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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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는… 없습니다.”
왕실 기사단장은 제 손의 떨림을 숨기기 위해 힘주어 주먹을 쥐었다. 지난 수십 년간 검을 휘두르면서 온갖 참혹함을 다 보아 왔던 그였다. 하지만 그런 기사단장도 지금 파르멜 저택의 참상에는 쉬이 진정할 수가 없었다.
기사단장은 고개를 들어 하운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왕궁과 북부 전선이 연결되었을 때 하운은 북부 전선의 상황에 대하여 보고한 다음 조금 망설이더니 개인적으로 부탁할 것이 있다고 했다. 주변에 다른 이들을 물리고 대신 한 명이 남아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그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레이디 리엘라가 왕궁에 머물 수 있도록 손써 주길 부탁하네.”
하운의 말에 하운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왕궁에서 일했던 대신은 허허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해합니다. 많이 보고 싶으시겠지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하운이 급하게 이런저런 변명을 대면서 리엘라는 카르디아가 안전을 확보해야 할 주요 인물이라 설명했지만 대신은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손을 쓱쓱 움직여 종이에 뭔가를 적었다. 그 종이는 영상 연결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레이안에게 전해졌다. 레이안은 제 손의 종이를 보면서 혀를 찼다.
하운 대공께서 연인을 무척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모셔 오겠습니다.
“이 녀석이 진짜….”
병이 깊다 툴툴거리면서도 레이안은 어서 빨리 리엘라 테니어를 데려와 다음 영상 연결 때 하운이 볼 수 있도록 앉혀 놓으라 명령했다. 사정을 아는 몇몇이 웃으면서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움직이려 할 때 왕궁에 비보가 전해졌다.
“공작저의 하녀가… 왕실에서 파견한 보석술사를 죽이고 도주했다고?”
소식을 전달받은 레이안은 잠시 멍한 얼굴이 되더니 급히 레티시아를 찾았다. 잠시 후 도착한 레티시아는 레이안이 말하기도 전에 외쳤다.
“그것이 결국!”
곧바로 왕궁 기사단의 정예로 이루어진 자들이 공작저를 향해 달려갔다. 그들은 엄중한 왕과 왕비의 명령을 기억했다.
네아. 공작저의 하녀. 보는 즉시 제거 할 것.
국왕 부부가 그토록 싸늘한 얼굴로 명령을 내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미친 듯이 달려 그들이 공작저에서 마주한 것은 목과 손이 갈가리 찢긴 여자의 시체와 잘린 목이 나뭇가지에 꽂혀 있는 시체들이었다.
찢긴 여자의 시체는 실라라는 왕실의 보석술사이며, 목이 나무에 걸린 시체들은 왕실에서 공작저에 파견한 보석술사들임을 알게 되었다. 집사가 의식 불명으로 누워 있는 탓에 멜다라는 나이 지긋한 노부인이 집사를 대신해서 왕실 기사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네아가 며칠 전부터 이상하긴 했어요. 하지만… 이런 끔찍한 짓을 할 아이가 아닌데….”
멜다 부인은 네아가 저지른 참상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보다 오열했다. 몇 가지를 더 물어본 기사단은 곧바로 네아를 추격했다. 추격은 어렵지 않았다. 네아는 보란 듯이 흔적을 남겼으니까.
네아의 흔적이 파르멜 저택으로 이어지는 것을 알았을 때 기사단장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오는 길에 리엘라 테니어가 탄 마차가 그곳으로 향했다는 것을 들었다. 그렇다면 설마….
“서둘러라!”
그들은 미친 듯이 파르멜 저택으로 내달렸다. 기사단이 파르멜 저택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큰 저택에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기사단의 소리에 놀란 까마귀 몇 마리가 현관에서 무엇인가를 쪼아 먹다가 긴 날개를 퍼덕이며 저택 위로 날아올랐다.
“맙소사….”
