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50
“아니···아닙···쿨럭.”
그때 정인지의 당혹감 어린 표정, 어색한 말투는 잊을 수가 없다.
결국 마침내 그를 눈앞에 붙잡아 놓았던 순간에도 대답은 듣지 못했으니.
가슴속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자신을 명국에 팔아넘긴 오라버니, 애초부터 그를 위해 시집도 가지 못하게 막았던 비정한 오라버니, 먼저 명국에 간 언니가 황제와 함께 순장당하는 꼴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한 채 한계란까지 넘긴···.
그리고 나와 조선의 유일한 연결고리가 되어주던, 유일하게 버팀목이 되는 혈족.
어느새 손톱이 열 손가락 모두 뭉툭해지자, 그제야 한계란은 제 손을 내다본다.
손가락 끝에서 피가 흐른다.
대체, 대체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
한계란이 시름에 잠기던 그때,
한명회는 오랜만에 권람과의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권람이 한명회를 수양대군과 연결해준 뒤, 한명회가 수양대군의 눈에 들면서 점차 권람을 낮게 깔아보는 분위기가 강해졌었다.
그 주요한 이유는 권람 자신이 특별한 꾀나 재주가 없다는 것에 있었다.
권람 자신은 수양대군과 친분이 있다는 것만이 정치적 자원의 전부다.
반면 한명회는 수양대군에게 뒷골목의 ‘인재’들을 소개해주고, 지난 한양에서의 전란에 있어서는 앞장서서 병력들을 지휘했으며, 그 전후로 꾸준히 수양을 위하여 이런저런 모사를 꾀하며 수양대군 세력의 모주(謀主) 노릇을 톡톡히 한 것이다.
그에 따라 물론 권람 스스로가 느끼는 자격지심도 있었겠다만은, 한명회 측에서도 은근히 권람을 무시하는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니 둘 사이의 관계도 점차 소원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수양대군의 총애를 두고 다투는 경쟁자로서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하였고, 각자 상대방을 벗이라기보다는 잠재적 정적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두 사람 사이의 불편한 기류 또한 극적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생겨난다.
바로, 고명주청사 자리를 둘러싼 경쟁.
당연히 그 막중한 자리에는 그에 걸맞은 급의 인사가 참가해야 하는 바, 영의정 정인지가 명국으로 향하는 배편에 오르는 것은 반쯤 확정이었다.
허나 사절단이 정인지 1인으로 구성된 게 아닌 이상에야 다른 이들도 끼워서 가는 것이 당연지사.
헌데.
“···결국 영상 대감에 붙어가는 건 심 씨들이구만?”
“기가 막히는군. 제깟 것들이 대감께 뭘 해 드렸다고.”
권람과 한명회 두 사람은 열외되었다.
수양대군 대감, 아니 주상 전하께서는 그들을 따로 불러 다독이며 마음 상하지 말라 하였으나, 두 사람으로서는 전하의 최측근으로서의 위치가 흔들림을 느낄 수밖에.
이건 견제다.
감히 주상 전하와 친하다 하여 너희들끼리 독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별다른 판돈도 없이 그 한 몸과 세 치 혀로 이 커다란 판에 끼어든 ‘애송이’들을 배제하겠다는.
그렇다면 그 대표주자가 누구인가?
바로 심회, 심결 형제들.
그들의 아버지가 세종대왕의 장인이던 바로 그 심온이다. 태종대왕대에 역모로 몰려 살해당했던.
세종대왕께서 끝끝내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던 장인어른의 신원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신 뒤, 문종대왕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복권된 심온.
그제야 심 씨들 또한 막혔던 관로(官路)가 다시 트여 심회 등이 음직으로 관직에 진출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음서를 통하다 보니 이전의 한명회처럼 제대로 된 직책에 임용되지 못하다, 이제 금상께서 즉위하시니 기지개를 켜는 참이다.
이런저런 중요인사들과 두루 친분을 맺고 있는 명문가의 자제들이기에 현 정국의 안정을 위해 포섭 1순위로 떠오른 이들.
전하께서 심회를 ‘숙부님, 숙부님’하고 부르며 크게 대접하고 계시니, 심회와 심결 또한 슬그머니 한명회와 권람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올려놓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에 한때 멀어졌던 두 사람은 공적(公敵)을 맞이하여 다시 의기투합하였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저들이 노릴 것은 고명주청사 자리.
별 다른 수고도 없이 다른 인사들에게 묻어가면서도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자급을 올리기 제격인 일이다. 까놓고 말해, 제대로 된 실무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루고 자기들은 북경 유람만 다녀와도 승진할 수 있다.
