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4
“아일린, 당신까지 총을 들 필요는···.”
“에릭, 내가 총을 들지 않으면. 우리 조카뻘밖에 되지 않는 애들이 우리 대신 경계를 서야 할지도 몰라···.”
그렇게 아내는 어제도 오늘도 총을 들고 산을 타며 골짜기를 쏘다닌다.
에릭 블레어는 다른 여성들이 병사로 자원할 때까지는 별 감정이 없었다. 오히려 평등의 물결이 퍼진다는 사실에 감동마저 조금 느꼈었다. 그러나, 요사이 꾸준히 건강이 좋지 않아 후방에서 행정을 맡던 아일린마저 군사 활동을 해야 한다니···.
상황은 너무 불안한데, 대응할 인력이 부족하다.
조선인들을 급하게 훈련시켰다가 익숙지 않은 총기에 오발 사고가 줄줄이 일어나는 바람에 일단 자원자 중 소수만 선별해서 군인으로 받아들였다. 당연히 이렇게만 해서는 병력 부족을 해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켜야 하는 곳은 너무 많다. 저 산성, 저 해안가, 저 밭과 민가들까지.
어느 한 곳이라도 뚫려서 근대적 무장을 갖추지 못한 이들과 적군이 마주쳤다가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결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블레어가 위안삼은 것은 역시 지도부 회의의 결과.
“적군이 수만 명이지만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그, 지난번 일본학이나 중국학 전문가들이 이야기할 때는 조선이 수만 명쯤은 너끈히 동원 가능하다고 자문했었는데요?”
블레어의 소심한 질문에 프랑스인 장교는 비음 가득한 영어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거야 그렇습니다. 하지만 ‘동원’이 가능할 수는 있더라도. ‘유지’가 가능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또한 해당 전문가들과 논의한 결과 의견이 일치한 부분이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트로츠키도 거들었다.
“전근대의 전투에서··· 수만과 수만이 싸우는 거대한 전투 자체가 희귀하지만, 거기서 전투만으로 대부분이 몰살되는 사례 또한 드물었을 것이오. 만일 그런 손실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후퇴의 무질서함 같은 다른 부수적인 사유들로 인한 것이지.
그러나 우리는 적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했소. 그렇다면 조선군 장수들의 정치적 입지는 어떻게 되었겠소? 내가 동양사에 대해 잘 모를 수는 있어도 이 사실 하나만은 확실히 알고 있소.
누구도 패배를 좋아하지 않소. 패장은 더더욱 그렇고.
저들은 정치적 부담 때문이든. 장교들이 방금 조언해준 경제적, 군사적 부담 때문이든. 결코 교착상태를 오래 끌어갈 수 없을 것이오.
어떻게든 유리한 전황을 형성하려 애쓰거나,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차일피일 공세를 미루다 등 떠밀리겠지.
우리는 승리할 수밖에 없소.”
그렇다. 트로츠키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음, 에릭? 무슨 말이라도 했어?”
“아무것도 아냐···그냥.
이 힘든 상황도 곧 끝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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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찔러 보기.
신숙주가 보기에 상황은 그랬다. 아니, 신숙주가 아니라도 어느덧 모두가 눈치챘다.
올라오는 장계의 내용마다 그렇지 않은가?
‘발이 날래고 움직임이 기민한 이를 몇몇 척후로 보내어 적들의 거동을 살피었고···’
‘야음을 틈타 기병 몇으로 적들의 후방을 교란하려 하였으나 적졸들의 경계가 삼엄하여···’
‘원산에서 도망쳐온 백성 하나를 보살펴 알아보니 적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아 군세 일부를 떼어 서쪽으로 옮겨 주위를 엄히 지키라 하였으며···’
한번은 답답함에 중앙에서 이렇게 서신을 보내 보았다.
‘본격적으로 거병할 시기는 언제쯤으로 잡고 있는가?’