저택 앞으로 간 기사단은 새로 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흰 벽에 가득 튀어 있는 핏자국을 보았다. 그리고 그 밑에 쓰러져 있는 사람도.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숨이 끊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저택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더욱 끔찍한 광경을 마주해야 했다.
“신이시여….”
인간의 머리가 쌓여 있는 테이블과 그 옆에 굴러다니는 머리가 없는 시체들을. 피와 장기, 오물로 범벅이 된 방에서는 참기 어려운 악취가 풍겼다.
“우욱!”
결국 버티다 못한 젊은 기사들이 토악질을 했다. 망연자실한 기사단장 또한 비틀거리면서도 힘겹게 손을 뻗어 쌓여 있는 머리를 하나씩 내려놓았다. 피에 젖은 머리들을 확인하던 그가 중얼거렸다.
“…없어.”
기사단장은 리엘라의 생김새를 알고 있었다. 지금 그가 확인한 사람 머리의 더미에서 리엘라 테니어의 머리는 없었다.
“단장님! 여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후원을 확인하던 기사들이 그를 불렀다. 그는 급히 후원으로 달려갔다.
“저기… 저런 것이….”
“…….”
활짝 열린 온실의 문, 그리고 그 앞에 나뒹굴고 있는 검은 긴 손톱과 비늘이 붙어 있는 짐승의 손. 기사단장은 근처에 떨어져 있는 겉옷을 집었다. 공작저의 문장과 리엘라라는 이름이 금색의 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당장….”
그는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내어 명령했다.
“…왕실에 레이디 리엘라 테니어가 행방불명이라 전달하라.”
그리고 하루가 지난 지금, 하운이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하운은 몸을 숙여 온실 앞에 떨어져 있는 손목을 보았다. 그에게는 기억에 있는 것이었다. 처음 네아를 잡으러 갔을 때 이 손에 죽을 뻔했었으니까. 토막 나 있는 손가락, 손목, 팔. 그리고 고여 있는 검은 피. 활짝 열린 온실의 문.
“어째서….”
온실은 여기저기 긁힌 흔적이 있긴 했지만 어디 깨진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가 걸어 두고 간 보석의 힘에 문제는 없었다. 온실 안의 땅은 밖과 달리 팬 곳 하나 없는 것도 보였다. 그러니 분명 네아는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아는 리엘라를 데리고 사라졌다.
하운은 고개를 숙이고 땅에 남은 자국을 살폈다. 바닥에 쓰러졌던 것일까. 네아의 손톱자국이 길게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고통에 몸부림친 자국이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이어지는 리엘라의 발자국. 하운이 그것을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옆으로 다가와 발자국을 보더니 말했다.
“이 자리에서 리엘라를 들었군요. 왼쪽 발이 조금 더 파여 있으니 그쪽 어깨에 짊어진 모양입니다. 하긴 오른팔이 날아갔으니 그쪽에 들어야겠지만요. 보폭이 일정한 것으로 보아 리엘라도 크게 반항하지 않았군요. 이미 기절한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분노와 참담함을 담은 목소리는 아일리의 것이었다. 그녀는 제 동생이 납치당한 흔적을 꼼꼼히 살폈다. 한참 동안 리엘라의 흔적을 살피던 아일리는 온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보석의 힘에 막혀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있는 힘껏 힘을 실어 온실을 걷어찼다. 쾅! 소리는 컸으나 유리로 만들어진 온실의 벽에는 금 하나 가지 않았다. 아일리는 그 광경을 노려보다 하운에게 말했다.
“…네아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건….”
“기밀이네 뭐네 했다가는 걷어차 버릴 테니 제대로 대답해! 나는 리엘라의 언니고, 내 동생을 잡아간 괴물에 대해 알 권리가 있어!”
아일리의 목소리가 점점 분노로 떨렸다.
