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25
“더 넓은 조선! 그게 안 된다면 더 넓은 소련이라도!”
“전쟁 한번 시원스레 붙어서 이기는 꼴을 보고 좀 싶으네!”
그리고 그 부담은 온전히 트로츠키가 뒤집어쓰게 생겼다.
“흐으음… 이거 낭패로군.”
“트로츠키 동지, 동지 또한 이를 이미 예견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분명히 ‘망할 군국주의자들이 난리를 치겠지만 내가 누구인가! 붉은 군대의 건설자 아니겠는가! 까짓 거 손발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전과만 가져다주면 다들 만족하지 않겠나?’라고 하셨습니다.”
“….”
“호언하신 바와 같이 승리하셨사오나, 때문에 일본 전체를 정벌하자는 공론이 들끓지 않습니까?”
“…그건, 맞네만. 조선 인민의 군사적 열정이 이리 강렬할 줄은 몰랐구만 그래. 완전히 예상 밖일세.”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전쟁이 너무도 많은 것을 바꿔 놓지 않았습니까? 아조가 직접 치른 것이 아님에도 사세가 이러하옵니다.”
신숙주의 지적에 트로츠키는 한숨을 쉰다.
그렇다. 정말로 ‘많은 것’이 바뀌기는 했다.
지나치게 무리한 것일 수도 있었다.
체제적 자신감이 너무 벅차올라서는, 유라시아 반대편의 루스까지 총알을 배달한다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우고, 급히 중형 증기선을 건조하고 야포를 설계하여 트로츠키가 직접 일본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화학비료 콤비나트가 완성된 걸 어쩌겠나? 무연화약이 개발됐는데? 안 쓴다고?
그걸 참아낸다면 ‘적백내전의 천재 군령관’이란 이름에 무한한 자부심을 품는 트로츠키가 아니다.
농업공장이든, 협동조합 농장이든, 지주들이 운영하는 대규모 과수원이든 이 미칠 듯한 풍년은 이전의 모든 혁신을 비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일단 대일 무역 규모를 두세 배로 확대하여 이 식량을 밀어내기 하고…”
-“농업 노동자의 수 자체를 줄여야 합니다! 나머지 인력을 산업 시설로 돌리고 인프라를 확충해야…”
-“철도를 대대적으로 건설합시다! 언제까지 수운에 의존해야 합니까?”
-“옳소! 경성을 중심으로 경인선, 경의선, 경부선, 경목선을 세우고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겁니다! 일단 가장 먼저 일본 상인들이 드나드는 경인선이나 몽골과 교류하는 경의선부터…”
그렇게 철도 건설 사업에다, 레닌그라드 건설 지원 사업까지.
또 전쟁 지원도 해야 하니, 야포 생산, 기관총 생산, 증기선 조선소 건설, 항만 건설, 탄약공장 건설 등등…
주체할 수 없는 부의 증대를 맞이하여 조선과 원산은 급격한 체질 전환을 겪었다. 마치 갑자기 키가 크면 살이 트는 아이처럼, 갑작스러운 팽창에 모두가 수선을 떨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는 혁명의 병참기지가 되었네.”
그 말에 신숙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주의의 병기창, 조선.
조선이 세계에서 새로이 얻은 역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던 두 사람은, 곧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주의가 흐트러진다.
“트로츠키 의장 전하, 명국 양왕(襄王) 전하께서 다시금 만남을 원하십니다.”
“…기다려 달라고 전해주게.”
그러고 보니 손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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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퍼졌는지 모를 ‘사회주의의 병기창’이라는 캐치프레이즈, 그러나 출처가 없다 하여 그 표현에 근거마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역할에 달린 명예와 의무를 지탱하기 위하여 조선과 원산은 어마어마한 양의 군수물자를 마련했다. 또는 그 군수물자를 충당하기 위한 부차적인 인프라를, 기술들을 마련해야 했다.
많은 이들의 기대 아래 무연화약과 기관총의 개발이 이루어졌다.
물론 의용군이 원래 가져온 1930년대의 경량화된 기관총은 만들 수 없었고 수레로 옮겨야 할 만큼의 무게와 크기가 나왔으나 이 정도도 만족스러웠다.
