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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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는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하운이 여기에 와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분명 밤늦게나 되어야 돌아온다고 했던 하운이다. 하지만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벌써 돌아오다니?
“빨리 오면 안 돼?”
하운은 울고 있던 리엘라의 얼굴을 제 손으로 닦아 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일찍 돌아오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싫다는 게 아니라….”
리엘라는 다시 몸을 돌려 주방의 테이블 위를 바라보았다. 울어 버린 탓에 조금 부옇게 흐려진 시야에 아직 완성되려면 먼 디저트가 보였다.
“덜 만들었단 말이에요.”
“그럼 같이 만들면 되잖아.”
하운은 눈물까지 닦아 주면서도 리엘라가 왜 울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면 그녀가 더 울기 시작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다만 갖고 있던 손수건으로 조심스레 눈가를 훔쳐 주었을 뿐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밤늦게 왔을 것이다. 사실 그가 맡은 일은 끝이란 것이 없었다. 점검을 하고, 확인을 하고, 다시 검토를 하고. 여러 번 할수록 확실하고 좋은 일들이었기에 지금까지 하운은 출발하는 날 새벽까지도 그 일을 하고 또 하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꼼꼼하게 한번 확인을 한 다음 곧바로 레이안에게 찾아가 이만 돌아가겠다, 내일 새벽에 일찍 돌아오겠다 말했다. 레이안은 알겠다며 어서 가 보라는 듯 손짓하고는 하운에게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하운이 돌아간 다음 다른 대신들을 불러 혹시 모를 상황에 한 번 더 점검하라고 했을 뿐.
하운이 돌아가 버린 것을 안 대신들이 그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레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드디어 문제가 사라진 거지. 그리고 그동안 하운이 그대들을 대신해서 일 많이 했잖아. 그러니 군말 없이 어서 움직이도록.”
“불평한 적은 없습니다만….”
확실히 그동안 하운이 했던 업무의 양이 살인적이었기에 대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러갔다.
궁을 나온 하운은 그대로 미친 듯이 말을 몰아 파르멜 저택으로 향했다. 이제 왕궁에서 저택으로 향하는 길이 익숙했다. 언제나 가운데 창문을 열어 놓는 건물도, 몇몇의 낚시꾼이 앉아 시간을 보내는 호수도, 파르멜 영지의 시작을 알리는 큰 바위도, 리엘라와 함께 올라갔던 언덕도.
저택에 도착한 그는 잽싸게 말에서 내렸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집사가 공손히 인사를 하며 그를 맞이했다.
“전해 들었던 것보다 일찍 돌아오셨군요.”
“그렇게 되었어. 리엘라는?”
“와 계십니다. 지금 주방에서 뭔가 만들고 계시는 듯하더군요.”
곧바로 주방으로 갈까 하던 하운은 며칠간 일에 시달린 데다가 정신없이 달려온 탓에 엉망이 된 제 꼴을 알아차렸다. 아무리 날이 시원해졌다고 해도 땀을 안 흘리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말 냄새도 좀 배인 것 같고.
곧바로 욕실로 가려던 하운은 다시 발걸음을 멈추고 집사를 불렀다.
“집사, 저기….”
“무슨 일이십니까?”
하운이답지 않게 머뭇거리며 자신을 부르는 모습에 집사는 무슨 큰일이라도 있나 싶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운에게 다가갔다.
“어, 음. 오늘 저녁은 다들 그냥 편하게 쉬어도 좋네. 수도의 집에 다녀올 사람들은 다녀와도 좋고….”
더듬거리며 하운이 하는 말에 집사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재빠르게 눈치챘다. 떠나기 전날인 오늘은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시선 없이 둘이서 오붓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집사는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조금 전에 주방장하고 이야기했더니 저녁 식사의 준비는 거의 끝마친 모양입니다만 아무래도 내기 전에는 조리를 해야 하는지라, 드시기 조금 더 편하게 준비를 해 두겠습니다. 바로 오븐에 넣기만 하면 될 수 있도록요. 그리고 저와 하녀장은 별채에 머물 터이니 혹시나 필요한 일이 있으면 찾아 주십시오. 따로 부름이 있을 때까지는 나오지 않겠습니다.”
