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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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조금 전 이네나가 분수대 안에 넣어 둔 꽃다발이 보였다.
“어?”
꽃 시장에서 시들어 버려진 채로 있었던 꽃다발이다. 너무나 시들시들해서 누얀도 정말 가져가겠냐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그래서 플라워 컷으로 돌아가자마자 재빨리 물 올림을 해 주고 시원한 곳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지금은 마치 화원에서 막 잘라 온 꽃처럼 싱싱한 상태였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거….”
이파리까지 싱싱하게 되살아난 꽃잎에 반짝이는 빛이 머물러 있었다. 오늘 하루 내내 꽃 시장을 돌며 애타게 찾으려 했던 그 빛이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와, 신기하네요. 분명 조금 전까지 시들시들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되살아나지?”
이네나는 가까이 다가와 꽃다발을 살피더니 분수대의 물을 의심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분수대 물에 영양제 같은 거라도 들어갔나?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네나가 중얼거리는 동안 리엘라 역시 분수대를 살폈다. 관리가 잘되어 있는 깨끗한 분수대였다. 이네나가 이곳으로 끌고 오면서 분수대의 물은 먹어도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물에 들어가 있을 것이….
“…….”
분수대를 바라보던 리엘라의 시선이 제 손을 향했다. 배어 나오던 피를 씻어 낸 덕분에 손가락의 베인 상처가 잘 보였다. 이 분수대에 들어가 있을 것이라면 아마도 제 피 정도일 것이다. 리엘라가 생각에 잠긴 사이 이네나는 분수대를 짚었던 손을 털었다.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이네나의 눈에는 시들었던 꽃이 빠르게 생기를 되찾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신기하긴 하지만 오래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어, 으응.”
리엘라는 꽃다발과 이네나를 번갈아 보다 더듬거리며 인사를 했고, 이네나는 재빨리 공원을 나가 버렸다. 혼자 남은 리엘라는 쿵쿵거리는 가슴을 눌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몇 번이고 다시 바라보아도 분명 꽃다발의 꽃에는 빛이 어려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빛나는 꽃이 이렇게 빨리 생겨날 수는 없다. 호슨 공작에게 주었던 화분과 하운에게 받았던 엘피안 꽃도 빛이 생겨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리엘라는 떨리는 손으로 꽃다발을 집어 든 다음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것을 품에 안았다.
왜? 어떻게?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리엘라의 눈에 공원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은 소르디아다. 대륙에서 가장 보석이 많은 곳. 그렇기에 많은 보석술사들이 모이는 곳.
그 사실을 깨닫자 리엘라는 걸치고 있던 얇은 겉옷을 미친 듯이 벗어 꽃다발을 감쌌다. 만약 누군가 이걸 보게 된다면.
리엘라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누얀을 기다리지 못한 채 플라워 컷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공원에서 플라워 컷의 꼭대기가 보였기에 리엘라는 헤매지 않고 곧바로 플라워 컷으로 달려올 수 있었다. 정신없이 뛰는 바람에 몇 번이나 사람들과 부딪혔고, 제대로 보고 다니라는 욕설이 들려왔지만, 그것에 신경 쓸 정신은 없었다.
누얀은 어찌하고 혼자 돌아왔냐며 걱정스레 묻는 하인들을 뒤로한 채, 리엘라는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 소리치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몇 번이고 문이 제대로 잠겼나 확인한 리엘라는 품에 안고 있었던 꽃다발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들고 오는 사이 부딪히며 상한 것일까. 감싸고 있던 겉옷을 풀자 꽃잎과 이파리가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리엘라는 허겁지겁 마저 옷을 풀어낸 다음 꽃다발을 살폈다. 여기저기 짓이겨진 탓일까. 분수대에서 보았던 싱싱함은 사라진 채 꽃다발은 엉망이 되어 시들어 있었다. 도저히 쓰지 못할 것들을 빼내고 나니 빛이 남아 있는 꽃은 한 송이뿐이었다. 그것도 꽃잎이 짓이겨져 빛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그 모습에 리엘라는 제가 보았던 것이 자신의 착각이었나 싶었다. 하지만 분명 이네나도 보지 않았던가. 신기하다며 바라보던 이네나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리엘라는 몇 번이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제 뺨을 살짝 때렸다.
