한 마디보다도, 최후의 전투에 임하여 행하는 영웅적인 연설이나 의식보다도 총알은 빨랐다. 그 앞에서는 어떤 무사의 영웅담도 그저 찰나의 이야기일 뿐.
모두 극적이고 예견된 죽음 대신 갑작스러운 천둥처럼, 도둑놈처럼 찾아온 죽음을 맞았다.
이리 허무하게 죽은 이들을 위해서는 어떠한 민담이나 전설도 세워지지 못하리라. 마치 지워진 것처럼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리라.
조선에서 날아든 탄환이 그렇게 멀리 엣추의 인민들 머릿속에 있던 기억을 지웠다.
“…압도적이지 않은가?”
진보 나가노부는 홀린 듯 말하며 가신을 돌아본다.
“조선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이러고도 필연이 아닌가? 성주들이 이 좁은 땅을 예순여섯 조각으로 갈라 나라를 얻니, 제깟것이 다이묘니, 자찬하고 있을 때 이미 조선에서는 산과 강을 뒤집어 엎을 힘을 얻었네.
이 야마토의 강역은 좁고도 하찮으니 어찌 세계를 바라보는 이가 눈을 줄 것이겠는가?”
그렇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렌뇨와 함께 벌벌 떨었던 그 순간이 바보스럽게 느껴진다.
전일본에 대적하면 어떻게 살아남겠느냐고, 어떻게 저들과 싸워 이길 수 있겠느냐고 겁에 질려 있었건만, 그 수많은 무가(武家)들을 지구상에서 지워버린 뒤 트로츠키는 홀연히 엣추를 떠나갈 뿐이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일본이 아니다.”
저런 진보된 무기, 그리고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이 과연 엣추에서만 이렇게 위력을 행사할까?
그럴 리가 업다. 이 진보 나가노부의 손에 저런 무기가 들려 있다면 좀이 쑤셔서 견디지를 못하리라.
당장이라도 일본 66국을 쳐부수고 천축이든, 명국이든 나아가 장대한 정복 전쟁을 벌이고 싶어 안달이 나리라.
심지어 트로츠키가 이야기해준 세계정세에서 이미 저들은 멀리 몽골과 구라파(歐羅巴)까지 세를 뻗쳤다 하지 않는가?
“…저들은 새로운 세계를 열 것이다.”
무수한 포탄과 총탄의 세례를 지켜보며, 두개골이 열려버린 듯 생각이 뒤바뀐 나가노부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 엣추는 그저 작은 부분일지언정 그 세계에 봉사하면 되는 것이야.”
66국 따위 너무도 작다.
소련이 열어갈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체제 하에서 엣추의 목소리를 키우고 진보 씨가 위대한 가문으로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진보 나가노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몇몇 수행인들만 데리고 여기까지 오느라 품위를 신경 쓰지 못했다.
“큼, 이제 성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예, 가독!”
“이제 나를 나가노부 동지라 부르게.”
“…예?”
“그러지 않는다면 자네 또한 마극종에 반대하는 반란분자였던 것으로 생각하겠네.”
“아, 알겠습니다.”
“나가노부 동지.”
“…나가노부 동지.”
가신은 얼떨떨하게, 감히 그래도 되는지 모르곘다는 듯 음절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발음한다. 이제 곧 엣추에서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가 없게 될 것인데, 적응이 느리구나.
앞으로 바꿔야 할 것이 많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소련과 조선처럼 변혁해야 하리라.
///
-“아버지, 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영지에서는 불안감이 더욱 더해갑니다. 엣추가 겪었던 숱한 반란과 전복 시도는 조선에서의 지원 덕에 겨우 진압될 수 있었다 합니다.
중립을 선언하고 마극종과의 동맹을 공식화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피해가 발생하다니… 저희로서는 몸을 더욱 낮추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영내의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전도 등 대외 활동의 자제를 우선 부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희 영지가 고립되지는 않을지, 전란이 갑작스레 마무리되고 우리가 토벌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불안합니다.
아버지께서는 교토에서 혹여나 몸을 상하지 않으셨는지요? 강녕하시길 바랍니다.
마쓰다이라 지카타다(松平親忠, 도쿠가와 이야야스의 6대조).”
///
-“아들아! 걱정 말거라! 교토는 개판이다! 서로 베고 죽이고 난리도 아니니 화평은 절대 없다! 걱정 말거라!
소젠, 그 미친 작자가 직접 이마데가와도노(아시카가 요시미)를 암살하려 했다지 않느냐?
그리고 소문으로 듣기에는 엣추에서 반란이 일어나니 어쩔 수 없이 마극종에 도움을 청했다 하더구나. 우리도 마극종과의 관계를 적당히만 드러내면 괜찮을 게다!
