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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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을 리엘라 테니어에게 상속한다.”
그 유언이 너무 충격이었던지라 유언장의 다른 내용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덜했다. 하지만 하나씩 보다 보면 이상한 것들이 있었다. 몇 년간 어느 영지의 구석에 있는 창고는 누구도 출입하지 말라거나 어느 지역에 있는 고대의 석상은 서쪽을 향해 쓰러트린 다음 땅에 묻으라거나.
그래도 거기까지는 다들 그러려니 했다. 보석술사들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듣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그들은 보석 외에도 세상에 돌아다니는 신기한 힘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나마 호슨 공작 정도면 얌전한 유언장이었다. 변호사들의 대표인 크레이튼은 “‘중앙 평원을 다 태우라’ 같은 유언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입니까.”라며 웃었다. 예전에 그런 유언을 남긴 보석술사가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장례식 절차에 대한 부분에서는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탐욕은 보석술사의 미덕이고, 그 탐욕이란 것은 종류를 가리지 않는 모든 욕심을 뜻한다. 즉, 명예욕이나 관심욕도 그 탐욕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보석술사의 장례식은 화려하고 성대하게 이루어진다. 제 재산 모두를 장례식에 써 달라 말한 보석술사들도 많았다.
하지만 호슨 공작은 간소하다 못해 아예 장례식이 없었다. 제가 언제나 데리고 다녔던 네아도, 모든 재산을 준 리엘라도 오지 못하게 했고, 그녀의 관은 묘지기들의 손에 조용히 묻혔다.
그리고 어떤 방문객도 그녀의 무덤 가까이 가지 못했다.
루시안은 리엘라의 대답을 듣고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듯이 잡아당기더니 힘겹게 말했다.
“만약 말입니다…. 혹시… 그러니까….”
“빨리 말하게.”
하운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루시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호슨 공작님이 살아 계시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러니까 보석의 방 안에 말입니다.”
“…….”
“…….”
루시안의 말에 방 안이 조용해졌다. 먼저 움직인 것은 네아였다. 그다음은 리엘라가, 그다음에는 하운이.
셋은 각각 루시안의 이마와 뺨 그리고 목에 손등을 대 보더니 중얼거렸다.
“열은 없는데….”
루시안은 억울함을 가득 담아 외쳤다.
“헛소리 아닙니다! 미친 것도 아니고요!”
루시안은 셋의 손을 잡았다.
“잘 됐습니다. 여기 있는 셋이 누구보다도 공작님을 잘 알 테니 당장 가서 확인해 봅시다!”
***
한 시간 후, 루시안은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모두와 함께 보석의 방으로 돌아온 다음 그는 긴장된 얼굴로 벽 너머를 향해 말을 걸었다. 하지만 벽 너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말을 걸어도, 소리를 쳐도 반응이 없자 주먹으로 벽을 두들겨 보았지만 역시나 건너편은 조용했다.
하르메아가 뚫어 놓은 구멍에 귀를 대고 있던 네아는 한참이나 진지한 얼굴로 집중하더니 곧 고개를 저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요?”
“아, 진짜 미치겠네! 진짜라니까!”
정말 억울한 듯이 루시안은 제 가슴을 쾅쾅 쳤다. 무슨 수를 써도 호슨 공작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으니까. 루시안은 어쩐지 제가 바람에 너풀거리는 천 조각을 보고 귀신이라 호들갑 떤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피곤한 것은 아니고? 잠은 충분히 잤나?”
팔짱을 낀 하운이 싸늘한 시선으로 자신을 훑자 루시안은 억울해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저는 루시안 님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리엘라는 그동안 그가 적었던 일지를 넘겨 보며 말했다. 하운만큼이나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였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무슨 소리가 들렸는지 정확히 기록된 서류를 넘기면서 리엘라는 소름이 돋았다.
확실히 루시안의 말대로였다. 소리가 들린 시각은 호슨 공작의 하루 일과와 거의 비슷한 시각이었던 것이다. 호슨 공작이 식사를 했던 시각에는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며, 호슨 공작이 산책을 하던 시각에는 걷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만약… 정말로 안에 계신다면 왜 이번에는 대답이 없는 걸까요?”
이곳으로 오자마자 한 것은 벽 너머의 존재에게 말을 걸어 본 것이다. 거기 누구 있어요? 아무 대답이나 해 주세요! 여러 번 불러 보았지만 벽 너머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주무신다거나?”
루시안은 그렇게 대답해 놓고서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네아가 무식한 힘으로 벽을 부술 것처럼 두드렸었다. 귀가 없는 게 아닌 이상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어쨌거나 답답한 일이다. 제가 불렀을 때는 그렇게 또렷한 목소리를 내었으면서 왜 모두가 있을 때는 조용하단 말인가.
그사이 리엘라는 루시안이 적었던 보고서를 다 읽고 제자리에 내려놓은 후 말했다.
