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75
두만강변에 목책만 둘러놓은 간단한 진. 소련이 개발하는 광산들 근처에서 떨어져 경계가 느슨한 영역이다.
즉, 조선으로 건너오려는 북방 민족이 택하기에는 최적의 루트.
“시발, 시발, 시발··· 장전!!”
“장전!”
그래도 다행히 말을 타고 있는 놈들은 많지 않다. 화려하게 차려 입은 놈에게만 조준사격해서 겁주고 나머지는 화망을 형성해 쫓아내는 식으로 처치한다면 해결되리라.
아군이 수십 명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근대적 소총이 몇 정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며 에드워즈는 확성기를 들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마지막이다! 싸움을 피할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면 즉시 발포하겠다!”
곧 만주족들의 언어로 통역이 뒤따랐고, 에드워즈는 조준 명령을 내렸다. 몇 미터만··· 몇 미터만 더 가까워지면···.
모래알처럼 가느다란 눈알갱이가 바람에 따라 흩날리며 시야를 방해하다가, 일순간 풍향이 바뀌며 시야가 청정하게 트인다.
백기다.
뭔가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가까이 다가오던 이들이 말등에서 내린다.
“저기··· 항복이랍니다.”
통역관이 귀엣말로 속삭여오자 에드워즈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숨기며 외쳤다.
“다들 총 치우시오! 천막 준비하고! 당장 본부로 연락을 보내시오!”
···일단 싸움은 없었다.
살았다.
“지금, 만주족들이 접근해옵니다!”
“무장은 대강 해제시키고, 대표만 내 앞으로 오라고 하십시오.”
하얀 깃발이 휘날리다 소련군이 진주한 진 바깥에 멈춘다. 그 아래 두 남자가 서너덧 명의 호위만을 거느린 채 다가온다.
“환영합니다. 귀순입니까?”
“그, 그대는 조선인이 아니지 않은가? 원산에 왔다던 그···”
“편의상 조선인이라 생각하고 계속 이야기하시지요. 귀하가 조선의 강역으로 월경해온 이유는 귀순이 맞습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혹시 귀하의 이름과 신분을 알 수 있겠습니까?”
“건주위 도독 이고납합(李古納哈)”
“그렇다면 옆에는?”
“···형님의 동생 이아구(李阿具)입니다.”
단단한 인상을 주는 중년인과, 비에 젖은 참새처럼 애처로운 꼴을 한 청년이다.
갑자기 항복해온 그들을 한참 들여다보던 에드워즈는 뒤늦게야 이상한 점을 느낀다.
통역의 목소리가 끊겼다. 돌아보니 역관의 표정이 얼어붙어 있다.
에드워즈가 당황하여 역관과 만주족 형제 사이를 두리번거리자 잠시 후, 통역이 귀엣말로 에드워즈에게 속삭였다.
“이만주의 아들들입니다.”
거물이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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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즈와 소련군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조선에 ‘귀순’과 ‘망명’을 시도한 여진족들은 평화로운 방식만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포! 방포하라!”
“외구(外寇)들이 넘어온다! 막아!”
적게는 수십에서 많기는 수백에 이르기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넘어오는 여진족들의 준동은 국경 일대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다행히 에센과의 충돌이 바로 지난해의 일이었던 만큼 경계를 놓지 않고 있던 조선군에 의해 여진의 공세는 전부 돈좌되었다.
애초에 단일한 지휘부나 뚜렷한 목적 없이 쫓기듯 산발적으로 넘어오던 이들이다. 몇몇 전투에서 제법 인명의 손실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소련군과 협조하고 있으니 북변에 거대한 피해는 없었다.
물론 이는 먼 한양에 있는 위정자들의 판단이고, 일선에서의 반응은 달랐다.
“젠장, 야선은 무얼 하고 있냐는 말입니까? 요동 일대를 평정하고 이런저런 자원을 가져올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약조의 내용 아니었습니까?”
“진정하십시오. 에센이 우리를 적대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포로들에게서 들어보니 방금 말씀하신 ‘평정’의 과정에서 도망쳐온 이들에 불과합니다.
그러잖아도 상당수는 평화적으로 귀순을 요청하였고, 대부분은 명령에 순응하고 있습니다. 우리 소련 측에서도 현재 급한대로 수용시설을 건설해나가고 있으니 큰 고비는 넘기지 않았습니까?”
