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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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과 함께 세공소에 다녀온 날 밤, 리엘라는 귀가 아플 정도로 네아의 툴툴거림을 들어야 했다. 물론 네아답게 “아가씨는 아무런 잘못도 없어요, 저놈이 문제지.”라며 하운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은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를 잘 못 만나서! 라고 외치는 부모의 시선에 가까웠다.
이제 네아의 말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운은 리엘라와 함께 사 온 것들을 그녀의 방에 놓고는 그럼 푹 쉬라며 인사하고 떠났다.
사 온 것들 중에 맛있어 보이는 것만 골라 전부 줘도 네아의 기분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결국 앞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꼭 말하고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리엘라는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그 후로 네아는 더더욱 리엘라의 곁에 딱 달라붙어 하운을 경계했지만, 의미 없는 일이 되었다. 그다음 날부터 하운이 바빠졌기 때문이다.
카르디아 대사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더니 플라워 컷의 큰 방 하나를 빌려 사무실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운 역시 그 안에서 그들과 하루 종일 회의를 이어 나갔다.
좀 쉬라고 하고 싶긴 했지만, 이곳에 온 목적이 공무 때문임을 잊지 않았기에 리엘라는 자주 누얀과 네아에게 부탁해 회의실 안에 간식이나 마실 것을 보내 주는 것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내 생각보다 일이 더 복잡하구나.’
왕비가 따로 불러다 시킨 일이었으니 간단하게 끝날 건 아니라고 짐작하긴 했지만, 입찰 과정에서부터 우위를 선점한다는 것은 리엘라의 생각보다 더 복잡한 일이었다.
‘꽃 시장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크게 경쟁할 필요가 없으니까.’
꽃 시장의 경매는 값을 정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붉은 장미가 평소보다 높게 가격이 매겨진다고 해도 그것을 구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꼭 필요하면 돈을 더 주면 되니까. 하지만 아이디얼 컷의 경매는 그렇지 않다. 보석은 꽃과 달리 오직 하나뿐이다. 그러니 원하면 최고가를 불러야 한다.
‘게다가 다른 나라와의 관계도 신경 써야 하고….’
경매에 나오는 보석은 개인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운처럼 한 나라를 대표해서 오는 사람들이 구하기도 한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에 각 나라는 자신들이 최대한 머리를 써서 자신들에게 제일 필요한 보석을 가장 싸게 구해야 한다.
원하는 보석을 원하는 가격에 손에 넣으려면 일부러 다른 나라에 거짓 정보를 흘리기도 한다고 들었다.
‘복잡하네.’
리엘라는 네아와 누얀이 그려 준 이번 경매의 대립 예상도를 보았다. 하운이 나서는 카르디아는 물론이고, 다른 왕국들과 소르디아의 많은 보석상들의 이름이 보였다.
“일단 에르첼라의 보석이 제일 문제인데….”
리엘라는 제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만졌다. 잠시 풀어 뒀더니 밥 달라는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며 상자 안에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오늘은 아침부터 걸고 있어야 했던 목걸이였다.
‘이 목걸이가 있으면 진짜 보석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고 했지.’
지금도 이렇게 난리인데 헤어졌던 다른 보석을 만나면 날아다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이런 리엘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와 붙어 있는 것으로 만족한 목걸이는 잠이라도 든 듯 지금은 조용한 상태였다.
리엘라가 목걸이를 만지며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마침 들어온 네아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심심하시면 밖으로 구경 가실래요?”
“나가도 되나요?”
안전을 문제로 안 된다고 할 것 같아서 아예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네아가 먼저 권유해 오자 리엘라의 눈이 커졌다.
“물론이죠.”
마침 뒤따라 들어온 누얀이 웃으며 설명했다.
“소르디아의 치안은 대륙 전체에서 제일 좋은 편이에요. 카르디아 수도 못지않게 안전한 곳이랍니다. 강력한 자치권을 갖고 있는 도시 국가의 장점이라고 할까요.”
