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5
“아니, 그래서 왜 울상인지는 얘기 안 해주는가?”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었나? 어디 물에 비춰 볼 수도 없고 자기 얼굴이 어떤 몰골인지 모르던 정남은 잠시 망설이다 아까 동료들에게 꺼낸 이야기를 다시 내놓았다.
싸움이 있었다.
달려나가다 무서워서 엎드렸다.
일어나보니 다 죽어 있었다.
짧게 말한다고 줄여보니 딱 위의 세 줄이다. 고작 세 줄이라니.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말하다 보니 목이 메여 오고 굵직한 눈물이 둥글둥글 맺히기 시작했고 말을 끝내니 이내 방울 져 있던 눈물은 줄줄이 쏟아져 내렸다.
“동향에서 올라왔던 동무들이 다 죽고 저만 살았습니다. 곧 다시 싸움터로 나갈 것 같던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동무들처럼 저도 죽게 되겠습니까? 아니면 겨우 살아서 혼자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까?
장정들 다 죽은 고향에 혼자?”
참담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손안에 남은 굵직한 감자알 몇 개를 만지작거리던 그 사람은 조용히 정남을 내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찾았다.
심하게 우울하고 불안해 보이는 놈.
말을 붙였더니 바로 이것저것 털어놓는 순박한 놈.
그리고··· 지난 싸움을 겪어본 놈.
“상처가 참으로 심하였을 것 같으이. 친우들도 모조리 죽고 얼마나 상심이 컸겠나?”
“···고맙습니다, 어르신.”
“그런데 말이야.”
“네?”
“그 색목인들도 살생을 원하지 않았다고 하면 어떨 텐가?”
순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멍청하게 눈알만 굴리는 정남에게 다시 말을 붙였다.
“그···저들이 말일세. 사회주의란 걸 얘기해 주던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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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은 진으로 돌아왔다. 머리가 너무 무거웠다.
고작 그···포탯 뭐시기 좀 얻어먹었다고 이런 고민거리를 안겨주다니 그 인간도 제 명에 못 살고 죽을 악질이다.
하지만···
하지만 만약에···
“자네 왜 그래?”
“어···어어···”
“왜 그러나? 뭔 일 있었나? 멍청하게 멀뚱멀뚱 서서는.”
내 목숨만 걸릴 일이 아니라면···
“자네···혹시···.”
“말 좀 빨리 하게. 충청도 쪽에서 온 건 아니라 하지 않았나?”
정말 말 한마디 하는 걸로 몇 사람의 생사가 오간다면···
눈 한 번만 딱 감고 해보자.
“살고 싶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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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간이··· 오전 1시쯤 됩니다. 조금 지났군요.”
“정확히 약속이 언제였소?”
“대강 월출 이후로 잡았습니다. 조선인들한테 시계는 없으니까요. 그냥 달이 뜨면 오라고 했습니다.”
“합리적이군.”
동료의 말에 밥 에드워즈는 납득하면서도 초조함에 발을 굴렀다.
정말로 오긴 할까?
아니면 떼로 몰려온 조선군이 자신들을 포박할까?
‘참, 매정하기도 하지.’
트로츠키는 위험한 작전이라면서, 입안자인 블레어 동지는 고이 모셔 두고. 대신 혹여나 죽더라도 부담만 제거되는 자신에게 이 일을 맡겼다.
결국 폭탄은 못 미더운 자신이 떠맡게 되었다. 물론, 이 일의 포상 또한 클 거라 떡밥을 던져오니 콱 물은 건 자기지만.
에드워즈로서는 충성심을 증명하고, 트로츠키로서는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인사 하나 판돈으로 내놓으면 그만이다. 이렇게 보면 괜찮은 거래인데···.
그것도 성공해야 맞는 장사지, 실패하면 그냥 목숨까지 다 잃는 거니까 결국 손해인가?
뭐 아쉬운 쪽이 원래 손해보는 것 아니겠나?
그런 생각을 하며 연기가 샐까 봐 담배를 피지는 못하고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있는데.
부스럭.
그 소리에 절로 총에 손이 간다.
다시 부스럭.
동료들 모두 숨을 죽이고 자세를 낮춘다. 그리고···
양손을 들고 튀어나오는 조선인들.
“저···정말로 살려주는 것 맞습니까?”
정남이 시커먼 개인 화기를 짊어진 색목인들을 보고 겁에 질려 내뱉은 첫 말이다.
통역이 귀엣말로 의미를 전달하자, 이내 안도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에드워즈는 답했다.
“물론이오! 원산 소비에트는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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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잠을 깨우는 폭탄 굉음 (6)
정남이 도착하자 저들은 곧바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어 나눠주었다.
그때 봤던 그 포테토.
