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97
마치 명나라의 건국 이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34살입니다.”
“그렇다면 짐이 나이가 더 많으니 양국의 군주가 형제의 연을 맺는 것이 가하겠도다.
너는 앞으로 짐을 형님으로 섬길 것이며, 짐은 너를 우애로운 아우로서 보살필 테니 어찌 천하가 태평하지 않겠느냐?”
“….”
그 모든 광경이 이반 3세의 눈에는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 압도적인 승리. 카라코룸에서 지도로 보았을 때는 거대하기만 하던 중국이 단숨에 무릎 꿇는 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극명한 승리.
지금 이반 3세의 눈에 에센은 세계의 황제이자 신이 보우하는 군주였다.
에센은 말을 이었다.
“명은 홀로 교만하여 타국과 무역하고 사귀기를 꺼려 왔으니 짐이 심히 안타깝게 여기던 바이다.
그러니 은 10만 냥과 비단 등을 매해 세폐로서 몽골에 보내고, 각국의 상인이 명나라에 드나들 수 있게 한다면 명에도 화평이 돌아오니 경사이며, 아국에도 정다운 이웃이 생겨 기쁜 일일 터이다.”
“…옳습니다.”
그렇게 두 군주의 말 몇 마디로 명나라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군신의 관계가 아니라 형제의 관계라는 것만으로도, 북변의 요충지 조금을 제하면 명나라의 영토를 보존해 주는 것만으로도 에센으로서는 큰 자비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기에 명나라 또한 고개를 숙이고 굴욕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원의 패권이 뒤집힌 것이다.
그럼에도 에센은 여세를 몰아 북경을 아예 정복하지 않았다. 며칠간의 약탈과 방화가 이뤄진 것 정도는 자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비’는….
“젠장, 중국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동등한 관계라야 동맹이지 몽골이 중국을 먹으면 조선은 뭐가 됩니까? 조공국? 도시락거리?”
“하지만 에드워즈 동지, 명나라는 완전히 혼란한 상태입니다! 에센을 명나라가 어떻게 막아 내겠습니까?”
“에센에게 제가 어떻게든 전해 보겠습니다. …최악의 경우 경제 교류를 끊는다고 협박하는 한이 있더라도 중국의 완전 병합은 절대 불가하다고.”
“어차피 몽골은 통치 대신 세폐를 걷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니 차라리 명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권유하는 건….”
조선과 소련의 덕에 얻어진 것이었다.
물론 경태제가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지만.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4)
1461년.
남경에서는 천순(天順) 8년.
북경에서는 경태(景泰) 12년.
카라코룸에서는 첨원(添元) 8년.
이 해를 부르는 연호가 이리도 많은 만큼 1461년은 곡절도 많고 고달픈 해였다.
천하가 몇 번을 뒤집혔으며 그때마다 피와 눈물이 강처럼 흘렀다.
그렇기에 더더욱 영원히 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고단한 해가 지나간다.
그렇게 1462년이 되었을 때, 천순제는 조선에서 돌아온 내각대학사 이현(李賢)을 다시 맞아들일 수 있었다.
“…조선은 어떠하였는가?”
“제가 다녀왔을 때가 추운 겨울이고 농한기(農閑期)인지라 백성의 삶을 제대로 알 수는 없었으나 백성들은 한가하고 나라는 조용하여 평안하였습니다.
천자의 칙사를 대하는 예 또한 공순하며 나무랄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 아조의 소식을 전하니 반응은 어떠하던가?”
“심히 대경하며 천조의 국란에 슬퍼하는 기색이 완연하였습니다.”
의례적인 질문에, 모범적인 답변들이 돌아왔다.
천순제가 가슴 졸이며 던지는 질문들에, 이현은 척척 그에게 듣기 좋을 대답들을 가져왔다.
그러나 천순제는 여전히 마음을 놓지 않는 듯하더니 곧 가식을 집어치우고 묻는다.
“조선의 반응은 어떠하였는가?”
“…숱한 공물을 바치며 폐하의 안위를 걱정하는 바가 컸습니다.”
“북경과 접촉이 있어 보이던가?”
“소신이 보아 할 때 그런 기색은 없었사옵니다. 다만….”
북경의 경태제와 조선이 손잡은 바가 있는지 걱정하던 천순제는 얼굴이 펴지다가, 이현이 무언가 말을 더 꺼내려 하자 다시 표정이 굳는다.
“다만 조정에 서역인들이 여럿 보였사옵니다.”
“서역인?”
“예, 보아하니 조선을 침공하였다던 그 소련이라는 나라가 복속되고 그 백성들 또한 조선에 의해 교화된 듯하옵니다.”
