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10
상황을 타개해야 하니….
사보나롤라는 몸을 일으켜 세운 뒤 팔을 번쩍 들어 올린다. 대열의 앞으로 나서서, 저기 연설과 조롱을 이어 가는 프란체스코를 똑바로 바라본다.
“더러운 반역자여! 너는 로마의 더러운 세력들을 끌어들여 우리 공화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제 조국을 저버렸으니 자랑스러운 피렌체의 시민이라 할 수 없다!”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페라라 출신의 수도사여! 그리고 우리는 조국을 위하여 봉기한….”
“조국을 위하여? 조국을 위했다고!”
사보나롤라는 근방에 쌓인 시체들 위로 오른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단상에 오르니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만큼은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석궁을 맞을 위험도 있겠지만, 감수할 만했다.
“피렌체의 시민들이여! 그대들은 저 샤를마뉴 황제가 그대들에게 허락한 자유를 지키시오! 그대들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시오!”
프란체스코는 갑작스레 사보나롤라의 연극투에 당혹했으나, 곧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벗어남을 알고 그 의도를 깨닫는다.
“다들, 제각기 점포에 숨어 무얼 하시오? 그대들의 조국이 그대들을 부르오! 그대들의 자유가 그대들을 기다리오!”
본래 역사에서 로렌초 암살의 주모자들은 어떻게 죽었나?
광분한 시민들에게 갈갈이 찢겨서.
자코보는 수없는 고문 끝에 발가벗겨져 교수형당했다. 썩은 시체는 파헤쳐지고 파치 궁전의 대문에 걸려 썩어 갔다.
프란테스코는 마찬가지로 알몸으로 저 시뇨리아 궁전에 내걸린다. 누군가는 손발이 잘리고, 누군가는 머리가 쪼개진다.
그 사실을 물론 프란체스코 데 파치는 알지 못하나, 하나만큼은 알고 있다.
저 애국주의적 선동이 지금처럼 다른 목청 큰 사내들에 의해 서서히 광장 가장자리까지 퍼져 나간다면.
전투의 함성과 소음을 뚫고 전달된다면.
지금 저 건물들 안에 숨어 교황령에 이를 갈고 있을 시민들은 어떻게 할까?
“무장하라!”
“파치라는 이름을 단 놈을 모조리 찢어 버려라!”
프란체스코 데 파치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된다.
거리를 가득 매운 시민들의 대오가 제각각의 무기를 든 채 광장으로 몰려든다.
―“지롤라모! 지롤라모!”
―“위대한 예언자여! 그대의 부름에 우리가 답한다!!”
“하… 하하….”
헛웃음이 나온다.
곧 쇄도하는 시민들의 무리에 용병들 역시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며 결국 무기를 놓친 채 구타당한다. 밟히고 걷어채, 인간과 곤죽 사이의 흉측한 무언가가 되며 죽어 간다.
“모조리 죽여 버려!”
“지롤라모 만세! 공화국 만세!”
“로렌초 만세!”
시뇨리아 궁전의 대문은 그제야 열리고, 그 안에서 역시나 분노에 찬 공무원들이 무기를 들고서 뛰쳐나와 지친 용병들의 등 뒤에 단도를 꽂는다.
프란체스코의 눈에 이내, 시민들에 의해 헹가래 쳐지는 어느 수도사의 모습이 보인다.
“지롤라모! 지롤라모!”
“공화국의 영웅 만세!”
프란체스코는 번제물이었다.
공화국의 새로운 믿음의 아버지, 새로운 아브라함을 위한.
그러나 그의 희생을 막아 줄 천사는 나타나지 않으니.
“흐, 흐하, 하하하하….”
시민들이 패배자, 반역자의 팔다리를 붙든다. 모두 통제되지 않는 분노와 희열에 찬 얼굴이다.
그 짧은 순간 동안, 프란체스코는 세상에 대한 작별 인사를 마쳤다.
안녕,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될 수도 있었던 도시여.
* * *
로렌초는 메디치 궁의 부서진 대문을 바라본다.
파치 일가의 군대가 기어코 이곳의 방비를 뚫어 낸 것이다.