“…고맙네.”
하운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그가 원하는 것만 완벽하게 말해 주는 집사를 감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재빨리 위로 올라갔다가 씻고 주방으로 들어왔는데, 가만히 서 있는 리엘라를 본 것이었다.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울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리엘라가 눈물을 닦자 하운은 그녀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살펴보았다. 밀가루에 버터에 계란, 설탕 그리고 여러 가지 향신료들까지.
‘디저트인가.’
하지만 디저트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향신료들이 보였다. 하운은 리엘라를 달래고선 바쁘게 움직였다. 호슨 공작이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 보석의 방과 다른 문제들로 공작저에 살면서 하운도 몇 번이나 주방에서 일을 도왔다. 물론 그가 도와야 할 정도로 바쁜 것은 아니었지만 툭하면 네아가 “밥벌레!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면서 구박하는 데다가 멜다 부인의 옆에서 디저트를 배우는 리엘라를 좀 더 보고 싶어 따라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디저트를 만드는 기초를 대강 눈에 익히게 되었다. 지금 테이블 위에 남아 있는 재료들을 보니 아무래도 완성까지는 한참 남은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잘 된 일이지만.’
그 만큼 더 리엘라와 함께 움직일 테니까.
그사이 오븐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리엘라가 오븐을 열기 위해 두꺼운 장갑을 끼려 하자 하운은 그녀를 말리며 그가 대신 장갑을 끼고 오븐을 열었다.
열자마자 버터가 구워지는 고소한 냄새가 확 밀려왔다. 철판을 빼 내어 테이블 위에 올리자 바삭하게 구워진 크럼블이 가득했다.
“이거 이대로 식히면 돼?”
“잘게 부숴서 섞고 한 번 더 구워 내야 해요.”
리엘라는 재빨리 남은 눈물을 닦아 낸 다음 밝게 대답했다. 내일 아침이면 하운은 떠난다. 그 전까지 그저 울고만 있기는 싫었다. 그것은 자신에게도 하운에게도 행복한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 밝은 목소리는 잠시 후 조금 다르게 변했다.
“더 빠르게! 힘주어서 팍팍 휘저어야 해요!”
“아니, 그건 부드럽게 밀어 주시고요. 멜다 부인이 여기서는 특별히 조심하라고 적어 주셨잖아요!”
“우유를 먼저 붓고 그 위에 가루를 부으면 안 돼요! 날리기도 쉽고 반죽도 힘들다구요!”
…리엘라는 그의 생각보다 엄격한 요리 선생님이었다.
***
한참이나 두 사람이 디저트를 만들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저택은 석양에 물들어 갔다. 하운 덕분에 갑작스런 유급 휴가를 받게 된 하인들은 신이 난 얼굴로 마차를 타고 수도로 돌아갔으며 그들을 배웅한 집사와 하녀장, 주방장은 하운과 리엘라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남은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긴 여름의 해가 산을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 두 사람은 후원과 연결된 선룸의 테이블 위에 음식을 가득 차릴 수 있었다.
부드러운 스테이크와 육즙으로 만든 소스와 그릴에 구운 야채는 하운이 조금 실수를 한 탓에 살짝 탄 자국이 남았다. 그 외에도 갓 구워 낸 빵과 근처 마을에서 구입한 신선한 버터, 주방장이 따로 준비해 둔 차가운 생선 요리에, 후원에서 가져온 채소로 만든 샐러드와 시원한 음료수, 공작저에서 가져다 둔 와인까지. 무엇 하나 모자랄 것 없는 풍족한 상이 차려졌다.