“흠, 번국의 강역이 다시금 평정되었다니 기쁜 소식이다. 천자로서 경사에 무언가 더 보태어 줄 수 없으니 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남경의 조정이 조선에 뭔가를 보태 주기는커녕, 조선에 급히 지원을 요청해도 모자랄 상황이니 천순제의 말은 그저 예절을 차린 겉치레일 뿐이었다.
천순제는 혹여나 조선의 마음이 떠날까 지원 요구를 저어하여 이현의 업무는 그저 조선의 충성을 확인받는 데 그쳤으니, 그 눈치 보는 형세가 군신이 뒤바뀐 듯하였다.
그럼에도 불구, 조선이 청하지도 않은 공물을 바쳤다 하니 이 어찌 장한 일이 아닌가? 천순제의 눈가가 살짝 촉촉해지기까지 하였다.
“…짐이 북경을 되찾게 된다면 백구지국(伯舅之國)으로서 조선을 반드시 후히 대접하리니, 이날 조선이 보여 준 군신의 도리를 모두 잊지 말도록 하라.”
“예, 폐하.”
“오늘에 이르러 천리(天理)가 땅에 떨어지니, 아국에서도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자식이 넘쳐 나고 부군을 섬기려 하지 않는 부녀들이 수없이 많다.
헌데 멀리 동방에서 떳떳한 의로움을 빛내니 참으로 조선은 아름다운 나라가 아닌가?
충성하는 신하에게 믿음과 보살핌으로 보답함이 주군의 미덕이니 내 언제까지나 조선의 도움을 기억하리라.”
아, 중화의 질서에 종순하는 아름다운 조선의 아름다운 모습이여! 저 지고지순한 신하의 충의로움이여!
그날, 천순제뿐 아니라 남경 조정의 문무백관이 눈물을 흘리며 동방 군자국(君子國)의 의로움을 칭송하였다더라.
* * *
“…좆 될 뻔했소.”
아름다운 군자국의 섭정답지 않은 언어 구사였으나,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트로츠키의 말대로 정말 ‘좆 될 뻔’했기 때문이다.
“그 빌어먹을 중국 황제는 얼마나 멍청한지 모르겠소. 자금성에서 급히 도망치는 와중에도 조선에 사신을 보낼 생각을 하다니.”
사신이 이야기한 병란의 날짜와 사신이 온 날짜를 생각하면 쉬이 할 수 있는 추측이다. 아마 난리를 피해 자리 잡자마자 조선에 칙사를 보냈으리라.
이 자리에서의 담화 내용이 새어 나간다면 조정이 풍비박산 나고도 모자라겠으나, 다행히도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소련인과 친소련파 인사들. 트로츠키의 망언을 굳이 제지하려는 이들은 없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나마 트로츠키 동지가 조정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다행인 것이겠지요.”
대신이라는 신숙주는 아예 트로츠키의 말에 맞장구까지 치고 있으니.
남경에서 올라온 칙사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어찌 대응할 여유도 없이 조선의 모습들을 생으로 보여 줘 버렸다.
다행히 겨울 농한기라서 농업공장의 황금빛 위용이라든가, 번쩍번쩍하게 새로 마련된 개량 농기구들을 들킬 일은 없었지만.
구태여 조선의 급격한 국력 증대를 명에 들킬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차즘차즘 늘어난 소련인들을 한양에서 모두 쫓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소련이라는 나라가 결국 신속(臣屬)해서 잘 진압되었답니다!” 정도의 변명으로 칙사를 납득시켜야만 했다.
“저는 다른 것보다도 명나라의 상황이 마음에 걸립니다. 남북으로 조정이 쪼개지다니 이건 예삿일이 아닙니다!”
“그렇소. 에센을 막아 내느라 하나로 뭉쳐도 모자랄 판에 분열까지 되었으니 중국은 거의 끝장날지도 모를 일이었지.”
에드워즈가 에센을 잘 달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결국 중요한 지점은 여기에 있소.”
트로츠키가 톡, 톡, 탁자를 두드리자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중국이 만일 무너진다면, 그래서 몽골이 세계를 장악한다면 우리를 굳이 살려 두려 하겠소?”
그럴 리가.
지금이야 소중한 동맹국이고 위대한 고용주님이지만, 본래 물에 빠지고 난 사람 구하면 보따리도 건져 달라 하는 법.
“중국은 적당히 살아 있어야 하오. 나폴레옹을 막아 내는 영국과 같이, 우리는 대륙에 압도적 패자가 등장하는 현상을 방지해야만 하오.”