그렇게 간절히 얘기해 돌아온 답변에서 이런저런 미사여구 다 빼면 남은 게?
‘모릅니다.’
백전노장이라던 하령군 이양도 별 수가 없다! 어떻게든 안 되나 싶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고 있지 뭐 하나 마땅한 수도 없이 쌀만 축내고 앉았다!
대어가 왔다! 대어가 왔어! 너무 커서 이거 하나만 잡아도 만선이다!
저 문제의 ‘모릅니다’ 장계가 올라온 바로 그 날, 소장파 신료들은 모여서 술잔이라 돌리면서 회포를 풀었다.
“으하하학, 절재(김종서의 호) 대감도! 하실만큼은 하지 않으셨나!”
성삼문이 환호하듯 외치자 다들 왁자하게 웃어 제꼈다.
‘참, 저 친구도 악취미야.’
신숙주는 그런 생각을 속으로만 삭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외방에서 기깔나게 고생하다 이제야 정승 자리가 아른아른 하는 양반 보고 할 만큼 했다니.
뭐, 어찌 되었든 치고 나갈 일만이 남은 이들 모임에는 김종서든, 황보인이든 결국 자리만 비워주면 좋을 사람들이다.
이곳에 모인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그리고 다른 집현전 학사 출신들.
이 젊고 야심에 찬 사람들.
대행대왕(문종)께서 급사한 뒤로, 나이 어린 금상이 보위에 오르자 꼴 뵈기 싫던 인간들이 하나하나 권신이 되어버렸다.
안평대군이나 수양대군이 어떻게 좀 비벼 보려다가 실패하고. 안평대군 쪽은 대행대왕 때부터 그럴 낌새를 보이더니 아예 김종서에게 숙이고 들어가버렸다.
그렇게 친분 있던 안평과 끈이 떨어지자 다들 별 수 없이 수양대군 측과 접촉해보게 된 상황.
그래도 이전부터 정치적 균형이 쏠려 있던 데다가, 안평과 김종서가 붙어먹어버리니 막막하기만 하던 차였는데···.
그런데 이런 월척이라니.
설마? 설마? 하면서 정벌 결과만 목 빼고 바라보던 소장파들이 환호성을 지른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거이거, 비해당(안평대군의 호) 선생도 속이 많이 쓰리시겠구만 그래!”
성삼문의 말에 화답하듯 박팽년이 실실거리며 말했다.
좋다, 좋아. 이제 그들의 창창한 앞날을 위해 모든 게 준비된 듯하다. 하늘이 우리의 출세길을 열어주려 저 야인들을 내리신 것이 아닐까? 그런 실없는 생각까지 하면서 신숙주는 박팽년이 따르는 술잔을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내일부터 수양대군과 함께 압력을 넣어주면 이양이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김종서와 대신 영감들도 꾸준히 애걸복걸할 텐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야인들을 때려보는 수밖에.
그렇게 와장창 깨지고 초라하게 돌아온 이양과 김종서 일파를 싸그리 모아 탄핵하면? 이제 거칠 것이 없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아, 수양대군? 그 인간이 남긴 한다.
하지만 아무리 날뛰어 봐야 결국 한낱 종친. 거기에 불씨(부처를 낮춰 부르는 말)나 추종하는 삿된 선비다. 별볼일 없는 시정잡배 말고는 휘하에 별 인재도 없다던대···
그런 인간쯤이야 손쉽게 다룰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신숙주와 젊은 선비들은 밤새 술잔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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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잠을 깨우는 폭탄 굉음 (5)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신묘한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밤새 달린 다음날에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출근하는 것.
“일전에 하령군 이양은 도적떼를 섬멸하고 나라를 평안케 하라는 국명(國命)을 받잡아 출병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적을 섬멸하기는커녕 아까운 생목숨들을 헛되이 내버렸을 뿐 아니라, 더 많은 병졸들을 요구하고서는 군사를 일으킬 생각은 하지도 않고 제 자리만 지키고 있으니! 이 어찌 불충이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장수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죽어 사라진 백성들의 목숨을 생각하면 간장이 끊어질 듯한 마음뿐이오니··· 크흑흑.”
