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1
11
네아는 침대 옆에 앉아 누운 호슨 공작을 바라보았다.
“네아.”
“네, 주인님.”
공작의 주치의는 실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말은 틀린 적이 없었고 오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네아도 알 수 있었다. 호슨 공작은 영원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에게 미안하구나. 내가 너에게 남기는 것이 하나도 없어.”
“나쁜 주인이시네요. 제가 얼마나 열심히 모셨는데.”
네아의 대답에 호슨 공작은 웃음을 지었다.
“너무 타박하지 말거라. 리엘라에게는 더 나쁜 짓을 저질렀는걸.”
“…….”
“너뿐만이 아니지. 하운은 얼마나 더 펄펄 날뛰려나.”
“알 게 뭔가요. 그놈 따위. 어차피 그 약속이라는 것도 제멋대로 주장했던 거잖아요. 공작님이 보석들을 순순히 내줄 거라고 생각했나 본데 어디 한번 크게 당해 보라죠.”
네아의 대답에 호슨 공작은 미소 지었다. 마지막으로 치는 장난이 이렇게나 기분 좋을 줄이야.
“마지막 순간에 네가 옆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앞으로의 일을 잘 부탁한다. 네가 도와줄 일이 많으니 말이다.”
“…….”
“네아.”
“네, 주인님.”
“너를 데려온 건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단다.”
주름지고 거친 손이 네아의 손을 잡았다. 네아는 그 손을 조심스레 붙잡은 다음 손등에 입을 맞췄다.
공작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숨소리가 점점 가늘어지는 것을 느끼며 네아는 아무 말 없이 공작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방 안에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을 때까지 네아는 조용히 주인의 마지막을 지켰다.
***
‘불안해.’
일찍 눈을 뜬 리엘라는 서둘러 씻은 다음 옷을 입었다. 지난밤, 호슨 공작의 인사말이 계속해서 가슴에 걸려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리엘라가 문을 열려는 순간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리엘라 아가씨, 일어나셨나요?”
“네아?”
밖에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는 것은 네아였다. 급히 문을 열었더니 그곳에는 검은 옷을 입은 네아와 멜다 부인이 서 있었다.
“네아…?”
설마. 리엘라가 말을 하지 못하고 굳어 있자 네아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리엘라 아가씨, 호슨 공작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곧 공작님의 유언장이 공개될 거예요. 그러니….”
잠시 숨을 삼킨 네아가 다시 말했다.
“아가씨께서 꼭 그 자리에 참석하셔야 합니다.”
리엘라는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호슨 공작이 세상을 떠났다 말하는 네아의 목소리만이 그녀의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리엘라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멜다 부인이 건넨 상복으로 갈아입은 후였다. 방을 나서기 전, 네아가 무엇인가를 꺼내어 리엘라에게 보여 주었다.
“이건….”
익숙한 것이었다. 언제나 호슨 공작이 차고 있던 진주 팔찌였으니까. 네아는 그것을 조심스레 리엘라의 팔목에 걸었다.
“공작님께서 아가씨에게 남기신 보석입니다. 자신의 소유자를 지키는 힘을 갖고 있지요. 아직 아가씨를 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요.”
“잠깐만요, 네아.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설명은 나중에 천천히 할게요. 일단 지금은 저를 따라오세요.”
네아는 리엘라의 손을 잡아끌고 어느 방으로 안내했다. 그러고는 잠시 보석의 힘을 쓸 터이니 문이 열리지 않아도 놀라지 말라며 리엘라를 놔두고 밖으로 나갔다. 급히 네아를 따라가려 했지만 문은 아무리 흔들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는 것을 포기한 리엘라는 의자에 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한 대, 두 대. 공작가의 마차가 아닌 낯선 마차들이 달려오나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저택 앞이 마차들로 가득 찼다.
마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허겁지겁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리엘라는 제가 있는 곳의 옆방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호슨 공작이 세상을 떠났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한참 더 시간이 흐르자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유언장이 공개된다고 했었어.’
아무래도 유언장의 내용을 알기 위해 온 사람들이 분명했다. 그래서 리엘라는 더욱 불안해졌다. 왜 네아는 자기가 이 자리에 꼭 있어야 한다고 한 걸까.
리엘라가 점점 더 불안에 떨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네아가 돌아온 것이다. 동시에 옆방도 조용해졌다.
“이쪽으로 오세요, 아가씨.”
낮게 가라앉은 네아의 목소리에 리엘라는 차마 이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겁니다.”
“네?”
“모든 것은 제 주인님의 뜻대로. 저는 그 길을 도울 뿐입니다. 힘든 일이 있더라도 그분을 믿어 주세요.”
네아는 그렇게 말하고 옆방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안의 모습을 본 리엘라는 숨을 삼켰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검은 정장을 입은 채, 네아와 함께 들어온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누구지?”
“모르겠어. 네아와 함께 있다니…. 호슨 공작의 측근인가?”
