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27
“…소련 의장 동지. 이는 내 자그마한 선물이라오. 부디 우애와 화친의 의미로 이를 받아주시길 바라오. 거절은 너무도 마음 아픈 일이라오.
그대 또한 루스인이 아니오? 부디 루스인들의 목숨을 살리고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주실 수 없겠소?”
역시 누가 몽골제국의 카간 아니랄까, 트로츠키가 거절하는 듯하니 바로 ‘루스인들의 목숨’이 협상 조건으로 나온다.
애초에 이어질 협상에서 기선제압용으로 이런 ‘깜짝 이벤트’를 준비한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짓 아니던가? 트로츠키는 정중히 그에게 응답한다.
“폐하, 폐하의 안배는 분명 감사한 일이오. 그러나 두 가지 지적하고픈 점이 있소.
첫째, 저는 더 이상 조선국의 섭정이 아니오.
둘째, 저는 원산이나 소련의 군주가 아니며 원산은 공화(共和)를 지향하오.”
“…그래서 소련 의장 동지, 어떤 말씀을 하려 하시는 것이오?”
“루스의 충성 맹세를 받는 것이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 개인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거라 볼 수 있겠습니다, 카간 폐하.”
“그렇습니다. 인군(人君)이 아닌 이에게 어찌 나선(羅禪, 러시아)의 뭇 왕후장상들이 충성을 맹서할 수 있겠습니까?”
옆에서 스피리도노바와 신숙주가 슬며시 암시를 던지니 그제야 카간의 얼굴 표정 또한 풀어진다.
“아… 그렇소? 귀국의 관제와 상황에 대해 무지하여 무례를 저질렀구려. 사과드리오.”
‘트로츠키’는 충성맹세를 받을 수 없다.
대신 다른 무언가가 충성맹세를 받으면 된다.
“공화로서 다스리는 나라라면 옛 대진국(大秦國, 로마제국)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니 곧 원산국에 충성을 맹세하면 되겠소?”
“그 역시 훌륭한 의견이나 그리 따를 수는 없겠소. 원산과 소련은 같은 것을 이르는 이름이 아니라오.
루스는 여러 독립된 국가들이 이어진 지역이고 원산 또한 일개 국가에 불과하니 그리할 수는 없소. 다만…”
트로츠키가 그 뒤로 이런저런 복잡한 법제적 사항을 설명하니 에센은 물론이고 몽골의 이런저런 관리들조차 알아듣기를 어려워한다.
이 시대에 민족자결이니 주권 보장이니 하는 소리를 알아들을 이는 몽골의 궁정 내에는 없었으니.
결국 트로츠키의 현란한 설명에 따라 나온 제안에 에센은 물론이고 여타 루스의 영주들 또한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귀찮은 조정 절차가 끝나니,
“저희 루스의 모든 영지귀족들, 군주들, 보야르들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과 그 신성한 공산주의적 대의에 영원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이를 모스크바의 대공(Великий князь)으로서 이반 바실리예비치 류리크가 대표로 선언합니다.”
“나,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는 소비에트 인민들의 주권과 그를 반영하는 적법한 선거 절차에 따라 권력을 위임받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의 인민위원평의회 의장으로서 그대들의 충성 맹세를 승인하오.
그대들에 대한 법리적인 해석과 정당한 지위와 대우가 곧 소비에트 대회와 인민위원평의회의 의결을 거쳐 결정될 것이오.”
카라코룸에서 ‘공산주의적 대의에 영원한 충성을 맹세’한 봉건 영주들이 기백 명씩 튀어나온다.
레닌이 이 광경을 봤더라면 게거품을 물었으리라.
뭐, 준다는 데 안 받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더하여 나선총관부의 종주권 역시 ‘소련’에 위임하는 바가 맞겠소.”
“세세한 배려에 감사할 뿐이오, 몽골 카간 폐하.”
겸사겸사 에드워즈의 소속도 다시 소련으로 바꿔주었다.
…나라 수십 개의 소속이 ‘겸사겸사’ 바뀌는 거스름돈 취급이라는 데에 트로츠키는 다시금 전율한다.
안 된다. 이게 다 기선제압을 위해서다.
루스는 몽골인들에게는 주요한 모피 생산지다. 게다가 전쟁이 이어지는 와중이니 이런 군사적 요충지를 소련에 통째로 넘겨주려 하는 데는 분명 더한 이유가 있다. 아직 뭔지는 모르겠다만.
트로츠키가 약간 얼이 빠져 숙소로 돌아오고, 여타 사신단 일행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니 원산인과 조선인을 가리지 않고 발칵 뒤집혀 토론과 인신공격으로 하룻밤을 꼴딱 새웠다.
-“트로츠키 도, 동지가 독단으로 일을 처리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그걸 거절할 수는 있었겠소? 동지도 봤잖소, 그 거절하면 전쟁이라도 감수할 듯하던 분위기를! 그리고 루스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선물’ 아니오?”