그렇다. 지금 저 울먹이는 저 사람이 어제 청주 세 병을 비우던 신숙주다.
“소인들이 눈이 어두워 어리석은 자가 중요한 군사(軍事)를 맡아 나라의 평안을 흔들게 하였으니 죽여주시옵소서!”
입에 침 한 번 안 바르고 이어서 통곡하는 것은 전날 술병으로 저글링을 하던 성삼문이다.
그렇게 몇 시진 전까지 만취상태에 갓을 벗어 부메랑 던지듯 갖고 놀던 박팽년이 거들고, 물구나무서서 춤추던 이개가 이양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았다.
오로지 과묵한 성정의 하위지만이 담담하게 상소문을 올릴 뿐이었다.
그 내용인 즉,
‘이양이 병졸을 가만히 놀려 아까운 세월과 미곡을 축내고 있사옵니다.’
결국 이게 끝이다.
아직 탄핵은 안 된다. 이양이 탄핵됐다가 후임자가 망해버리면 그들로서도 할 말이 없다. 오히려 ‘봐라, 너네가 해도 안 되지 않느냐?’하고 따지는 대신들에게 명분을 더해줄 뿐.
그렇다고 지금 동병(動兵)하라고 부추기는 것도 안 될 말이다. 만약에 이양이 ‘아, 다 생각해놓은 전략이 있었는데 쟤네 때문에 망했어요. 나 던질래요.’ 해버리면 역적이 되는 것은 오히려 소장파 쪽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별 내용도 없이, 요구사항도 없이, 그저 ‘뭔가 잘못하는 것 같은데 뭔지는 다들 아니까 굳이 얘긴 안 하겠습니다.’ 정도 어조로 은근히 압박만 주는 것이 상책이다.
급하게 술을 깬 이 젊은 선비들이 새벽 같이 모여서 낸 결론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장대한 떼쓰기와 투정의 역사.
물론 이렇게 떼쓰기가 시작된 첫날에 대신들은 당연히, 일관되게 무시하는 전략을 고수했다.
···물론 인간의 인내심이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으니,
“저어어어언하아아아아! 낯선 벽지에서 잠을 자고 식솔들을 만나지 못할 병졸들을 생각하니 밤에는 잠이 오지 않고, 낮에는 곡기를 입에 넣을 수가 없사오니···”
“저어어어어언하아아아아아아! 하령군에게 지금 적병들의 정세가 어떠한지에 대해 전하라 이르셔야 하옵니다!”
이게 며칠씩 반복되자 이들의 얼굴만 보여도 나이 어린 주상은 흠칫흠칫 놀라기 시작했다.
급기야,
“크흠, 내 군사에 대해 아직 공부가 부족하나 지금 하령군에게 아군과 적군의 동태가 어떠한지 살피라 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모든 일은 정부에 맡기겠다던 주상이 슬며시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한다.
“변경에 가까이 있는 장수의 말을 따르지 않고 눈과 귀가 수백 리는 떨어져 있는 이들이 함부로 병사의 나아감과 물러남을 논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령군의 충절은 그 조부대에서부터 이미 널리 빛나는 바, 태종대왕과 세종대왕, 그리고 대행왕에 이르기까지 일가가 충신으로서 이름이 높았습니다.
주상께서도 믿음과 기다림을 내리신다면 하령군 또한 반드시 승전보를 가져올 것이옵니다.”
잘 보살피고 있다 생각했던 주상까지 하령군을 입에 올리자 대신들도 괜히 불안감에 혓바닥이 길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대신들이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자, 다시 신숙주와 아이들은 개떼처럼 달려들어 신나게 물고 뜯었고. 당연히 여론도 확실하게 기울어갔다.