…물론 영국이라는 변방이 국제적인 균형 상태의 수호자를 자처할 수 있었던 바는 그 거대한 해양 제국이 받쳐 줬기 때문이지만.
지금으로서 조선―소련의 경제력이 아무리 주변국의 몇 배로 뛰어오르고 있다 하더라도 이 작은 반도의 체급만으로는 아무래도 몽골과 중국에 대응하기에 불안한 감이 있다.
그래서 일본 진출을 꾀했던 것이기도 하고.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큰일입니다!”
헐레벌떡 채신머리없이 뛰어오는 것은 무려 이 나라의 영의정 대감.
그렇게 정승으로서의 체통을 지키라 당부했음에도 아직 작가 나부랭이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블레어를 보며 트로츠키는 얼굴을 찌푸린다.
“품위를 지키게나, ‘영상’. 뭔 일인가? 뭐, 중국 황제의 칙사가 한 번 더 오기라도 했나?”
그렇게 빈정대고 나니….
블레어의 표정이 이상하다.
이런 시발.
이번에는 경태제의 칙사가 찾아왔다.
* * *
1462년의 10월, 조선은 한창 하늘이 푸르게 높아가는 가을이다.
그 말인즉슨….
“저, 저게 무어란 말이냐!”
벼의 수확기다.
양왕 주첨선과 태감 정선(鄭善)은 경악감에 빠져 경기의 벌판을 바라본다.
아무리 주첨선이 고결한 황실의 종친이라도, 마땅히 권농(勸農)을 제일의 목표로 삼는 명국의 신하로서 벼농사에 대해서 까막눈은 아니라 할 수 있다.
당장 손에 만져지는 벼 이삭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실한 것인지, 그리고 지금 지나가는 저 수레 같은 것들로 순식간에 벼들이 수확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는 잘 안다.
“양왕 전하, 아조의 군신(君臣)들이 전하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알겠네. 내 곧 가도록 하지.”
신숙주의 재촉에도 양왕 일행의 휘둥그레진 눈은 원래대로 돌아오지를 않고, 또한 눈앞의 풍경도 잠깐 눈 깜빡이면 사라질 환상이 아닌 사실 그대로임이 드러난다.
이것이 한 곳의 풍요이고 행운인가?
아니다. 전란과 가뭄으로 필시 몇 해 동안 말라비틀어졌어야 할 땅이다.
…게, 게다가 몇 해 전 사신들이 고하기를 조선은 걸주(桀紂)보다도 더한 폭군이 집권하여 논밭에 소금을 뿌리고 백성들을 몰아내 죽인다고 하였거늘!
그런데 눈앞에서 조선의 농토들은 어딜 가나 어마어마한 소출을 뽐내고, 마치 황금빛 갈기를 지닌 짐승처럼 제 화려함을 자랑하니 양왕은 영문을 몰라 혀를 내두른다.
한번 그 광경에 발이 묶이고 나니, 양왕 일행은 그저 경성으로 길을 재촉했던 남경의 칙사들과 달리 사방을 둘러보다 곳곳에 세워진 정미소와 공장들을 견학하기까지 할 수 있었다.
칙사들은 경이감에 몸을 떤다.
“이 기물들은 다 무언가? 대체… 조선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양왕의 짧은 탄식과 질문이 이어질 때마다, 그 옆에 선 신숙주의 동공은 지진이 일어난 듯 흔들린다.
그리고 마침내 한양.
모화관에는 어느덧 장성한 소년 ‘폭군’이 얌전히 머리를 조아리고 천조의 칙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구려.”
“….”
아아, 돌이킬 수 없이 좆 됐다!
* * *
―‘…하여, 북경에서 역적들의 무리를 일소하였으나 폐주(廢主, 폐위된 임금)는 남경으로 달아나 불궤한 무리들과 함께 흉사(凶事)를 꾸리며, 북변에서는 달달(達達, 타타르의 음차. 조선과 명에서 몽골을 낮춰 부르는 말.)의 야선이 군사를 주둔시키고 호시탐탐 중원을 노리니 짐의 시름이 가실 길이 없도다.
그러니 너희 충량한 신하들은 마땅히 군사 2만을 북경으로 보내어 북변을 수비케 하고 야선의 사악한 무리를 막을지라.’
“…이는 반드시 거절해야 합니다. 군사 2만을, 그것도 국경도 닿지 않는 명국을 향해 해로(海路)로 파견한다니 지금 조정으로서는 이런 자원을 들일 수는 없사옵니다.”
“맞습니다. 아국이 작금에 아무리 부강하다 할지라도, 그는 곡식과 면포의 풍부함에 있는 것이지 부역을 맡길 백성의 머릿수는 잦은 싸움으로 인하여 크게 줄었사옵니다.