또한, 더 많은 이들의 기대 아래 경원선과 경인선이 완공되었다.
이제 일본인들을 도성 근방에서 마주치는 것은 낯선 일도 아니게 되었다. 일본 각국의 사절들이 제물포에서 용산으로 하루만에 내달려 와서 입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경인선의 건설이 이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군수물자 같은 경우, 웬만하면 기존의 산업시설들과 맞닿아서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는 편이 나으니 원산에서 생산한다.
그리고 그 생산품이 경원선을 타고 원산에서, 한양으로, 다시 경인선을 타고 한양에서, 제물포로.
다시 종착역인 제물포에서 수운을 통해 의주나 삼남으로 떠나고, 결과적으로는 북쪽의 루스와 남쪽의 일본을 향하여 막대한 양의 물자들이 뻗어 나갔다.
마치 지구를 움켜쥐려는 탐욕스러운 거인의 두 팔처럼 말이다.
그런 식으로 조선은 전국토가 완전히 다시 짜이고 있었다.
전쟁이 나니 군수물자를 운송해야 하고, 그를 위해 철도를 부설한다.
철도를 깔아야 하니 제철제강소들이 늘어나고, 철도를 끊어가려는 도둑들이 늘어나니 그 경비병들을 대량으로 고용한다.
경비병들은 그냥 서있기만 하면 되는가? 아무리 그래도 간단한 총기와 제복를 갖춰야 하고, 그들에게 줄 봉급과 그들이 각 근무지에서 머무를 숙소가 필요하다.
더하여 그 모든 과정을 관할할 조선과 원산의 관청들이 신설되니, 철도인민위원회가 소련에 설치되었고, 조선 또한 철도청이 새로이 등장하였다.
변화란 그렇게 도미노 같았다.
간단해 보이던 체질 개선은, 곧 오장육부의 형태를 바꾼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양왕에게는 조선이 별천지로 보일 수밖에.
“그렇습니까, 양왕 전하? 그래 봐야 중국에 비하자면 그저 변방의 산물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대들의 말대로라면 천하는 둥근 모습이니 가운데가 어디 있으며 변두리는 또 어디 있겠소? 옛사람의 말대로 그저 배우고 익히는 것을 즐기며 스스로를 닦아 나갈 뿐.”
“아름다운 자세입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배움의 고삐를 언제나 놓지 않는 법이죠.”
현란한 발음의 중국어가 양왕이 데려온 역관의 입을 통해 조선어로 통역되었고, 다시 트로츠키가 조선어로 답하면 조선측 역관이 다시 중국어로 재잘거렸다.
-부우우우!
“허, 저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를 않습니다. 성대가 무슨 무쇠로 된 짐승이 울부짖듯 하니…”
“하하, 기적 소리만큼 시끄러운 것도 찾기 힘들겠죠. 이해합니다.”
농업공장들이 세워진 부지들은 효율을 위해 원래부터 곡식이 잘 자라던 평야지대, 그리고 교통이 편리한 상업 중심지를 골랐었다.
그런 만큼 협동조합 농장의 효율성이 점차 증대되고, 기근의 영향도 줄어 농업노동자의 수를 감소시켜 나가던 조선의 기조와 맞물려 공업도시가 성립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참으로… 굉장하오. 저 마차의 행렬들이며, 넓고 견고하게 뻗은 건물이며…”
지금 양왕 주첨선이 내다보며 감탄하는, 이곳 함흥이 대표적이었다.
인근의 장진강 수력발전소에서 대량의 전기를 공급받으니, 그를 통해 암모니아를 생산해낸다. 암모니아는 동해에서 많이 잡히는 정어리의 기름에서 얻어낸 글리세린과 더해져 화약이 된다.
“그리고 저것이! 바로 이 동해바다의 정어리와 장진강의 물줄기가 합쳐져 만들어낸 힘입니다!
라쎄(lancer, 발사)!”
-쾅! 콰광!
기적 소리에 놀란 그에게 이번에는 야포를 바다 위에서 펑펑 쏴 주고 있었다. 고폭탄이 일으키는 굉음과 물보라에 주첨선은 감탄하여 물개박수를 칠 뿐이었다.
