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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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맺혀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아니다, 그럴 리 없어. 네아판타가 설마….
리엘라가 필사적으로 제 생각을 부정하는 사이 네이판타는 아직 사람의 형태로 남아 있던 네아의 손목을 손톱으로 베었다. 날카로운 것이 가죽을 찢고 살을 베며 뼈를 갈랐다.
툭. 온실의 앞에 사람의 손목이 떨어져 굴렀다.
“으… 읍….”
리엘라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 댈 것만 같았다. 바닥에 떨어지는 손은 잠시 후 그 모습이 바뀌었다. 언제나 희던 네아의 손은 점차 검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길고 뾰족하게 변하며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났다. 그 기괴한 광경을 리엘라는 숨도 쉬지 못한 채 바라보았다.
‘이건 꿈이야.’
그래야만 한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이 끔찍한 광경이 결코 현실이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잘린 손목, 떨어지는 검은 피, 초점이 없는 네아의 눈동자, 기괴하게 비틀린 입.
[이 정도로는 너를 움직이기에 모자란 모양이구나.]리엘라가 덜덜 떨며 잘린 손목을 바라본 채 가만히 있자 네이판타는 아쉽다는 듯 말하더니 이번에는 손톱을 팔꿈치에 대었다.
[그러니 좀 더 잘라 내어 보마.]서걱. 망설임 없이 손톱이 움직였고 떨어진 손목 옆에는 하녀 복과 함께 잘린 팔이 나뒹굴었다.
“아… 으….”
그 모습을 눈을 떼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는 리엘라의 입에서는 울음이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네이판타는 더욱 입꼬리를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이것은 나와 인간을 섞어 만들어 낸 것. 이것으로 많은 실험을 해 보려 했으나 그때 호슨이 나를 쓰러트렸지. 그 탓에 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할 수 있겠군.]“뭐, 뭘 하려고….”
[드래곤과 달리 한계가 있는 몸이니… 어느 정도의 손상을 입어야 숨이 끊어지는지 너도 궁금하지 않느냐?]네이판타는 낄낄 웃더니 다시 손톱을 들어 이번에는 어깨에 가져다 대었다.
“하지 마….”
리엘라가 중얼거리자 네이판타는 웃으면서 천천히 손톱을 어깨에 박아 넣었다.
“하지 마!”
더 큰 웃음소리와 함께 네이판타는 손톱을 움직였다. 다시 툭, 어깨까지 잘린 팔이 땅 위로 떨어졌다. 드래곤과 섞였기 때문일까. 네아의 잘린 어깨에서는 인간과 달리 붉은 피가 떨어지지 않았다. 뼈와 근육이 그대로 드러난 절단면에는 찐득해 보이는 검은 액체가 툭툭 떨어질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리엘라는 오래전 네아와 함께 물건을 사러 나갔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은 검은색이 싫다고 했던 그 말이.
서 있던 네이판타가 휘청거렸다.
[역시, 타격은 있군.]그럴 것이었다. 네이판타가 정신을 지배해 누르고 있다 해도 안에 있는 네아의 의식 자체는 지금의 모든 상황을 느끼고 있었다. 손가락을 자를 때도, 손목을 자를 때도 네이판타는 제 안에서 네아가 지르는 비명을 들었다. 네이판타는 어깨에서 떨어져 바닥에 고인 검고 끈적거리는 피를 보았다. 생각보다 자신의 특성을 꽤 갖고 있는 부스러기였다.
네이판타는 네아의 기억에서 호슨 공작이 이것에게 맹약의 헬리오도르를 사용한 것을 보았다. 그 아름답고 귀하며 강한 보석을 이것에게 사용하다니. 네이판타는 컥컥거리는 소리를 내며 제 안에 들어 있던 것을 토해 냈다. 광채가 완전히 사라진 탁한 노란색의 보석이 바닥에 떨어졌다. 호슨 공작의 죽음과 함께 그 힘이 다한 맹약의 헬리오도르였다.
이 멍청한 생물은 그것마저도 인간들이 말하는 추억인 모양인지 소중히 제 안에 품고 있었던 것 같았다.
네이판타는 온실 안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리엘라는 입구까지 기어 와 있었다.
온실 전체에서는 강한 보석의 힘이 느껴졌다. 드래곤의 본체가 여기에 있으면 모를까, 드래고니안의 몸으로는 결코 부술 수 없는 강한 결계였다.
어떻게든 저 인간을 데려가야만 한다. 그러니 한 걸음만. 딱 한 걸음만이라도 나오면….