그리고, 다음날이 지나니 다시 이어지는 회담.
다행히도 어제와 같은 ‘선물’은 없다. 이제야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범위 내로 돌아온다.
“숙소가 불편했나 보오? 숙면을 취하지 못한 듯 보이니 사과드리오.”
에센의 저 자신만만한 표정만 빼면. 저 웃음기를 띈 근엄한 얼굴을 보라.
지금 밤새 이어진 토론에 초췌해진 조선과 원산측 인사들을 보며, ‘내가 사절단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나는 타인의 컨디션을 지배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뿌듯함을 느끼는 게 분명하다.
몹시 괘씸하다.
“몽골제국의 카간 폐하, 우리로서는 루스를 받을 만한 이유가 없다 생각하여 루스인들의 충성맹세를 물리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스피리도노바가 한 마디 던져주고,
“옳습니다. 폐하께옵서 조선과 원산과의 신뢰관계를 중시하신 바는 알겠으나 저희 쪽에서 어떠한 대가도 없이 이리 땅과 백성을 받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신숙주가 운을 띄우며,
“어제는 너무 경황이 없어 얼떨결에 맹세를 받았으나, 원산과 조선의 사절단이 함께 논의한 결과가 그러하였으니 이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취소하려 하오.”
트로츠키가 받아친다.
이것도 사실 말도 안 되는 강짜 부리기다. 봉신계약이 무슨 부동산 가계약처럼 ‘마음이 바뀌었다’ 한 마디로 취소 가능한 것 취급이라니.
“허… 허나 어제 그들과 봉신계약을 맺지 않았소? 분명히 그들의 충성을 받아들이겠다고 이야기했잖소? 그를 물릴 수는 없는 법 아니겠소?”
“엄밀히 말하자면 봉신계약을 맺은 바는 없습니다, 폐하. 소련에서는 그저 급조한 절차에 따라 그들의 ‘충성 맹세’를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그들의 지위와 대우는 이미 소련 정부에서 자체적인 법리적 과정을 통해 결정하겠다 하였으니 이를 어찌 일반적인 봉신계약이라 볼 수 있겠습니까?”
신숙주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논리적 곡예를 선보이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트로츠키가 논의를 매듭짓는다.
“소련의 인민위원평의회 의장으로서 덧붙이자면, 어제의 결정은 초법적인 사항이었기에 소련 내부적으로도 의논이 필요한 사항이오.
우리 정부는 법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만 움직이니 어제의 결정은 의회의 사후적인 활동에 의해 다시 규정될 수 있다는 법적인 해석이 나오게 되오.”
즉, 엿이나 먹고 원하는 바나 말하라는 뜻이다.
에센은 당황하여 주위의 신하들과 뭔가 속닥거리고 미간을 몇 번이나 주무르다가 결국 토해내듯 답을 내놓는다.
“…그대들이 나에게 거래를 강요하는군. 알겠소. 내 대가를 말하리다.”
에센의 손짓에 어느 아랍인이 지도를 가져온다. 새로 성립된 몽골제국의 주요 교역로와 주변국의 위치를 축적과 비례에 상관없이 그려 놓은 것이었다.
에센은 아마 유럽일 육지 뭉텅이와 중국 사이 어드메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곳이 주치인 울루스요. 우리 제국의 영내로 되어 있으나 여타 점령지들과 같이 강고한 자치권이 확립되어 있소.”
“그러리라 예상했습니다. 카간 폐하의 확장 속도에 비해 제국이 상당히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소. 이들의 기득권을 거의 건드리지 않았기에 짐의 위업이 가능하였소. 헌데…”
다시 가리키는 곳은 여타 제국 영토와는 다른 곳으로 칠해진 북방의 끝.
“이곳 루스의 영유권을 짐이 직접 가져가니 주치인 울루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소. 가소롭지 않소? 다 망해가던 나라를 살려주었더니 이리 불만을 품다니.
황금씨족의 피가 섞였다 하여 이리 오만하다오.”
트로츠키는 그의 비웃음 속에서 열등감과 불안감을 느꼈다. 에센이 황금씨족이 아니었기에 겪어야 했던 그 많은 불안정과 반란이 떠오른다.
이번에 일어난 주치인 울루스의 항명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다면 아마 그의 영광과 위권 역시 땅에 처박히리라.
“…허나, 짐은 이미 군사의 많은 일부를 유럽 정벌에 동원하고 있으니 자원과 병력이 심히 부족하오. 당장이라도 저들을 징벌해야 하겠으나 동원할 병력이 없으니 어찌할 수가 없소.”
여기서 그가 루스를 소련에 망설임 없이 내준 이유가 나온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유지할 수 없을 제국이고 루스다. 주치인 울루스에게 주느니 차라리 소련에게 아예 루스를 내주고 저 반역자들을 때려잡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리라.