그녀의 말에 의하면 소르디아가 관리해야 할 영토는 도시 하나 정도의 수준인데, 오가는 돈은 카르디아급이기에 언제나 세금이 넉넉하게 걷히고, 그만큼 도시에 다시 투자를 한다고 했다.
나가도 문제없다는 말을 들은 리엘라는 냉큼 나갈 채비를 마쳤다. 이번에는 네아뿐만이 아니라 누얀도 동행했다.
“아무래도 소르디아를 잘 아는 사람이 함께 가는 게 길을 찾기에도 편하실 거예요.”
누얀의 말대로 소르디아의 길은 오래된 만큼 무척이나 좁고 복잡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리엘라는 누얀과 함께하는 것의 새로운 장점을 알게 되었다.
“누, 누얀이다!”
“북해의 미친개!”
누얀의 얼굴을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리엘라는 무척이나 쾌적하게 좁은 길을 지나갈 수 있었다. 편하긴 한데 미친개라니? 리엘라가 설명을 바라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누얀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여자란 사연 있는 과거 하나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지요.”
“…….”
그 사연이라는 게 어쩐지 피가 튀는 과거인 것 같았기에 리엘라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그 후로 얼마나 더 걸었을까. 네아와 누얀이 갑자기 멈춰 서더니 서로를 쳐다보았다.
“네아 씨가 가실래요? 제가 갈까요?”
“이번에는 누얀 씨에게 양보할게요. 오랜만에 와서 구경하고 싶은 게 많다 보니.”
“그렇군요. 그럼 잠시만 여기서 아가씨와 기다리세요.”
갑자기 무슨 말을 하나 싶어서 리엘라가 갸웃하는 사이 누얀이 순식간에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리엘라가 따라가려고 하자 네아는 걱정하지 말라며, 여기저기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예쁜 거 구경이나 하자며 리엘라의 손을 잡아끌었다. 물건들 구경하랴 갑자기 사라진 누얀을 걱정하랴 리엘라의 눈이 빙빙 돌아가고 있을 때, 누얀이 돌아왔다.
“오래 걸려서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빠른 녀석이더라구요.”
“아니, 그보다 주먹에 피가….”
“어머, 닦는다고 닦았는데…. 죄송해요. 못 볼 걸 보여 드렸네요. 호호호.”
“…….”
정말 소르디아의 치안은 괜찮은 것인가. 아니, 그보다 누얀은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 건가.
“감시하는 사람이 붙어서 치워 두고 왔을 뿐이랍니다.”
“치워… 그 사람 살아 있긴 하죠?”
“그럼요. 걸어서 돌아갈 수는 있을 거예요. 다리는 공격하지 않았으니까요.”
다리 빼고 다른 곳은 다 공격했다는 소리였다.
“감시하는 사람이라니요?”
“아마도 라자르 컷의 네멘테스가 보낸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필요 이상으로 충성심이 강하더라구요.”
그 말에 리엘라는 세공소 앞에서 만났던 네멘테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얼핏 보아서는 하운과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다. 하지만 금색의 머리카락에 짙은 색의 피부를 가진 그는 하운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녔다. 온갖 호화스러운 것으로 몸을 감싼 것은 둘째 치고, 주변의 호위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인 모습은 그야말로 귀한 집의 도련님이란 느낌이랄까.
“네멘테스는 꽤 사랑받는 가주니까요.”
“그래요?”
자신과 하운을 대하던 태도를 생각하면 입이라도 몇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는데 사랑받는 가주라니. 사람은 다면적이라는 말을 상기하며 리엘라는 주머니 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빽빽하게 적힌 목록에 누얀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게 뭔가요, 아가씨?”
“제 친구 중에 리나라는 애가 있는데, 이번에 제가 소르디아에 간다고 하니까 대신 좀 사 오라고 적어 준 물품 목록이에요.”
리엘라는 몇 번이나 접어야 하는 종이의 길이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처음 이 종이를 받았을 때 하도 어이가 없어서 너의 양심은 대체 어디다 둔 거냐고 흘겨보았더니 리나는 우리 우정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거냐며 우는 척을 했다. 그런데 정말 다시 봐도 양심 없는 길이였다.