“그 증언들을 어떻게 모두 믿겠습니까? 또한 저들의 목적이 귀순이든 도망이든 어찌되었건 마구잡이로 밀고 들어오니 걱정이 아니될 수가 없습니다.
대체 이 행렬이 언제 끝날는지도 모르니···.”
걱정을 토로하는 것은 평안도 도절제사 이승평, 그리고 그를 달래는 것은 혁명군사평의회 의장 겸 군사인민위원을 맡게 된 조지프 푸츠다.
금성대군의 군세에 끼어 이징옥과 종군했던 이승평, 그리고 소련에 부재하는 트로츠키 대신 군사 업무를 떠맡아 발로 뛰는 푸츠.
절대 이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묘한 조합을 설명하려면 조금 시간을 거슬러가야 한다.
벌써 아득한 옛날 같지만··· 조선과 소련 간의 전쟁은 3년밖에 되지 않았다.
하령군 이양이 소련과 첫 전투를 감행했을 때, 한 3천 명 정도가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렇다면, 사라진 2만 보병 중 나머지 1만 6, 7천 명은?
통제에서 벗어나 흩어진, 무장한 장정들이 걸을 길은 보통 한 가지로 수렴한다.
도적떼.
물론 소련의 주변 지역 포섭 정책에 슬그머니 끼어들어 구호물자를 받으며 정착한 이들도 있었으나 몇몇은 산으로, 숲으로, 계곡으로 숨어 화적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교화하든, 투항시키든, 최후의 수단으로 토멸하든 하는 업무는 당분간 조선국에게 맡을 여유가 없었고. 그 일은 저절로 소련군에게 넘어오게 되었다.
소련에 귀속을 청하는 마을 소비에트들은 물론이고, 조선 역내라 하더라도 그곳에 뿌리박은 강도무리가 소련을 오가는 경우 소련군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확대 편성된 착호병 소비에트와 소련군이 점차 개입 범위를 넓혀가고, 내전이 끝난 뒤 무주공산이 된 함길도에 조선군과 진주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두만강변의 경비는 소련군 몫이 된 것.
거기에 더해, 특히 양계의 군무는 당장 자리를 채울 인사가 없었으니 이징옥 정도의 거물을 제하면 대부분 그 직책을 유지시켜 두었다. 명목상 반란군이 아니기도 했고.
어차피 정치적 영향력도 거세된 인사들이고, 여차하면 인근에 소련군이 있으니 괜찮으리라는 판단이 있던 것이다.
그 결과?
반역자와 오랑캐가 국경 감시를 나눠 맡는 환장할 상황이 펼쳐졌다.
“시, 시발! 존나 추워! ! 어···아··· 다들 벌써부터 계셨습니까?”
“약속 시간은 5시 반이니, 군인이면 30분은 일찍 와야 하지 않겠소?”
“그렇게 말씀하시면 또 제가 할 말이···”
“없어야지.”
푸츠가 막사에 툴툴거리며 들어온 에드워즈에게 면박을 주고 나니 어느새 군막 내의 분위기도 풀려 있었다. 곧 함길도 도절제사로 옮겨간 박이령도 자리에 함께 했다.
에드워즈는 힙 플라스크를 꺼내 한 모금 술을 들이켠 뒤 이야기를 꺼냈다.
“이런저런 증언들을 교차검증해 보니 역시 제가 만난 게 그 유명하다는 이만주의 아들내미들이 맞나 봅니다. 아버지가 에센한테 죽은 뒤로 동쪽으로 도망치고 도망치다 두만강변에까지 닿았나 보더군요.”
“허··· 그 악독하던 자가 결국엔 죽어버렸다니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구려.”
“그게 몽골의 힘 아니겠습니까, 이승평 동지. 아무튼 간에 그자가 데리고 온 무리가 600명이었고, 그 뒤로 조금씩 넘어오는 만주족들까지 합쳐 놓으니 한 3천 명은 훌쩍 넘더군요. 일단 무기는 뺏고 모아서 수용해 놓았으니 어떻게든 수습될 겁니다.”
“수고들 많이 하였소. 헌데, 이제 앞으로 얼마나, 어디서 여진족들이 더 들어올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는 거요?”
“그것이··· 알기 어렵소.”
박이령이 물으니 이승평이 고개를 젓는다.
