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2
12
“하운 대공님!”
하운의 모습에 사람들이 반갑게 그의 이름을 외쳤다. 하운은 어깨에 묻은 흙을 털어 내면서 그들에게 물었다.
“왜들 이렇게 난리인가.”
“도대체 일주일간 어디를 가신 겁니까!”
“편지를 남기고 갔었는데 못 봤나?”
일주일 전 새벽 ‘잠시 플레노트의 레어를 둘러보겠다’라는 쪽지만을 남긴 채 하운은 모습을 감췄다. 하운이 플레노트의 레어를 둘러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오늘도 아침 산책을 가셨군, 정도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하운이 저녁이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자 그들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그리고 3일이 지났을 때는 심각한 얼굴이 되었고, 일주일이 된 오늘 그들은 왕궁에 보고할 것을 결심했다.
그들이 ‘하운 대공님이 일주일째 행방불….’까지 썼을 때 하운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거의 울기 직전인 보석술사들을 한번 쓱 본 하운은 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아직 안 닫힌 입구가 보여서 플레노트의 레어에 들어갔다 왔네. 생각보다 수면기가 빨리 온 게 마음에 걸렸거든.”
그 말에 다시 보석술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드래곤의 레어가 어떤 곳인가. 그곳은 드래곤의 둥지요, 몬스터들의 집합소며, 인간들에게는 접근을 거부하는 함정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특히나 플레노트의 레어는 지하에 만들어진 거대한 미궁으로 너무 위험해 탐사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 혼자 들어갔다고?
그때 다른 보석술사가 막사 안으로 들어오면서 하운에게 큰 종이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
“수도에서 온 편지입니다.”
“그건 알겠어. 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 편지가 쏟아졌냐는 거야.”
그 말에 막사 안의 보석술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아, 먼저 이 소식을 전한다는 것을 깜빡했군요.”
“무슨 소식?”
“호슨 공작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콰당!
하운이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넘어진 의자가 나뒹굴었다.
“뭐라고?”
“4일 전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래서 대공님을 찾아다녔던 건데….”
하운의 손이 떨렸다. 호슨 공작이 죽었다고? 갑자기 호슨 공작이 보냈던 편지들이 생각났다. 어느 순간부터 네아가 아닌 누군가가 대필했던 편지. 그저 눈이 많이 나빠졌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운은 박스 안에 있는 귀족들과 보석술사들의 편지 하나를 거칠게 집었다. 찢듯이 편지 봉투를 뜯은 그는 편지에 적힌 내용을 보았다.
호슨 공작 사망. 빠른 귀환을 부탁드립니다. 그분의 유산이 모두 리엘라 테니어라는 여자에게….
하운은 다른 편지를 집었다.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어디서 굴러들어 온 여자가 공작님을 현혹해 그분의 유산을 가로챘습니다. 이것은 사실 모두 대공님께 가기로 되어 있던 것이 아닙니까? 어서 돌아오셔서….
하운은 미친 사람처럼 편지들을 읽어 나갔다. 대부분의 편지 내용은 비슷했다.
호슨 공작이 죽었다. 그녀의 모든 유산은 정체 모를 여자가 상속 받았다. 납득할 수 없다.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호슨 공작의 보석은 당신의 것이 된다 들었었다. 우리는 호슨 공작의 유산이 정당한 주인을 찾기를 원한다. 그러니 속히 귀환해 달라.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하운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호슨 공작에게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 승냥이 떼들이 저를 앞세워 유산을 노리고 있는 것을. 그러나 지금 하운에게는 그런 그들의 태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었다.
호슨 공작의 유산을 정체 모를 여자가 상속 받았다고? 모두 다?
하운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럴 수 없다. 아니, 그러면 안 되었다.
‘그 보석들이 다른 자에게 간다니.’
하운은 그것들을 원했다.
호슨 공작이 갖고 있던 보석들 중에 대륙에서 손꼽히는 것만 해도 수십 개가 넘었다. 보석 하나하나가 나라의 큰 재산이었다. 게다가 그것 중에는 다루기 힘든 위험한 보석들이 많았다. 나라를 위해서도, 보석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것을 제가 물려받는 것이 옳지 않은가.
이를 갈던 하운은 편지를 보았다.
리엘라 테니어. 호슨 공작의 재산을 상속 받은 여자.
‘도대체 누구며 무슨 수를 쓴 거지?’
그 이름을 보는 하운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
“하아….”
눈을 뜬 리엘라는 크게 한숨을 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밤새 내내 악몽을 꾸었다. 호슨 공작이 자신의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공작을 부르면서 따라갔다. 하지만 천천히 걷는 공작을 아무리 달려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닿을 수 있는데. 이상하게 아무리 달려도 손이 닿지 않았다. 울면서 같이 가자고 공작을 부르자 그녀가 돌아서서 말했다.
“안 돼. 이제 자네와 내가 걷는 길이 다르다네.”
공작은 그렇게 말하며 제 발아래를 가리켰다. 리엘라가 서 있는 곳과 다르게 끝을 알 수 없는 새카만 어둠이 공작의 발아래에 있었다. 알 수 없는 먹먹함에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리엘라는 눈을 떴다.
“…그래도 꿈에서라도 뵌 게 어디야.”
리엘라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쭉 기지개를 켜다 고개를 돌려 방을 둘러보았다.
창세 신화가 그려져 있는 천장의 끝에는 금박이 입혀진 장식들이 있었다. 벽은 화려한 색깔과 무늬의 벽지로 발라져 있었으며 큰 창 옆에는 금실이 들어간 두꺼운 커튼이 가지런히 매여 있었다.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는 공작저의 모습이었다.
