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9
둘째, 메리먼이나 로 같은 스탈린주의자···라지만 스탈린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도 않으니 그냥 ‘주의자’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용이든 뱀이든 머리만 자르면 한낱 고깃덩어리인 법.
스탈린과 소련, 공산당이 없는 스탈린주의자들은 빠르게 구심점을 버리고 트로츠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들 중 유능한 인사들을 골라 중용하고 있으므로 스탈린주의자들 또한 포섭 완료.
셋째, 에드워즈나 블레어가 속한 트로츠키주의자 그룹. 이들은··· 그냥 밥이었다. 넘어가고.
거기다 소비에트 정부에 속속 참여하고 있는 조선인 인사들 또한 ‘역사적 통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연극을 보고 감명받아 트로츠키의 이름을 연호하니···
바야흐로 원산은, 트로츠키의 천국이었다.
물론 소비에트 공화국이라는 조직 특성상 트로츠키가 독재적 권한을 휘두르고 있는 것은 아니고, 엄연히 원산은 수많은 소비에트들의 회의와 합의, 투표의 결과로서 굴러가고 있다.
하지만 이 도시국가에서 트로츠키라는 인사의 카리스마가 훌륭하게 먹혀 들어가고 있으며, 그의 사업안이 웬만하면 큰 무리 없이 소비에트 총회의의 허가를 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트로츠키는 이미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자신이 독재적 권한을 행사하면 스탈린을 격하한 명분이 사라지니 오히려 경계할 일이기도 했고.
프랑스 장교단이 구애하고, 스탈린주의자가 눈치보고, 트로츠키주의자가 전전긍긍.
갑자기 권력의 중심이 되어버린 트로츠키는 오랜만에 끝없는 활력 속에서 정력적으로 정무를 처리해 나갔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보람 있는 생활. 옛 고향, 소비에트 연방에서의 활동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에서의 전란 소식이 들려오자 불안한 기류가 조성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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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조선의 상황이 혼란스러운 것이 분명합니다! 이 기회를 노려 조선 전역으로 세력을 확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습게 볼 일이 아니오! 현재의 동아시아 질서는 중국의 한족 제국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소. 그들의 영향권 내에서 정권을 탈취한다면 중국의 황제는 반드시 우리를 정벌하려 할 것이오!”
“중국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현재 중국은 전란과 황제의 교체를 맞아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의 상황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어림없는 소리! 오히려 그렇기에 조선의 이반을 더더욱 두고 보지 않을 것이오!”
조선을 향한 전쟁선포를 논하는 것은 이른바 ‘영구혁명파’.
자신의 영구혁명론이 활용된 파벌명이 언급될 때마다 트로츠키는 쓴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트로츠키의 의견에 반하면서 트로츠키의 이론을 활용하다니···. 물론 이 또한 정치적 안배겠지만.
아무튼 이들은 초기 명나라가 오이라트 족에게 대패한 토목의 변과, 토목의 변에서 친정(親征)을 나간 정통제가 사로잡히며 경태제가 즉위한 사건을 언급하고 있었다.
이민족에게 패배하여 선황이 사로잡힌 상태에서 즉위한 황제는 아무리 조선이 중요해도 쉽게 군대를 동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논리.
그러니 조선이 만일 본격적으로 혼란에 빠진다면 미리 준비하여 조선의 수도인 한양으로 진출하여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요한 주장이었다.
이들 파벌에 포섭된 프랑스 장교들은 이미 이에 대한 꽤나 상세한 작전 초안까지 작성하여 보고한 상태.
사실, 그 정도 체급을 보유하지 않고서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원산이 독자적으로 설 수 없으리란 현실적 판단이 뒷받침된 결론이었기에 명분상으로도, 실리에 있어서도 결코 꿀리지 않는 선택지였다.
주로 전쟁이 시작되면 자신들의 영향력이 증대될 것이라 생각하는 밥 에드워즈나 메리먼 같은 군 지휘권자들, 특히 프랑스 장교단이 이 입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에 반하는 ‘원산유지파’들은 불필요한 인명피해와 혹시 모를 위험부담을 최소화하자는 방향을 택했다.
아무리 20세기의 소총이, 수류탄이, 기관총이 강력하다 하더라도 물량에 있어서의 현실적 한계가 존재한다. 구리를 어디서 구해와서, 화약은 언제 어떻게 만들겠냐는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의 전투에서 소비에트군은 모두 수세적 입장에 있었다.
위에서 언급된 병장기들도 대부분 수비에 유리한 것이지 공세로 나아간다면 역시 전술적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승리에 뒤따르는 희생이 작지는 않을 터.
게다가 명나라가 전통적 동아시아 질서의 수호를 위해 결코 조선에서의 쿠데타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그에 따라 동원될 100만 단위의 대군세를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입장을 견지했다.