“작금에 요동이 야선의 영역이 되고, 우리는 야선과 적대하지 않으니 군이 요동 땅에 발을 들이기가 어렵지 않소? 그것도 우리가 자원을 파고들어가는 곳이 아니라면 야선의 입장에서도 요동으로의 거병은 부담스럽게 느낄 터.
사안이 얼마나 커질지를 모르겠소. 몽골 쪽으로 사신을 파견하여 사세를 미루어 알아보는 수밖에.”
“그렇다면, 그 부분은 우리가 논의할 사항이 아니겠습니다?”
“그렇소, 푸츠 대감. 조정에 전보를 보내 놓았으나 나라와 나라의 일은 한갓 무신이 다룰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우리로서는 단지 국경을 잘 틀어막는 소임을 다하는 수밖에.”
“하지만 정보가 없지 않습니까? 기약 없이 무리하게 경계 태세를 지속하고 있기에는···.”
“그는 우리가 논할 바가 아니오, 에드워즈···”
이승평이 호칭을 고민하는 듯하자 에드워즈는 한숨을 쉰다.
콤라드(comrade, 동지)로 통일되는 호칭 체계는 얼마나 위대한 산물이란 말인가? 공산주의 만만세다. 아, 아니 시발 천천세라 해야 하나.
“대감이라 불러주실 만큼 높은 직책은 아닙니다. 고정된 직무 없이 나돌아다니는 처지니 그냥 에드워즈라 부르시죠.”
“크흠. 알겠소, 에드워즈··· 선생.”
···공산주의 천천세다.
아무튼 그렇게 간단한 호칭 정리가 끝나고 나니, 남은 것은 오직 대책 강구뿐이다.
대책이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끙끙 앓고만 있기를 2각, 즉 30분. 문득 정신 차려보니 꽤 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졌음을 깨달은 네 사람은 ‘앞으로의 상황에 맞춰 변통을 마련해보자.’라는 알맹이 없는 결론만을 내리고 다시 흩어졌다.
그들이 다시 모이기까지는 채 나흘도 걸리지 않았다.
“조, 조선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아니오. 솔롱고스, 아니 조선은 언제나 몽골의 최우방이니 먼저 찾아오지 못한 것이 도리어 한이오.
좋은 소식으로 왔어야 하는데 주르첸 놈들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한 일로 오게 되니 크나큰 실례요. 동녕총관부 총관으로 부임하였음에도 이제야 방문하는 무례를 용서하시오.”
“아닙니다. 우방 된 나라의 장수를 맞이하니 기쁠 뿐입니다.“
아락투무르 바가투르, 오이라트 군의 지도자 중 하나.
원래대로라면 작년쯤 에센을 배신하고 반란에 가담해야 했을 그이지만, 에센이 카간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니 그 떡고물을 받아먹기 위해서라도 묵묵히 그를 섬기고 있다.
그 결과 요동 통제를 위해 에센이 설치한 동녕총관부(東寧總管府)에 부임하게 되어 어느 정도 권세를 얻었으니···
그런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당연히 여진족.
“주르첸 놈들을 몰아내는 와중에, 또 서방 정벌을 준비하다 보니 역량이 분산되어 일을 확실히 끝맺지 못하고 조선국에 누를 끼치고 말았소. 대몽골의 장수로서 큰 수치요.”
“아무리 맹장이라도 자원과 군세가 부족하면 바라던 바를 모두 이루지 못함은 어쩔 수 없는 바입니다. 부디 고개를 드시지요···.”
네 사람은 모두 아락투무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저자세로 나오니 모두 당황한 상태였다.
오자마자 고개를 연신 숙이며, 언뜻 딱딱해 보일 정도로 긴장한 티를 팍팍 내며 예의를 차리니 다들 몸 둘 바를 몰랐다. 게다가 총관이라니 꽤나 거물이 직접 왕림했다.
특히 조선측 장수들은 몽골이 조선에서 크게 자원들을 떼어간다는 정도로만 양국 관계를 이해했으니, 이리 깍듯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에센과 조선, 그리고 소련이 맺은 약조의 무게를 생각하면 이 태도는 ‘위대한 고객’께 취하는 자연스러운 응대라 할 수 있겠다.
“조선에 귀순하겠다 하는 이들은 가만히 두겠으나, 아마 저들 중 조선 역내에서 사고를 치며 복속하길 거부하는 이들도 있을 터입니다. 그들은 데려가서 조선국에 절대로! 다시는! 누를 끼칠 수 없도록 단단히 조치하겠습니다.”