작금에 제일 중한 것이 사람이며, 제이로 중한 것도 사람인데 이를 2만이나 보낸다니 손실이 막급할 것옵니다.”
조정의 세력 균형을 이루는 트로이카의 수뇌부들만이 어전에 모이자마자, 신숙주와 박팽년이 이리 번갈아 아뢸 정도로 작금의 상황은 심각했다.
“게다가 속내가 보이는 요구이기도 하지. 에센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면 마땅히 양계 너머로 요동을 치라는 황명(皇命)으로도 충분할 것이네. 헌데, 군사를 보내 달라?”
당연히 남경의 조정과의 세력 싸움 때문이리라.
애당초 이미 조선은 에센으로부터 명나라가 ‘정벌’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말도 안 되게 치욕스러운 소식이니 칙사들은 그에 대해 입도 뻥긋 안 했다만.
‘형제의 나라’가 되어 버린 마당에 에센을 더 견제할 방도도, 이유도 없을 테니 에센의 견제는 그저 명분에 불과하다.
“…허나 받아들이지 않기에도 애매합니다.”
이번에 말을 거드는 것은 블레어.
영국인, 서구인, 근대인이라는 외부자적 위치를 뚫고 겨우 조선 사회를 이해하게 된 그일지라도 이 요청을 거부했다가 일어날 난리가 눈앞에 쉽게 그려진다.
단순히 북경의 경태제와 적대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내부로부터 올라올 불만과 비난이 더 큰 장애물로 도사리고 있다.
“만일, 조정 바깥에서 명에 대한 ‘배신’ 행위가 크게 공론화되고, 그에 불만을 가진 보수주의자들이 박팽년 동지와 뜻을 함께하지 않게 된다면….”
즉, 트로이카의 한 축을 이루는 대신파 진영에서 순식간에 보수주의자들이 빠져나가고, 그들이 작금의 조정 전체에 대해 판 뒤엎기를 시도한다면?
지금의 정치적 안정 또한 뿌리부터 흔들린다.
“…결국 유일한 해결책은 ‘이것’뿐인 것 같군.”
옥좌에 앉아 이마를 짚고 있던 이홍위는, 눈앞에 놓인 투서 하나를 집어 들어 다시금 펼쳐본다.
첫 문장부터 파격적이기 그지없다.
―‘전하, 신(臣)을 버리소서.’
“돈암(遯菴, 민신의 호)이 보내온 투서에 따라 대사를 진행함에 경들 모두 동의하는 것이오?”
“…그렇사옵니다, 전하.”
신숙주의 말과 함께 세 사람이 고개를 숙인다.
북경행 군사 파견의 안은 부결되었다.
* * *
“그렇다면, 조선에서 군병을 보내 줄 수는 없다는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경태제의 붉게 충혈된 눈앞에, 주첨선이 머리를 조아린다.
누가 보아도 경태제는 살아 있는 송장처럼 기운 없는 모습이다.
지난 1년간 길지 않을 여생 안에 원수들의 피를 보고 말리라는 일념으로 모든 정치적 역량과 정념을 끌어모아 석형과 조길상의 목을 벴기 때문이다.
남궁에 유폐된 상태로 아들의 죽음까지 맞이한 황제는, 이미 복수 외에는 별다른 삶의 목표가 없었고 그 목표가 해소되자 마치 살아 있는 귀신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에센에게 굴욕적인 항복까지 감행했으니 황위 자체의 권위와 권력이 수직으로 하락하였고.
경태제의 묵인 아래, 조정의 실권을 주첨선이 쥐고 있으니 겨우 국정이 돌아갈 뿐.
“오랜 전란으로 인하여 사내가 귀하니 2만이나 되는 장정을 더 뽑아 올리기에는 그 부담이 너무도 크다 하여 제가 감히 그들의 사정을 헤아려 대신 면포와 쌀을 보내어 달라 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주첨선에 대한 조선의 ‘소소한 선물’과 ‘성의의 표시’가 큰 역할을 했다.
경태제 또한 그를 짐작하고 있음에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의 뜻을 표했다.
생각보다 조선이 보내온 포목과 미곡의 양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사정이 상당히 괜찮은가 보군.”
장정을 보내는 대신 경제적 지원으로 해소하겠다?
현물 박치기라는 선택지를 고를 정도로 생산력을 쌓아 올렸다. 그것도 내란 이후 단 수년 만에.
거기에 감탄을 표하던 경태제의 눈앞에 주첨선은 머리를 더욱 깊숙이 조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