“아니 영상께서 하령군이 분명 승전보를 가져다 올 것이라 하지 않았소? 적의 수 배나 되는 군사를 청하고서도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 것은 혹시 사특한 마음을 품어서가 아니오?”
“어찌 그런 소릴! 하령군은 틀림없는 충신이오! ···하오나 저리 군졸을 놀리고만 있는 것은 역시 군량을 축내고 백성들이 농삿일이 한창 바빠오는데 제대로 본업에 돌아가지 못하여 기력을 허비하는 것이 아닌가 싶소.”
그렇다. 다들 총대는 매기 싫어서 확실히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수근거림들, 이런 암시들, 이런 돌려말하기가 쌓이고 쌓이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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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혹시 언제쯤 공세를 취할 것인지 전해줄 수 있겠나?’
역시 대신들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이양은 김종서의 서찰을 받고 나서는 멍한 얼굴로 허공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끝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수인사대천명이라 하였거늘. 사람으로서 태어나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았고, 장수로서 해볼 만한 어떤 수든 써보았다.
그리고 하늘은 안 된다고 답했다.
제갈량 같은 명재상조차 하늘의 뜻이 닿지 않아 북벌에 실패하였고. 마침내 촉한이 스러져가는 것을 보며 눈을 감았다.
이제는 정말로 한계까지 다다랐는가···.
허, 심심한 밤을 달래고자 몰래 읽었던 패설에서 나온 말이 이렇게 떠오르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나잇값도 못하고, 참.
“여 봐라.”
이양이 부르자 시종이 갑작스런 부름에 놀랐는지 우물쭈물하며 서있다.
“우상께서 답장의 내용이 궁금하다 하시면 이리 전하거라.”
이양은 저도 모르게 심호흡을 했다.
“지금.”
그 한 마디만 던지고 시종을 물린 뒤, 이양은 갑옷을 챙겨 입고 방을 나섰다.
정말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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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호병 소비에트의 보고가 심상치 않습니다. 밥짓는 연기가 점점 한 지점으로 모이고 있다고 하는군요.”
“지난 전투까지 남쪽에 집결해 있던 군세가 이번에 새로 동쪽에서 증원된 병력들과 합치더니 북쪽으로 이동합니다. 아마···여기.”
올리버 로가 가리킨 곳은 바로 문천군. 그가 손가락으로 짚은 ‘일본제국전도’에서도 지명은 변함없이 문천으로 표시되어 있다.
“아마 적들의 배치를 보았을 때 예측되는 진로는 아마 이쯤, 입니다.”
이곳에서 해안을 끼고 내려오다 보면 산이 나오고, 거기서 내륙쪽으로 틀면 야트막한 고개가 나온다. 그곳을 넘으면 덕원으로, 그보다 남쪽으로 오면 원산으로 통한다.
현재, 덕원 또한 덕원부사 조희선을 죽이면서 자연스레 스페인행 의용군이 차지한 상태.
그렇다면 역시 아까 언급한 그 고개. 양옆으로는 산맥이 높아가고, 그렇기에 이 좁은 곳에서 대군을 맞는 것이 수적 열세를 이기고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최선의 선택지다.
“결국 버티는 것은 여기까지였나 보군.”
적군의 소모가 심했을지라도 조선과 총력전을 벌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생존을 위한 방어전을 치르는 것이라면 별 상관없는 사항이다.
중요한 것은 의용군 내 인원들의 피로도와 안전.
슬슬 비효율적일 정도로 촘촘히 경계를 세우다 보니 불만이 터져나오던 상황이니, 적들이 대치를 포기하고 공세를 계획한다는 사실은 반갑기만 하다.
“이제 슬슬 전쟁이 끝나갈 것 같으니, 척후들과 후방의 자원자 ‘동지’들에게 남은 포상을 한꺼번에 몰아서 주게. 첩보망을 비대하게 유지할 수고는 덜은 것 같군.”
