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3
13
리엘라도 사람이었기에 가끔 갑자기 많은 돈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호슨 공작의 재산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으며 준다고 해서 넙죽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작이 준 수표 한 장에도 밤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런데 공작의 전 재산? 그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제가 받을 이유도 없었고.
“전 받을 수 없어요! 뭐였지? 맞아! 사, 상속 거부! 그거 할게요!”
리엘라의 말에 변호사들은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왜 그러세요? 설마 안 된다거나 그런 건가요?”
“아닙니다. 법적으로는 상속을 거부할 수는 있지요. 받는 사람이 싫다는데 막을 방법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아가씨께서 상속 거부를 하면 일이 복잡해지거든요.”
“복잡해진다니요?”
“그게 아시다시피 호슨 공작님은 다른 가족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리엘라 아가씨께서 상속을 받지 않으면 이 모든 게 갈 곳이 애매해져요. 물론 법에 따라 국가에 귀속되거나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 공작님 개인 재산으로 유지되던 많은 사업들이 전부 멈추게 됩니다. 그중에는 사람들의 생계가 걸린 것이 많습니다.”
변호사들은 공작이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지원하고 있던 사업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러니까 제가 지금 공작님의 재산을 상속 받지 않으면….”
“네. 대략 몇천 명이 당장 내일부터 직장을 잃게 되거나 생활에 큰 타격을 받을 것 같군요. 그리고 많은 행사도 전부 취소될 겁니다.”
“…….”
리엘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제가 상속을 받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의 생계가 어려워진다니.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에 가만히 행사 목록을 넘기던 리엘라의 손이 멈췄다.
“카르디아 꽃 축제? 설마 이 행사에도 문제가 생기나요?”
“어디 보자. 이건 특히나 지출이 많은 행사군요. 만약 예정대로 상속이 이행되지 못하면 아마 올해 행사는 취소되지 않을까요. 올해뿐만이 아니라 투자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열리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아, 안 돼….”
변호사의 대답에 리엘라가 울상이 되었다. 카르디아 꽃 축제는 나라의 이름이 붙은 만큼 가장 큰 꽃 축제였다. 리엘라가 매년 제일 손꼽아 기다리는 축제이기도 했다. 게다가 올해는 드디어 자신도 참가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데 그게 취소된다고?
리엘라가 고민에 빠지자 변호사들이 한숨을 쉬며 자기들끼리 이야기했다.
“큰일이군요. 상속 거부의 경우에는 공작님의 재산을 법대로 처리하는 데 3년은 걸릴 겁니다.”
“게다가 아시다시피 자신에게 지분이 있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일도 일이지만 공작님께서 지원하고 있던 모든 분야가 타격을….”
변호사들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무서운 이야기가 오고 갔다. 상속을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받지 않겠다는 걸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니. 몇 시간 후, 리엘라는 굳은 얼굴로 서류에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
리엘라는 식사를 마치고 1층에 있는 공작의 집무실로 갔다. 이미 도착한 변호사들이 반갑게 그녀를 맞이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어제 수도 안에 있는 재산에 대해서 말씀드렸었지요. 오늘은 서쪽 지방의 재산들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리엘라는 제 손에 들린 서류 뭉치를 보았다. 이게 서쪽 지방의 재산들이라니. 그럼 동쪽도, 북쪽도, 남쪽도 또 있다는 건가?
호슨 공작의 재산은 목록만으로도 수십 장이 넘었다.
그 재산 목록 하나하나마다 자세한 설명과 함께 리엘라가 어떻게 처리해 줬으면 좋겠다는 공작의 뜻이 적혀 있었기에 변호사들은 매일같이 저택으로 찾아와 리엘라에게 유언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을 듣는 것은 리엘라에게 꽤 힘든 일이었다. 알아듣기 힘든 전문적인 용어가 오고 갔다. 리엘라는 세상에서 제일 바보가 된 기분으로 몇 번이고 자신이 모르는 단어의 뜻에 대해서 물어봐야 했다.
다른 일이라면 적당히 아는 척을 하며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공작의 재산이었다. 무엇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었다.
하루 내내 변호사들의 설명을 듣고 나면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오늘도 그럴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설명이 끝났고 변호사들은 내일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으아….”
눈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었다. 계속 품어온 의문이 리엘라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공작님은 왜 나에게 모든 재산을 남기신 걸까.’
공작이 저를 꽤 아끼고 신경 써 주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저보다 더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공작은 그들에게도 애정을 갖고 있었을 텐데….
‘게다가 이건 원래 받을 사람이 있었다고 했잖아.’
그날 모였던 사람들이 저를 노려보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것은 모두 하운 대공의 것이 되었어야 했다고. 그러니 하운 대공이 돌아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하운 대공.