내부로 들어가자, 여전히 전투는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다. 공격자들을 막아 내기 위해 소파와 탁자, 그리고 클라비쳄발로(clavicembalo)로 급조한 바리케이드가 좁은 복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빌어먹을 개새끼들이 감히 내 집에 발을 들여놔!”
“커, 커헉….”
“항복, 항복하겠소! 제발 자비를…!”
로렌초와 호위 병력들에게 등을 보이고 바리케이드의 돌파에만 골몰하던 파치의 군사들은, 후방에서의 기습에 손쉽게들 제압되었다.
로렌초는 걷는다. 수없이 널린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시신과 부숴진 가구들을 헤쳐 가다 보니 수십 년을 살아온 궁전임에도 마치 처음 보는 미로와도 같이 느껴진다.
어찌어찌 계단을 찾아 층을 오른다. 2층에도, 3층에도 적 잔당은 남아서 로렌초의 앞길을 막아섰으나 어떻게든 뚫고서 나아간다.
빌어먹을 가족들.
계산적이고, 탐욕스럽고,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며 견제하던 일족들의 궁전이다.
조부 코시모 데 메디치의 시절부터 이룩한 메디치의 위업의 상징이고, 또한 피렌체를 움직이는 권력의 실체였다.
그것이 이렇게….
‘괜찮다.’
재건하면 된다.
동생을 위하여 아주 화려한 영묘를 세워 주리라. 산 로렌초 대성당(Basilica di San Lorenzo)에 있는 가족 묘를 아예 한번 완전히 새로 지어 보자.
이전보다 훨씬 더 화려하게, 대리석 주춧돌 위에 황금 전신상을 올리고, 마찬가지로 황금 도금된 동판에 은으로 입사하여 그 묘지의 주인 된 자의 이름을 써넣자.
고대 로마의 갑주를 걸치고서, 당당히 참배객을 내려다 보는 형제의 얼굴 아래에는 이렇게 쓰여 있을 것이다.
―‘줄리아노 디 피에르 데 메디치(Giuliano di Piero de’ Medici)’
―‘고결하고 헌신적인 시민, 누구보다도 훌륭한 형제이자 벗’
이제 저 멀리서 웅성이는 소리가 난다. 어머니의 목소리, 숙부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곧 있으면 가족들과 합류하여 이 난리 속에서 살아남은 메디치의 잔존 세력을 규합할 것이다. 모든 쓰레기들을 이 도시에서 섬멸하고 로마를 향한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줄리아노, 네게 그것이라도 돌려주겠다.
네게 승리를, 마침내 우리의 것이 된 피렌체와 로마를….
그러나 곧 이어지는 격통과 함께, 로렌초는 깨닫는다.
이젠 나의 몸에 손잡이가 돋아날 차례로구나.
“편히 잠들라(Requiescat In Pace).”
뒤돌아보니 뒤따라오던 병사들 역시 제압되었고, 낯선 남자가 손목에서 돋아난 단도로 로렌초의 몸을 휘젓다가 사라진다. 그의 외투 안쪽에서 기묘한 붉은 별 표식을 본다.
―편히 잠들라.
그 작은 속삭임.
그것이 로렌초가 이 지상에서 들은 마지막 소리였다.
의식이 흩어져 가자, 로렌초는 저항하지 않고 암살자의 조언에 따랐다.
눈을 감는다.
위대한 자가 이곳에 영원히 잠들었다.
* * *
무장한 예언자 (1)
바들바들 떨며, 두려움에 찬 눈으로 단상에 선 그들은 눈앞의 밧줄을 바라보았다.
지난 낮과 밤 동안 수많은 칼날과 창날이 휘둘러지는 걸 보아 온 이들이, 그 어떤 날붙이나 분노한 군중의 손길들보다도 고작 밧줄로 만든 고리 하나를 더 두려워하는 모습은 꽤나 아이러니해 보이기도 했다.
“반역자들!”
“지옥으로 가서 자코포랑 키스라도 해라!”
시뇨리아 광장에서 군중에 둘러싸인 그들 중, 반은 앞서 말했듯 아직 두려움과 희망이 남아 목숨을 구걸했고, 나머지 반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몸과 정신을 보고서 처연한 태도를 유지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희망을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사형 집행인들은 공정했다.