오히려 렌뇨 선사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거라. 조선이 정말 전함까지 끌고 우리를 도와주러 올지 어찌 알겠느냐?
나도 지병을 핑계로 슬슬 전장에서 빠질 터이니 너는 누카타(額田) 일대를 안정시킬 생각만 하거라. 네 형들에게도 마극종 신도들을 영지로 받아들이라 말해 놓았으니 너도 유념하거라. 이만.”
///
…답장으로 온 편지엔 성함조차 써 놓지 않으셨다.
그러나 문투에 스민 기묘한 호쾌함과 들뜸이 이 편지가 아버지의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필적을 따지는 등 보안을 신경 쓸 필요도 없으리라.
편지를 접고서 누카타의 비옥한 평야를 내다본다.
…이렇게 안정되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이곳 누카타는 평화로웠다. 아버지의 서신에서 전해져오는 교토의 광경은 참혹하고도 유혈이 낭자한데 말이다.
누카타가 속한 이곳 미카와국(三河国) 서부를 형제들이 나누어 장악하며 거대한 마쓰다이라의 영역을 일궈나간 덕분이었다.
물론 교토 근처가 아니었다 뿐이지 이곳도 나름 얽히고설킨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가문 간 전쟁이 이어지는 땅이었으니 이곳도 언제까지나 조용하지는 않으리라. 곧 전장이 될 터이다.
아버지께서도 적당히 이세 가문의 가신으로서 중립을 선언할 명분도 충만했으나, 인근 지역의 맹주인 호소카와 가문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교토로 잠시 나아갔을 뿐이다.
곧 이 일대로 돌아오시어, 교토가 혼란한 와중을 틈타 이곳에서의 정복사업에 집중하시리라.
그리 생각한다면 마쓰다이라 씨의 전망도 나쁘지 않았다.
렌뇨의 ‘예언’에 나온 사건들이 숱하게 어긋나 버렸음에도, 곧 호소카와 이전에 이곳의 슈고였던 잇시키 가문과의 전쟁이 일어날 것은 분명해 보였다.
‘예언’에 따르면 호소카와와 함께 잇시키를 물리치면서 아버지의 영향력과 영지는 더 늘어나고, 훗날 지카타다 자신의 후손들이 번영한다고 하였다.
…물론 렌뇨는 그 뒤의 일은 애매하게 뭉뚱그려 알려줬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니, ‘에도 막부’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 지카타다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괜히 그런 중요한 미래를 미리 알려줬다가 자신의 몸값을 불리려고 시도한다면 렌뇨 입장에서는 귀찮을 일만 늘리는 셈이니 말이다.
지카타다가 생각하는 ‘후손들이 번영한다’는 전망은 그저 ‘지역의 영향력 있는 다이묘로 성장하는 우리 가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소박한 꿈을 가진 이에게는 과분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미카와국 마쓰다이라 씨의 삼남께 삼가 인사 올립니다. 가문 간의 평화와 우애는 도타울수록 좋은 것이니…”
-“흐드러지던 벚꽃이 지고 이제 초록이 짙어져 오니 나물 캐는 아이들의 모습도 정겹습니다. 마쓰다이라 가문 또한 연둣빛 이파리들처럼 생기 있게 번창해 나가는 양태가…”
아버지께 향해야 할 서신들이 자연스레 자신에게 도착한다. 단순히 친목을 위한 글귀들처럼 보인다.
“가독께서는 글귀로 남기지 말고 입으로 이리 전하라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극종과 손을 잡고 싶습니다.’”
그 대신 다른 수단으로, 다른 내용이 전달되어 온다.
지금 눈앞에서 편지를 전한 뒤, 태연히 입으로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고 떠나는 밀사처럼.
…살벌하지 않은가?
결국 진보 씨가 마극종과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바는 모두가 알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심지어 마극종이라면 이를 가는 종파들도 그랬다.
‘사실상’ 엣추와 이곳 미카와에서 마극종 신도들이 박해 없이 산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사실상’ 마극종 신앙을 드러낸 상인들이 대조선 무역품들을 두 곳에만 집중해 풀어놓지 않았는가?
‘사실상’ 그 영주들이 어떤 종파에 경도되어 있는지 거의 공인되어 있다시피 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나가노부가 그 사실을 ‘공식화’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래도 면피용 변명거리라도 준비해놓는 것과, 대놓고 마극종임을 드러내는 것은 천양지차다. 구태여 마극종과의 연관성을 숨기지 않으려 하는 태도 자체가 하나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아마 엣추의 경우에는 그 선언이 선전포고와도 같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마쓰다이라 가문은 진보 가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더욱 납작 엎드린 채 소극적인 세력 확장만을 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모두가 마쓰다이라 씨가 ‘붉은 영주’ 가문임을 안다.