리엘라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네이판타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네이판타는 호기심이 많은 드래곤이라 배웠었다. 그 호기심이라는 것이 아주 끔찍하고 잔혹한 것에 한정된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때 갑자기 네이판타가 휘청거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래, 이것이 애원하면 조금 마음이 달라질까. 너희 인간들은 다른 것들의 고통에 약하니 말이다.]“……!”
네이판타의 목소리에 놀란 리엘라가 바라보자 쓰러져 있는 몸의 눈에 점점 초점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눈이 빛을 되찾는 순간 리엘라는 언제나 자신이 보아 왔던 네아가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아가씨….”
머릿속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닌 귀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리엘라는 조심스럽게 제가 믿고 사랑하던 이의 이름을 불렀다.
“네아?”
그러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네아가 고개를 들었다. 팔이 잘려 나간 끔찍한 고통에 숨조차 쉬기 힘들어하면서도 네아는 리엘라를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입술을 달싹이며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절대로… 절대로 거기서 나오지… 마세요….”
“네아!”
그 말에 리엘라는 울며 네아의 이름을 불렀다. 정신이 들자마자 한 말이 고통에 찬 신음 소리도, 살려 달라는 비명 소리도 아닌 온실에서 나오지 말라는 말이라니.
네아는 울고 있는 리엘라를 보았다. 기억 여기저기가 끊겨 있었다. 하지만 토막 나 있는 기억만으로도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 있었다.
집사를 계단에서 집어 던졌다. 리엘라를 찾아온 보석술사를 물어뜯어 죽이고, 그녀의 손가락을 잘라 반지를 빼앗았다. 그 충격적인 소식에 놀라 달려온 왕실의 보석술사들도 죽였다. 그리고 파르멜 저택으로 와서는 더욱 신나게 이곳의 하인들을 도륙했다. 학살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으리라.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을 찢어발겼으니.
네아는 그 행위에서 조금의 쾌감을 느꼈던 스스로가 너무도 혐오스러웠다.
‘죄송해요.’
네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호슨 공작이 거둬들인 후 평생을 인간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맹약의 헬리오도르의 힘을 빌렸다면 그저 이가 뽑힌 짐승으로만 살았을 것을, 호슨 공작이 시간과 노력으로 정성을 다해 기르고 가르쳤기에 네아는 제 안에서 인간의 부분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노력이….
“…죄송해요.”
네아는 울고 싶었다. 몸의 모든 뼈가 부서진 것 같은 격통보다 더 아픈 것은 마음이었다. 그 오랜 시간을 길러 주었는데, 믿어 주었는데.
네아는 그동안 자신이 호슨 공작에게 받았던 것들을 떠올렸다. 푹신한 잠자리,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 부드러운 옷 그리고 다정한 말. 말을 가르치고 세상의 것들에 호기심을 가졌을 때, 호슨 공작은 귀찮아하는 것 하나 없이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대답해 주었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애정, 관심과 교육. 호슨 공작은 그 모든 것을 주었다. 호슨 공작이 숨을 거두던 날, 자신의 딸이라고 부르는 말에 얼마나 기뻤던가. 그래서 네아는 리엘라를 질투하지 않았다. 제가 원한 것은 자신의 딸이라고 부르던 호슨 공작의 말, 그 하나뿐이었기에.
게다가 호슨 공작은 그녀가 곧바로 카르디아를 떠나지 않도록 리엘라도 남겨 두고 떠났다.
사실 네아는 몇 번이고 공작저를 떠날까 고민했었다. 하운과 리엘라가 사귀기 시작한 이후로는 더더욱. 그럼에도 네아는 결국 공작저를 떠날 수 없었다. 자신이 처음 붙잡혀 왔던 네이판타의 레어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기억이 희미해졌다. 공작저가 네아의 집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자신이 모든 것을, 스스로의 손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딸이로구나.]“……!”
제 머릿속에서 들려온 네이판타의 목소리에 네아는 혀를 깨물고 싶었다. 네이판타의 목소리에는 신랄한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아니야….”
누가, 누가 네 딸이라는 건가.
[잘 생각해 보렴. 인간들을 죽일 때 즐겁지 않았더냐. 오래전 너는 인간들을 잡아먹기도 했었지.]“아니야…!”
네아는 손을 들어 귀를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남아 있는 손이라고는 하나뿐이었다.