그 생각에 배알이 뒤틀린 두 사람은 정인지 대감께 나아가 부디 북경으로 조천하는 길에 끼워달라 읍소하였고, 대감도 잘 알아들었다 하였는데···
뒤통수를 맞았네?
“결국 영상께서도 우리가 같잖아 보인 것인가?”
“이미 연이 닿아있는 심회 같은 작자들 키워주는 게 맞다고 여긴 것 아니겠나! 우리가 너무 클까봐 늙은 새가슴에 겁이 난 것이겠지!”
결국 이렇게 술상을 앞에 놓고 성토대회를 열어봐야 소용이 없는 일.
다음날, 두 사람은 그렇게 한양을 떠나는 행렬을 쓰린 속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라고 하오.”
트로츠키는 그렇게 긴 이야기를 끝낸 뒤 목이 타는지 탁자 위의 물잔을 잡아 입으로 가져간다.
“흠, 잘 알겠습니다. 아무튼 간에 책봉을 받으러 가는 길에는 수양대군 측이 한두 수 정도 앞서 있었다는 것이군요.”
“가장 중요한 부분만 요약하자면 그렇지. 그리고 수양대군 진영 내부에서 일어나는 내부 분열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만한 지점들이 많소.”
그 모든 내용을 듣고 나서 신숙주는 한참동안 턱을 쓰다듬으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가장 궁금한 점은 따로 있습니다. 이런 깊은 내부사정은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역시 그것부터 물어볼 줄 알았소.”
“그렇지 않습니까? 분명 듣기로는 지난 한양에서 일어난 한바탕 싸움 때문에 깔아 놓은 세작(細作, 스파이)들이든, 조직들이든 모두 무너졌다고···.”
“그건 말이오, 동지?”
트로츠키는 빙긋이 웃었다. 신숙주는 그것이 자신을 일본으로 보내버릴 때 지었던 미소임을 깨닫고 몸을 떨었으나, 트로츠키는 개의치 않으며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이야기 속에 답이 있다고 할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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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복벽 (2)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바야흐로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이, 경태제가 입을 열자 장내의 모두가 머리를 조아린다.
‘어찌 생각하느냐?’ 이는 분명 조선에 대한 이야기이리라.
더 정확하게는 조선에서 두번째로 온 고명주청사에 대한 논의.
하나의 나라에 두 임금이 있으니 이는 절대 예사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먼 외방의 일이라면 그런 일도 있구려, 하며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되겠다만 이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난 것은 바로 북경 코앞의 조선 땅.
저들의 자중지란이 어떤 파급효과를 몰고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만큼 모두가 신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일 뿐이었으나,
한 남자가 감히 말을 올린다.
“황제 폐하의 성교(聖敎)가 이미 내려졌으니 이는 다시 물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먼저 온 수양대군의 사신들에게 조선국왕의 고명을 이미 내리시었기에 조선에 군왕이 둘 되지 않는 이상에야 그 자는 역신입니다.
그리고 역신은 마땅히 그 목을 잘라 주벌하여야 할 죄인입니다. 청컨데, 죄인을 벌하고 국법의 위엄을 높이시며 번국이 천조의 다스림을 가벼이 여기지 않도록 하여 주소서.”
우겸. 병부상서, 소보, 태자태부. 그러나 한낱 관작만으로 그를 다 설명할 수는 없으리라.
토목의 변에서 정통제가 사로잡히고 북경이 위협받을 때, 홀연히 일어나 오이라트를 물리치고 경태제를 옹립해 조정을 안정시킨 영웅적 인물. 그가 없었다면 명국의 사직이 어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런저런 간계를 혐오하는 성정에 맞게 그는 정론을 내놓았다.
이미 조선국왕을 책봉했다면,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섬기는 이는 모두 주살해야 할 역신(逆臣)이다.
게다가 조선 북방의 반란군은 여진족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병력을 동원하고 있다는 수양측의 보고까지 있었다. 왜곡의 여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란군이 자리잡은 지리적인 위치를 생각해본다면 도리어 여진과 손을 잡지 않는 쪽이 더 어색하리라.
고로 역신은 죽이고, 적법한 조선국왕에게 온전히 힘을 실어준다.
허나, 경태제의 마음에는 우겸의 이야기가 성에 차지 않는 듯하다.
그 틈을 파고 들어 환관 조길상이 말한다.
