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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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만나지 못한 사이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쌓였던 것일까, 리엘라와 하운의 저녁 식사는 평소보다 늦게 끝났다. 사실 둘 사이의 대화에 대단한 내용은 없었다.
“그때 소르디아에서 리나에게 사다 준 오팔 뽑기 있잖아요, 거기서 진짜 오팔이 나왔대요. 보석상에 가서 감정을 받았더니 적어도 300길더의 가치는 있을 거라고…. 걘 내 친구지만 진짜 그런 쪽으로는 엄청나게 운이 좋다니까요? 다음번에 다시 뽑기 같은 거 할 일 있으면 리나한테 뽑아 달라고 해야지.”
정작 자신이 뽑은 것은 땅에 널리고 널린 크리스털뿐이라 부럽다고 했더니 리나가 리엘라의 뺨을 잡아 늘이며 “호슨 공작님의 유산을 받은 자가 지금 나에게 뭐라는 거야?”라고 했다는 것도 말했다.
하운은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듣더니 되물었다.
“크리스털이 나와서 실망했어?”
“아니요! 크리스털이 나온 덕분에 그날의 기억도 기록할 수 있어 좋았…. 어, 흠. 으흠. 어휴, 왜 목이 마르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 리엘라가 헛기침을 하며 급하게 물을 마시는 척을 하자 하운은 조용히 모른 척을 해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기억이 뭐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러면 리엘라가 잽싸게 식사를 끝내고 도망가 버릴 것 같았으니까.
긴 식사가 끝나고 드디어 마지막 순서인 디저트를 먹을 때가 되었다. 하운이 리엘라와 함께 만든 것을 가져와 여러 조각으로 자른 다음 그중에 가장 큰 것을 리엘라에게 주었다. 그러자 리엘라는 잽싸게 제 접시와 하운의 접시를 바꾸었다.
“너무 커요. 이걸 어떻게 다 먹어요?”
“그게 큰가?”
하운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접시 위의 디저트를 바라보다 포크를 들었다. 리엘라가 너무 커서 다 먹지 못하겠다고 한 조각은 하운의 포크질 네 번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리엘라는 묘기를 보는 기분으로 하운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먹은 게 아니라 마신 건가? 아니, 그보다 식사가 모자랐나? 그럴 리가 없다. 주방장이 거의 네 사람분의 스테이크를 준비해 놓고 간 데다가 야채도 산더미처럼 구웠다. 게다가 그걸 남김없이 전부 다 먹었고. 그런데도 하운은 이것이 첫 식사인 사람처럼 맹렬하게 디저트를 해치워 나갔다.
리엘라는 제 것도 하운에게 줄까 하다 이내 그가 부스러기 하나도 아깝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시선에 왜 그가 이렇게 열심히 디저트를 먹었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같이 만들었으니까.’
지금까지 수많은 식사를 같이했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함께 만들어서 나눠 먹은 적은 처음이었다. 리엘라는 제 몫으로 받은 것을 입에 넣었다. 하운을 생각하면서 그의 입맛에 맞춘 것은 신기하게도 그녀의 입에도 맞았다.
“그런데 이건 처음 먹어 보는 거네. 멜다 부인의 새로운 작품이야?”
“이건….”
자신이 이것을 만들게 된 이유를 설명하려던 리엘라는 생각을 바꾸었다. 멀리 떠나는 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만드는 것. 리엘라는 멀리 떠난다는 그 말이 싫었다.
“…책을 보다 보니 맛있을 것 같아서 특별히 부탁드렸어요.”
적당히 얼버무린 리엘라는 접시 위에서 큰 조각 하나를 들어 다시 하운의 접시 위에 올렸다. 하운은 기쁜 얼굴로 다시 포크를 든 손을 움직였다.
두 사람이 열심히 먹어 치운 디저트는 어느새 한 조각만이 남았다. 좀 전만 해도 바삐 움직였던 두 사람의 손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마지막 조각을 먹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러면 같이 만들어 먹은 이 시간도 사라지는 것 같아서.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차마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두 사람은 마지막 한 조각을 깨끗한 접시에 덜어 천으로 곱게 덮었다.
식사만큼이나 천천히 설거지를 끝낸 다음 하운이 그릇을 정리하고 있을 때, 리엘라는 잔뜩 먹어 부른 배를 통통 두드렸다. 이야기하면서 먹다 보니 아무래도 평소보다 배는 먹은 것 같았다.
“산책이라도 할까?”
