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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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가 그렇게 난리였는데 마지막인 세 번째가 쉬울 리가 있을까. 하운과 네아의 얼굴이 어두워진 것과 반대로 그 사실을 알게 된 보석술사들은 신나 어쩔 줄 몰라 했다.
어쩐지 이 보석의 방은 그들에게 이미 호슨 공작이 남긴 재미있는 보물찾기가 된 모양이었다.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그들은 하운에게 이 벽을 자신들이 살펴봐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하운은 자신은 이곳의 주인이 아니니 그건 리엘라에게 물어보라 말했고 리엘라는 당연히 승낙했다.
보석술사들의 빛나는 눈빛을 무시할 수 없어서기도 했지만 그 사람들과 열심히 문을 여는 일에 몰두하며 이야기하고 있는 하운의 모습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결국 찾진 못했지만.’
문이 있으면 여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지만 문이 아예 없다 보니 하운과 보석술사들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고심하는 것 같았다. 일단은 저 벽을 깨고 보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아예 문이 없다는 것은 열지 말라는, 그러니까 건드리지 말라는 뜻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저희들끼리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만… 호슨 공작님께서 네이판타의 레어에서 가져왔다던 저주받은 보석들은 아직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이 안에는 가장 위험하다는 그것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공작님께서 봉인을 해 두신 것이라면?”
“가능성 있는 가설입니다. 징벌의 오닉스로 내려쳤는데도 저 정도 금이 가는 것에 그친다면… 무엇으로 저 벽을 부술 수 있을지 짐작할 수도 없군요.”
하운이 사용하는 징벌의 오닉스는 물리력으로 따지자면 카르디아에 있는 보석들 중 첫 번째라 해도 과언이 아닌 강력한 보석이다. 그것으로도 효과가 없다면 어쩌면 이 벽은 물리력이 아닌 다른 방법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두 번째 방을 열 때와 비슷한 토론과 시도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덕분에 공작저의 하인들은 다시 바빠졌다. 오랜 시간 동안 쓰이지 않았던 거대한 연회장에 급하게 테이블을 깔았고 멜다 부인의 지휘 아래 요리를 할 수 있는 모든 하인들은 주방에 모여 보석술사들의 식사를 만들었다. 네아는 하인들에게 거래하는 가게에 가서 큰 맥주 통 세 통과 연회용 와인을 가져오라 시켰다.
모두가 재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저녁 식사 테이블은 무척이나 풍성했다.
테이블 여기저기에 구운 닭과 채소가 놓이고 공작저의 온실에서 기른 채소로 만들어진 샐러드와 갓 구운 빵들이 올라왔다. 거기에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여름밤의 바람과 술이 함께하니 공작저는 또다시 즐거운 분위기가 되었다.
그렇게 결국 다들 세 번째 문을 찾는다는 이름 아래 먹고 마시고 놀아 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 문을 열고 난 후였으니 그것을 축하하는 뜻도 함께 담긴 자리였다.
긴 테이블의 제일 상석에는 저택의 주인인 리엘라가 앉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당연하다는 듯 하운이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대공님께서는 보석의 방이 다 열릴 때까지 공작저에 머무시는 겁니까?”
“…일단은 그렇지. 전하께서 호슨 공작의 유언 집행 감사관으로 이곳에 머물라 명령하셨으니까.”
“그럼 이번 세 번째 문이 열리면 여기 계시는 것도 끝이시겠군요. 아쉽습니다. 이번에는 또 어디로 가실 건가요? 당분간은 깨어날 드래곤도 없을 테니 수도에 계실 겁니까?”
“글쎄. 그건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군.”
생각보다 하운이 잘 대답해 주자 멀찌감치 앉아 눈치를 보던 보석술사들도 슬그머니 다가왔다.
예전 같으면 말 한 번 붙일 생각도 하지 못했던 하운이었다.
은퇴한 호슨 공작을 대신해 어린 나이에 이미 활약하는 보석술사 중 최강이라는 소리를 듣는 하운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신화와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지위는 대공인 데다 성격은 쌀쌀맞기 그지없었으며 일 이외의 대화를 하려는 자들을 쓰레기 보는 듯한 눈으로 보았었다.
그래서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게 전부였는데 그런 하운이 이렇게 자신들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영광이었다.
하운이 한 번 질문에 대답하자 여기저기서 용기를 내어 그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하운은 조금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을지언정 그 질문들에 하나씩 대답해 주었고 저녁 식사 시간은 어느새 학구열에 불타는 질문이 오가는 학술의 장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던 리엘라는 조금 전 하운이 들었던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어디로 가냐고.’
하운의 말대로 그는 감사관의 자격으로 아직 공작저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하운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았다. 만약 그가 세 번째 문을 찾아내고 호슨 공작의 유언 집행이 전부 끝나면 어떻게 될까.
‘예전이라면 북부 전선으로 돌아가셨겠지만….’
