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01
106
20. 꽃 축제
수도의 중앙 광장에는 아침 일찍부터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은 연신 주변을 살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곧 광장으로 손수레에 신문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나타나자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 그들을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수레 앞으로 몰려가 외쳤다.
“한 부 주시오!”
“나도!”
동전이 오가고, 사람들의 손에는 평소보다 조금 두꺼운 신문이 들렸다. 인파를 뚫고 먼저 신문을 사서 나온 사람의 주변으로 아직 사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재촉했다.
“어서 특별 페이지 좀 펴 봐요.”
“사려면 한참 남은 것 같으니 같이 좀 봅시다.”
평소라면 남이 산 신문을 다짜고짜 같이 보자 다가오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신문 1면에 크게 박힌 기사의 제목을 보았다.
두 번째 방이 열리다.
어제, 공작저 보석의 방의 두 번째 문이 열렸다는 소식은 석양이 깔리기도 전에 수도 전체에 퍼졌다. 사람들은 누구를 만날 때마다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두 번째 방에서 어떤 보석이 나올 것인지를 이야기했다.
신문을 구입한 사람이 목록이 인쇄된 페이지를 펴자 사람들은 꿀꺽 침을 삼켰다.
“어디 보자…. 어제 17일 오후 4시경. 드디어 몇 개월간 열리지 않고 궁금증만을 자아내던 두 번째 문이 열렸다. 본지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그 방을 열기 위해서는 특정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했으며 어제 최종적으로 두 번째 방을 열기 위해 동원된 사람들의 수는 삼 백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가 모여 문을 밀자 그동안 열리지 않은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큰 소리를 내며 문이 안쪽으로 쓰러졌다. 동시에 사람들의 눈에 보인 것은….”
남자가 거기서 말을 끊자 눈을 빛내며 듣던 사람들이 그를 재촉했다.
“뭐 해요? 어서 마저 읽어 봐요!”
“이번에는 무슨 보석이 나왔대요?”
사람들이 안달 내는 모습을 짓궂게 보던 남자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마저 뒤를 읽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길 만큼 높이 쌓여 있는 금괴와 은괴의 더미였다.”
그 말에 사람들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첫 번째 방에서는 보석이 쏟아지더니 두 번째 방에서는 금과 은이 쏟아지다니.
창세 신화를 보면 보석은 아득한 곳에서 떨어진 빛이 땅속으로 퍼지면서 생겨난 것들이었다. 하지만 금과 은은 원래 이곳에 있던 것들이었다. 빛이 오기 전부터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것들. 보석과 꽃으로 변한 빛이 마지막으로 남긴 두 색이 각각 금과 은으로 스며들었다는 신화는 보석의 이야기보다 유명하진 않아도 다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역시 호슨 공작님이셔. 과거 네이판타가 사람들에게서 가져갔던 그 금과 은이군!”
“주인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은 돌려주었지만 남은 것은 공작님이 갖고 계신다더니 진짜였어.”
사람들은 더욱 신문에 몰려들어 두 번째 방에서 나온 금과 은이 얼마나 되는지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광장뿐만이 아니었다. 브릭스 거리에서도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손에 신문을 들고 있었다. 리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들 신문만 보고 있을 거예요? 따뜻할 때 얼른 식사하시라고요!”
리나가 타박하자 사람들은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신문을 내려놓았다. 사람들이 다시 식사에 집중했지만 리나의 표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리나에게 짓궂게 말을 걸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리엘라가 더 큰 부자가 되어서 배 아파?”
그 말에 리나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리엘라가 부자 되어서 배 많이 아프신가 봐요?”
날카로운 목소리로 리나가 되묻자 질문한 남자는 어물거리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리나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갓 구운 스콘을 가득 들고 나왔다.
“공작저의 멜다 부인이 알려 주신 특별한 레시피로 구운 스콘이에요. 서비스로 드리는 거예요.”
모든 테이블에 사람 수 만큼 스콘을 올린 리나는 조금 전 리엘라의 이름을 들먹인 남자의 테이블에 가서 힘주어 말했다.