그렇기에 이렇게 다양한 가문들에서 마극종과의 접점을 마련하고픈 마음에 접근해 오는 것이리라.
‘…교토에서 엣추 사태가 지방 영주들의 반란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였지.’
만일 그렇게 해석한다면?
엣추 사태는 외세가 자신들의 앞잡이 마극종을 등에 업고 침공해온 참사가 아니라, 진보 씨가 반란 진압이 힘에 부쳐 어쩔 수 없이 조선에 도움을 요청한 지방적 사건으로 격하된다.
진보 씨의 무능함과 섣부름에 대해 책망하고, 조선에 ‘내정간섭’에 대한 엄중경고를 할 수 있을지언정 더 이상 선을 넘기는 어려우리라.
막말로 조선이 엣추에 보냈던 그 병력을 교토에 투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허면, 외세의 침공도 아니고,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도 아니라면, 다이묘들은 엣추 사태에서 무엇을 눈여겨보겠는가?
-“저희도 압니다. 조선국은 예전부터 화약 무기를 귀히 여겨 그 비결을 일본에는 보여주지 않았지요. 그러나 그 총통을 단지 빌려오는 것쯤은… 안되겠습니까?”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그대들이 조선의 화약 무기를 스리슬쩍 복제해갈지 어떻게 알고! 우리는 저 바보들과는 다르오. 크흠, 대가를 지불할 테니 조선의 군병이 용병처럼 와줄 수…?”
-“저희는 군병 따위 관심 없습니다! 어찌 조선의 폐하께옵서 일개 번방의 갈등에 끼어드시겠습니까? 그저 무역량을 늘리고 마극종의 상인들이 저희 영지에도 부를 베풀어 줄 수 있을지를 여쭙고 싶을 뿐입니다, 헤헤.”
위력.
엣추 사태 전체가 조선군의 위력을 시연하는 행사가 되었으니, 역설적이게도 마쓰다이라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공격할 간 큰 이들은 없어지다시피 했다.
만일 정말로 조선군이 마쓰다이라를 위해 미카와에 상륙한다면? 그러면 이번에야말로 미카와가, 아니 일본 전역이 어찌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지카타다는 생각한다.
엣추 사태 덕에 반사적으로 얻게 된 이 막대한 대외적 이익, 그리고 지금 전란의 와중에 애걸하듯 다가오는 동맹 요청들.
‘…진보 씨의 가독 나가노부는 열혈 공산주의자라지? 렌뇨 선사를 스승으로 뫼시면서 일본에 공산사회를 건설한다는 생각에 여념이 없다지?’
바보 같은 일이다.
다스리는 자, 결정하는 자는 무언가에 열광해 있어서는 안 된다. 머리를 차분히 식히고 멀리서 전략을 조망해야 한다.
사회주의적인 모양새를 취하기는 해야 한다, 조선과 렌뇨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그러나 굳이 엣추처럼 사방팔방에서 적들을 끌어 모을 필요는 없다.
분명 다이묘들 중에서도 조선에 지원을 받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 또한 적당한 영지 내의 개혁은 용인할 만큼의 여유는 있으리라.
적당히 협동조합 흉내도 내고, 구휼사업과 고아원 등을 활성화하며, 슬슬 의전에서도 도노(殿, 님) 대신 카마라도(Camarade, 동지)나 도우시(同志, 동지)라는 호칭을 쓰면 원산에서도 봐주지 않을까?
…다이묘 주체의 무늬만 갖춘 사회주의라니, 뭔가 마르크스의 가르침과 많이 달라진 것 같기는 하다만.
뭐, 저 깡촌으로 들어가면 ‘마루쿠스노카미(マルクスノカミ)’와 ‘엥게루스노미고토(エンゲルスノミコト)’를 숭상하는 마극종 밀교도 있으니 이 정도면 훌륭한 사회주의 아니겠는가?
아무튼 이런 식의 유화책으로 서서히 동맹을 늘려 나가고, 마극종 내에서 마쓰다이라와 그 동맹 가문들의 목소리를 늘려간다면?
“잘만 하면 일본의 절반을 차지할 수도 있을 터!”
마쓰다이라를 중심으로 뭉치는 사회주의자 영주들의 연맹, 그리고 독자적 세력화.
…생각을 마치고 보니 영락없이 ‘붉은 막부’의 탄생이다. 그를 깨닫고 나니 지카타다는 순간 자신의 마음속에서 부풀던 야망의 크기에 놀라 잠시 몸을 떤다.