“일단은 내일 아침에 다시 확인해 보는 게 어떨까요? 보니까 해가 진 이후로는 거의 소리가 안 들리고, 다시 날이 밝아야 들리는 것 같으니까요. 일단 전 루시안 님을 믿어요.”
“리엘라 양!”
루시안이 감격에 젖은 목소리를 내자 하운이 그를 노려보며 리엘라의 곁에 섰다. 네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자식, 이젠 대놓고 질투질이네.
네아는 손가락으로 벽을 만져 보았다. 루시안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그녀였다. 그녀는 있는 힘껏 주먹으로 벽을 후려치고 발로 걷어찼다. 그런다고 벽이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만큼 필사적이었다.
호슨 공작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보다 이렇게까지 하실 이유가 뭐지?’
호슨 공작이 이 벽 너머에 살아 있다고 가정해 보기도 전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녀가 이런 식으로 제 죽음을 꾸며야 할 이유는 없다. 벽을 노려보던 네아는 입을 열었다.
“만약, 내일 아침이 되어도 확인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에 있는 존재가 정말로 호슨 공작이라면? 반대로 호슨 공작이 아니라면?
호슨 공작이라면 쉬워진다. 그러면 도대체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 왜 이런 일을 하는 건지 물어보면 되니까. 하지만 네아는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저는 공작님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네아는 숨을 거두던 공작의 모습을 기억한다. 오직 자신만이 보았던 그녀의 모습. 가늘어지는 숨, 식어 가는 몸, 감기는 눈. 그리고 저를 보던 애틋한 눈빛.
호슨 공작에게 거둬진 이후로 몇 번 인간의 죽음을 보았었다. 다들 마지막을 맞이하는 모습은 달랐지만 긴 여행을 홀로 떠나는 자가 느끼는 고독함과 아쉬움 그리고 후련함은 같았다. 그것은 꾸며 낼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호슨 공작은 괴짜일지언정 사람들에게 이런 아픔을 주고 그것을 지켜볼 정도로 되먹지 못한 사람은 아니다.
“좋아, 어쨌든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군요.”
루시안은 의견이 갈리자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저 벽을 빨리 뚫어 버리거나….”
그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공작님의 무덤을 확인해 보든가.”
***
공작저 정원 한쪽의 숲속에서 하르메아는 툴툴거리며 벌렁 드러누워 있었다.
“다 미워. 나만 빼놓고.”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골이 난 듯 바둥거리는 모습은 친구들이 자신과 놀아 주지 않는다며 짜증을 부리는 미운 일곱 살 그 자체였다. 루시안이 저를 빼고 혼자 심각한 얼굴로 리엘라와 하운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눈앞에서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열어 달라고 두드렸더니 그저 잠시 기다리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래도 리엘라는 열어 주겠거니 하며 기다렸는데 안 열어 줬다!
그래서 하르메아는 잔뜩 화가 난 채 저택을 나왔다.
모습이 바뀌었을 뿐, 레어를 만드는 드래곤의 습성은 그대로다. 그렇기에 하르메아는 메아닌 산맥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작저의 숲에 나뭇가지로 제 둥지를 만들었다. 얼핏 보면 거대한 새의 둥지와 비슷한 형태였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크며 땅 위에 만들어졌다는 점이 다르지만. 어차피 드래곤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기에 땅 위에 짓는다 한들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하르메아는 작은 몸을 둥글게 말고 둥지 위에 누웠다. 굵은 나뭇가지가 그의 몸 아래에서 버석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공작저의 정원사들이 나뭇가지와 낙엽을 모아 두었기에 하르메아는 손쉽게 둥지를 지을 수 있었다. 그 둥지 사이사이에는 정원사나 리엘라 몰래 가져온 예쁜 꽃들도 있었다.
‘엘피안 꽃이라는 게 있다고 했는데.’
정원사들의 말을 들어 보니 온실 안에는 아주 귀하고 예쁜 꽃이 있었다고 한다. 하운이 리엘라에게 선물한 엘피안이라는 꽃이. 그런데 지금은 리엘라가 따로 돌보겠다고 어디론가 옮겼다고 했다.
‘맛있을 거야.’
하르메아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엎드렸다. 혼자 심통이 나서 멜다 부인이 먹으라고 만들어 두었던 것들을 안 가져 왔더니 배가 고팠다. 그래서 하르메아는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하운 맛있었는데.”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손만 질겅질겅 씹었는데 맛있는 냄새가 났다. 하르메아는 그와 비슷한 냄새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벨라리아 아인델 호슨.”
하르메아는 호슨 공작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레어에 나타난 인간 보석술사. 잡아먹으려다가 무지막지하게 얻어맞고 엉엉 울었던 날이 생각났다.
“이상한 인간이었단 말이야.”
