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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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농업공장이란 무엇일까요? 자본주의 국가의 기업농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임금을 주고 노동자를 고용해, 그들의 노동을 통해 수익을 내서 운영됩니다. 기업농과의 주된 차이는 운영주체가 기업이 아닌 국가라는 것입니다.
이 농업공장들은 발전된 미래의 종자와 개선된 농기구를 통해 훨씬 많은 산출량을 냈습니다. 현대 한국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라면 곡물 가격이 폭락해 농민들이 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근대 사회인 조선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의 농부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농산물을 시장에 팔고 돈을 벌어 그걸로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자기가 키운 농산물을 자기가 먹고 자급자족하기 때문입니다. 원래대로라면 농업공장이 확대되더라도 굳이 농부들이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조선은 기근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조선 초 가장 끔찍한 기근이었던 ‘1454년 기근’이 바로 작년이었고, 게다가 얼마 전까지 전쟁이 이어졌습니다. 농민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을지는 쉬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농업공장과 협동조합이 대량의 구호물자를 풀며, 지금 당장 일자리와 앞으로의 생활기반을 보장한다면 많은 소작농들이 그를 향해 가리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자작농들은 그만큼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겠지만 역시 누군가는 허탈감에 땅을 버릴지 모르고요. 이렇게 되면 조선 농업의 중심은 완전히 농업공장과 협동조합으로 옮겨가니 기존의 ‘자작농 중심 농촌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평화로운 대동사회’라는 조선의 이상은 실현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소작농들이 도망간다면 조선의 지주들 또한 땅들이 버려지니 어쩔 수 없이 땅을 팔든, 변화를 꾀하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당장 강력한 경쟁자들이 노동력들을 채가니까요. 많은 지주들이 몰락할 것이고 이에 따라 향촌의 사족들과 호족들이 몰락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종직과 블레어는 협동조합이라는 창구를 통해 사족들을 살려냅니다. 협동조합의 농장은 농지를 향촌 공동체의 공동소유로 묶어 운영하게 됩니다. 여기서 사족들은 토지라는 기반을 잃게 되나, 협동조합 내에서 요직을 차지하면서 그 정치적인 영향력과 기반을 통해 생존할 수 있게 됩니다. 당장 살아남은 사족들은 그저 자신들의 토지 소유 방식이 바뀐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는 하나,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는 이미 찾아왔고 그것이 본격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자, 여기까지가 조선의 각 계층이 농업공장을 통해 겪은 변화입니다. 앞으로 이 변화가 조선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앞으로의 내용을 기대해주세요!
해동천하(海東天下)의 흙에 처음 쟁기 날이 닿은 이후, 그 유례가 없는 풍작이 다가왔다.
바빌로프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종자들은 조선에서 재배되던 기존의 품종들보다 몇 세기는 더 오랫동안 개량된 것들이다.
족히 수백 년의 발달 과정을 생략하고 투하된 미래의 작물들은, 조선어에서 ‘굶주림’을 사전에서나 나오는 단어로 바꿔버리겠다는 듯 팔도의 논밭에 황금빛의 물결로 피어났다.
그렇게 굶주리던 인민들에게 대량의 구호물자가 풀렸으니, 누가 주상 전하 천천세, 섭정 전하 천천세를 외치지 않으리오?
사세가 이렇게 흘러가니 조선 농업기술연구소의 걱정은 바로 농업공장의 노동자들을 어떻게 붙들어 놓을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갖은 고생을 통해 노동자로 훈련시킨 15세기의 농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다시 일을 놓아버리는 익숙한 생활습관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농업공장에서 도망쳐 유랑하거나 빈 땅에서 자작농 노릇을 하려고 들지는 않을까?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일단 구호물자를 내년과 내후년에 걸쳐 급격히 축소하겠다는 소식을 전국에 퍼뜨리니, 일자리를 찾는 이들로 농업공장 앞 직업소개소는 붐비다 못해 바다를 이루었다.
이런 시국에 이미 확보한 직업을 내버리려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조선과 소련 당국이 힘을 합쳐 공을 기울인 결과, 농업공장의 노동자들을 취하게 만들 수 있었다.
바로 근대적인 쾌락과 편리에.
“솜옷이랑 솜이불이 장롱에 그득한데 이걸 놓고 어딜 가? 그 스러져가는 초가집으로?”
“다른 데서 겨울에 면옷 한 벌이라도 걸칠 수가··· 있나? 곧 있으면 숙소에 구들도 깔아준다고 했는데···.”
그동안 쌓아 놓은 자산을 차마 놓지 못하는 이들도,
“나는 이제 원산에서 나온 술 없이는 살지도 않을 것이어!