별다른 전략이랄 것도 없이 한 번 큰 싸움에서 이기고 붙박혀 있기만 할 수 있던 것도 이 후방의 스파이들 덕분이었다. 적들 사이에 심어 놓은 ‘제5열’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 어원이 될 스페인내전에 참여하지 못했으므로 이 표현을 쓸 사람은 없었다.
아무튼 각지의 주민들에게 약간의 식량을 나눠주고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을 퍼뜨린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큰 성과를 거두었다. 적들의 동향을 빠르게 파악하고 최소한의 수고를 통해 최대한의 방비를 꾸릴 수 있던 것도 그들 덕이다.
만일 이번 전투 이후 세력을 확장한다면 그들에게 말로만 전해주었던 ‘공산주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알려줄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도 전투가 끝난 뒤에 생각할 일이다. 적들을 최대한 섬멸해야 조선 정부의 정벌에 대한 의지를 꺾어 놓을 수 있을 테고. 이후 이곳에서의 정착생활을 안전하게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저들을 협상장으로 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렇게 반영구적으로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최상이다.
물론 이 또한 차선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피를 최대한 덜 흘리고 승리를 거두는 것.
이를 위한 이런저런 논의들이 오갔고, 그 중에서 속시원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을 때.
“저기··· 제게 그럭저럭 괜찮은 방안이 있기는 합니다만.”
가만히 앉아있던 블레어가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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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을 비롯한 지난 참패의 생존자들은 뿔뿔히 흩어져 각기 다른 부대로 편성되었다.
이전의 끔찍한 경험 때문에 다같이 탈영이라도 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리라는 판단하에 나온 방책이었다.
그러나 이는 대규모 탈영은 예방했지만 부작용 또한 낳고 있었다.
“···그래서 눈을 떠보니까, 주위에 있던 놈들이 다 죽어버렸어.”
정남이 말을 마치자 다들 믿기 어렵다는 눈빛으로 정남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 창백하고 돌덩어리 같은 얼굴에 감히 진위여부를 따지고 들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 그게, 다 뭐 때문이었는데?”
“그 놈들이, 작은 총통 같은 걸 삼발이 비슷한 데 걸치고서 쐈어. 그러니까 순식간에 번쩍번쩍하면서 수백 발이···”
“뭣들 하나!”
“오늘은 여기까지만 얘기할 테니 내일 다시 보드라고.
내가 얘기한 거 다 기억해두란 말야. 진격하라고 할 때 절대로, 절대로 앞서서 나가지 말라고. 낌새가 보이면 바로 엎드리고 부처님한테 빌란 말이야···.”
그렇게 이야기보따리를 털어낸 뒤, 정남은 슬금슬금 밖으로 빠져나와 근처 마을을 걸었다. 마을이래 봐야 오두막 열 채가 다이지만. 수만 명이 근처에 머무르니 여기도 한동안 시끄러웠다.
“자네는 왜 또 울상인가?”
“···저 말이오?”
“울상인 사람이 여기 자네 말고 누가 있다고!”
아니, 왜 또 저 사람은 시비인가 싶어 자연스레 저 무례한 양반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허 참 고약한 양반일세. 그렇게 근처에서 군량이다, 뭐다, 공출해갔는데 이상하리만치 때깔이 곱다. 어디 먹을 거라도 꿍쳐 뒀나?
“···이거나 잡수고 가게.”
맙소사 진짜 꿍쳐 놨었다. 누가 볼세라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대던 정남은 재빨리 은인의 곁으로 다가가 먹을 것을 받아먹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대강 떡일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흙맛도 나고 포슬포슬한 뭔가다. 처음 보는 음식인데 함길도에는 참 신기한 게 많구나.
아무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를 허겁지겁 먹고 나니 배도 불러 대충 감사인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