“그··· 조치라면 어떤?”
“에드워즈 선생, 무엇을 묻는 것이오? 당연하잖소?”
“예? 이승평 동지, 저는 동아시아의 관습을 잘 몰라서···.”
“크흠, 제가 몽골의 명예를 걸고···”
아락투무르가 헛기침을 하며 흐트러진 주의를 집중시킨다. 에드워즈는 무슨 내용이 나올지 몰라 그의 말에 귀 기울인다.
“요동 땅을 비워놓기라도 하겠소.”
“비운다고요? 소모될 행정력이 어마어마할 텐데.”
“아국과 조선의 귀중한 관계를 생각하면 그는 감당할 만하오.”
“그러면 거기에 살던 이들은 어디로 갑니까?”
에드워즈의 말에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을 계속하냐는 듯, 이승평, 박이령, 아락투무르가 그를 빤히 쳐다본다.
“예? 무, 무슨.”
“가긴 어딜 갑니까? 아, 수레바퀴보다 작은 놈들이면 아마 고원에 끌고 가겠습니다만···.”
“어···어?”
수레바퀴보다 작아? 그럼 애들이잖아? 애들만 끌고 가? 그럼 수레바퀴보다 큰 나머지는?
-“어떻게 하기는?”
불현듯 어렸을 적, 리버풀의 한 노동계급 클럽에서 보여주던 싸구려 연극이 기억난다.
한참 차이니즈 드레스를 입은 주인공들이 멍청하게 뛰어다니다 나자빠지는 슬랩스틱을 보여주고 있었고, 저쯤 되면 배우들 골반뼈가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넘어지던 찰나에··· 그놈이 나타났다.
거기에 무슨 메기 수염 같은 걸 길게 붙이고, 모피 장식 달린 치파오에, 언월도를 들고, 터번을 두른 기묘한 악당 캐릭터. 지금 보니 생각할수록 고증이 개판이다.
주인공 중 울보캐릭터가 기르던 닭을 생으로 씹어먹으며 (물론 소품이지만.) “너희 중국인들은 모두 죽여야 돼!”라고 외치며 카리스마 있게 등장했다.
그 이름은 ‘카안’이었다.
그 놈이 하던 단골대사가 뭐냐면···
-“수레바퀴보다 큰 놈은 사지를 찢어내 버리겠다.”
그 뒤로 뿌려지던 가짜 피. 치우기들 귀찮아 하던 소품용 팔다리.
그 모조품들이 에드워즈의 머릿속에서 살아있는 인간으로 변한다.
시발.
막아야 돼.
지금 미친 놈들이 대량 학살을 논의하고 있다.
작가의말
이만주와 그 자손들에 대한 기록은 몹시 부실합니다. 그래서 자료조사를 하는 김에 이고납합과 이아구의 캐릭터는 처음부터 구축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들의 나이대와 성격, 외모는 모두 창작입니다. 작중 묘사는 실제 역사적 인물과는 무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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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조에 귀순할 생각을 가진 부족들은 이미 어느 정도 정리해 놓았으니, 난동 부리듯 마구잡이로 밀고 온 부족들만을 정리하여 인계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소. 주르첸 놈들은 그 옛날 칭기즈 칸께서도 두 번이나 정벌해야 했던 악독한 놈들이오. 반드시 놈들을 멸해 다시금 웅비하는 몽골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하도록, 조선에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만들겠소!”
아니··· 아니··· 맙소사···.
이승평과 박이령 입장에서 아락투무르의 말은 사리에 맞다.
자국의 영토에서 나온 놈들이 조선을 공격했으니 거기에 ‘책임’을 지겠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조선땅에 귀순하겠다 밝힌 놈들은 빼놓고.
두 사람이 보기에 일단 가둬는 놓았으나 고분고분할지 모를 여진족 수천을 데리고 있는 것은 부담일 뿐이니 당연히 아락투무르에게 일임하는 편이 낫다.
몽골에서 나온 이들을 몽골로 돌려보낸다. 몽골에선 책임자도 보냈으니 알아서 ‘처리’하도록 한다.
···당연한 이야기니 수락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자, 자, 잠시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입니다. 일단 조선 조정과 논의를 해본 뒤에 사무를 진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소?”
“물론입니다, 박이령 동지! 일단 조선에 귀순해온 것인지 아닌지 아직 제대로 부족들의 의사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부족들의 준동과 조선과의 충돌이 우발적인 것이었다면, 저들의 의사 또한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 아닙니까!”