“고렇지! 자, 어서 카드나 섞으라고!”
농업공장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얻을 수 없을 향락에 취한 이들도,
“원래 집에는 극장도 없었는데 이 동리에는 만날 광대들도 오고··· 꼭 떠야 하나?”
“나는 이제 길거리마다 시간 알려주는 사람 없으면 살기가 힘들어. 바깥 놈들은 약속시간에 한두 시간씩은 늦는단 말이지?”
이런저런 문물에 찬탄한 이들도, 모두 떠나기를 거부했다.
결국 떠나는 일손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상태에서 구직자는 몰려오니 농업공장에 사람 부족할 일은 없었다.
물론 하루 7~8시간 노동이라는 ‘말도 안 되는 혹독한 조건’에 질겁한 이들도 있었고. 그런 이들은 인근의 협동조합에서 흡수해갔다.
협동조합 소유 농장들이 정착하면 전근대 농민들이 근대적 노동자로 연착륙해가는 장이 되어주기를 모두들 기대하였다.
이와 반대로, 점점 기존의 경작지들은 텅 비어 간다. 소작인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몇 해 동안의 기근은 차라리 땅주인들에게 버틸 만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손안의 자산과 인력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지금이 그들에게는 더욱 지옥과 같으리라.
“나는··· 땅을 팔겠소.”
“잘 생각하셨습니다. 저희 쪽에서 모쪼록 잘 갈무리합죠.”
그렇게 수 년 간의 기근과 전란을 버티고 버티다 마침내 무너진 이들은 다시 일어서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이번에··· 농업기술연구소인가 뭔가 하는 데서 지주들 대상으로 과일 씨를 나눠준다는데?”
“분명 농사법도 알려주고, 일꾼도 알선해준다 하였소. 헐값으로 풀리는 땅들을 쥐고 버티기만 하면 지금이 기회요!”
반대로 누군가의 좌절 위에서 새로운 야망을 쌓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토지가 곧 재산인 사회에서 자기 소유의 땅을 놓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불타는 이들이었다.
이 중 상당수는 수렁으로 거꾸러지고, 오직 소수만이 그토록 바라던 기회와 영광을 쥐게 되리라.
향촌 사회들이 뒤집히고 있다. 점차 중앙권력과 사족들이 장악해가던 삼남부터, 특히 호족과 그 사병들이 제대로 혁파되지 못하던 북방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도,
자작농들이 사라져갔다.
조선의 근본이라던 자작농들이 땅을 팔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누구는 농업공장으로, 누군가는 협동조합의 농장으로, 몇몇은 지주에게 땅을 팔고 그 아래 일꾼으로 들어갔다.
수년 간 일군 땅의 소출보다 공여 받은 미곡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메마른 땅을 버리고 떠돌 때 마지막까지 악착 같이 버티던 이들은 그제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
그리고 농업공장에서 일으킨 폭발의 잔해 위에서 협동조합들이 빈 폐허를 야금야금 장악해갔다.
“열성조들께서는 향촌의 사족들에게 그 고을 관아에 바른 의견을 내고 호족들의 전횡을 막으라 하여 유향소를 지으시고 경재소를 지으셨다.
헌데 금일에 이르러 유향소의 할 일을 협동조합이 대신하였고, 그 협동조합을 중앙에서 제어하는 일은 향민청에서 맡고 있으니 경재소 또한 쓸모가 없어졌다.
본래 같은 역할을 하는 관서를 둘 이상 둠은 폐단을 낳고 관원들의 혼란을 낳을 뿐이니 유향소와 경재소를 폐하고 그 사무를 협동조합과 향민청으로 하여금 대신케 하라.”
그 흐름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든 것은 바로 위의 하교.
향촌의 여론을 수렴하고, 또 향촌의 중앙 통제권을 강화하는 기능이 유향소에서 협동조합으로 완전히 옮겨간 것이다.
이로서 사족이라면 곧 협동조합에 들어 그 말직이라도 취함이 당연한 바가 되고 있었다.
결국 이런 일련의 사건이 이어진 결과, 호족들의 영향력은 빠르게 감소되고 협동조합에 가입한 사족들과 그들을 통제하는 중앙정부의 위세가 더욱 강해졌다.
열매가 무르익었다.
“때가 되었으니, 바로 내일 조회에서 간하겠네.”
“좋네. 트로츠키 의장께는 내가 알리지.”
지난 달 동안 농민들이 벼 이삭을 수확하였듯,
이제 박팽년과 성삼문도 다가온 수확의 때를 체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음날.