“어머 이걸 어쩌나아. 스콘이 여기서 딱 떨어져 버렸네에.”
바보가 아닌 이상 리나가 말꼬리를 늘리며 비아냥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었다. 남자는 괜히 어물쩍거리다가 계산을 하고는 후다닥 나가 버렸다.
“맞받아치면 찍소리도 못 낼 거면서 쓸데없는 말은 왜 하고 그래. 콱 그냥.”
남자가 나간 문을 향해 주먹질을 한 번 한 리나는 그가 앉았던 자리를 빠르게 치웠다. 그러다 그가 남기고 간 신문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와 구석에 툭 던져두고는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팔짱을 끼었다.
리나는 제 표정이 왜 이런지 잘 알고 있었다. 금과 은이 쏟아졌다는 기사 때문이 아니었다.
‘올해도 같이 갈 줄 알았는데.’
매년 열리는 꽃 축제에 리엘라는 언제나 리나와 함께 참석했다. 그래서 올해도 행사 기간 내내 당연히 함께할 줄 알았는데.
‘마지막 날에는 힘들지도 모르겠다고.’
리엘라의 답장을 받아 들고 나서 리나는 생각에 잠겼다.
‘하운 대공님이랑 잘되고 있나 봐?’
축하할 일이다. 친구의 연애가 잘되고 있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왜 이렇게 속이 쓰리담.
리나는 뒷문으로 나가 골목으로 나섰다. 저 멀리 길 끝에 여전히 문을 닫은 채인 리엘라의 가게가 보였다. 신문에 난 기사 때문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게를 가리키며 뭐라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브릭스 거리에서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 한참이나 가게 앞을 서성이다 가는 모습도 보였고.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가게를 보는 그들의 시선이 결코 호의적이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괜찮을까….”
세상에는 누군가가 잘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과 관계가 있건 없건 다른 누군가가 행복한 모습을 보면 그것을 짓밟고 싶은 사람들이.
리엘라는 공작저에서 지내고 있고, 주변에 워낙 대단한 사람들이 많으니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쓸데없는 생각이라 할지 몰라도 리나는 제 친구가 걱정되었다.
***
팔락팔락 신문이 넘어가는 소리가 차 향기 가득한 응접실에 울렸다. 리엘라는 오후 늦게 도착한 석간신문을 넘기면서 끄응, 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대륙 최대의 부호들이라….”
그 단어 밑에는 여러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저 멀리 남쪽 나라의 해운 왕이라거나, 소르디아 경매장의 주인, 서부 평야의 거농(巨農) 등등.
그 수많은 이름 중에 하나의 이름이 제일 위에,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리엘라 테니어
“으아아….”
제 이름이 혼자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본 리엘라는 다시 신음 소리를 내었다. 제 이름이 다른 것은 색깔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 옆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3600만이라느니 5150만이라느니.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는 숫자인지는 리엘라도 잘 알고 있었다.
“대략적인 재산 추정액… 일 텐데.”
시선을 위로 올리자 제 이름 옆에 써진 말이 보였다.
추정 불가
“하아아….”
분명 얼마 전까지는 17억 8900만 같은 숫자가 붙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추정 불가라고 한다.
“이게 다 그 금괴랑 은괴 때문이야….”
어지간한 연못 하나는 다 채울 수 있을 만큼 쌓여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하지만 그건 함부로 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사람들의 말대로 호슨 공작이 정말 네이판타의 레어에서 가져온 모양인지 보석술사가 아닌 자들이 느끼기에도 섬뜩한 기운이 서려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다행히 멀쩡한 작은 금괴들도 있긴 했다. 그 숫자가 정확히 두 번째 문을 열기 위해 모였던 사람 숫자와 같았기에 리엘라는 그것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전부 나눠 주었다. 그게 공작의 뜻인 모양이었으니까. 그래서 샤를로테도 엉겁결에 기념품 하나를 받아간 셈이 되었다.