호슨 공작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호슨 공작은 유언으로 자신의 장례식은 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 탓에 공작은 아주 조용히 보석술사들의 무덤에 묻혔다. 공작은 제 무덤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반기지 않겠다는 뜻을 유언장에 남겼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물론, 리엘라와 네아도 공작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 무덤을 찾아갈 수 없었다.
리엘라가 지난 일주일을 떠올리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일어나셨나요?”
안으로 들어온 네아는 성큼성큼 걸어 다가왔다.
“네, 네아?”
“이러고 계실 줄 알았어요. 어머, 이거 봐. 어제도 또 울다 잠드셨죠? 눈 부은 거 봐요. 제가 보이긴 하세요? 자, 눈 감아 보세요. 얼음찜질해 드릴 테니까요.”
됐다, 사양한다 따위의 말은 어차피 듣지 않을 네아였다. 그것을 알기에 리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곧 차가운 것이 눈에 닿았다.
“으….”
피부에 닿는 서늘함에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내었다. 조금 욱신거리는 것 같던 눈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네아의 말대로 어제도 자기 전에 결국 울어 버렸다. 게다가 일어나서도 훌쩍이고 있었으니 지금 자신의 눈은 붕어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사이 네아가 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커튼을 걷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갑자기 발걸음이 멈췄다.
“어머, 이거 왜 풀어 놓으셨어요?”
“응?”
네아의 놀란 외침에 리엘라는 눈에 누르고 있던 얼음 수건을 떼고 눈을 떴다. 확실히 조금 전보다 훨씬 눈을 뜨기가 편했다.
“항상 차고 계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래도 잠잘 때까지 하면 좀… 게다가 진주는 상하기 쉬운 보석 아닌가요?”
리엘라는 네아의 손에 들려 있는 진주 팔찌를 보았다.
***
유언장을 공개하던 날, 리엘라는 처음으로 저 보석의 이름을 알았다.
아르펠트의 진주. 수호의 힘을 갖고 있으며 자신을 지킬 사람을 스스로 정하는 보석. 호슨 공작은 보석술사이면서도 보석이라고는 이 진주로 만들어진 팔찌 하나만을 걸치고 있었다. 그 말은 이것 하나만 있으면 다른 보석을 불러낼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나중에서야 리엘라는 네아에게 이 팔찌가 어떤 것인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아르펠트해(海)에서만 나오는 진주예요.”
“거기는 아무것도 살 수 없는 바다 아닌가요?”
아르펠트해는 리엘라도 알고 있는 곳이었다. 예전에 좁은 만(灣)이었던 바다이자 몇백 년 전에 드래곤 로드인 사르지안이 만의 입구에 잠긴 채로 수면기에 들어가는 바람에 고인 물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다친 상태였기에 안쪽의 바다가 전부 드래곤 로드의 피로 물들었고 그 탓에 바다에 살던 모든 생물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대륙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대부분 멸종했는데 그래도 그 핏속에서 살아남은 것들이 있어요. 진주조개들도 그렇고요. 살아남기는 했는데…. 원래 흰색의 진주를 만들어 내던 조개들이 그 후로는 붉은색의 진주만 만들어 낸답니다. 호슨 공작님께서 젊으셨을 적에 그곳에 들어가서 가져온 다음 수십 년에 걸쳐서 어르고 달래 말을 듣게 만든 보석이에요. 덕분에 색도 무척이나 연해졌지요. 원래는 짙은 핏빛의 진주였대요.”
그 말에 리엘라는 진주의 색을 살폈다. 지금은 연한 분홍색인데 원래는 붉은색인 진주라니. 네아는 계속해서 아르펠트의 진주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보석 중에서도 자의식이 무척이나 강한 편이며 힘을 다 쓰면 잠이 드는 다른 보석과 달리 진주는 그 힘이 다하면 죽는다고 했다. 게다가 아르펠트의 진주는 가공이 된 상태에서도 계속 자란다고 했던가.
“주인을 고르는 보석이라서 지금은 사용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갖고 계시는 것만으로도 공작님의 상속인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니 되도록 차고 다니세요. 정말 위험한 순간에 한 번 정도는 지켜 줄지도 모르구요.”
네아가 다시 손목에 채워 주는 팔찌를 보며 리엘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네아. 진짜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이 보석 엄청나게 귀할 것 같은데….”
이 진주 팔찌를 보며 경악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게다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통 보석도 아닌 것 같고.
“귀하긴 귀하죠. 지금 살아 있는 아르펠트의 진주는 이것밖에 없으니까요. 예전에는 몇 개 더 있었는데 전부 죽었어요. 아, 혹시 가격이 궁금하신 거라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가격을 매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들었거든요. 오래전에 이걸 팔아 달라고 찾아온 다른 나라의 왕이 있었는데 그 왕국의 땅 5분의 1을 바쳐야 하는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리엘라의 손이 덜덜 떨렸다. 생각보다 더 엄청난 물건이었다.
“일단 어서 씻고 아침 식사하세요.”
“네….”
네아의 재촉에 리엘라는 일어나 움직였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가니 멜다 부인이 리엘라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오셨군요, 아가씨. 어서 드세요.”
오늘도 여전히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을 보며 리엘라는 포크를 집었다.
유언장 발표 이후 리엘라는 여전히 공작저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난리도 아니었지.’
그날을 떠올리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갑자기 자신이 호슨 공작의 상속인이라니. 변호사들은 리엘라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간 다음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이 모든 것이 지금부터 당신의 것이라고.
‘그렇게 말해도….’
전혀 실감 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맛있는 멜다 부인의 음식을 먹고 거실로 가자 변호사들이 리엘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공작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리엘라는 책상 위에 쌓여 있는 공작의 재산 목록을 보자 가슴이 무거워졌다. 유언장이 발표되던 날의 일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