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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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암….”
리엘라는 몇 번째인지 모를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것만으로도 저절로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리엘라는 주먹으로 뻐근한 목과 어깨를 두드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 그녀가 앉아 있던 테이블 위에는 산더미 같은 크리스털이 쌓여 있었다. 모두 무너진 잔해 안에서 나온 크리스털들이었다. 또한 호슨 공작의 기록이 들어 있던 크리스털이기도 했다.
이 중에는 힘을 다해 기록이 사라진 것들도 있었으며,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 그 정도는 일반인도 눈으로 보면 확인이 가능하기에 리엘라는 안에서 나온 크리스털들 중에서 기록이 사라진 것과 남아 있는 것들을 확인해 분류하는 일을 하는 중이었다.
‘평소라면 다른 사람들이 했겠지만….’
며칠 내내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바쁜 하운, 루시안, 네아, 하르메아를 생각하니 리엘라는 이런 일이라도 자신이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기록이 남은 크리스털을 모아 자루에 넣은 다음 리엘라는 그중에 몇 개 추려 놨던 크리스털을 작은 천 주머니에 넣었다. 이것은 카밀라를 위한 것들이었다. 어머니의 기록을 보고 싶어서 호슨 공작의 보석을 노렸던 카밀라.
“솔직히 조금 과한 집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다시 볼 수 없는 호슨 공작의 기록을 생각하니 카밀라의 마음이 이해되고도 남았다.
리엘라는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창가로 다가갔다. 정원 너머 숲의 끝에 밝게 빛나는 곳이 있었다.
“공작님 안 심심하시겠네.”
리엘라는 웃으며 창틀에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호슨 공작은 그녀가 원하던 장례식을 치른 다음 다시 관에 담겼다. 그리고 동료들이 묻혀 있는 무덤으로 돌아갔다. 묘지기가 몇 번이나 울며 무릎을 꿇고 정말 잘 모시겠다고 엎드려 비는 것을 말리느라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었다.
그리고 호슨 공작의 머리카락 일부는 단지에 담겨 지금 공작저 정원의 끝에 묻혔다. 그곳에는 과거 호슨 공작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조각가들이 힘내서 만든 큰 기념비가 있다. 사람들은 호슨 공작의 업적을 열 개로 정리한 그 기념비를 찾아와 꽃을 놓고 갔다.
묘지에는 호슨 공작 말고도 묻혀 있는 다른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되도록 정숙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에 웃으면서 그녀를 추억하고 싶은 사람들은 공작저를 찾았다.
리엘라는 곧바로 크레이튼을 찾아가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꽃과 음식과 술을 나눠 주고 싶다고 했다. 그들이 호슨 공작을 떠올릴 때마다 풍족함을 느끼기를 바랐으니까.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음에도 잘 쓰지 않은 탓에 리엘라가 쓸 수 있는 돈은 넘쳐 났다.
게다가 따로 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는 돈 역시 많았기에 앞으로 누구든지 호슨 공작의 기념비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무료로 빵과 와인 그리고 꽃을 받아 갈 수 있게 되었다.
한번은 리엘라가 아무도 모르게 슬쩍 기념비에 가 보았더니 몇몇 사람들은 공작저에서 주는 것들을 그냥 가져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이 더 챙겨 와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얹어 주곤 했다. 덕분에 호슨 공작의 기념비에 들렀다 가는 사람들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두 손 가득히 웃으며 돌아갔다.
리엘라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웃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될까?”
하운의 목소리에 리엘라는 일어나 문을 열었다.
“언제 돌아오셨어요?”
“조금 전에 왔어. 여기 앉아도 돼?”
리엘라가 어서 앉으라는 듯 소파 옆으로 물러서자 하운은 비틀거리며 걸어와 주저앉듯이 소파 위에 앉더니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거뭇해진 눈 아래가 왜 그러냐 묻지 않아도 답을 알려 주고 있었다.
‘제일 바쁘셨으니.’
그날 이후 모두가 바쁘긴 했지만 제일 바빴던 사람을 꼽으라면 다들 두말할 것 없이 하운을 가리켰다. 그도 그럴 것이 왕실의 일을 처리하면서 호슨 공작의 일도 함께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건물의 잔해 아래에서 나온 것은 호슨 공작과 크리스털뿐만이 아니었다. 특수하게 처리된 상자 안에는 여전히 블랙 드래곤의 기운이 느껴지는 보석들이 남아 있었고, 하운은 리엘라의 동의를 얻어 그것들 중에 파괴할 것과 남겨 둘 것을 골랐다. 물론 안전을 걱정한 탓에 어쩐지 대부분 파괴하는 것으로 넘어가 버린 것 같았지만 리엘라도 굳이 블랙 드래곤의 보석을 남겨 두고 싶진 않았다.
“…별일 없었어?”
잠시 눈을 감고 있던 하운이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질문에 리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제가 할 질문 같은데요. 별일 없으셨어요?”
“없… 있었어! 많이 있었어!”
습관적으로 없다고 말하려던 하운은 리엘라가 ‘없다고 하기만 해 봐.’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바르게 앉은 다음 제대로 대답했다.
하운은 왕궁에서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일단 셀비아스의 사체에 대한 추가 보고를 들었고, 레티시아로부터는 소르디아에 가서 해야 할 일을 들었다. 거기에다 왕궁에는 이번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보고를 해야 했고, 드래곤이 수도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생긴 소란에 대해서도 수습을 해야 했다. 또한 보석의 방 안에서 발견된 네이판타의 보석도 관리해야 했고….