“그러니 솔직하게 말하겠소. 조선과 원산의 도움이 절박하오. 짐이 루스의 지배권을 주었으니 이 정도 대가라면 충분히 주치인 울루스 정벌에 함께할 만하지 않겠소?”
…루스라, 사실 루스와 조선의 거리가 있다 보니 당장 쓸모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장래를 생각한다면?
“괜찮은 듯하…”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트로츠키 동지와 신숙주 동지 또한 같은 생각이리라 봅니다.”
트로츠키의 말을 자르고, 스피리도노바는 말한다.
“아마 유럽 정벌을 위해서라면 우리 소련이 루스에 건설해 놓은 인프라를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계속 소련의 지원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스피리도노바의 지적에 에센은 잠시 고뇌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이 맞소. 인정하겠소.”
“그렇다면 루스의 제공은 순전한 ‘선물’이라 보기 어렵겠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의 요구에서도 추가될 바가 있습니다.”
스피리도노바는 급히 트로츠키에게 눈빛을 보낸다.
네가 말해라. 네가 국가원수니까.
바통을 넘겨받은 트로츠키는, 잠시 표현을 고른 뒤 완성된 문장을 내놓는다.
“카간 폐하,
우리는 동녕총관부에 주르첸의 국가를 세우기를 바라오. 해당 영역에 대한 할양을 요구하오.”
“…그거면 다른 조건은 없어도 되는 것이오?”
“그렇소. 무역 조건의 개선을 생각하기는 했으나, 루스와 만주 정도면 충분히 그 정도는 상쇄하고 남을 조건이오.”
“요동이라….”
다시금 참새처럼 카간의 주위로 몰려든 문관들이 무언가를 재잘대니, 에센은 엄숙하게 선언한다.
“이는 제국 내부적으로도 이야기되어야 할 내용인 것 같소. 앞으로 차차 논의해보도록 하겠소.
지리한 시간이 이어질 테니 그동안 카라코룸이 그대들에게 편안하기를 바라겠소.”
당장 결정 못하겠으니 미루겠다는 뜻이다.
“좋은 판단이오. 우리 역시 다른 일행들과의 의논이 필요하오.”
트로츠키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에센에게 악수를 건넨다.
낯선 인사법이지만, 에센 역시 이미 조선과 원산을 들락거리는 상인들에게 양국의 예법을 배워두었을 터.
그렇기에 별 망설임 없이 카간은 트로츠키의 손을 맞잡았다.
“다시 이야기하겠소.”
에센은 웅변하듯 외쳤다.
“카라코룸에 온 것을 환영하오!”
세계를 바라보다
“김시습 동지, 카라코룸이라니 먼 길을 가시는구려…. 잘 다녀오시오.”
“하하, 권람 동지 감사합니다! 허나 제가 볼모로 잡혀 가는 것도 아니고 카간 페하와 함께 떠나오니 몸 성히 다녀오지 않겠습니까?”
…라고 유쾌하게 말하던 김시습은 권람의 우려 섞인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곧 죽을 것 같은 암울한 표정으로, 무슨 쇠사슬에 묶인 노예처럼 길을 떠나는 루스 귀족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리라.
저들이 어떻게 ‘활용’될지는 총관부의 몇몇 인사들만 귀띔을 들었을 뿐, 정작 이반 3세나 바실리 2세를 제외하면 저 자신들도 스스로의 운명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돌아올 수 있는지 여부도.
카간이 얼마나… 루스인 귀족들을 짐짝 취급하는지 알 수 있는 한 단편이었다.
물론 김시습은 에센의 수행인이자 루스 관련 행정의 자문역으로, 또한 총관부의 대표로서 그의 카라코룸 행에 발탁된 것이니 절대 저런 대우를 받을 리는 없다.
“어… 저는 조선국의 문신이옵니다. 제가 저런 ‘고초’를 겪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권람 동지도 잘 알지 않으십니까?”
“큼, 크흠, 내 그래도 불안하여서 그렇소. 왠지 카간 폐하의 용상(龍像)을 보아하니 내 마음이 편치 않소. 분명 길한 조짐이 보이지 않소.”
“여정이 시작하기도 전에 왜 그러십니까? 걱정 마시지요! 제가 누굽니까? 인민주의 사림의 새 희망이라 불리우던 김시습이 아닙니까!”
“카간 폐하께서 ‘조선인 중에 가장 영특한 이를 골라 함께 카라코룸으로 향하고 싶소.’라 언급하셨다는 말이오. 분명 그대의 고생이 클 터이니 몸조심하시오.”
권람이 자신을 조선인 중에 가장 영특한 이로 선발했다니?