드래곤은 죽지 않는다. 다만 수면기에 들어갈 정도로 얻어맞을 수는 있다. 그래서 자신을 강제로 수면기에 들게 만들 생각인가 했는데, 느닷없이 친구가 되자고 했다. 인간에 대해서 잘 모르는 하르메아도 때린 다음에 친구가 되는 건 이상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미친 인간인 건가?’ 싶어 슬금슬금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벨라리아는 보석을 휘두르며 ‘그래서 친구 할래? 말래?’라고 윽박질렀다.
어쩔 수 없이 친구 하겠다고 대답했더니 호슨 공작은 친구는 좋은 걸 나눠 쓰는 사이라 말하며 제 보석을 가져갔다.
“뺏어 가는 거 아니야. 저기 열매들처럼 심으면 주렁주렁 열린다니까? 친구니까 이런 거 해 주는 거야.”
“…진짜?”
보석을 내밀면서도 의심스러웠다. 이상하다. 지금까지 보석이 열매들처럼 자라나는 거 못 봤는데. 수상해하면서도 하르메아가 녹색 보석을 내밀자 호슨 공작은 그의 머리를 토닥토닥 쓸어 만졌다.
“헛된 걱정이면 좋겠지만… 그래도 너무 위험한 게 어린아이 손에 있으니 안전한 곳에 두는 게 좋겠지.”
그때는 어린아이라는 게 설마 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르메아의 입이 다시 튀어나왔다.
“벨라리아 나빠.”
보석을 가져가면서 호슨 공작은 말했었다. 다시 놀러 오겠다고. 그런데 벨라리아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이 직접 올 수밖에 없었다.
‘왜 가져간 걸까.’
벨라리아가 도둑놈이라는 걸 알고 처음에는 분노했는데 어딘가 이상했다. 자신처럼 죽지 않는 드래곤이라면 모를까, 죽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인간이면서 왜 보석을 가져간 걸까. 가져가서 사용하지도 않았다고 했는데.
“그래서 결국 내가 찾으러 와야 했잖아….”
드래곤이 레어에서 벗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하르메아는 큰마음을 먹고 메아닌 산맥을 벗어났다. 보석을 되찾아 오고 싶었다. 그리고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벨라리아….”
왜 죽었어? 왜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 왜 내 보석을 돌려주지 않은 거야?
하르메아는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묻었다. 벨라리아, 미워. 나빠. 보석만 찾으면 너 같은 인간은 잊어버릴 거야. 난 리엘라하고 놀 거야. 그러니까 내 레어에는 아주 늦게 돌아가야지.
이유 모를 슬픔과 서러움을 느끼며 어린 드래곤은 눈을 감았다.
자신보다 강한 인간이 있는 안전한 곳에서.
***
같은 시각, 메아닌 산맥을 기어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인간은 물론이고, 산세가 험하고 거친 탓에 날개를 가진 새들 말고는 쉽사리 접근하는 산짐승조차 없는 곳이었다. 얼핏 보면 네발로 기어가는 짐승의 모습이었다. 그때 구름 사이로 드러난 달빛이 그것의 위에 빛을 뿌렸다. 그것은 벌거벗은 인간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쉬익. 쉭.
하지만 입에서는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는 거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빠르게 절벽을 기어오르는 그것은 곧 제가 목표한 곳에 도달했다. 절벽 위 숲에 있는 거대한 나무 둥지. 이곳의 주인인 하르메아의 둥지였다.
그것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주변을 훑었다. 이곳에 있어야 할 그린 드래곤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둥지에는 온기 하나 없으며, 무성하게 자란 풀만이 보였다. 주인이 오래 자리를 비우고 있다는 증거였다.
캬아아아아악!
짜증스러운 괴성이 메아닌 산맥의 절벽을 때렸다. 그것은 미친 듯이 둥지 주변을 기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제가 원하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그것은 이를 갈았다. 드래곤이 레어를 떠나다니. 이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것은 조금 더 주변을 살펴보다 하르메아가 없음을 확인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어린 것이 어디를 갔지.”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늙은 고목이 비틀리며 나는 소리와 같았다. 그것은 분노했다.
뼈째로 씹어 먹을 생각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명력이 넘치는 것을. 그리고 그 드래곤이 갖고 있을 녹색의 보석도. 그것은 모든 것을 자라게 만들어 주니까.
그것은 가만히 있다가 몸을 비틀었다. 괴로운 소리와 함께 그것의 입에서 무엇인가가 튀어나왔다. 단단함을 그대로 가진, 푸른색의 두꺼운 비늘이었다. 얼마 전 그것이 먹은 생명체의 잔해이기도 했다.
“퉤!”
비늘을 내뱉은 그것은 하늘을 보았다. 아직까지는 제 움직임이, 행동이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 저를 쫓는 인간들이 없는 것이겠지.
“다른 것부터 먼저 먹어야겠군.”
그것은 몸을 일으켜 멀리 북쪽 하늘을 보았다. 그곳에 잠들어 있는 것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