‘몽골이 구애하고 명나라가 감탄하며 일본이 전전긍긍하는 조선의 위대한 국력!’
‘일본 조정이 제발 트로츠키만은 안 된다며 벌벌 떨던 이유는? 엣추를 벌벌 떨게 만든 조선의 비밀 무기 그 정체를 밝히다!’
…왜 주첨선의 모습을 보며 이런 문장들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자부심이 생기고 기분은 좋다.
어차피 지난 번에 산업시설들을 들킨 김에 그냥 그에게는 마음껏 국력을 과시해주고 있었다.
“맙소사, 정말 대단합니다! 원산의 국력이 이리 위대하다니… 실로 놀랍습니다!”
1462년에 조선에서 농업공장과 뜻밖의 만남을 가진 뒤, 조선에 선망이라도 생겼는지 북경발 사신단에 항상 끼어 오던 주첨선이다.
그때마다 원산에 한번 둘러보고 싶다느니, 그 이름 높은 트로츠키 전하를 만나 뵙고 싶다느니 말이 많아, 결국 견디지 못한 이홍위가 그를 원산으로 배달 보내 버렸다.
하지만 주첨선이 북경에서 힘써준 덕인지 사신단에게 단 한 번도 경제적 요구 사항이 없었다는 점을 볼 때, 그의 존재는 조선과 원산의 입장에서 이득이었고 양국의 소중한 우호 인사였다.
물론 처음에는 귀찮기도 하였다. 처음 그가 도착했을 때 트로츠키가 소련의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데만 수일이 걸렸으니 말이다.
또한 천조의 종친이니만큼 그 본인은 괜찮다 하더라도 신경 쓰고 대접해줘야 할 것들이 많아 제1 외무인민위원회의 관료들은 한동안 격무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의 원산행이 한 번, 두 번 이어지다 보니 이제는 다들 접대에 요령이 생겨 다들 그를 그냥 저냥 외교적으로 도움이 되는 친소파 인물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다.
게다가 명나라가 ‘ㅁ/ㅕ/ㅇ’으로 쪼개졌다지만 북경에서 차기 황위 계승자로 거론되는 중요인사이니만큼 극진한 대접을 위해 다들 신경 써주었다.
…게다가 지금 경태제의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수명이 얼마 안 남았으니,
이 자가 유력한 차기 황제다. 아니 어쩌면 이미 명국의 실권자다.
원 역사에서는 30세 나이에 죽었던 경태제가, 원수들에 대한 처절한 피의 보복으로 생기를 되찾았는지 몇 년 더 국정을 운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 천수는 어쩔 수 없고 에센에게 치욕당한 경험이 너무 강렬했는지 슬슬 앓기 시작하다가 국정 운영 능력조차 잃어버렸다.
그리고 모든 권력이 양왕 주첨선에게 쏠린다. 트로츠키는 지금 명 북조(北朝)의 지배자와 담화를 나누는 것일 수도 있었다.
“철도로 먼 도시들을 연결하고, 도시 안에서는 궤도 마차가 시민들을 실어 나르니 움직임이 몹시도 안락합니다.
본래 도로를 닦으면 적들이 쳐들어오나 걱정해야 할진대, 철로는 그 사이를 끊어놓으면 적들이 사용할 수 없으니 편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걸 북경에 깔지 못 한다니 참으로 서글플 뿐입니다. 군병을 위한 날붙이 만드는 데 쓸 강철이 급하니 선로에 사용할 금속이 어디 남아나겠습니까?”
“명나라 또한 현명한 지도자를 만난다면 원산처럼 될 수 있을 겁니다, 하하.”
트로츠키의 말에 주첨선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 높이 청운을 타고 오른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북경 인근을 이리 융성하게 만들어 놓을 것이오…!”
아무튼 이렇게 트로츠키가 직접 나와서 함흥과 원산 일대를 유람시켜 준 뒤에야 그는 본국으로 돌아갔다. 게다가 공산당선언이나 이런저런 서적들까지 싸들고 갔다.