어느새 정리를 끝낸 하운이 다가와 제안하자 리엘라는 곧바로 그의 손을 잡았다. 어서 가자는 뜻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파르멜 저택의 밤은 아름다웠다. 꽃이 가득 피어난 정원에는 보석의 힘을 빌린 등의 불빛이 은은하게 내렸다.
지난 몇 주간 함께 꾸몄던 곳이다. 조경을 담당하는 업체의 사람들은 집요하리만큼 꼼꼼하게 하운의 의사를 물어보며 조언을 했고, 덕분에 하운은 정원 전체를 무척이나 잘 기억할 수 있게 됐다. 저 나무가 어떤 나무이며, 얼마짜리인지. 어느 농원에서 가져왔는지. 리엘라가 얼마나 좋아하는 건지.
그러다 두 사람은 멜라니아가 가져다준 하르메아 모양의 조형물 앞에 멈춰 섰다.
아무리 누르려 해도 본성은 어쩔 수 없었는지 멜라니아는 “붉은색! 붉은색이 최고야! 피를 철철 흘리는 드래곤의 형상은 어때?”라고 제안하다 클로에의 손에 등을 야무지게 맞았다. 그렇게 맞고도 붉은색에 대한 집착은 여전해 하르메아의 혀 부분이 잎이 붉은 나무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리엘라는 한숨을 쉬었다.
“하르메아는 혀도 녹색인데… 하르메아가 나중에 이걸 보면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
“누가 그 녀석을 여기 들인다고. 어차피 못 보니까 괜찮아.”
언젠가 이 조형물을 하르메아에게 보여 줄 생각을 하는 리엘라의 말에 하운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그놈이 여길 왜 와?
여전히 하르메아를 경계하는 하운의 모습에 리엘라는 쿡쿡 웃으면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정원이다. 1년 중, 특별한 계절만이 아닌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기에 이곳은 가을이 찾아와도, 겨울이 찾아와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을 종종 상상하곤 했다. 그때는 하운과 함께 방 안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작 이곳의 주인인 하운이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니.
“…….”
다시금 리엘라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리엘라는 아일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너 대공이랑 연애하면 울 일이 좀 많을 건데….”
이미 초반부터 울면서 시작한 연애라 눈물은 흘릴 만큼 흘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또 맺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아직 한참이나 더 울어야 할 모양이다.
훌쩍이는 모습을 보이는 게 싫어 리엘라는 하운보다 앞서 걸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두 사람은 저택을 돌아 후원의 온실에 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온실로 다가가려던 리엘라가 걸음을 멈추더니 눈을 깜빡였다.
“어? 뭔가가 빛나는데요?”
그런데 그 빛이 어쩐지 리엘라에게 익숙했다. 온실 안에 둔 화분 사이에 가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저 빛은 크기도 색도 어쩐지 꼭….
“엘피안 꽃!”
리엘라는 비명처럼 외치며 온실로 달렸다.
저것이 왜 여기 있지? 분명히 하운이 보석의 방에 놓는 것을 봤는데?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야? 설마 누가 여기다 둔 건가? 하지만 보석의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하운과 자신뿐인데?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사이 리엘라는 헉헉 숨을 몰아쉬며 온실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역시나, 온실의 가운데 선반에 활짝 피어 빛나고 있는 엘피안 꽃이 있었다.
“이게 왜 여기 있어!”
리엘라는 엘피안 꽃을 번쩍 들었다. 이렇게 훤히 밖에 놔둘 수는 없었다. 어서 빨리 안에 숨겨 둬야….
“괜찮아, 리엘라! 내가 가져다 둔 거야!”
재빨리 그녀를 뒤따라온 하운이 혼이 나간 리엘라의 손에서 화분을 받아 들어 다시 선반 위에 올려 두었다.
“보석의 방은 볕이 그렇게 잘 드는 편이 아닌 데다가 아무래도 바깥보다는 환기도 잘 안 되는 탓에 빛나는 꽃임에도 불구하고 좀 시들시들해진 것 같았어. 그래서 아까 도착했을 때 주방으로 가기 전 이걸 여기다 옮겨 놓고 갔었거든.”
“하지만 위험하잖아요!”
사실 엘피안 꽃인 것만으로도 위험하다.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꽃이 아니던가. 워낙에 비싼 것들이 가득한 공작저 안에 있어서 그러려니 했던 것이지 만약 다른 자가 낙찰받았다면 이것만으로도 전시회를 열었을 것이다. 불안한 마음에 리엘라가 다시 화분을 들어 올리려고 할 때, 하운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여긴 괜찮아.”