반역자들의 목에 곧 억센 대마 밧줄이 걸린다. 제 살날이 아직 많이 남았다 생각하던 젊은이들은 버둥거리기 시작한다.
메디치에 자비를 호소하고, 공화당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어떻게든 살아 나갈 구석을 마련해 보려 한다.
허나 시민들은 잔혹한 신처럼, 한목소리로 외쳤다.
“죽음을!”
“징벌을!”
그러자 성난 그들의 앞에 한 남자가 선다. 마치 랍비들의 요구에 못 이긴 척 나서던 빌라도와 같은 모습으로.
“여러분, 이들의 죽음을 바랍니까?”
간단한 질문.
“그렇소!”
답변 또한 간단했다.
그러자 이번에 남자는 보다 길게 묻는다.
“이들은 신성한 공화국 정부를 침해하려 하였으며, 고래로부터 이어진 도시의 신성한 자유를 로마에 팔아넘기려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공화국을 수호하고 로마로부터 우리의 자유와 주권을 지켜주려던 일 마니피코를 죽였습니다!
이들의 죽음을 원하십니까? 그 무엇보다도 간절히 원하십니까!”
이쯤 되면 더 이상 물음이 아니었다. 시민들을 향한 선전이자 선언이었다.
당연히 시민들에게서는 긍정의 대답이 쏟아진다.
마침내 대마 밧줄이 알맞게 조여지고, 죄수들이 저항을 멈추자 남자는 손짓한다.
그 손짓에 따라 시민들은 외쳤다.
“우리는 원한다! 저들의 피를 내놓으라!”
“반역자들에게는 죽음을!”
“피렌체 시민의 이름으로! 그 권력을 대표하고 대행하는 시 정부의 이름으로! 지난날 반역자들을 제압하고 도시에 질서를 되돌려 낸 공화당의 이름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구속되고 구형된 죄인들의 형을 이제 집행하겠소!
사형!”
공화당의 서기장, 사보나롤라는 그렇게 형의 집행을 명한다.
손잡이가 당겨지자, 그들의 발아래 있던 단상의 바닥이 훅 꺼졌다. 피가 섞인 게거품을 물던 파치의 일족들은 물기를 잃은 어류처럼 퍼덕인다.
이내 발버둥도 사라졌다.
그러나 함성과 환호성만은 사라지지 않았고, 반역자들의 시체는 시 정부가 어떻게 수습할 틈도 없이 시민들의 손에 갈취되어 온갖 곳에서 조리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파치가의 위대한 수장 자코포 데 파치와, 로렌초와 줄리아노를 죽였다는 프란체스코 데 파치의 몸까지.
이미 죽어 가매장된 주검들마저 사람들이 파헤쳐 여기저기로 끌고 다니는 상태였다.
특히 자코포는 메디치가의 궁전 대문 앞에 무릎 꿇려진 채 세워져 있었다.
대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자코포의 이마가 대문에 찧어지도록 교묘하게 위치지어져 있어 피렌체 시민들의 잔혹한 창의력이 돋보였다.
허나 그 모든 사실은 사보나롤라의 알 바가 아니었다. 죽어서 천국에 가지도 못할 작자들이 교회 뒤뜰에 제대로 묻혀 봐야 뭐 대단한 안식을 누리겠는가?
사실, 이제 이 도시의 누구도 알 바가 아니었다.
짧고 격렬한 단죄의 기간이 끝난 뒤 가장 악랄한 주범들을 제외한 파치가의 시신들은 잊히고 유기되었다. 다른 신원 불명의 시신들과 함께 커다란 구덩이에 매장되었다.
도시의 모두가 신경 쓰는 바는 이제 한 가지뿐이었으니.
‘피렌체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도시를 불태우던 잔치는 끝났다. 이제 뒷수습의 시간이다.
* * *
“작품은 다 완성이 되어 갑니까?”
“조금만 더 시간과 예산을 주신다면 마무리가 될 겁니다!”
“지난번에 슬쩍 봤는데 손밖에 안 그려지지 않았습니까?”