무엇보다도 조선이 전란에 처한다 해서 그 국력이 약해질 수는 있어도 군사력은 오히려 전란을 지나며 증대될 것이라는 의견 또한 유력했다.
안정적인 국제질서 하에서 조선은 군축을 감행해왔으나 지금 첩보를 통해 보고되는 내전 상태가 실제로 발발할 경우, 군사력의 증강과 외부 세력의 침공에 대한 경계 확대 또한 당연히 이어지리라.
일반적으로 전투와 거리가 먼 업무를 맡은 노먼 베순이나 바빌로프 같은 이들이 평화의 지속을 주창했다.
두 입장이 모두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트로츠키는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단순히 그의 입장에 반하는 ‘영구혁명파’가 득세하고 있어서? 그가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원산유지파’가 그 입지를 위협받고 있어서?
아니다.
오히려 심정적으로 어느 쪽을 지지하고 싶은지, 스스로조차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선, 군사적, 행정적 지도자로서 트로츠키는 평화를 외쳤다.
이길지 질지 모를 싸움에 모든 걸 걸고서 현재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이점, 즉 근대적 병기와 근대화된 노동력을 모두 내버리는 미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그러나, 혁명가로서의 트로츠키는?
만일 조선과의 평화를 유지한다면. 사실상 천천히 조선으로 편입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꼭 사회주의의 대의를 져버린다는 뜻은 아닐 수 있고, 전근대 왕국 내부에서 어떤 파란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결국 혁명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 사실에 심장 한 구석 어딘가가 아려 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지금이 무장혁명의 적기인가? 원산유지파들의 주장대로 중국과 조선의 물량에 밀리지는 않을까? 애초에, 중세 아시아에서 성공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할 수는 있을까?
모든 것이 불투명하지 않은가? 심지어 수만의 생목숨이 이 한 번의 판단에 걸려있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달콤한 승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트로츠키가 살아생전에 이런 기회가 다시 올까? 중국이 혼란에 빠져 있고 조선 또한 내란에 휩쓸려 버리는 절호의 기회가?
결코 장담할 수 없었다.
그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우선은, 원산의 상황을 살펴야 할 것이라 생각하오.”
결정을 내릴 뿐.
당연하지만 트로츠키가 결심을 했다 해서 소비에트 총회의가 그의 결심에 따를 이유는 없었다.
트로츠키가 던진 한 마디에 당황한 영구혁명파들이 잠시 수세에 몰렸을 뿐, 장구한 토론이 계속된 것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차츰, 차츰 위세가 죽던 영구혁명파는 결국엔···
“기권표를 제외한 표결 결과··· 53표 대 49표로, 원산에서의 현상 유지가 결의되었음을 알립니다.”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그러나 저들이 다시금 이 문제를 들고 일어날 여지는 언제나 충분했다.
현상 유지를 지지하는 이들이 표결에서 겨우 신승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트로츠키 또한 원산유지파에 지지의사를 표명하는 데 줄곧 소극적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다시금 소모적 논쟁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고통스럽지만, 트로츠키로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다른 안을 살펴봅시다. 조선에서의 내란이 기정사실이라면, 우선 국경 통제를 확실히 하고 원산과 인근 주민들의 소재를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오.”
우선, 이렇게 운을 떼었다.
“일단 국경 경비를 강화하고, 호구조사를 시행합시다. 우선 게르마닉 호에 적재된 철조망을 국경선에 설치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소.”
트로츠키의 주장에 총회의 의원들은 하나씩 고개를 끄덕였다. 트로츠키의 주장을 단순히 아까까지 이어진 논쟁의 열기를 잠재우려는 시도로 본 듯했다.
그러나 그들의 추측은 틀렸다.
///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세금 내기를 싫어하는 사람과, 세금 안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
그런 만큼 전근대에서, 아니 심지어 근대에 이르기까지도 호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에게 세금을 매기는 일은 국가가 닥치게 되는 난제 중 하나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름? 김돌식. 나이? 21세. 거주지는··· 여기 맞죠? 보유한 토지 넓이는···”
“이주 희망자요? 이름, 나이를 이야기해주시면 미개척 농지를 분배할 테니 기다려주십시오.”
원산은 도시국가였다. 아무리 인구가 많아져도 우선 수색범위가 한정되어 있으니 일은 용이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초기부터 구휼 사업과 종자 지원 사업을 벌이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져 있다. 거기에, 몇 달 전부터 신원이 제대로 등록된 대상에게만 지원 사업을 벌였기에 대부분의 농민들이 호구조사에 협력적이었다.
또한 이주자의 경우에도, 농지 분배와 정착 지원의 대상이 되려면 정부에 등록되어야 했으니 소비에트 공화국의 눈을 피하려 하지는 않았고.