갑자기 진지해진 하운의 목소리에 리엘라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공작저에서 했던 일이 생각났다. 호슨 공작이 만들었던 공간에 들어가려 하면서 보석의 힘을 발동시키다가 그녀에게 헤어지자는 소리를 듣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니 그때 온실에 방어막을 설치한다는 말을 했었다.
“설마….”
“응, 공작저에 있던 것과 비슷한 힘을 가지긴 했는데….”
하운은 온실의 유리 벽을 손등으로 툭툭 쳤다.
“훨씬 더 튼튼하게 만들었어. 왕궁의 보호 결계보다 여기가 더 튼튼할 거야. 드래곤도 이 온실만큼은 못 뚫을걸?”
하운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가 왕궁에 오래 머물렀던 이유는 출정을 대비한 것도 있었지만 왕실 보석의 방에서 몇 가지 보석을 얻어 내기 위함도 있었다. 그는 오래전 왕궁을 지키느라 힘을 다해 보석의 방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보석들을 받아 냈다.
왕실에서는 없어져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들이기에 별문제 없이 하운에게 그것들을 대여해 주었다.
당장이라도 공작저로 달려가 리엘라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하운은 그 보석들에게 엘피안 꽃잎을 먹였다.
리엘라가 정성으로 길러 낸, 환하게 피어난 빛의 꽃. 그 잎을 먹은 보석들은 순식간에 힘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더욱 강한 힘을 갖게 되었다.
하운은 그 보석들을 아낌없이 모조리 온실에 배치했다. 과거 호슨 공작이 그에게 설계를 맡겼었기에 다시 배치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사이 하운은 더 많은 지식을 쌓았기에 예전에 계산했던 것보다 더욱 정교하게 보석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배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완성된 것이 어제 새벽이었다. 그는 시험 삼아 징벌의 오닉스를 꺼내 이 온실을 공격해 보았다. 드래곤도 때려잡는 보석의 힘이거늘, 온실 속 화분들은 이파리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리엘라, 만약에 무슨 일이 있으면 이 안으로 피해.”
“…….”
“이 온실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전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자신 넘치는 하운의 말에 리엘라는 그가 조금 원망스러워졌다.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있는데 이렇게 울고 싶게 만들다니. 이건 정말 너무한 것 아닌가.
그가 얼마나 바쁜지는 잘 알고 있다. 북부 전선으로 향하는 선발대의 지휘관으로서 앞으로의 전쟁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니 얼마나 정신이 없었겠는가. 눈코 뜰 새 없이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어 이런 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리엘라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바보. 이런 걸 만들 시간에 좀 더 눈이나 붙이기를 바랐는데.’
며칠간의 강행군으로 조금 수척해진 하운의 얼굴을 보면서 리엘라는 결국 뚝뚝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오래… 걸린다고 들었어요.”
울음에 잠긴 목이 갈라진 소리를 내었다.
“…그래도 추워지기 전에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리엘라의 말에 하운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팔을 뻗었다. 하운의 넓은 품 안에 리엘라가 훌쩍이며 안겼다. 리엘라는 사실 온실보다는 지금 이 순간, 그의 품이 제일 안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참이나 리엘라를 안고 토닥이던 하운이 입을 열었다.
“걱정해 주는 거야?”
부드러운 목소리였건만 리엘라는 어쩐지 약이 올랐다. 자신은 이렇게 울면서 매달리는데 하운은 어쩐지 좋아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리엘라는 부루퉁한 목소리로 내뱉고 말았다.
“아니요. 걱정 안 해요. 어차피 이번에도 이기고 올 텐데 제가 왜 걱정해요? 걱정은 하운 님이 해야죠.”
“…내가? 왜?”
“그거야 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면….”
리엘라는 눈물에 젖은 눈으로 고개를 들어 하운을 쏘아보며 말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 버릴지도 모르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하운이 그대로 굳어 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리엘라를 끌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을 뿐 하운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그럴 수 없을걸.”
게다가 지금껏 들어 보지 못했던 웃음 섞인 자신만만한 목소리까지. 처음 보는 하운의 모습에 리엘라의 본능이 위험을 감지한 순간, 그가 한 손으로 리엘라의 턱을 붙잡은 채 천천히 얼굴을 내렸다.
입술이 겹쳐졌다. 그리고 리엘라는 그를 맛보았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하운은 한참 후에 제 입술을 떼면서 속삭였다.
“다른 사람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게 만들 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