몸을 움직인 탓에 어느새 배가 고팠던 것일까. 하운과 리엘라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시중을 들어 줄 하인이 없는 탓에 하나씩 먹는 게 아니라 한 번에 테이블 위에 가득히 차려 두고 먹어야 했지만 두 사람에게 그런 것은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리엘라는 제가 좋아하는 차가운 생선 요리를 그녀의 앞에 놓아주는 하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래?”
“그냥, 이 모든 게 신기해서요.”
“신기하다니?”
“1년 전만 하더라도 제가 이렇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리엘라는 1년 전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브릭스 거리에서 꽃집을 하는 평범한 여자.
아침에 일찍 꽃 시장을 다녀와서 가게를 열고, 리나가 가져다주는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떨고, 가끔은 속 썩이는 손님을 상대하거나 단골손님들에게 꽃을 챙겨주면서 하루를 보내고, 조부모와 함께 살았던 집으로 돌아가 혼자 차를 마시며 화분을 가꾸다 잠드는 그런 하루를 보냈었다.
그랬던 자신이 호슨 공작과 만나고, 네아와 만나고 공작의 상속인이 되어 대륙 최고의 부자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었다. 그뿐인가. 보석의 방을 열면서 온갖 보석들을 만나고, 왕궁에도 들어갔다가, 심지어 연회에도 참석했고, 이웃나라의 공주님과 신경전을 펼쳤다가 국보를 목에 걸어 보기도 했다. 게다가 그저 사람을 다 잡아먹는 줄만 알았던 드래곤과 같이 놀러 다니기도 하고.
그 많은 일이 일어나는 사이 신문에서나 보던 하운 대공은 어느새 그녀의 연인이 되어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제 인생을 다 합친 것보다 지난 1년간 일어난 사건이 몇 배는 더 많을 것이다. 그러면 힘들 법도 했건만 지나고 생각하니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물론 힘들고 슬펐던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다시 과거로 돌아가 선택을 하라면 리엘라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겪었던 이 1년을 선택할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하운 역시 자신의 상황이 신기했다. 1년 전의 그는 전쟁터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군인이었다. 가끔 보고를 위해 수도를 다녀오는 것을 빼면 새벽에 일어나 플레노트의 레어를 살피고, 근처 지역을 시찰하고, 가끔 나오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다가, 밤이 되면 천막 안의 간이침대에 몸을 뉘이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런 자신이 지금은 평생 다시 올 리 없다고 생각한 저택을 수리해서 그곳에 앉아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전혀 접점이 없던 두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호슨 공작 때문에 얽히기 시작했고 지금은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하운은 그를 보고 생글생글 웃는 리엘라의 모습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호슨 공작이 없었다면….’
자신과 리엘라는 평생 만나지 못했을까? 만나더라도 하루에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처럼 서로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갔을까?
하운은 갑자기 창세 신화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늘에서 떨어진 빛은 꽃이 되었고 보석이 되었다. 결국은 하나였던 것. 그러니까….
“…언젠가는 만나지 않았을까.”
그래서 분명, 이런 평온한 시간을 함께하지 않았을까.
***
같은 시각, 아일리는 모든 원망을 담아 레이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엄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전하, 설마 저를 부르신 이유가….”
“뭐긴 뭐겠어. 동생들 연애에 윗사람들은 눈치 있게 빠져 주자는 뜻이지. 그보다 편히 들어. 좋은 와인이니까 얼마든지 마셔도 돼.”
레이안은 와인 잔을 들어 아일리에게 눈을 찡긋 감았다. 그런 레이안의 옆에서는 이런 일은 별것 아니라는 듯 레티시아가 평온한 표정으로 스테이크를 잘랐다.
“어쩐지 특별한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급하게 부르는 거 같더라니….”
아일리가 투덜거리자 레이안은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하루 정도는 어떤 방해도 안 받고 편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단 말이야.”
오늘이 제 동생에게 있어 행복한 기억의 마지막이 됨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야 했다. 레이안은 씁쓸한 표정으로 잔에 와인을 따랐다.
오늘 밤은 모두에게 좋은 기억만이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