“전하, 태조대왕께서 천명에 따라 혁명을 일으켜 비로소 아조(我朝)를 창건하시매 삼한 땅에 경사스러운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헌데, 불궤한 이들이 참람하게도 보위를 찬탈하고자 하는 욕심을 품어 종사가 흔들렸습니다. 이를 평정하셨으니 전하의 영원토록 칭송될 공덕입니다.
걸주(桀紂)가 망한 이유는 하늘의 도를 따르지 않음 때문이며, 탕무(湯武)가 흥한 것은 하늘의 도에 순응했기 때문이니, 전하께 천도가 따라 역적들을 멸할 수 있었던 바가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역적들이 남긴 더러운 오물과 피폐가 곳곳에 남아있으니 나라가 아직도 군데군데 어지럽고 조정의 힘은 약소합니다.
하여 미약하게나마 나라에 보탬이 될 만한 졸책(拙策)을 내세우니 전하께서 귀담아 주시기를 삼가 바라옵나이다.”
기나긴 서두를 내뱉고, 박팽년은 긴장한 듯 눈썹에 촘촘히 배인 땀을 닦는다.
그리고 트로츠키를 한번 흘끗 바라본다. 그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모를 만큼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좋다.
“어리석은 신이 병조판서의 큰 자리를 맡아 보니, 작금에 이르러 관원의 수가 크게 부족하여 사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급히 머릿수를 채우느라 진사와 생원들을 급히 뽑아 올렸으나 경험과 신망 있는 이가 부족하니 각 관아에서 무너진 군을 다시 세우고 그 기강을 새로 잡는 데 어려움이 큽니다.”
“···계속 고하라.”
“둘러보니 이러한 문제를 겪는 바는 다른 관서가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오니, 6조가 각각 급한대로 시험을 열어 사람을 뽑아 쓸 수 있게 윤허하여 주시길 바라옵니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 박팽년이 머리 조아리니,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될 말이옵니다, 전하! 이미 나라에 과거의 제도가 바로 서고, 문무과로서 나라의 선비들을 길러내고 있사온데. 이를 헛되이 함은 아조의 기틀을 흔들고 선비들로 하여금 경학을 게을리하도록 할 것입니다!”
형조좌랑 안덕손. 3개 세력 어느 곳에도 포섭되지 못하고 가만히 머리만 채우고 있던 자.
앞으로 저런 자들이 눈엣가시로 나타나리라. 꺾어내든, 품고 가든, 거래를 하든, 어떻게든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조정이 경학 중시한 지가 수십 년이 흘렀는데, 어찌 6조에서 따로 뽑았다 하여 선비답지 못한 이들이 들어오겠습니까?”
“아닙니다. 배움에는 잠시간의 게으름도 없어야 하거늘 잡학으로 선비를 뽑는다니 성현들이 허용치 못할 일입니다!
아조(我朝)의 큰 뜻이 성현의 말씀을 바로 세움에 있거늘 경서를 알지 못하는 선비가 조정을 채우고, 4서와 5경의 가르침을 깨우치지 못한 관원이 각 관아에 자리한다면 이것이 어찌 옳겠습니까?”
그야말로 정론이다. 정론을 깨려면 이런저런 우회로를 뚫어 놓아야 하는 법.
“그렇다면 6조가 시험을 열 때 경서의 내용을 중시하면 그만입니다.
당장 나라의 기틀이 뒤흔들리고 있거늘 이를 방관함은 도리어 경서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며 그 자구에만 집착하는 편벽한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박팽년이 반박하자 안덕손이 우물쭈물한다. 그렇게 논쟁이 마무리된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저 멀리 좌사간 정양이 나와서 말한다.
“병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미 경서의 내용보다 잡학의 내용을 더 중시하여 관원을 뽑자 하신 것과 다름이 없는데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만일 병판 대감의 말씀대로 경서를 중시해서 관원을 뽑자면 그저 과거를 번잡하게 자주 여는 것에 불과하니 실무능력 있는 선비를 구하자는 본래의 뜻은 흐려지지 않습니까?
경학과 잡학, 둘 모두를 취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둘 모두를 동등히 보자면 더 배울 것 적은 문과에만 사람이 몰릴 터이니 안하느니만 못한 정책이 될 것입니다.”
정양이 말하자 곳곳에서 옳습니다, 옳습니다, 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아마 지금의 경장에 쌓여온 불만들을 터뜨리는 것일 터이다.
역시 저들은 이 대안이 경학을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붙들고 놔주질 않는다.
또한 새 법을 만들어 행정 체계를 굳이 혼란스럽게 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일리가 있다.