“하오나 조선국이 백구지국(伯舅之國, 번국 중에서도 으뜸가는 번국)을 자처하며, 또 자신들이 명에 가장 충성한다 입으로는 말하지만 속으로는 천조(天朝)의 위엄에 고개 숙이기를 망설이는 표리부동한 이들이옵니다.
폐하, 고려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저들이 몽고 오랑캐의 원(元)을 섬기며 오만한 낯빛을 띠고 있었던 시절이 먼 옛날이 아닙니다.”
그제야 경태제는 마음에 찬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친명과 친원 기조를 번갈아 취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샀던 고려, 그 뒤를 이은 조선.
이후 명이 북방 여진족의 충성을 확보하려 하자, 그들을 제 영향력 아래 두고자 하며 조선은 사사건건 대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조길상이 말했듯 그 시절은 아주 먼 옛날이 아니라 불과 50여년 전이다.
지금은 조선이 더욱 혼란하여 그 속을 알기 어려우니, 신중에 신중을 기함이 옳을 터.
“그 말이 참으로 옳다. 짐이 새로이 조선왕에게 고명을 내렸다 하나, 그가 어떤 사특한 마음을 품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조선왕이 어떻게 작금의 자리에 올랐는지, 혹시 그자가 역신(逆臣)인지에 대해서도 짐은 아직 알지 못한다.
고로 그 목줄을 쥐어 놓을 필요가 있을 터. 민신이라는 자는 죽이지 말고 다만 가두어 놓기만 하라.”
“지당한 말씀이시옵니다, 폐하.”
“그러면 다음 현안은···”
-쿨럭.
황제의 목에서 나오는 소리에 다들 섬짓섬짓한 기분을 느끼며 그 옥체를 몰래 올려다본다.
얼굴빛이 나쁘다.
조선에서 사신이 다녀온 이후에 폐하의 기침소리가 잦아지고, 또 용안이 조금씩 수척해져 간다. 식욕 또한 조금씩 줄어든다는 이야기도 식사 시중을 드는 환관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다.
대임을 이을 황태자도 작년에 죽어버린 불안한 정국.
우량카이 3위도 통제에서 벗어나 슬글슬금 오이라트의 야센을 방치하더니, 현재는 그의 요동 침공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등 변방의 정세도 위태롭다.
야센이라는 인물의 입지가 불안하다고는 하나 여전히 그가 몽골 전역에 영향력이 닿는 인물임은 부정할 수 없으니 더더욱.
게다가 동방에는 조선에 굴욕적인 패배를 안겼다는 오랑캐 무리가 여전히 웅거하고 있는 상태.
무엇보다도, 지금 선황인 정통제가 남궁에 멀쩡히 살아있으며 폐태자 기왕 주견심도 그렇다.
만일 황제의 건강이 위협받는다면,
그 누구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쿨럭, 쿨럭···. 일단 오늘은 조회를 마치도록 하겠다.”
경태제 또한 그 사실을 깊이 알고 있기에, 따라주지 않는 자신의 몸을 무엇보다 원망하였다.
그리고 명 조정의 걱정이 기우가 아니라는 사실은, 얼마 뒤에 조선에서 증명되었다.
///
“···전하, 황제 폐하의 고명을 받들어 돌아오던 영의정 정인지가 결국.”
“들었다.”
인천에 도착한 배에서 정인지는 제 발로 걸어서 내려오지 못했다.
급조한 관에 실려 바다를 건넌 정인지는, 며칠 안 되어 차가운 흙 속에 묻혔다.
곡소리들의 너머에는 불안한 신음소리들이 들렸으니 고명 받아오던 이가 급사한 이 상서롭지 못한 일은 곧 누구의 입에도 오르내리지 않았다.
한명회와 권람은 그나마 자신들과 연계하던 중량감 있는 인사가 죽으니 눈치를 볼 뿐이오. 그 둘을 눈꼴사나워하던 이들의 어깨도 슬그머니 올라가더라.
한양도성 위로 시체를 찾는 까마귀가 몰고 온 무거운 공기가 떠돌았다.
///
“방금, 조선국에서 온 사신이 유폐되어 있다고 하였나?”
“예. 지난번에 고명을 받아간 주청사 외에 다른 칭왕자가 보낸 사절이라 하여 가두어 놓았다고 하옵니다.”
“내가 만나 볼 수 있겠는가?”
“그, 그건···.”
“나는 본래 조선에서 온 사람이다. 고향에서 온 이를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하였으니 한번 말이라도 나눠보고 싶구나.”