“정신 차리자.”
이 꼴이 되도록 품 안에 숨겨 들고 왔으니 다른 사람이 이것을 알아봤을 리는 없었다. 분명 호슨 공작이나 하운. 루시안 정도 되는 보석술사들만이 빛을 알아보지 않았던가. 아무리 이곳이 소르디아라 하더라도 그만한 실력의 보석술사들이 널려 있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신경 써야 할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리엘라는 방을 둘러보다 창가에 놓여 있던 꽃병을 가져와 안에 있던 꽃들을 꺼냈다. 그다음 엉망이 된 꽃다발 사이에서 혼자 남은 빛나는 꽃을 그 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제 손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다 아물지 못한 상처가 보였다. 리엘라는 그 상처를 보고 결심했다는 듯 입술을 꽉 문 다음 반대쪽 엄지손가락으로 상처의 밑부분을 꾹 눌렀다. 그러자 상처가 벌어지며 다시 붉은 피가 방울방울 배어 나왔다. 피가 손톱을 타고 흘러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리엘라는 재빨리 제 손을 꽃병 위로 가져갔다.
통. 통.
핏방울이 꽃병 안에 있던 물 위로 떨어져 어지러운 무늬를 그리다 사라졌다. 맑았던 병 안의 물에 색이 배어들었다. 몇 방울 피를 떨어트린 다음 리엘라는 근처에 있던 손수건으로 손가락을 감싼 다음 꽃병에 넣어 둔 꽃을 바라보았다.
“하아….”
잠시 시간이 흐르고 꽃을 바라보고 있던 리엘라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나도 참,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내 피가 꽃에 영향을 미치다니.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
그 순간, 축 늘어져 있던 꽃병의 꽃이 갑자기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반쯤 떨어져 나갔던 이파리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부러졌던 줄기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사라져 가던 빛은 마치 램프를 켠 듯 환하게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있잖아?”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리엘라는 눈을 비볐다. 그리고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떴다. 나중에는 제 볼을 꼬집어 보기까지 했다. 지금 이 상황은 분명 꿈이 아니었다.
“아, 안 돼! 이거 아니야!”
리엘라의 뜻 모를 외침 따위 자신이 알 바 아니라는 듯, 그사이에도 꽃은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던 리엘라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닐 수도 있어. 다른 꽃으로 한 번 더 시험을 해 봐야….”
리엘라는 근처에 있던 다른 꽃병을 가져왔다. 그러고는 꽃잎이 완전히 다 떨어지고 꽃술도 짓눌린,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꽃을 꽂았다. 그다음 손수건으로 감쌌던 손가락을 꽃병 안에 넣고 휘휘 저었다. 다시 피가 물 안에 퍼졌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넣어 둔 꽃에 빠르게 새 꽃잎이 자라났다. 그리고 그것 역시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맙소사….”
리엘라는 제 입을 틀어막은 채 꽃병들을 바라보았다.
이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분명히 제 피가 빛나는 꽃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예전이라면 방방 뛰면서 좋아했을 것이다. 그때는 이 빛이 제 눈에만 보이는 것이라 생각했으며, 꽃이 좀 더 싱싱하고 예쁜 것 외에는 별다른 능력이 있는 것이라 여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이 꽃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제 머리가 댕강 잘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미쳤어! 아니야!”
리엘라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피를 보는 방법이 그것만 있는 게 아닌데 왜 재수 없게 그런 모습부터 떠오르는 건지. 앞으로는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소설책은 절대 읽지 않겠다 다짐하며 리엘라는 다른 모습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무엇을 생각하든 간에 상상의 끝은 좋지 못했다. 리엘라는 침대 위에 있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벌벌 떨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
***
네아가 플라워 컷으로 돌아왔을 때, 누얀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현관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네아는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갔다.
“누얀 씨, 무슨 일 있었어요?”
누얀이 이런 모습이라면 분명 리엘라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네아가 나타나자 누얀은 잘되었다는 듯 그녀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천을 구하는 데 시간이 걸렸는데 그사이에 사라지셨더라고요. 다행히 플라워 컷에 먼저 돌아오신 것을 알고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여쭤봤지만, 별일 없다고 말씀하시고서는 다시 방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나오지 않으세요. 게다가 문도 단단히 걸어 잠그셨고요. 어디 다치신 것 같지는 않았는데 뭐랄까…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알겠어요. 제가 가 볼게요.”