조선에 소련처럼 성문헌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정책 변경은 곧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하지만 이 안은 앞으로 이어질 개혁들의 겨우 첫 걸음마다. 여기서 막힐 수는 없는데···.
박팽년이 가만히 동료들에게 눈짓을 준다. 그러자 한 사람이 입을 연다.
“그렇다면, 전하? 서리와 녹사를 등용함은 어떻습니까?”
“서리라?”
지지부진해지는 조정의 분위기 속에서, 하위지의 말이 주상의 주의를 돌린다.
“작금에 서리를 취재(하급 관원들을 뽑는 과거 외의 특별 시험)하여 뽑기도 하니, 병판의 개혁안은 서리와 녹사를 생각한다면 이미 그대로 이뤄지고 있는 바나 다름없습니다.
허나 이들은 품관이 되지 못하고 녹봉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전란 동안 도망치거나 몸을 숨기거나 자신의 직을 벗으려 공문에서 이름을 지운 서리들이 많아 역시 수효가 적습니다.”
지금도 서리가 10년 정도를 일하면 품계를 받을 수 있으나, 복무 기간이 너무 길고 실제로 품계 있는 품관이 되는 이도 적다.
서리든, 상급 서리인 녹사든, 이들이 선비가 아닌 향리이기에 일어난 일이다.
“하오니 이들에게서 취재하여 품계를 준다면 경험 있는 관원들을 뽑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취재를 정기적으로 하여 널리 서리들을 뽑아 올리고, 개중 두서너 해 정도 일한 이들로 하여금 각 조의 자리를 채우게 하면 어찌 실무 능력 없는 관원들이 나타날까 걱정하겠습니까?”
어차피 있는 제도들이다. 그저 그를 확대하고,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자는 것.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농업공장으로부터 걷히는 세입이 크니 아전들에게 녹봉을 준다 하더라도 무리될 것이 없습니다.”
“병판과 이판, 호판의 말이 맞습니다. 더하여 신이 아뢰기를 형조의 일은 율령(律令)과 격례(格例)에 능해야 하니 그 적임자를 찾기 더욱 어렵습니다. 청컨대 병판의 말대로 하여 주소서.”
여기에 호조판서인 성삼문과 이개가 지원사격을 나선다.
건국 이후, 조선에는 소리 없는 전쟁이 있어 왔다.
각지의 유지들 중, 중앙정계에 진출하고 국가권력에 포섭되려던 이들은 사족(士族)이 되었다.
그리고 그를 거부하며, 지방에서의 권세를 유지하려던 이들은 이족(吏族)이 되었다.
이들 사이의 줄다리기가 바로 그 전쟁의 실체였다.
당연히 조선은 복속을 거부한 이족들을 탄압했다. 국가의 지방 통제력을 확대하고 이족들의 세력을 약화하기 위해 갖은 수를 썼다.
지방의 사족들로서 유향소를 짓게 하고, 그들이 직접 지배하던 속현들을 폐지해 중앙에서 수령을 파견했다.
중앙 관아에서도 관직자 취급받지 못하고 세습으로서 그 직무를 처리하던 실무자 서리들이 있었고, 그들을 관리하며 장악하는 위치에 사족들이 올라섰다.
그렇게 실무자와 지배자가 분리되었다. 근대국가 소련의 관점에서 보자면 선비는··· 사실상 과거로서 신분을 증명하는 귀족일 뿐, 관료가 아니다.
‘그를 해체해야 한다.’
원산에서 무심코 베순과 바스키를 천한 의원이라 모욕한 그 날 이후, 점차 박팽년 등의 머릿속에서 자라나던 생각의 씨앗이었다.
그러나 과거제를 직접 건드릴 수는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 과거는 조선에서 선비를 선비로 만들고, 지배자를 지배자로 만드는 신분제의 핵심.
보다 조심스럽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무너뜨려야 한다.
향리들을 등용하기 위해서,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려야만 했다.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조정의 권력 하에 흡수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를 위해 땅주인들에 대한 지원을, 거기에 형평성에 논란이 없게 소규모 자작농들에 대한 지원까지 끊어버렸다.
길을 닦아 놓았으니 이제는 나아갈 때.
“대신들의 의견을 들으니, 결국 열성조들께서 이롭다 여겨 취하셨던 정책들을 다시 활용하는 것뿐임에도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듯하다. 그대로 하라.”
그리고 주상 전하께서, 그 첫걸음에 단단한 밑받침을 마련해주셨다.
‘모두 이전에 있던 정책들이다. 결코 법을 새로 고치거나 무너뜨리는 바가 아니다.’
대신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하고, 주상 전하께서도 가납한 사안에 더 왈가왈부할 이는 없었다.