다른 소리는 안 들리고 그 생각에만 기분이 좋아진 김시습이 호탕하게 외쳤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카간 폐하를 성심으로 뫼시겠으니 기필코 조선과 몽골의 화호(和好)를 닦겠습니다!”
그리고 카간의 옆에서 말을 탄다는 흥분과 함께 당차게 길을 나섰던 김시습은,
―“보고는 언제쯤 완성되는가?”
―“시간과 지필묵을 좀 더 주신다면 곧 완성하겠사오니….”
―“카라코룸에 당도하기 이전까지 서두르라.”
머지않아 권람의 우려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반란의 수뇌로 얽혀 패가망신하기 직전에 살아나온 그의 줄타기 실력, 트로츠키의 온갖 갈굼 속에서도 버텨온 그 눈치를 무시하면 아니되었던 것이다.
행렬을 시작하자마자 에센은 김시습을 몸소 천막으로 불렀다.
공손히 부복한 김시습이 고개를 들자 에센은 말한다.
“그래, 자네는 조선에서 와서 루스를 지배한 경험이 있는 문신이다. 아닌가?”
“예. 맞습니다, 전하.”
“허면 그동안 몽골과 루스의 풍속, 시세, 제도를 두루 살폈을 터이다.”
“그렇습니다. 광대한 제국의 영토와 위엄에 놀랐사옵니다. 특히…”
“아첨은 필요 없다.”
에센은 단칼로 김시습의 말을 자른 뒤 몸을 앞으로 기울여 김시습과 눈을 마주친다. 저 굉장한 위압감.
“총관부에서 몽골인 부대들을 어떻게 통제했는지, 어떻게 조정을 꾸렸는지, 어떻게 자금을 끌어 모으고 농민들을 통제했는지 상세히 보고하라.”
“…네?”
“필요한 자원은 얼마든지 주겠다. 지필묵은 충분하다.”
“하, 하오나 전하, 저희는 이동 중이 아니옵니까?”
“본래 몽골의 문관들은 카간의 천막을 따라다니며 그 업무를 본다. 그대 같은 조선인은 이해하기 어렵겠으나 이 또한 몽골의 풍습으로 받아들이라.”
“…보고서의 분량은 어느 정도를 바라십니까?”
“짐은 그리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한 이 정도?”
에센이 양손을 들어 한 뼘 정도 너비로 벌려 보였을 때 김시습은 몰랐다.
그게 에센이 원하는 보고서의 ‘두께’ 이야기였음을.
“…어? 어어? 어째서…?”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온 김시습은 피눈물을 흘렸고, 에센은 곧 눈물로 얼룩진 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대는 조선과 루스의 토질 차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짐의 군대가 가진 약점과 강점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전부 고하라.”
―“짐은 저 루스인 장군들이 어떻게 저리 효율적으로 군사들을 다스리는지 알고 싶다.”
수많은 질문 공세들이 다가오니 김시습으로서는 밤마다 보고서를 써서 올리고, 낮에는 에센의 곁에서 그가 한두 다경마다 물어오는 물음에 대답해야 했다.
주로 루스총관부의 상황과 그 통치 방식에 대한 설명, 조선과 원산의 특징 묘사, 몽골제국에 대한 단평을 요구하는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군사 분야에 김시습이 무지한 모습을 보이자, 에센은 크게 실망하였다.
“…조선국 관료들의 수준이 안타깝도다.”
물론 자신은 무관도 아니고 몽골에 비하여 조선의 관료들은 자신의 업무분야들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고 해명할 수도 있었다.
김시습만 하여도 향민청 출신으로 농촌 조직과 행정에 익숙한 이였다.
그러나 카간의 한숨에 왠지 모를 호승심이 자극되어 더 밤낮없이 스스로를 갈아 넣게 되니.
그 또한 에센이 바라던 그대로였던 것이라
***.
“…참담하군.”
김시습이 에센이 바라던 결과값을 가져온 것과 별개로 에센의 얼굴은 점차 음울해진다.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아무 이야기도 아닐세.”
격차가, 예케 몽골 울루스와 그 일개 속국 루스 사이에 벌어진 격차가 너무도 참담했다.
북경을 정벌하고 그곳의 진귀한 물시계를 구경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물의 흐름에 따라 자동으로 인형들이 번갈아 튀어나오며 시간을 알리고 북소리를 내는 정밀하고 복잡한 기계장치였다.
그것이 유용하긴 하다만 그를 고치고 관리하는 이가 아니라면 누구도 그 속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다.
조선과 원산 또한 에센에게는 그런 물시계와도 같았다.
막대한 재보를 쏟아내고, 거대한 이문을 몽골에게 남겨주면서도 도리어 더 많은 국력을 쌓아가고 있다.
물론 그 놀라운 과정에는 내부의 기기묘묘한 사정들이 있겠다만 몽골로서는 신경 쓸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 전쟁 전까지는 그리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