“하오나 그 자는 죄인이 아닙니까?”
“죄인이라면 응당 목을 치거나 옥에 가두었겠지. 저리 어느 전각에 유유자적 앉아있는 죄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건···.”
한계란이 의표를 찔러오자 그를 응대하던 환관의 얼굴이 찡그려지고 말문이 막힌다.
맞는 말이다. 잡아들일 적에는 황제께서 고명을 내린 군왕에 거역하니 곧 대역죄인이라 하며 잡아들였건만, 그렇다면 살려둘 명분이 없으니 죄명은 어물쩍 넘기고 그저 애매한 신분으로 가둬놨을 뿐.
제 깜냥으로 문제를 처리할 수 없게 되자, 윗선에 알아보고 오겠다며 부리나케 달려가던 환관은 곧 반갑게도 ‘허락’이라는 답변을 들고 왔다.
단, 대면 가능한 시간은 2각(30분) 정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 탁자에 둘러앉은 지 1각이 다 되어가도록 저 민신이라는 자는 묵묵부답이다.
“제가 어려운 것을 묻고 있습니까? 아니면 조선을 떠나온 지 오래되어 저의 조선말을 알아듣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니오만···”
“그렇다면, 어려운 질문을 묻는 것도 아니고 제가 조선말에 서툰 것도 아니라면! 어째서 이 짧은 물음 하나에 대답을 주시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민신이라는 자는 뭐라 우물거리다가 다시 생각에 잠긴 듯 눈앞의 찻잔에 시선을 모으기만 하고 있다.
그런 그를 다그쳐본다.
그것도 다그칠 만하니까 다그쳐보는 것이다.
정인지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대답을 주지 않겠다는 태도가 얼굴로도, 몸짓으로도, 목소리로도 모두 이미 드러나 있었다. 그저 한계란을 만나서 낭패라는 감정, 그리고 한계란에게서 어서 벗어나야만 하겠다는 궁리로 시간을 끌기만 하던 그였다.
그러나 지금 여기 자리에 앉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민신의 경우에는 다르다.
저 자는 손익을 재어보고 있다.
이 사실을 이야기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지, 잃는 것은 또 무엇인지.
얻을 것과 잃을 것을 비교해보았을 때는 어떻게 될 것인지, 둘 중 어느 쪽이 더 커서 이 사실을 이야기할 때 결과적으로 득 또는 실 중 어느 쪽이 될는지.
그리고 그 득과 실 중에서 자신이 봉사하는 이들의득실과, 온전한 자기자신의 득실은 어떤지.
이렇고 저런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느라 머릿속이 바빠 보이는 것이 티가 났다.
그렇다면 대답을 재촉하기 위해 한계란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그의 셈계산에 숫자 몇 개를 더해주는 것일 뿐.
“그건 그렇고, 조선국왕 전하께서는 평안하십니까?”
“어느 전하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감히 황제 폐하를 우롱하여 고명을 갈취해간 역적수괴 유(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작금에 수양대군 유와 그 불궤한 역당(逆黨) 무리를 쓸어버리려 거병하신 우리 전하를 말씀하시는 것이 맞습니까?”
“그대의 주군 이야기 말입니다.”
영문 모를 질문에 민신은 잠시 수염을 쓰다듬으며 할 말을 골랐다.
“강녕하십니다. 그건 어째서 묻는 겁니까?”
“부럽습니다. 작금의 황제 폐하께서는 요사이 몹시 편찮아지셨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조회에도 제대로 참석하지 못하고 계시지요.”
그 말에 민신의 귀가 쫑긋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황제의 건강에 대한 언급. 그 밑에 깔려가는 암시가 의미하는 바가 얼마나 큰 무게를 지닐지 짐작케 했다.
“저야 사실 오래 전에 승은을 입은 뒤로는 점차 궁의 일과 거리가 멀어져, 폐하의 건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저 기왕 전하를 제 뜻에 따라 잠시 모시고 있을 뿐 한가한 몸입니다.”
서서히 민신의 표정이 변해간다.
‘지금의 황제는 건강이 악화되어가고 있다.’
‘이전의 황태자는 내가 잘 모시고 있다.’
대체 눈앞의 사람이 무엇을 입에 담고 있는가, 그 무게감에 짓눌린 듯한 민신이었다.
···그리고 그는 대답한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수양이, 몸종에게 왜도 한 자루를 배달시키라 하였답니다.
그때 좌상을 맡고 계시던 그분께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몸종이··· 간이재 대감을···.”
됐다.
진실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