네아는 맡겨 달라는 듯 가슴을 쾅쾅 쳤다. 그때 마침 돌아온 하운이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는 누얀과 네아를 번갈아 보더니 물었다.
“리엘라에게 무슨 일 있나? 아니, 있군.”
“…….”
네아는 제가 미처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기민하게 알아차린 하운을 질렸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뼈다귀 찾아내는 강아지도 아니고… 미친놈….”
“다 들린다.”
“들으라고 한 소리다.”
네아와 하운은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에 누얀은 웃으면서 이만 자신은 가 보겠다고 말하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누얀이 가고 나서도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먼저 네아가 몸을 돌렸다.
“됐어, 카지 놈의 수하들 따라다니며 살펴본 것만으로도 피곤한데 너 상대하며 기분 잡치고 싶지 않으니까.”
네아가 몸을 돌려 리엘라의 방으로 향하자 하운 역시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카지가 무슨 짓을 하고 있지?”
“말도 마. 그 새끼 진짜 개쓰레기… 아오, 말하기도 전에 다시 빡치네.”
정말로 짜증이 치미는지 네아는 거친 소리를 내뱉으며 제가 본 카지의 악행들을 말했다.
“아주 소르디아 세공소 골목을 다 뒤집어 놨어. 네멘테스를 지지하는 쪽 세공소는 일단 자금줄부터 잡고 흔들고, 가족들이 밤길에 습격을 당하고… 물론 그런 짓을 한 놈들은 걷어찬 다음에 묶어서 강에 던져뒀지만.”
네아는 계속해서 제가 처리한 것들을 말했다. 듣고 있던 하운의 표정이 점점 굳었다. 카지는 온 힘을 다해 네멘테스 쪽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버티던 사람들도 가족들은 물론 제 목숨까지 위협받자 하나둘씩 돌아서고 있었다.
한참이나 이를 갈며 말하던 네아는 하운을 보았다.
“나는 그렇다 치고 넌 뭘 하는데 그렇게 바쁘냐?”
“사라진 오팔 쪽의 일을 알아보고 있었다.”
“추적의 보석 힘 못 쓸 텐데?”
“…카르디아 대사관에 요청해 도움 될 만한 다른 보석들을 동원 중이다.”
그 말에 네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하운을 보았다.
“별일이네. 너 말이야… 평소라면 아가씨가 이런 일에 못 끼어들게 했을 텐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네가 더 나선다? 이유가 뭐야? 네놈이 그냥 이럴 리는 없고… 분명 뭔가 얻는 게 있을 것 같은데….”
눈을 가늘게 뜨고 하운을 흘기던 네아가 갑자기 질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으악! 뭐야. 이 자식. 왜 기분 나쁘게 얼굴을 붉히고 난리야!”
네아의 말에 하운은 손등으로 얼굴을 쓸더니 버럭 소리쳤다.
“너야말로 무슨 상관이지? 시킨 일이나 제대로 하도록.”
“이게 어디다 대고 명령이야? 내가 왜 네가 시키는 일을 하냐?”
네아가 하운을 향해 삿대질을 하자 하운은 기분 나쁘다는 듯 네아의 손을 후려쳤다. 파바박! 허공에서 두 사람의 손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부딪혔다. 한참 후, 네아는 하운의 머리카락을 쥐었으며 하운은 네아의 목을 쥐었다.
씨근덕거리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때 하운이 말했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리엘라가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절대 이런 일에 관여하지 않도록 할 거다. 그러니…!”
두 사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을 때 문이 열리더니 리엘라가 고개를 내밀었다.
“둘 다 밖에서 뭐 해요?”
리엘라의 목소리에 하운과 네아는 재빨리 서로를 잡고 있던 손을 풀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 별거 아니에요. 아가씨. 하운 놈 머리카락에 뭐가 묻어 있길래요.”
“네아 옷 위에 뭐가 묻었더군.”
“…….”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리엘라는 쓴웃음을 짓더니 두 사람에게 어서 들어오라 손짓했다. 하운과 네아가 방으로 들어서자 리엘라는 재빨리 문을 닫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에게 할 말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