대부분의 드래곤들이 수면기에 들어간 탓에 이제 카르디아는 몇십 년간 평온한 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석술사들이 편하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라에 속해 있는 보석술사들은 아직 남아 있는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이웃 나라와의 분쟁지역으로 새롭게 배치되어 감시와 수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니 하운도 그렇게 다시 떠날 확률이 높았다.
물론 그가 오랫동안 북부 전선에 머물러 있었으니 좀 더 수도에 남아 있기는 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계속 공작저에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리엘라는 저번부터 품었던 의문을 다시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하운의 집은 어디지? 왕궁은 아닌데?
지방 영지에 있다면 그곳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았다. 그러면 당분간은 거기 머무르려나? 놀러 갈 수 있을까?
그가 계속 공작저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지만 그랬다가는 온갖 추문이 돌 것을 리엘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리엘라가 혼자 고민하는 사이에 점점 밤은 깊어 갔다.
***
리엘라는 잠든 하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루 사이에 조금 수척해진 것 같은 얼굴이 안쓰러웠다. 리엘라는 조용히 일어나 그가 깨지 않도록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
가까이 다가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눈을 감고 있는 하운의 얼굴이 보였다. 공작저에서 쓰는 허브 향의 비누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길고 숱 많은 속눈썹이 조각 같은 얼굴 위에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눈을 감고 잠들어 있음에도 마치 전쟁의 신과 같은 단단함과 강함이 느껴졌다. 기사들에게도 이런 느낌은 받은 적이 없었고, 하운이 따로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렇다면 타고난 걸까?
리엘라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하운을 바라보았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밝은 햇살이 그 위로 떨어져 반짝였다. 새삼 그의 외모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를 깨달으며 리엘라는 조용히 그를 보았다.
“…….”
이런 사람이 제 연인이라니.
그 생각을 한순간 리엘라의 얼굴은 다시 홍당무처럼 변했다. 분명 서로 고백을 하고, 마음을 확인했음에도 아직도 얼떨떨했다. 남들은 어릴 적에 첫사랑이 찾아온다던데 자신은 그런 것도 없었기에 리엘라에게는 하운이 첫사랑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고백한 다음에 뭐가 바뀌었더라?
‘손은 잡는데….’
또 하나 바뀐 것이라면 호칭이었다. 이제 리엘라는 하운을 더 이상 대공님이라고 부르지 않게 되었다.
“그냥 이름으로 불러 주면 안 돼?”
부탁하는 하운의 뒤에서 네아가 ‘어디서 수작질이냐!’라고 말하다 멜다 부인에게 끌려가긴 했었지만 어쨌거나 리엘라는 고백한 날 이후로 그를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살짝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는 하운의 얼굴이 보기 좋았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처럼 웃으면서 짙은 푸른 눈동자가 저를 보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
“내 얼굴이 그렇게 재미있어?”
“헉!”
언제 일어난 거지? 리엘라는 놀란 가슴을 누르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하운은 조금 아쉽다는 얼굴이 되었다.
“아니, 그냥… 피곤해 보여서….”
우물거리며 리엘라가 시선을 돌렸다. 적당히 넘어가면 좋겠는데 하운은 끈질기게 리엘라와 시선을 마주하려 했다. 리엘라가 그런 하운을 피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보니 가만히 선 채로 두 사람 다 얼굴만 이리저리 움직이는 웃긴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결국 이상하다 생각한 리엘라가 먼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곧 하운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재미있는 말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서로를 바라보다 기분 좋게 웃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
“…….”
그러다 웃음소리가 그치고 옅은 열기를 띤 침묵이 아침 공기와 섞여 두 사람 사이를 흘렀다. 아무 말도, 접촉도 없었는데 민망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왜 이러는지 모르면서도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간 순간, 복도를 다급히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확인할 것도 없이 네아가 다가오는 소리였다.
다급히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 다음 벌컥 문이 열렸다. 너무도 빠르게 안으로 들어온 네아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하운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네놈의 손과 주둥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눈빛에 하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네아는 리엘라에게 보이지 않게 하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혀를 날름 내민 다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리엘라를 보며 말했다.
“아가씨, 손님이 오셨어요. 만나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누구인데요?”
“꽃 축제 관리국이래요. 아가씨께 전해 드려야 할 말이 있대요”
네아가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할 말이오?”
그게 도대체 뭘까. 분명 예전에 가게 문을 닫는 일에 대해서는 문제없다고 확답을 받았다. 그것 말고 제게 다른 문제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규정을 어기거나 한 일은 없었다.
‘게다가 문제가 있어도 우편으로 알려 줬을 텐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서 할 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리엘라는 하운에게 다녀오겠다 말한 다음 서둘러 방을 나섰다. 현관으로 가자 그곳에는 관리국의 문장을 단 사람이 모자를 벗고 손에 쥔 채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리엘라를 보자 정중한 태도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축제 관리국의 로렌스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리엘라 테니어입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을까요?”
“그게….”
로렌스는 몇 번이다 망설이다 결심했다는 듯 모자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말했다.
“리엘라 테니어 씨의 대회 참가 자격을… 취소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