“제가 좀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누얀은 리엘라가 건네준 종이를 받아 들고 위에서부터 훑어보더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대단하네요.”
“그렇죠? 양심 없죠?”
“아니, 그게 아니라… 친구분께서 저보다 소르디아에 대해서 더 잘 아시는 것 같아서요.”
“네?”
“지금 여기에 적힌 가게들 전부 현재 소르디아에서 제일 잘나가고 있는 곳들이에요. 사 오라고 적어 둔 물건들도 전부 그 가게에서 가장 유명한 것들이구요. 여기 있는 곳들을 다 돌면 소르디아 관광은 더 할 필요 없겠는걸요? 제가 모르는 곳들도 있네요.”
“…….”
감탄하는 누얀의 말을 들으며 리엘라는 몸을 떨었다.
리나, 너… 내 친구지만 정말 무섭다….
***
아침부터 시작된 쇼핑은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끝났다. 그래 봤자 목록에 있는 가게 절반도 돌지 못했지만, 어느새 세 사람의 손에는 종이 가방이 가득 들려 있었다. 네아나 누얀이나 힘이 좋아서 이 정도의 짐을 들고 다니는 데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좁은 길을 걸어갈 때는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결국 잠시 쉬는 사이에 누얀이 짐들을 먼저 플라워 컷으로 보내기로 했다.
소르디아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강 옆의 카페에 자리 잡은 다음 누얀이 짐을 챙겨 나간 사이 네아와 리엘라는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누얀이 돌아왔을 때, 테이블 위에는 예쁜 디저트와 함께 여러 가지 과일이 잔뜩 올라간 시원한 주스가 놓였다.
“하….”
시원하게 한 모금 마신 리엘라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 소리가 나왔다. 누얀의 말대로 리나가 적어 준 목록은 ‘소르디아 유망 가게 정복!’ 수준의 리스트였다.
‘지금까지 돌아본 곳들만 봐도 충분히 다 본 거 아닐까.’
시원한 주스를 다시 한 모금 마시던 리엘라는 고개를 돌려 강가를 바라보았다. 소르디아 곳곳을 굽이쳐 흐르는 강의 옆에는 시민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산책로가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산책로의 옆에는 이동이 가능한 바퀴 달린 나무 가판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뭘 팔고 있는지는 몰라도 길을 걷는 사람들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리엘라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던 누얀이 설명했다.
“보석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랍니다.”
“그건 상점에서 판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보통은 그렇죠. 하지만 곧 아이디얼 컷에서 주최하는 경매가 시작되잖아요? 그때는 아이디얼 컷뿐만 아니라 사설 경매장들도 전부 열려요. 보석이나 원석 거래는 원래 허가된 가게에서만 거래할 수 있는데, 아이디얼 컷 경매 전후로 소규모의 광부들이나 개인 소유자들이 임시 허가를 받고 저렇게 좌판에서 자신들이 가져온 보석이나 원석을 거래한답니다. 크게 가치 있는 보석들은 아니지만 그만큼 가격이 싸기 때문에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보석술사나 취미 삼아 보석을 수집하는 일반인들의 거래가 많아요. 물론 아주 가끔 운이 좋으면 싼값에 엄청난 보석을 손에 넣을 수도 있지요.”
누얀의 설명에 리엘라는 저 가판대에 대한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마치 주말에 열리는 벼룩시장과 비슷해서 우연히 헐값에 산 보석이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들. 그래서 소르디아에 놀러 온 사람들은 행운을 기대하며 종종 원석을 구입한다고 했다.
리엘라가 관심을 보이는 사이 가까이에 있던 가판대의 주인이 장사를 준비하기 위해 가판대 위로 자루 안에 있던 것을 부었다.
와르르 쏟아진 것은 아이들의 주먹만 한 돌멩이들이었다. 가판대의 주인은 가져온 종이에 쓱쓱 글씨를 쓰더니 돌멩이 위에 올려 두었다.
행운의 오팔 뽑기. 1개에 5길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