결국 국경선을 통제하고 인구조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원산의 인구는 대부분 행정망 속으로 들어왔다.
“다행인 것 같습니다. 트로츠키 동지가 제안한 인구 조사 사업이 생각보다 빠르게 마무리되고 있으니···.”
“뭐, 예상된 바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트로츠키 동지의 반대가 강력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겠군요.”
메리먼의 말에 에드워즈가 답하며 이쑤시개를 물었다. 담배가 떨어지고 나서는 뭐든 입에 넣고 보려는 습관이 든 듯했다.
메리먼은 별안간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스탈린주의자로서 살아온 자신이, ‘영구혁명파’라는 이름 아래 트로츠키주의자와 같은 주장을 하고 서 있다니.
얼마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광경이다. 이것도 얼마 전에 트로츠키주의자 파벌이 정리되었기에 가능한 결과일 테다.
이쯤에서 메리먼과 같은 영구혁명파들은 안심한 듯 보였다.
혹시라도 트로츠키의 제안이 정부의 역량을 행정 면에 쏟아부어 전쟁 대비를 원천 차단하려는 시도일까 걱정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에드워즈가 언급한 것처럼, 트로츠키가 확실하게 원산유지파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 망설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원산에 온 뒤로 가장 중량감 있는 인사가 의견을 섣불리 정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영구혁명파에게는 안도감을, 원산유지파에게는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결국, 트로츠키의 가슴속에도 혁명에 대한 생각이 없지 않으리라. 그것도 자신이 주창한 영구혁명론을 내걸고 나서는 이들에게 마음 놓고 반대의사를 표하지는 못하리라.
만일 트로츠키의 의도가 자신들의 견제에 있었다 하더라도 행정 사무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으니 자신들의 대의를 추진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메리먼은 안심한 얼굴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그 행정 사무의 ‘마무리 단계’가 무슨 의미를 띠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것.
그것이 그의 패착이었다.
호구 조사와 토지 분배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서 내려와 정리되어 갈 무렵 열린 소비에트 총회의.
회의가 시작하자마자 트로츠키는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만, 호구조사에 포함된 조선인들을 한시라도 빨리 소비에트로 조직하고 그 대표 선출을 서두르는 것이 좋겠소···.
그리고 그 대표들이 총회의에 파견되어 ‘원산의 평화를 바라는’ 조선인들의 의사가 하루빨리 정부에 전달되어야 하지 않겠소?”
잠시 침묵이 지속되다가, 누군가의 어설픈 질문이 이어졌다.
“저기, 그렇다면 전쟁 준비에 관한 논의는 어떻게 합니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그건 이미 지난 회의 때 기각된 안 아니오? 지금 우리는 공화국 내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확대를 논하고 있소.”
젠장. 트로츠키의 대답에 사태를 파악한 메리먼이 시선을 돌리자, 에드워즈는 입에 물고 있던 이쑤시개를 무심코 떨어뜨렸다.
트로츠키에게 외통수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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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라는 바람 (4)
이제야··· 트로츠키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메리먼의 머릿속에 훤히 그려지고 있었다. 저 멀리 에드워즈의 표정을 보자 그와 같은 생각인 듯싶다.
우선 인구 조사와 토지 분배. 당연하지만 유랑민이던 이들을 자작농으로 만들어주고 삶의 터전을 제공했으니 이주자들은 이곳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다. 뭔지도 잘 모를 사회주의를 위한 목숨을 건 투쟁보다야 새로운 집에서 밭이나 갈고 벼나 가꾸는 게 그들의 급선무일 터.
게다가 심각한 것은 자작농화된 것은 원산의 선주민들 또한 마찬가지라는 사실.
결국 원산 주민들이 소비에트 정부에 본격적으로 진출할수록 주전파에게는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너무··· 근시안적이었다.’
그러나 후회하고 땅을 친들, 어떻게든 실수를 무마하려 한들 이미 결론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면 인구조사 사업을 트로츠키가 막 제안했을 때가 마지막 기회였다.
지금 와서 트로츠키의 주장을 뒤엎는 것은 안될 말이다. 그의 주장은 완벽한 정론. 원산주민들에게 참정권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주장에는 흠잡을 부분이 없다.
그렇다면···
“그 의견에 적극적인 동의를 표하는 바요!”
차라리 동조하고 그 속에서 길을 찾는 수밖에.
밥 에드워즈가 약간 과장되게 외치자 다른 영구혁명파들도 별 이견 없이 동의의 의사를 표시했다.
결국 소비에트의 확대 안은 어떤 갈등도 없이 가결.
원산수호파의 노먼 베순 등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엿보였다.
그러나 메리먼 등이 내쉬는 한숨은, 뭐. 의미를 말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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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원산에 대대적으로 소비에트를 확대, 조직하기로 하는 안이 통과되고 며칠 뒤.