그 이름을 떠올리자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나라에서 호슨 공작만큼이나 유명한 보석술사가 아니던가. 왕의 하나뿐인 동생. 호슨 공작을 잇는 천재 보석술사. 레드 드래곤 플레노트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위대한 수호자.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카르디아의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이었다. 주말마다 리엘라의 집에 모여 수다를 떠는 또래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브릭스 거리의 구석 그늘에 앉아 체스를 두는 노인들 사이에서도, 길거리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아직 국왕 부부는 자식이 없었고 하운 대공은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다지만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는 그의 자식은 아니었다. 이런 아슬아슬한 관계가 사람들에게 많은 수다거리를 제공했다.
리엘라의 친구들은 신문의 정치란을 펼쳐 두고 국왕과 하운 대공 사이의 소문들과 귀족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또 하운 대공은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이야기했다. 모두들 술이 들어가면 누구 백작이 어떻게 할 것이라느니, 그러면 무슨 파는 어떻게 움직일 것이라느니 이야기하며 서로 자기 예측이 맞다 주장하면서 돈 내기를 했다. 걸린 돈은 대부분 리나의 가게에서 먹고 마시는 데 썼지만.
체스를 두는 노인들은 후사가 든든해야 하는데 왜 아직도 국왕 부부에게 아이가 없는 것이냐 탄식을 하며 이러다 하운 대공이 결혼을 하고 자식이 태어나면 더욱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냐 말했다. 그러면서 남자가 쓸데없이 눈이 높으면 결혼을 못 한다는 타박까지 함께 했다. 어차피 하운 대공이 들을 일은 없으니 상관없었지만.
아이들은 색을 칠한 돌멩이를 손에 쥐고는 “레드 드래곤 플레노트!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면 목숨은 살려 주겠다!”라고 외치다 “적에게 베풀 자비는 없다! 죽어라!”라며 조금 전에 한 말과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징벌의 오닉스, 폭우의 하우윈 같은 하운 대공이 갖고 있다는 보석의 이름과 그 힘을 외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덕분에 사람들은 그가 갖고 있는 보석의 종류와 힘을 외울 수 있었다. (아이들의 날에 제일 인기 좋은 선물이 보석도감이었으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입에 올리는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운 대공의 성격이었다.
‘엄청나게 무자비한 사람이라고 들었어.’
필요한 말 외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데다가 사람이라고 무척이나 차갑고 오만한 성격이라고 했다. 그 누구도 하운 대공의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신문에도 심심찮게 나오는 말이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전쟁터에를 돌아다닌 탓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슬리는 것은 모조리 죽인다고 했다.
그가 도시를 공격한 몬스터들을 토벌한 기사에서는 하운 대공이 압도적인 힘으로 몬스터들을 물리쳤으나 그 방법과 위력이 상상을 넘어 가끔은 그가 드래곤보다 두려울 때가 있다는 말도 있었다.
‘사람들을 싫어한다고도 했고.’
높은 지위, 무시무시한 힘 그리고 재력. 그쯤 되면 싫어도 주변에 사람이 많기 마련이건만 하운 대공은 그 누구와도 함께 있지 않았다.
신문의 사교란을 봐도 하운 대공이 사교 시즌에 활동을 한 일은 없었고 누구를 따로 만난다는 말도 없었다. 그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멀리한 덕분에 특별한 취향이 있다는 소문조차도 없었다. 대신 가까이 가면 죽여 버리기에 아무도 없다는 소문은 돌았다.
어쨌거나 리엘라는 그가 무척이나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하운 대공이 이제 저를 찾아온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공작님, 도대체 왜 그러신 거예요.’
리엘라는 하늘을 향해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유언장이 발표된 날, 리엘라는 사람들이 가고 나서 호슨 공작과 하운 대공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물어보았다. 그러자 변호사들은 두 사람이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약속했는지는 자신들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떠한 계약서도 없었으며 호슨 공작이 하운 대공에게는 따로 유언장을 준비해 두었다는 것뿐. 그러면서 리엘라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잖아요!’
하운 대공은 분명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공작의 재산이 어디 보통의 것인가. 돈의 액수는 0을 세다가 헷갈려 몇 번이고 다시 세야 하고, 재산 목록은 아직도 다 보지 못했다. 심지어 이 공작저 안에서도 아직 가지 못한 구역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것들을 받기로 했다가 눈앞에서 놓치면 누가 가만히 있을까.
리엘라는 몸을 떨며 제 목을 만졌다.
당장이라도 하운 대공이 나타나 제 목을 베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키도 엄청 크고 덩치도 크고 힘도 세다고 하던데. 보석을 쓰지 않아도 자신 같은 사람은 문제없이 해치울 것이다.
리엘라가 한숨을 푹푹 쉬고 있자 네아가 안쓰럽다는 듯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온실에라도 좀 다녀오실래요?”
“그럴게요. 살펴봐야 하는 것들도 있으니.”
네아의 제안에 리엘라는 힘없이 일어났다. 저택의 경비를 살펴본 후에 온실로 가겠다는 네아를 뒤로하고 리엘라는 혼자 터벅터벅 온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