“말씀드렸던 바대로 시간만 더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 완성될 테니 기다려 주십시오!
주님의 공화국에 헌정한다는 생각으로 제 영혼을 물감처럼 쏟아부어 완성하겠습니다!”
“…일단 그대의 열정은 잘 알겠습니다. 오늘의 스케치는 여기까지 하지요. 제가 시뇨라(signóra)와 일정이 있어서.”
“아, 알겠습니다! 제가 새로운 공화국에 헌신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반드시 걸작을….”
“일단 자리를 비켜 주셨으면 합니다만.”
“네!”
사보나롤라를 무슨 성자를 보듯이 떠받들던 이상한 화가는 그에게 모자를 벗어 꾸벅 절한다.
인사를 마친 뒤로도 작업에 미련이 남았는지 계속 스케치를 끄적이며 모델이 되는 사보나롤라와 다른 한 사람을 힐끔거린다.
“이제 나가셔도 됩니다. 제때 완성만 해 주십시오. 우리 공화국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시킬 대작이 되어야만 하니….”
“아아, 물론입니다. 걱정을 마십시오.”
“꼭입니다, 시뇨레 산드로.”
“걱정 붙들어 매시지요! 제가 곧 공화국 정부에 이탈리아의 모든 도시가 질투해 마지않을 걸작을 만들어 바치겠습니다. 위대한 예언자께서 저를 후원하셨다고 대대로 전하겠습니다!”
뭔가 자신감이 넘치는 예술가를 떠나보내며 사보나롤라는 한숨을 쉰다.
스파냐(Spagna, 스페인) 대사 각하께서 무슨 연유로 저 화가를 그리 강력히 추천했는지 알기 어려웠다.
이런 중대한 작업을 맡길 다른 중견 작가들도 많은데, 구태여 아직 명성을 쌓아 가던 젊은이를 기용하다니.
그리 생각하면서도 저 작가가 남기고 간 스케치 몇 장을 훑어보니, 예술을 잘 모르는 그로서도 그 세밀함과 정성이 대단했다.
보티첼리….
그래, 그런 이름이었다.
아무튼 유난히 시끄럽던 사보나롤라의 열성 지지자가 떠나니 방 안에는 오직 두 사람의 침묵만이 남아 있다.
사보나롤라는 자기 외에 남아 있는 여성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시뇨라. 이렇게 모델로서 시간을 낭비하게 해서. 저 젊은 화가가 시뇨라를 많이 번거롭게 한다 들었습니다.”
“괜찮소. 다른 것도 아니고 내 아들을 기념하는 일이니.”
루크레치아 토르나부오니는 가볍게, 자신이 들고 있던 헝겊 인형을 내려놓는다.
루크레치아 본인보다도 키가 크고 꽤 무게가 나가는 인형이지만, 그리 오래 안고 있었는데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이 일이 잘되어야 우리 가문도 살고, 나와 그대 역시 살아남겠지. 어떻게든 간에 말이오.”
“….”
“단 하루 만에 나는 두 아들을 잃었소.”
“유감입니다.”
“둘 모두 자신감이 넘쳤고, 그만큼 오만했소. 나는… 언젠가 둘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소.”
바로 어제가 장례식이었다.
마침 내리던 빗속에서 피렌체의 반은 울었고, 나머지 반은 바닥에 쓰러졌다.
도시가 애도 속에서 정화되고 단결했다.
로렌초와 줄리아노의 죽음은 그렇게 루크레치아의 앞에 끊임없이 되새겨져야 할 것이었다.
새로운 정부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그려지는 벽화 역시 그러했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메디치 궁전까지 당도했으나, 결국 파치 가문의 흉기에 베인 상처가 덧나 쓰러지고 만 로렌초 ‘일 마니피코’ 데 메디치의 비극적이고 영웅적인 최후.
‘영웅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성스러운 죽음을 맞았고, 어머니는 비통한 마음에 그 시신을 끌어안고 절규한다.’라는 고전적인 비장미가 흐르는 장면.
그 장면이 시뇨리아 광장의 외벽에 남아 시민들에게 전시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