부러 호들갑을 떨며 방방 뛰던 에드워즈는 급히 푸츠에게 눈짓을 보낸다.
“마, 맞습니다! 이는 추후 조선과 소련 사이의 행정적인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입니다!
조선군이 잡은 이들과 소련군이 잡은 이들은 각각 어느 나라의 포로입니까? 이에 대한 행정적 정비를 갖춰야 하니 인계 또한 미뤄두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흐음··· 소련인들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려.”
“조정에 전보를 보내면, 우선 트로츠키 의장과 조선국왕 전하 두 사람 모두 소식을 받을 테니 거기서 알아서 논의하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그렇습니다!”
푸츠 또한 측면 지원을 해주니 어느 정도 설득되어가는 기미가 보인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이승평이 드디어 아락투무르에게 말을 건넨다.
“그렇다면··· 총관께서 양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선 아군이 사로잡은 여진족들의 거취에 대해 조정에 의견을 물어야겠습니다.”
“뭐, 좋습니다.”
아락투무르 입장에서는 골칫거리 처리해주겠다 왔는데, 그럴 필요 없을 수 있으니 기다려 달라 만류하는 셈이다.
즉 아락투무르에게는 아까운 역량 소모를 줄일 수 있으니 오히려 이득이다.
“그렇다면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어차피 요동 인근의 주르첸족 토벌 전반을 감독할 요량이니, 언제든 논의가 진행되면 건주위 봉주(오늘날의 랴오닝성 선양시 근처)로 사절을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아락투무르는 떠났다.
“그렇다면 전보는 저희가 보내겠습니다.”
“아, 그래주신다면 저희야 수고를 덜게 되니 감사할 뿐입니다.”
이승평과 박이령도 떠났다.
···시발 어떻게 될 뻔했다.
“아, 아니 에드워즈 동지? 이게 말이 되는 일입···”
“저도 제가 3년을 있으면서 조선에 완벽히 적응한 줄 알았습니다!! 아니 시발 근데 죽여? 진짜? 다?
이걸 어떻게 눈 뜨고 승인합니까?”
“그, 그것도 우리가 지금 막은 게 우리가 데리고 있는 만주족들의 학살일 뿐이지 아락투무르가 만주 전반을 감독한다 했으니···.”
“이걸··· 어쩌죠?”
“하아···.”
말도 안된다. 무슨 해충 구제하듯이 종족 하나를 말살시키는 일들을 논의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있더라도 결국 지난 번에 이승평이 이야기했던 것과 같은 결론에 부딪칠 뿐이었다.
‘우리가 논할 바가 아니다.’
그들이 건드릴 수 있는 것은 결국 보고 내용일 뿐. 그것도 조작이 들어가면 반역이니, 어투를 만지는 수준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바를 다했다.
-“조선 국경을 넘어 만주족이 수천 단위로 귀순, 몇 곳에서 군사적 충돌과 약탈 있었으나 진압됨. 몽골 동녕총관부에서 반환을 요청. 요청이 강압적이지는 않았음.”
“이, 이 정도면 왜곡은 없지 않습니까?”
“그렇···소.”
서로를 마주보다 한숨을 쉰 뒤, 메시지를 전신소로 보낸다.
전파로 된 가느다란 끈을 통해 메시지가 북변과 한양을 오간다.
다음날 더 자세한 설명에 대한 요구가 날아오자, 이번에는 네 사람이 모두 모여 세세한 보고문을 써내고 그를 모스 부호로 번역하여 전달한다.
이 작업 동안 라디오와 선상 방송장비를 개조해 만든 조악한 전신기를 붙들고 꽤나 고전해야 했다.
송환해야 하는가? 아니면 가능한 한 정착시켜야 하는가? 둘 중 어느 쪽이 이득인가?
그 부분만이 조정에서는 화두가 되는 듯했다.
당연하겠지만, 트로츠키든 블레어든 무슨 제노사이드니 뭐니 하며 15세기의 정부에서 지껄인다면 그건 그저 생난리일 뿐 아니라 주위에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게 뻔하다.
하지만 그들이 이 상황을 두고만 볼 리는 없기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천운에 맡겨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일단 반환은 거부하라. 섭정 전하께서는 정착촌 건설을 제안.”
됐다.
“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정말 다행인 일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