…혹시 또 모를 일이다. 명나라에 계몽군주가 나와 프로이센식 철혈의 근대화를 이룩할지 누가 알겠는가? 이미 개혁을 시도하여 해금령을 해제하고 조선과 자유무역을 행하고 있기도 했다.
그래 봤자 지금으로서는 화북지역의 생산력이 부족한데다 남북으로 적을 낀 상태라 그의 전망이 밝지는 않지만.
뭐, 남 걱정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트로츠키 동지? 마침 잘 돌아오셨습니다. 한양으로부터의 전갈입니다. 곧 몽골로 보낼 사절단에서 어떤 것을 논의할지 이야기해야 하겠다며…”
“잘 알겠네. 고맙네, 에티앙블 동지.”
지금 급한 것은 조선의 상황도 마찬가지니.
에센이 곧 루스 전역으로부터 돌아온다.
이제 그와 함께 세계를 경영해야 할 차례다.
1460년대 민족적 열성과 국제주의 간의 긴장과 착종
언제나와 같이 한양은 시끄럽다. 김종직이 ‘선구적 대중선동’ 이후로 일약 정치적 거물로 떠올랐으니 그와 같이 이름을 얻어보려는 연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탓이 컸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연설장소는, 바로 고관들이 오가는 데다 잘하면 궁의 관심까지 받을 수 있는 광화문 앞 육조거리였다.
“여기 이 사람의 말 들으러 모이신 제현(諸賢)들께 아뢰오리다!”
지금 병조 청사 앞에 설치된 연단에서 떠드는 저들처럼 말이다.
“청중 제현들께서 가장 바라는 바가 무엇이오? 바로 혁명의 확장 아니겠소!”
“옳소! 옳소!”
“동아시아 혁명 우라아아!”
“농촌 개혁 우라아아아아!!”
“대조선국 천세 천천세!”
“주상 전하 천천세!”
각자의 계파에 따라 겉으로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하나, 청중들의 반응은 파고들어가면 모두 그 결이 같았다.
그들은 ‘확장’이라는 말에 열광했다.
엣추에서의 군사적 업적은 단지 갈증을 일깨우는 마중물이었을 뿐, 목마른 자의 욕망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마치 오래 굶은 이가 게걸스레 음식을 삼키듯,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민족적 자부심과 승리감에 고취된 인민들은 ‘승리’와 ‘토멸’, ‘압도’와 ‘정복’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머리를 비우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트로츠키 동지가 잠시간 잘못 판단하였소! 일본의 낙후된 봉건성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전쟁이라는 강제적인 수단이 필요한 것이오!”
“옳소! 전쟁을 통해 문호를 열어야 한다!”
“무기도 있고 병력도 있고 자원도 있는데 왜 전쟁을 안 하는가!”
…그리고 그 모습은, 경복궁에 새로 세워진 2층 누각을 통해서도 멀리 내다보였다.
연사가 확성기를 끼고서 외치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이 구중궁궐에까지 스멀스멀 들려오던 참이었다.
“…트로츠키 동지께서 불편하시겠소이다. 내 인민의 목소리 듣기를 기꺼워 하나 동지의 당연한 행보를 실책이라 말함에는 불경한 의심이 끼어 있으니 나는 견디기가 어렵소.”
“저는 괜찮습니다, 조선국왕 전하.”
“아니오. 어차피 집회의 자유는 경복궁으로부터 일정 거리 내에서는 제한되오. 대략 500미터 반경 내에서는 퇴각을 명할 수 있으니, 내 금군에게 명하여 저들을 운종가 쪽까지 비켜보겠소.”
트로츠키가 괜찮다 말리는데도 이홍위는 구태여 금군을 불러다 저들에게 이동 명령을 통보한다. 곧 간이 연단은 해체되고 청중과 연사는 각기 흩어져 큰길로 향한다.
이제야 사방이 조용해진다. 이홍위는 마음 한 켠의 불편이 가시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하던 이야기를 계속 나누어 보도록 하겠소. 만주족의 민족국가 설립을 제의할 거라 하였소?”