[저것을 불러들이려고 몸을 돌려주었거늘 기껏 하는 것이라곤 벨라리아를 추억하는 것뿐이라니. 역시나 인간과 섞인 탓에 나약하기 그지없어.]네이판타는 실망했다. 제가 만들어 낸 것이기에 좀 더 버틸 줄 알았건만 겨우 팔이 하나 잘린 것뿐인데 이렇게나 신체의 기능이 떨어지다니. 생각보다 빠르게 쇠약해지는 몸의 기능에 네이판타는 이것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당장 내버리고 싶을 만큼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이것이 끝내 주어야 할 일이 있었다. 네이판타는 다시 네아의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깨달은 네아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아가씨… 절대로! 절대로 거기서 나오면 안 돼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네아는 온실을 바라보았다. 만약 지금 자신의 앞에 하운이 있었다면 기특하다면서 그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었다. 꼴 보기 싫은 놈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칭찬할 구석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자식. 하지만….
‘잘도 만들었네.’
네아의 눈에도 온실에 걸려 있는 보석의 힘들이 보였다. 왕궁의 결계보다 더욱 강하고 단단한 힘이었다. 인생의 역작을 이곳에 만들어 둔 모양이었다. 별거 아닌 화분과 식물과 그리고 리엘라와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나도 의심했겠지.’
지금만큼 하운의 그 의심이 고마운 적이 없었다. 재수 없는 놈. 잘했어. 정말로….
저 안에서 리엘라는 안전하다. 저 안에 있으면….
네아의 의식은 거기에서 끊겼다.
리엘라는 푹 쓰러지는 네아를 보았다. 하지만 이내 네아는 다시 일어섰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다시 초점이 없었다. 네아의 입이 열리고 네이판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기서 나오거라.]“싫어….”
절대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래? 그럼….]네이판타는 날을 세운 손톱을 들었다. 그리고는 네아의 목에 손톱의 끝을 찔러 넣었다. 검은 피가 네아의 몸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쓸모없는 것은 이만 버려야겠구나.]네이판타의 행동에 리엘라는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하지 마….”
네아. 호슨 공작과 만났을 때부터 함께 있었던 하녀.
오랜 친구인 리나가 “어쩐지 나보다 네아를 더 좋아하는 거 같단 말이야!”라며 투덜거릴 정도로 리엘라는 네아와 빨리 친해졌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친절했고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위해 주는 사람이었으니까. 또한 호슨 공작을 함께 그리워하면서 추억을 공유한 사이가 아니던가. 하운이 들으면 섭섭해할지 몰라도 네아는 리엘라에게 있어서 그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이었다.
리엘라는 여전히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네아의 손가락과 팔을 보았다. 자신이 이 안에 있으면 곧 여기에는 네아의 목이 함께 굴러다니게 될 것이다.
리엘라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곳을 나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하지만….
리엘라는 고개를 돌려 온실 안을 살폈다. 피어 있는 꽃을 모조리 하운에게 주어 버린 탓에 이제는 아주 작은 봉오리 하나만 남은 엘피안 꽃이 보였다. 리엘라는 그 화분에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리엘라의 눈물이 화분 위로 떨어졌다.
편지를 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남길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리엘라는 화분을 끌어안았다.
하운에게 미안했다. 이곳을 얼마나 열심히 만들어 주었는데….
쑥쓰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칭찬받고 싶어 하는 듯, 조금 으쓱거리면서 말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났다. 정말 공들여 만들어 준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제 자신은 하운의 그 노력을 배신해야 한다.
리엘라는 작은 봉오리에 입을 맞추고는 그것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네이판타를 바라보았다. 네이판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긴 손톱을 더 깊게 네아의 목 안으로 찔러넣었다.
“그만 둬!”
리엘라는 온실 밖으로 달려 나가 네아의 목에 박힌 네이판타의 손톱을 잡아 빼었다.
“헉, 헉….”
네아가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하운이 이곳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리엘라는 온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소중한 사람이 죽는 모습을 그저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만약 네아의 목이 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 후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없기에. 멍청한 짓임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네아….”
리엘라는 네아를 끌어안으며 울었다.
“아프면 안 되는데….”
고통에 몸부림치는 네아를 보았다. 팔이 잘려 나간 몸이 얼마나 아플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네아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에 자신을 걱정하는 말을 내뱉었다. 네아의 목에서 빠져나간 손톱이 리엘라의 허리를 감쌌다.
[잡았다.]소름 끼치는 네이판타의 목소리가 리엘라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리엘라의 의식은 그대로 어둠 속으로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