아까 목소리를 높이던 안덕손과 정양도 불만스러운 표정일지언정 더 대꾸하지 못한다.
서리를 비롯한 아전들의 직무 세습은 조정의 행정력을 떨어뜨리고 부패를 늘린다. 고로 취재로 뽑는다.
지금껏 장기근무한 서리를 관원으로 들이던 법이 있으니 그를 활용한다.
부분부분은 반박할 바가 없으나, 그것들이 모여 화학작용을 일으킨 결과는 컸다.
‘과거 이외에도 관직을 얻을 길이 열린다.’
이게, 시작이다.
박팽년은 사태가 마무리되자 한숨을 내쉬며 조정을 바라본다.
앞으로 이런 일을 골백 번은 더 겪어야 하리라.
급진적인 변화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조정의 보수주의자들을 흡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구적인 태세 일변도여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경장의 논의는 온전히 공산주의자들에게 빼앗긴다.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광대처럼 균형감을 잃지 않는다면, 나아갈 수 있으리라.
“훌륭했소.”
조회가 끝나고 트로츠키가 손을 내밀어 온다.
소련식 인사법이다.
“···감사합니다.”
박팽년이 그의 손을 맞잡고 흔든다. 그 순간 느낀다.
자신의 손도, 트로츠키의 손도 긴장 섞인 땀에 젖어 축축했다.
그를 깨닫자 박팽년은 더욱 강하게 트로츠키의 손을 쥐었다.
누구도 사서에 담지 않겠지만, 그게 경복궁에서 이뤄진 첫 악수였다.
평화의 시대.
15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를 파고들어간 소련의 학자들은 그런 결론을 내렸다.
명국의 패권이 점차 안정되어 간다.
조선 또한 국체가 완전히 자리잡고, 에센 사후 몽골을 장악할 지도자가 없으니 초원은 다시 부족 단위로 흩어진다.
오직 일본만이 막부가 무너져 전국시대를 맞이하나, 역시 섬은 섬이고 변방은 변방. 왜구가 대륙으로 뛰어들기 전까지 열도에서의 전쟁은 찻잔 속의 폭풍이었다.
소련인 1만 5천 명이 이 평화에 떨어진 뒤로도, 바다에 떨어뜨린 잉크 한 방울처럼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에센이 비록 세력을 키우고 있으나 그 힘은 무역로가 뚫릴 서쪽으로 향할 예정이다.
명나라 역시 천순제의 복벽이 조금 일찍 일어났을 뿐 안정하며, 아직까지는 일본도 공산주의가 퍼질 뿐 가시적인 변화가 없다.
그렇기에 수천 명의 여진이 쳐들어왔을 때의 충격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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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북동향에 만주족으로 추정되는 600명! 도하 시도합니다!”
도하라고는 하지만 이제 겨울이다. 그저 잘 얼어붙은 강을 걸어서 건너니 미끌미끌한 땅을 밟는 거나 다름없다.
“제, 제, 젠장··· 젠장! 아니 에센은 뭘 하는데? 갑자기 이게 뭐야!”
“지금,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지! 확성기로 적들에게 최후 선포를 하고 장전하시오!”
농업공장 시찰을 끝낸 뒤 아주 오랜만에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지도자로서 병사들을 이끌고 국경을 순찰하던 에드워즈.
노조 운동가, 정치인으로서 의용군에 참가한 그도 어느새 지난 몇 년간의 경계태세 동안 군재라는 것이 생겨가는 듯했다.
···라는 변명을 늘어 놓음으로서 오게 된 두만강이다.
에센 비위 맞추기부터 조선 팔도 방방곡곡의 농업공장 관리까지. 어디 한 구석에 편히 눌러앉아 안정적인 직무를 맡을 수가 없었다.
말 타고, 가마 타고, 배 타고, 걸어서 다닌 거리만 하더라도 지구 몇 바퀴는 돈 것 같다. 그 피로감 때문에 택한 자리가 바로 국경 경비대 관리.
더럽게 춥기는 해도 국경은 안정되었고, 외교 채널에서도 문제가 보고되지 않으니 그동안 태평했다.
그렇게 막 강변에 자리한 제14 착호병 소비에트의 경계 태세나 확인할 겸 나들이차 들렀는데···
“시, 시, 시, 시발··· 안 그래도 추운데 만주족까지 지랄이야?”
“발포합니까?”
“미쳤소? 아직 사정거리도 한참 남았고 우리 탄약은 형편없이 적은 거 기억 안 나시오?
일단 조선측 궁수들! 경계 사격!”
갑작스러운 난리에 현지 최고위 지휘관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