정남은 자신을 따라온 병사들에게 김이 나는 포테토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수상한 덩어리를 미심쩍게 쳐다보던 그들은 정남이 자기 몫을 한 입 베어 물자 그제야 조금씩 떼어먹기 시작했다.
“여기는 수가 열다섯 명··· 나쁘지 않군요.”
빌 에드워즈가 머릿수를 세리며 말하자 동료들이 불안한 듯 말했다.
“···너무 적은 숫자가 아닐까요?”
“괜찮습니다. 접선지는 열 곳이 넘고, 오기로 한 이들도 시간을 네다섯 번으로 나눠 놨으니. 지금이 맨 처음 접선이죠. 이번에 열다섯명이 왔으니 나머지도 비슷하다고 하면··· 앞으로 수백 명은 탈영시킬 수 있겠군요.”
“하지만 어차피 적군이 수만이 넘는데 고작 천 명, 이천 명이 탈영하는 수준으로 뭐가 도움이 되겠습니까? 오늘만 지나면 적들도 경계가 삼엄해질 테니 탈영자 수는 계속 줄어들 텐데.”
“아, 이들은 단순 탈영병이 아닙니다.”
“예?”
“자자, 여러분! 여기를 봐주십시오!”
빌 에드워즈가 서툰 조선어로 부르자 군졸들이 놀란 듯이 뒤돌아봤다. 다행히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만 엉망이었나 보다. 통역가들에게 몇 번 놀림받고 나서는 조선어 발음에 신경쓰고 있던 에드워즈였다.
에드워즈가 주의를 집중시킨 이후로는 통역이 이어서 말했다.
“여기, 이 붉은 천을 10개씩 드리겠습니다. 싸움이 나면 왼팔 위쪽에 매달아주십시오. 후방으로 빙 돌아 도망을 오시면 친절히 맞아드리겠습니다.
아, 혹시 만약에 주위에 나눠줄 붉은 천이 부족하면 그냥 친우 분들도 같이 데려오십시오. 여러분이 신원보증만 해주시면 모두 환영입니다.
신원보증도 힘들면 그냥 항복할 때 다같이 ‘원산 소비에트 만세!’라고 외치시면 됩니다.
대신 전투 때 이렇게만 해주십시오···” 통역의 설명이 한참동안 이어졌고, 끝난 후에는 다시 감자를 나눠주었다.
그렇게 먹을 것과 빨간 천을 챙긴 정남과 병사들은 다시 진으로 돌아왔다.
왠지 모르게 수백 명이 감자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물고 있었지만, 다들 뭐가 이상한지 크게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몇 일만에 붉은 완장이 수천에게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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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이 한숨을 쉬며 갑옷을 챙기는 와중에도.
트로츠키가 초조하게 김밀의 사랑방을 오가며 회의를 개최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간다.
피를 흘려야만 하는 그 순간이 온다.
이양의 운명에 그림자가 드리우게 되는 그 날이 다가온다.
싸움의 날.
이양은 침묵 속에서 갑옷을 입었다. 그의 둔중하게 가라앉은 눈썹과 위용에 밀려 그 누구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묵직한 감각. 이양은 갑옷의 무게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누르는 대기의 무게를 느꼈다. 저 하늘이 마치 벌레를 밟아 죽이는 어린아이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짓누르고 있다. 그 무게를 한 개인이 해치고 걸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양은 걸었다. 걸어서 그를 기다리는 장졸들에게 나아갔다.
다들 어두운 표정이다. 당연하다. 너무도 당연하다.
“···어쩌시겠소?”
부사 허후가 의미 없는 질문인 줄 알면서도 물었다.
어쩌기는 뭘 어쩌겠는가? 선택지가 없는 곳에서 아직도 여지가 남아있는 양 추하게 밍기적거릴 수는 없지 않은가?
“다들 준비시키시오. 예정대로 진격할 것이외다.”
그의 말이 떨어지고 도합 6만의 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깃발, 북소리, 그리고 고함소리.
얼추 열을 지어 선 병졸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그러다 명령이 들려오니 그저 터벅터벅 내키지 않는 걸음을 걷는다.
그렇게 6만이다. 그저 추상화된 숫자로는 이 눈앞의 규모를 표현할 수 없다.
이들이 희망 없는 전투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장수들의 불안이 병졸들에게, 지난 싸움을 겪은 병졸들의 공포가 다른 병졸들에게.
그렇게 6만을 뒤덮은 불안과 공포 또한 형언할 수 없이 두터웠다. 마치 불안감이 산소처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
‘이길 수 없다.’
이양은 그 사실을 알았다. 덕원과 원산으로 가는 길에 놓인 저 언덕이 보이기도 전부터. 저 언덕 위에 자리잡은 그 저주스러운 총통들이 줄지어 늘어선 진지들이 보이기도 전부터.