많은 인사들이 조직 고문으로 자원하며 차출되었다.
급한대로 구획된 소비에트들에 소비에트의 의미, 민주적 투표 방식, 사회주의 이념 등을 교육시키면서 그들이 원산 소비에트 공화국의 일원으로 통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제17 농민 소비에트의 조직 고문을 맡은 로버트 밥 에드워즈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자원자 중 대부분은 영구혁명파.
이들은 이미 불리해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소비에트들이 주전파의 의견에 동조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일지, 가능한 일이긴 할지에 대한 의문이 다들 컸지만 뭐든 해보는 게 손 놓는 것보단 나으리라.
“아, 밥 씨 오셨구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배정된 이들이 어느정도 동네 이웃으로서 에드워즈와 호감을 쌓아 놓은 이들이라는 것.
많이 접촉하고 이야기를 나눠본 편은 아니었지만, 미약한 호감이라도 있다면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에는 유리해질 것이다.
“그··· 소비에트라는 것이 ‘러시아 혁명가’나 ‘레닌가’에서 봤던 그것이 맞수?”
“아···네? 네!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투표로 일상 업무를 처리하고 노동자와 농민이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다가, 조선인들이라도 창작극 등을 통해 이미 사회주의와 소비에트 체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 보인다! 이거 생각보다 조직이 쉬울지도···
“소비에트면 우리도 총 쏘고 뿔 달린 백군을 죽이나요!”
“아니지! 뿔 달린 건 스탈린이야! 백군은 꼬리랑 날개가 달렸지!”
“그럼 우리도 스탈린을 죽인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아닌가?
훗날 밥 에드워즈는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이렇게 회상했다.
‘트로츠키 동지의 첫 창작 연극은··· 참 해악이 많았습니다.’
우선 투표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부터가 문제.
“일단 시시콜콜한 일상 업무에서는 굳이 격식 안 차리고 공개적인 거수 투표를 하지만, 지금처럼 대표자를 선출하는 등의 이례적인 상황에서는 각자 소신에 따라 투표할 수 있도록 비밀 투표를···”
“나, 삼식이는 정남이를 찍을 거이니, 여기서 딴 놈 표 나오면 쳐 맞을 줄 알어!”
“그러면 안 된다고요!”
체계적인 토론 과정을 자리잡게 하는 것 또한 문제.
“그래서 깜돌이가 느그 집에서 밥을 안 처먹고 우리 집 포테토를 캐 간다니까!”
“아니! 그럼 개새끼가 밥 뭐 처먹는지를 나더러 하루죙일 감시하란 뜻인가, 자네!”
“여러분! 지금은 수차 공사에 누가 먼저 동원될지 결정할 시간입니다! 그리고 삼식 동지! 제발 발언권 요청하고 말 꺼내세요!”
그래도··· 이런 절차적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것은 차라리 나았다.
어떻게든 자리에 앉혀 놓고, 한 명씩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말하게 하는 건 뭐···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결국 이것.
“그렇게 하여, 레닌 동지와 볼셰비키가 러시아 공화국 임시 정부를 뒤엎고 노동자국가를 건설했습니다! 다들 러시아 혁명가 들어보셨죠?”
“고럼요! 그 임시 정부 지도자가 케렌스키란 놈팽이 아닙니까?”
“잘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다들 정남 동지에게 박수 쳐주십시오!”
“저희도 레닌 동지 아주 존경합니다!”
“···아 삼식 동지··· 예, 그렇군요.”
“말 나온 김에, 밥 선생한테도 하나 나눠드릴께.”
“아, 감사합니다. 이게 뭐죠? 부적 같은 건가요? 뭐라고 적혀 있는 거죠?”
“레닌재림 만노앙복(禮仁再臨 萬勞仰伏).”
“아니, 시발, 제발!”
이 김에 산골짜기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레닌··· 신당을 발견하여 때려부수고 상부에 보고하는 귀찮은 잡일까지 맡게 되었다.
“우리는 그런 미신을 배격합니다! 그, 이상한 귀신들 밥 주느니 산 사람 배불리고! 풍년제 굳이 지낼 시간에 밭뙈기에서 돌 하나 더 골라내면 농사가 더 잘 됩니다!”
“그···그러지 말어. 아니 산신께서 노하시면 안 된다니까.”
아니, 분명히 무당들은 다 때려 잡았을텐데 어디서 계속 신당과 미신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단 말인가?
심지어 자기들 앞에 멀쩡히 살아있는 트로츠키 신당까지 차려놓고서 제사를 지내는 꼴까지 봤을 때 밥 에드워즈는 뒷모가지를 잡고 쓰러지기 일보직전까지 갔었다.
까놓고 말해서 신으로 섬겨질 만큼 트로츠키 동지가 인격이 괜찮지는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