자신을 향한 시선과 수군거림에 리엘라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때, 다른 쪽의 문이 열리고 저택을 자주 드나들던 공작의 변호사들이 들어왔다.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은 리엘라에게서 떠나 그들을 향했다.
방으로 들어온 변호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크레이튼이 앞으로 나섰다.
“오늘 새벽, 호슨 공작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생전 고인께서 교류를 나누었던 분들과 단체에 부고를 전했습니다. 연락을 받고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분들은 모두 이 유언의 증인이 되실 것이며 공작님의 유언이 빠르게 이행되도록 도움을 주셔야 합니다. 동의하십니까? 만약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지금 방을 나가 주십시오.”
변호사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동의한다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방을 나서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호슨 공작님의 유언장을 공개하겠습니다.”
변호사가 손에 들린 종이봉투를 열자 방 안은 숨 쉬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
“먼저 이 자리에 와 준 여러분께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나 벨라리아 아인델 호슨은 변호사들의 입회 아래 유언장을 작성했으며 그 어떤 법적인 문제도 없음을 확인했다. 먼저 내가 세운 재단들에 관하여 말한다.”
유언장을 읽는 변호사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리엘라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 그냥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세상을 떠난 공작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리엘라는 여전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뒤에서 리엘라는 네아의 손을 붙잡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서 빨리 이 시간이 끝나고 호슨 공작에게 가고 싶었다.
아직 방 안에 계실 것 같은데. 왜 이런 옷을 입고 온 거냐며 웃으며 타박할 것 같은데.
“…그럼 재단에 대한 유언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이제 호슨 공작님의 개인 재산에 대한 유언장을 공개하겠습니다.”
그 말에 방 안이 잠시 웅성거렸다. 리엘라는 사람들의 눈빛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모두들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후계자가 없는 공작의 재산을 조금이라도 제가 받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특히 그들 중에서도 한눈에 보석술사임을 알아볼 수 있는 자들은 안절부절못하며 변호사들을 바라보았다. 호슨 공작의 보석들이 누구에게 갈 것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미리 문 쪽으로 가 있으면 빨리 나갈 수 있을까 싶어 리엘라가 몸을 움직이려 하자 네아가 손을 잡았다. 리엘라가 바라보자 네아는 움직이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 변호사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나 벨라리아 아인델 호슨의 모든 재산은….”
‘모든 재산은’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사람들은 숨을 삼켰다. 호슨 공작의 재산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왕실보다 더욱 부유한, 이 대륙 내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호슨 공작이 아니던가. 그런데 모든 재산은, 이라니? 이 모든 것을 한 명에게 넘기겠다는 건가?
여기저기서 꿀꺽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누가 이 엄청난 행운의 주인공이 된단 말인가.
변호사의 날카로운 눈빛이 사람들을 훑다 한 자리에 멈췄다. 공작이 유언장에 적은 유일한 상속인에게.
“리엘라 테니어에게 상속한다.”
아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그 침묵은 모두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에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리엘라 테니어? 그게 누구야?”
“맙소사, 공작님의 재산을 한 명이 모두 받게 된단 말이오?”
“그럴 리가! 듣기로는 호슨 공작의 다른 재산이라면 모를까, 보석들은 하운 대공이 받는다고 했는데?”
“아니 그보다 리엘라 테니어가 누구냐고! 뭐 하는 사람이야! 여기에 있나?”
리엘라는 순식간에 시끄러워진 방 안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네아가 아침에 팔찌를 주면서 한 말 때문에 공작이 저에게 보석 몇 개를 남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작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된다고? 귀가 잘못된 건가 싶었지만 제 앞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방에서 누군가 변호사에게 소리쳤다.
“도대체 리엘라 테니어가 누구요! 누구길래 호슨 공작님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는 겁니까!”
그때 리엘라의 앞에 서 있던 사람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리엘라를 보았다. 리엘라를 위아래로 훑던 사람의 시선이 그녀의 손목에 걸린 팔찌를 본 순간 그대로 멈췄다.
“아, 아르펠트의 진주다!”
그 외침에 리엘라는 제 손목을 바라보았다. 이 진주에 이름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방에 있던 모든 사람이 몸을 돌려 리엘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금 전 외친 사람처럼 모두가 팔찌를 보며 경악했다.
“맙소사. 진짜잖아?”
“호슨 공작이 한 번도 몸에서 떼지 않았던 보석인데?”
“그럼 정말로 저 여자가….”
이제 방에 있는 사람들은 소개가 없어도 리엘라가 누구인지 알겠다는 눈빛이 되었다. 정작 리엘라는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몰라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지만. 그때 구석에서 누군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하운 대공이 이 유언을 받아들일 것 같아?”
“맞아! 하운 대공이 공작님의 보석들을 받게 될 거라 들었어!”
외치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리엘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운 대공이 돌아오면 자네를 가만둘 것 같은가!”
하운. 그 이름이 리엘라의 귓가를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