저 증오스러운 총통. 저 증오스러운 참호! 저 참호를 넘을 수만 있다면! 저 얇다랗게 파 놓은 것이 전부인 저 구덩이를 넘을 수만 있다면 그는 양팔 양다리를 다 바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적괴들의 머릴 잘라 조정에 바칠 수만 있다면··· 그는 목숨조차 바칠 수 있다.
그러나 승리는 그의 목숨보다 값진 듯했다. 그가 모든 걸 다 팔아서 값을 치르더라도 승리를 살 수는 없으리라.
지난번에 대강 확인한 적들의 사거리 밖에서 군대의 전진을 멈췄다. 이제 진격이 이뤄져야 하기에 진을 다시금 바로잡고 있다. 어차피 저들은 참호를 벗어나 선공해오지 않을 테니.
그런데.
이제 곧, 공격을 실행할 텐데.
진의 선두가 흔들린다.
///
“저···적들의 총탄에 맞았다!”
갑자기 뭔 소리인가? 적들이 몇 번 하늘을 향해 위협 사격 같은 것을 했을 뿐. 여기는 적들로부터 500보는 떨어진 곳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병사들이 드러눕거나 진을 흐트러뜨리고 사방팔방으로 달리고 있다. 다른 병사들에게도 겁에 질린 흥분상태가 퍼져 나가 진 전체가 망가지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일단 백호(百戶, 백 명을 지휘하는 장수)로서 김준은 휘하 병졸들을 제어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뭣들 하느냐! 명이 내리지 않았는데 물러서는 이들은 목을···읍읍!”
그런데 갑자기 옆에 서 있던 병졸들이 그의 입을 막는다. 심지어 찾아보니 휘하에 있던 통주(統主, 열 명을 지휘하는 직책)들 또한 그의 팔다리를 잡고 넘어뜨린다.
“잠시만 조용히 좀 해주십쇼. 곧 끝날 겁니다.”
“대체 무슨 짓들을···”
김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 준비한 재갈을 물려와 그의 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는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단 하나,
그를 둘러싼 병사들이 찬 붉은 색 완장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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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적들이 매복해 있다!”
그렇게 창을 들고 몇몇 병사가 뛰쳐나가자 불안에 떨고 있던 다른 병사들도 우르르 뛰쳐나가고 있다. 이쯤 되자 통장들도 진을 억지로 지키려 하기보다 차라리 통제력을 유지하는 게 낫다 싶어서 적진 좌우의 숲을 향해 나아갔다.
그런데 아무리 수풀 속을 쏘다니고 나무들 사이사이를 뒤져봐도 적졸들은 없다.
“여기! 이쪽이다!”
병사들은 그 말에 우르르 달려나갔고.
그들을 향해 겨눠진 수십의 총통을 발견했다. 그들 옆에는 아까까지 선두에서 달리던 병사들이 무기를 버리고 서 있다.
역시, 붉은색 완장을 찼다.
탕. 적병 중 하나가 시험 삼아 옆의 나무를 쐈다. 나무에 구멍이 뚫려 속살이 드러나고 나무껍질이 비산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시오.”
“어···어어?”
대오가 완전히 흐트러진 채 달려나왔던 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무기를 버렸다.
이런 일이 수십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보병들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망하거나 항복하고 있습니다!”
“병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다시 모을 수가 없으니 그 수가 수천이나 됩니다!”
“양측의 수풀에 매복한 적병이 몰려 온다느니, 후방에서 적도들이 대규모로 포위해 오고 있다느니, 상반된 보고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허.
이양은 이번 싸움에서 완패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싸우기도 전에 패배하고 있다.
수족이 흔들리고 있다면 어찌 멀쩡히 걸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병졸들이 흔들리고 눈과 귀가 어두워지면 어찌 싸움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장수가 칼을 뽑아 들었다면 피를 보아야 하는 법.
“후방의 마병들은 어떠한가? 아직 명에 따르는가?”
“마병들은 흔들림 없이 군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위에 길을 트라 이르라···”
“아니되오, 하령군!”
허후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이양의 의중을 읽어낸 것 같다.
이양은 영혼 없는 눈으로 허후를 가만히 쳐다보다, 그냥 무시하듯 옆으로 지나갔다.
‘같이 가지 않겠다는 것인가? 무책임하군.’ 이양은 허후에 대해 그렇게 평했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번민했었다. 어떻게 해야 승리할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해야 불명예를 당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탄했었다.
어떻게 해야 오랜 친우들의 정치적 부담을 경감할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왜 이 길을 진작 택하지 않았을까?
이양은 어느 때보다도 차분해진 머리로 말에 올랐다.
“참호로 진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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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멀리서 기병들이 옵니다!”
“일단 쏘지 마시오! 항복하러 오는 이들일 수도 있습니다!”
“칼을 뽑아들고 있습니다! 활을 장전하고 있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