두 번째 문 안에서는 금과 은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방을 열었을 때보다는 수가 적긴 했지만 힘이 강한 보석들도 나왔다. 그것들을 보던 하운의 표정에 아련함이 서리길래 아는 보석이냐 물었더니, 원래 자신의 보석인데 호슨 공작이 강탈해 간 것이라 말했다. 순순히 내주지 않으니 발로 걷어찼다나 뭐라나.
‘고상하고 점잖던 공작님이 그럴 리가 없어. 좀 과장해서 말씀하신 거겠지.’
리엘라는 고개를 들어 맞은편을 보았다. 그곳에는 팔짱을 낀 채 살짝 잠이 들어 있는 하운이 앉아 있었다. 아침 식사 자리에 왔을 때부터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던 하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문이 열리고 나서 밤늦게까지 바빴으니까.
일단 문이 열린 순간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사람들을 밖으로 나가게 한 다음 안을 살펴보았다. 그다음 안에 있는 것들을 확인한 다음에 놀란 눈으로 한 번이라도 만져 보려 하는 보석술사들을 타이르면서 무사히 점검을 마쳤다. 그 후에는 안에서 발견된 사람 수 만큼의 작은 금괴를 호슨 공작님의 뜻이라고 말하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하운은 그 복잡하고 귀찮은 일들을 묵묵히 하면서 리엘라에게 이야기했다. 금괴를 나눠 주는 것은 리엘라가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결국 제가 한 일은 하나도 없는데 가장 많은 감사의 인사를 들은 것은 리엘라가 되었다. 그 사실에 하운은 조금의 아쉬움이나 억울함 따위 보이지 않았다.
“당신이 주인이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보석술사들까지 다 돌려보낸 다음에도 하운은 혼자 보석의 방에 남아 금괴에 걸려 있는 네이판타의 기운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하운을 더욱 지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세 번째 문이 없을 줄이야.’
***
두 번째 문이 열렸을 때 하운은 가장 먼저 안전을 점검했다. 그다음에는 곧바로 안으로 향했었다. 세 번째 보석의 방을 지키고 있는 문은 어떤 형태에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으니까. 하지만 안을 이리저리 살피던 그는 곧 그 어디에도 문이 보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있는 것은 오직 벽 뿐.
보석의 방 중심을 빙 둘러싼 흰색의 벽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벽이었다. 하운은 방 안에 있는 보석술사들을 내보내려 하다가 곧 생각을 고친 듯 그들에게 말했다.
“함께 살펴보지 않겠나.”
하운의 말에 보석술사들은 크게 기뻐하며 영광이라 대답했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던 네아는 ‘주인님, 원하신 대로 쟤 사람 됐네요.’라며 하운에게 들리지 않게 하늘을 보고 중얼거렸다.
하운과 보석술사들은 벽을 살펴보았다. 겉에서 보이는 대로라면 벽이 둘러싸고 있는 공간은 저택의 큰 방 정도 되는 넓이였다. 어쨌든 벽 너머에 공간이 있는 것은 확실하며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보석들이 전부 그 안에 있을 것 같았다.
“첫 번째는 안에 위험한 것을 넣어두고 두 번째는 열리지 않게 만들어 두더니 세 번째는 아예 문도 없다고?”
하운은 짜증을 섞으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다시금 호슨 공작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만들면 안 되는 거였나? 왜 매번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
하운은 리엘라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멀리 떨어져 있게 한 다음 징벌의 오닉스를 꺼냈다. 보석의 힘을 사용하자 금색의 번쩍이는 빛과 함께 거대한 충격이 벽을 때렸다. 하운이 어찌나 진심을 담아 후려쳤는지 저택은 물론 저택에서 떨어진 먼 곳에서도 진동과 소리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흰색의 벽에 쩌억 소리가 나면서 큰 금이 생겼다. 생각보다 쉽게 끝나나? 싶었는데 다음 순간 벽은 스스로 치료하기로 하듯, 생겨났던 금이 빠르게 사라졌다. 잠시 후, 벽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던 네아가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쉽게 열긴 글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