“너희들도 모른다는 뻔뻔한 소리를 하진 않겠지! 네이판타가 나타나고 나서 네아에게 공작저 밖으로 나가지 말라 명령한 건 왕실이었어! 왕실에서 보낸 두 명의 보석술사들 역시 네아를 관찰하고 있었지! 나라고 해서 네아에 대해서 알아보지 않았을 것 같아?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떤 기록도 없었어. 그리고 예전부터 왕궁에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것도 알았고. 그 말은 레티시아 왕비가 두려워하며 꺼려 하는 존재라는 거야! 너희들은 이미 네아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고!”
이제 대공이고 뭐고 아일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하운의 멱살을 붙잡고 그를 노려보았다. 제 동생의 옆에 이런 괴물을 붙여 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자들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
하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일리의 시선을 마주했다. 아일리의 분노는 정당했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아일리의 귀에는 그저 변명으로만 들릴 것이다. 아니, 변명이 맞다. 네아가 리엘라의 옆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묵인과 방임 때문이지 않은가.
하운이 말이 없자 아일리는 하운의 멱살을 쥐었던 손을 거칠게 놓았다. 평소와 달리 하운의 몸은 크게 비틀거렸다. 물러선 걸음이 그를 온실 안으로 이끌었다. 그때 그의 눈에 다른 화분 뒤에 숨기듯 놓여 있는 화분이 보였다.
도대체 언제 피었을까. 분명 다시 피기까지 한참이 걸릴 거라던 엘피안 꽃 하나가 활짝 피어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저는 모른다는 듯이 밝게 빛나며.
하운은 멍한 얼굴로 손을 뻗었다. 화분의 옆에 먼지와 눈물이 섞여 있는 손자국이 나 있었다. 분명 리엘라의 것이었다. 그는 엘피안 꽃이 리엘라라도 되는 듯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아무런 글씨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하운은 이 꽃이 리엘라가 자신에게 남겨 놓은 편지임을 알 수 있었다. 스스로 이 온실을 걸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리엘라는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어쩌면 그 순간이 삶의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르는데….
하운이 비틀거리며 화분을 들고나오자 아일리는 다시 하운의 멱살을 붙잡고 물었다.
“당신은 알고 있지? 네아가 어디로 리엘라를 데려갔는지.”
하운은 바닥에 남은 네아의 발자국을 보았다.
그것은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38. 네이판타
“윽….”
어둠에 잠겼던 의식이 다시 떠오른 순간, 리엘라는 신음 소리를 흘렸다. 잠시 자신이 누구인지, 이곳이 어디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리엘라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느껴지는 것은 오직 아픔뿐이었다.
몸의 감각은 아주 느리게 하나씩 돌아왔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몸을 짓누르는 고통과 추위였다. 잠시 후에는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무엇인가 썩고 있는 것 같은 고약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한참이나 웅크린 채 가만히 있던 리엘라는 힘겹게 눈을 떴다.
“…….”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리엘라는 캄캄한 어둠 속에 있었다. 그래서 리엘라는 손을 들어 제 눈을 만져 보기 전까지 자신이 정말로 눈을 뜨고 있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아파….”
얼굴을 더듬느라 들어 올린 팔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여기가 어디일까. 손바닥 아래 느껴지는 차가운 땅을 더듬으며 리엘라는 제 안에 남아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보았다.
네아의 몸에 네이판타가 들어왔고, 네아를 죽이려 들었다. 그래서 온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다음 정신을 잃었다. 그 후에 몇 번 정신을 차렸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긁었을 때, 차가운 물에 들어갔을 때, 높은 절벽에서 떨어질 때….
리엘라는 점점 괴로워하는 네아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네아의 어깨 위에서 그저 흔들리고 있는 자신도 힘든데, 한쪽 팔이 잘려 나가고 목에 상처를 입은 상태로 그녀를 들쳐 메고 쉬지 않고 달렸으니 아무리 강한 네아라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네아….”
리엘라는 어둠을 더듬었다. 마른 목에서 갈라지고 지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아, 여기 있어요?”
그 순간 리엘라의 손에 아주 차가운 것이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