지난 며칠간 자신이 했던 일을 떠올리던 하운은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내며 얼굴을 쓸어내리고 말았다. 살면서 이렇게 바쁜 적은 처음이었다. 그러다 그가 고개를 든 순간, 테이블 위에 있는 종이가 보였다. 마지막 방에 유언장인 척하며 호슨 공작이 남겨 놨던 종이.
그것을 바라보는 하운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하운 님?”
하운이 드래곤도 찔러 죽일 것 같은 눈빛을 띠자 리엘라가 놀라 그를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에 하운은 급히 표정을 정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날카로웠던 눈매가 쉽사리 누그러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자 리엘라가 그의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가늘고 긴 리엘라의 손가락이 날카로워진 하운의 눈매에 닿았다. 여전히 이런 접촉에 익숙하지 않은 하운은 제 눈가에 닿는 타인의 체온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덕분에 굳었던 얼굴이 펴졌고, 리엘라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손가락을 거뒀다. 그래서 하운은 고민해야 했다. 다시 표정 굳히면 또 만져 주나?
다행히 그가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전에 리엘라가 입을 열었다.
“이제 저 편지는 어떻게 할까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금고에 넣어 둘까 하는데요.”
“아, 이거….”
하운은 씁쓸한 표정으로 호슨 공작이 남긴 편지를 집었다. 다시 편지를 보는 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속았다.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스승이고 뭐고 살아 있었다면 멱살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 종이의 내용을 보며 그는 한숨 쉬었다.
빽빽하게 쓰인 글은 이 모든 일에 대한 설명이었다.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했는지 상세히 적힌 편지를 읽으며 하운은 몇 번이고 소리를 내지를 뻔한 것을 참아야 했다.
‘사람 좀 되라고?’
아니, 그럼 그 전에는 사람이 아니었나? 이미 죽은 사람에게 화를 낼 뻔한 하운은 이어지던 호슨 공작의 편지 내용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혼자서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그 자만심 좀 버렸길 바랍니다. 첫 번째 방 덕분에 적어도 협동 하는 법을 알았을 것이고, 두 번째 방을 열 때는 사람들에게 때론 머리를 숙여야 할 때도 있다는 걸 알았겠지요. 정말이지, 죽고 나서의 일도 이렇게 생각해 주는 스승이라니. 고마움을 알기나 할까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호슨 공작의 말대로 그녀가 남긴 보석의 방을 열면서 하운은 살면서 처음으로 남과 함께 싸워 보고, 부탁이란 것을 해 보았다. 그 점은 하운도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굳이 이런 식으로 알려 줬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하운의 입에서 탄식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이 일이 나만 위험한 게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다고!’
하운은 잔상처가 남은 리엘라의 손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물론 리엘라는 “이걸 상처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요?”라고 하긴 했지만 하운은 그녀의 손에 남은 긁힌 자국 하나를 볼 때마다 속이 끓어올랐다.
하운은 편지 옆에 있는 다른 종이에 시선을 돌렸다. 그 종이는 호슨 공작의 옆에서 발견된 종이였다. 거기에는 마지막까지 그녀와 함께 벽 안에 격리되었던 보석들의 종류와 무엇이 그녀를 흉내 낼 수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하운은 왕실 보석의 방 지하에 가져다 놓은 검은 보석을 떠올렸다.
금이 가 깨어진 보석. 사람만 한 크기였기에 파편이라고 해도 삽으로 퍼야 할 만큼 많은 양이었다. 하운은 루시안과 하르메아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이 보석이 호슨 공작의 외모와 능력, 기억까지 그대로 복제한 것도 모자라 자아까지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네이판타의 실험이 네아 하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검은 보석은 대상의 신체 일부를 먹으면 외모, 능력, 기억까지 동일하게 복제가 가능하다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건 절대 자연적으로 생긴 보석의 특성이 아닐 거라는 호슨 공작의 추측도 함께 적혀 있었다.
보석은 자신의 힘을 쓸 보석술사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
기껏해야 억지로 힘을 쓰려다 보석술사로서의 힘을 잃거나 쓰러지는 정도. 하지만 이 보석은 보석술사를 먹음으로써 힘을 쓰게 되다니, 지금껏 없는 특징이었다. 하운은 호슨 공작이 남긴 기록을 보았다. 그녀는 이 보석이 네이판타가 제 피로 실험을 해 얻은 결과물이 아닐까 여러 가지 증거들을 대며 추측하고 있었다.
‘복제의 헤마타이트라….’
호슨 공작은 그 보석을 복제의 헤마타이트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이 이름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 일은 없을 것이다. 아예 존재조차 모르게 비밀리에 파괴할 생각이니까. 어쩌면 이것은 맹약의 헬리오도르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 보석이다.
‘바로 소르디아로 가져갈 순 없겠어.’
욕망의 가넷 정도면 파괴할 거라는 사실이 외부로 흘러나가도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복제의 헤마타이트 같은 경우에는 다르다. 아무래도 소르디아로 가져가서 파괴하는 것이 아닌, 소르디아의 세공사들 중 솜씨가 좋고 입이 무거운 자를 비밀리에 카르디아로 데려와 파괴하도록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운은 제가 할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음을 깨닫고 더욱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때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네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계세요? 하르메아가 이제 돌아갈 거래요!”
하르메아.
그 이름에 리엘라와 하운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호슨 공작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가장 문제였던 것은 하르메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