큰 꿈을 꾸지 않던 이도, 마음을 부풀게 한다. 야망이 없는 이도, 나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것이 난세의 마력이다.
“…일본 66국의 맹주가 된다.”
천하인(天下人)이 된다.
그 생각이 마쓰다이라를 사로잡았다.
***
/ 작가의 말
이번 챕터의 소제목은 제가 재미있게 보았던, 2006년 NHK 대하사극 ‘공명의 갈림길(功名が辻)’의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1460년대 자생적 군국주의의 발전
“트로츠키 동지가 직접 일본으로 군대를 이끌고 갔다니?”
“그래! 드디어 연극에서만 보던 그 전설이 극동에서 다시금 쓰여지는 걸세!”
“봉건제와 초기 자본주의가 발달한 일본이니 발빠르게 공산주의를 이식하기 좋을 것이네! 어쩌면 조선보다도 더!”
“세계혁명 우라! 아시아 혁명 우라!!”
친소파.
“일본 전역을 혁명한다면 아마 어떻게 되겠나? 조선보다 훨씬 넓고 비옥하고 따뜻한 평야에 세워질 농장들을 생각해보게!”
“일본에는 조선과 다르게 어떤 다이묘도 통치하지 않는 원시적인 농민 공동체들이 있다지? 그곳에 비료와 인력 농기구를 보급한다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나?”
인민주의자.
“우리 조선민족이 아직 저발달 상태에 놓인 일본인들의 혁명을 도와주는 것일세! 그곳에 조선인들을 이주시키고 문명한 의관을 퍼뜨려 힘써 교화한다면 어찌 조선민족과 일본민족이 구분되겠나?”
“일본은 중화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는 땅일세. 그곳에 진출함으로써 우리 또한 중화로부터 한발짝 멀어져 독자적인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겠나?”
대신파 민족주의자.
트로츠키가 한양에서 조선국왕에게 인사 올리고 떠난 뒤, 정파를 가리지 않고 모두의 기대감이 단 한 단어로 요약되었다.
‘전쟁!’
전쟁과 확장에 대한 기대감이 조선 8도를 온통 전염시켰다. 고작해 봐야 창칼로 싸우는 일본군을 근대적 총기로 손쉽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퍼졌다.
“혁명을 전파하는 거요!”
“옳소! 반대하는 왜놈들은 총알과 포탄으로 제압하고! 반항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이겨낼 수 있소!”
“명국으로부터의 자주를 선포하는 것은 어떻소? 대가한(大可汗)이 동맹이거늘 어찌 아국의 주상 전하께옵서는 칭제하지 못하신다는 말이오? 명국 또한 남북조로 쪼개져 천명을 잃지 않았소?”
그렇다! 6주만에 교토로 밀고 가서! 교토에서 조선 사회주의 제국을 선포하고 주상 전하를 뫼시고 가서 황제로의 즉위식을 올리는 것이다! 조선이 곧 진정한 조선의 동방의 프로이센으로…!
입으로는 혁명이니 뭐니 하지만 모두들 정복전쟁이라는 감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듯하였다.
“더 넓은 강역! 더 많은 인민! 더 위대한 조선!!”
“우와아아아아! 트로츠키 동지 천세! 주상 전하 천천세!”
그렇다. 그냥 군국주의적 열성이다.
그리고 이 기대감은…
“상황은 무사히 정리되었고. 엣추는 안전하게 해방되었소.”
“…고작 엣추만 ‘해방’되었습니까?”
“뭘 그리 아쉬워하시오, 하위지 동지? 애초에 우리는 엣추에 새로 성립된 사회주의 정권을 지원하러 간 것 아니오?”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트로츠키의 귀환 이후로 펑, 하고 꺼졌다.
“난… 난 사실 이럴 줄 알았네! 사회주의 국가가 침략 전쟁이라니 말이나 되는 일인가?”
“자네가 말하지 않았던가? 큐슈는 전라도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에이 제길, 이럴 거면 뭣 하러 군병을 보내어서는….”
“그러게 말일세! 강역이 늘기를 하였나? 재물이 늘기를 하였나?”
그리고 꺼진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변하고.
“트로츠키 동지, 소문이 조금 부풀려진 거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붉은 군대 100만을 건설한 것은 과장 아닌가?”
“내가 들었는데 소련이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실패한 것이 스탈린 잘못이 아니라 트로츠키 동지의 실수라 들었네!”
“흠? 뭐라 하였… 자세히 말해보게나!”
실망감은 곧 회의감으로 변한다.
그럴 만했다. 하위지와 스피리도노바가 조선과 원산 곳곳에서 띄워 놓은 기대감은 곧 조선인들의 마음속에 불타오르는 열정을 심어 놓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