이홍위가 개운한 얼굴로 말을 잇자, 트로츠키는 뭔가 석연치 않은 듯 그를 바라보다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에센이 루스 전역에서의 성과를 대강 알려주었고, 더하여 수뇌회담을 제의했다. 트로츠키는 직접, 이홍위는 신숙주를 대리자로 참석시키리라.
“예, 전하. 아무래도 이번 전쟁 지원의 대가는 만주 할양 정도는 요구할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에센에게 다시금 불패의 신화를 안겨주었고, 루스 방면 국경의 대붕괴를 막아냈습니다.”
“흠… 그러하다면 알겠소.
…작금의 조선인들도 좋아하겠구려.”
정복과 확장을 부르짖는 조선인들에게 만주국은 조선의 확장으로 느껴질 테니 말이다.
동맹인 몽골을 도와 서융(西戎)을 무찌르고 얻어낸 당당한 영토라고 할 터이다.
혁명의 확장이니, 문명개화니, 하는 겉치레를 치워내면 결국 그들이 바라는 것은 전쟁영웅 트로츠키의 활약상이었다.
혁명 창극 중에서도 적백내전을 다룬 작품들이 갑작스레 인기를 끌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전면전을 꺼리던 트로츠키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홍위 또한 솔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내 걱정이 몹시 크오. 이리 주전론자들이 조정과 민간에서의 여론을 주도하니 이를 어쩌면 좋겠소?”
저 날카롭게 빛나는 총칼에, 대기를 찢어발기는 기관총의 굉음에, 군홧발 아래 밟히는 이국의 영토에 흥분한다는 사실을.
“조선국왕 천천세!”를 외치는 병사들이 이국을 정복하는 일이 썩 기분 나쁘지 않음을 말이다.
팽창에 대한 욕망이 속에서 강물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홍위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 * *
마찬가지로, 이홍위에게는 부끄러운 일이 하나 더 있다.
공산주의라는 것에 대해 얼치기처럼 배웠을 때, 그는 트로츠키에게 야심 찬 포부를 밝혔었다.
자신이 이 땅에 공산주의를 이룩하겠노라고, 자신의 절대권력으로 미개한 조선인민들을 이끌어 문명화하겠노라고.
거기에 트로츠키는 이렇게 답했다.
-“전하는 한 사람의 군주입니다. 전하는 역사의 심판자가 아닙니다. 노동계급의 대변자도 아닙니다.”
이홍위는 홀로 역사의 진보를 이끌어낼 위대한 철인군주가 아니었다.
-“받아들이십시오. 스스로가 공산주의에 매료되었음을, 그러나 스스로가 군주 된 몸이기에 변화가 두렵기도 함을.”
역사적 의지의 담지자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겁먹은 일개 소년이었고, 불장난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이홍위는 ‘가부장적인 전제군주’였다. 그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가 걸친 복식과 왕관이 그를 그렇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점차 커져가는 머리통에 익선관이 흘러내리지 않게 되고 용포 또한 그 치수가 맞아 들어가게 되었으나, 몸의 불편함이 사라진 것과는 별개로 마음 속의 가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왕으로서 최선을 다해왔다고만 말하겠다.
트로츠키라는 스승과 함께, 어떻게든 헤쳐온 순간들이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 그는 흔들리고는 했다.
10년 전의 트로츠키 또한 그 심정을 짐작했는지, 돋보기 안경을 벗고 가만히 이홍위를 내다보았었다.
경연이 끝나고, 따로 내밀한 질문이 있어 그를 불러낼 때가 있었다. 렌뇨를 일본으로 떠나보내던 1454년의 그때가 그랬다.
지금보다 10년의 세월만큼 더 검고 무성한 머리칼과 염소수염이, 바깥에서 새어들어온 바람에 따라 살랑살랑 휘날린다. 그는 말없이, 주상의 반응을 기다렸다.
이홍위는 말을 꺼낸다.
“나는 알고 있소. 나는 조선국의 국왕이오. 한때 그대가 나에게 그 교훈을 뼈저리게 심어주었지.”
그저 어느 공산주의자 소년이 아니라, 한 나라의 군왕이었다. 그에게는 군왕으로서 가져야 할 의무감과 고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