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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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은 리엘라를 끌어안은 채 주저앉았다. 여전히 주변은 빛나는 꽃이 가득 핀 향기로운 들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하운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만 가지의 색이 가득한 들판 가운데서 하운은 모든 색을 잃었다.
하운은 리엘라를 더욱 강하게 제 품 안으로 끌어당기며 중얼거렸다.
“살려 줘….”
누구에게 빌고 있는 것인지도 깨닫지 못한 채 하운은 애타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다시 들판에 바람이 불었다. 하운은 리엘라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해야 리엘라가 다시 눈을 뜰까. 어떻게 해야 리엘라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세상에 이토록 많은 빛나는 꽃과 보석이 있는데, 리엘라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운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 물방울이 턱 끝에 맺혔다. 아롱진 물방울에 밝은 햇살이 만들어 내는 찬란한 빛이 고여 리엘라의 얼굴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들판에 피어난 모든 꽃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에르첼라는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다. 휘두르고 걷어차고 잡아 찢고. 보석술사면 가만히 서서 보석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에르첼라는 제 몸에 보석의 힘을 실어 직접 두들겨 패는 것을 선호했다.
과거 대신들이 그런 에르첼라의 성정을 걱정하며 진언을 올렸지만 에르첼라는 “자네도 맞고 싶나? 요즘 젊은것들은 왕을 공경할 줄 몰라.”라면서 보란 듯이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에르첼라는 남아 있던 네이판타의 금색의 날개 한 장을 마저 찢어 내면서 생각했다. 그것들이 아직 살아 있으면 그래도 오늘은 잘한다면서 환호성을 질렀을 텐데 말이야.
에르첼라의 손에 끼워진 반지가 그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웅웅거렸다. 그 순간 네이판타의 꼬리가 에르첼라를 후려쳤다.
“컥!”
하늘에 떠 있던 에르첼라의 몸이 사정없이 땅으로 처박혔다. 이내 몸을 일으킨 그녀의 시선이 반지가 있던 손가락을 향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 생각에 동의하며 소리를 내던 반지의 보석이 파스스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본체는 헤마타이트다. 지금까지는 반지의 보석이 충격을 줄여 주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에 달했다. 에르첼라는 남아 있는 장신구들을 확인했다. 목걸이는 물론, 귀걸이와 반지, 팔찌의 보석도 전부 깨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브로치 하나.
“너 재미있게 놀다 왔었네.”
에르첼라는 마지막으로 남은 브로치의 보석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다시 만난 순간부터 에르첼라 컬렉션은 쉬지 않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그녀의 의식 속에 속삭였다. 마지막으로 놀다 온 곳은 소르디아였다.
“보석이 전부 해체되어 팔릴 뻔했는데도 그렇게 좋았어?”
브로치가 까르르 웃는 것처럼 몸을 떨었다.
“그래그래, 어려운 사람 도와주었으니 되었다. 나 없던 사이에도 잘 지내서 다행이네. 수고했어.”
에르첼라는 브로치를 떼어 손바닥에 올리고는 입을 맞췄다. 그 순간 네이판타가 그녀를 향해 앞발을 들어 올렸다. 네이판타의 발이 닿기 직전, 브로치의 보라색 보석이 빛나며 에르첼라를 감쌌다.
“캬아아아악!”
네이판타는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물러섰다. 에르첼라의 손에 있던 브로치의 보석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마지막 보석을 보낸 에르첼라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그대로 네이판타의 몸을 향해 돌진했다.
다른 드래곤들을 잡아먹은 네이판타는 여덟 장의 날개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섯 장뿐이었다. 원래 네이판타의 것이었던 검은 날개 한 장이 불길에 녹아 뜯어졌고, 그 후에 싸우면서 드래곤 로드의 것이었던 금색의 날개도 두 장 다 뜯어냈다.
“사실 드래곤 로드와 한 번 더 싸우고 싶었거든?”
에르첼라에게 남아 있는 아쉬움 중 하나는 드래곤 로드와 싸움의 결착을 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에르첼라는 네이판타의 검은 날개를 붙잡았다.
“그런데 왜 네가 끼어드냐 이 말이야. 이래서야 누가 이겼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잖아!”
에르첼라는 네이판타의 남은 날개를 찢었다. 아무리 강해져도 고통은 잘 느끼는 모양인지 네이판타가 몸부림을 쳤다. 그것의 꼬리가 다시 에르첼라를 후려쳤다.
마지막이구나.
허공으로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에르첼라는 웃었다.
천 년이 지나고 이런 식으로 되살아날 줄은 몰랐다. 즐긴 시간이 너무 짧은 것은 불만이었지만 자신의 보석들을 다시 만나고 드래곤과 다시 싸웠다는 것만으로도 아쉬움은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제 보석들과 마지막을 함께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10분은 넘긴 것 같고.’
할 만큼 했다. 나머지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녀석들이 알아서 해야 할 것 아닌가. 노인을 부려 먹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 순간 땅이 환하게 빛났다. 에르첼라는 감으려던 눈을 뜨고 몸을 돌려 아래를 바라보았다. 땅은 셀 수 없이 많은 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저 지평선의 끝까지, 분명 그 너머에도 활짝 피어난 꽃들이 융단처럼 세상을 덮고 있을 것이다.
전부 다 제 색을 품은 채 반짝이는 꽃들이었다. 한 송이 보기도 힘들었던 것들이 세상에 이렇게나 가득하다니.
처음 죽음을 맞이했을 때는 사람들의 슬픔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러니 두 번째는 이렇게 조용하게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 혼자 맞이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예쁘네.”
추락하는 에르첼라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에르첼라의 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은 순간, 그녀의 몸은 땅으로 떨어져 꽃에 파묻혔고, 바스러져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위대한 왕이자 강한 보석술사였던 에르첼라는 두 번째의 죽음을 기쁘고 후련하게 받아들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
루시안은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샤를로테 역시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발아래 가득 피어난 꽃들을 보았다. 세상 모든 곳에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피가 고여 썩어 가는 땅 위에도, 불에 타 그을린 바위 위에도, 심지어 땅에 떨어진 네이판타의 날개 위까지. 세상 모든 곳이 꽃으로 뒤덮였다. 계절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 앞다투어 피어난 꽃들에는 눈이 부실 만큼의 찬란한 빛이 어려 있었다.
“꽃이다! 빛나는 꽃이다!”
정신을 차린 하르메아가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도 잠시 잊고 신이 나서 꽃 위를 뒹굴었다. 원래라면 하르메아의 몸을 이겨 내지 못하고 찌그러졌을 꽃들은 잠시 고개를 숙였을 뿐, 더욱 힘차게 줄기를 뻗고 꽃잎을 피웠다.
빛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몇몇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보석술사들은 물론 보석술사가 아닌 자들 역시 세상 가득 피어난 꽃을 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던 꽃들이 제가 품고 있던 색의 빛을 날려 보냈다. 빛의 덩어리들이 민들레의 씨앗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민들레 씨와 다른 것이라면 그것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빛은 꽃에만 어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꽃들로부터 건네받은 것일까. 보석진이 깨지면서 바닥에 떨어졌던 보석들 역시 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곳에 빛이 넘쳐 났다.
“어떻게….”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네이판타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저 한 송이를 얻기 위해서 일부러 꽃을 피우는 인간을 잡아다 기다렸다. 그런데 그 꽃들이 세상에 가득 피어나다니. 네이판타는 이 광경을 알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어둠 속에서 태어나 스스로의 존재를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던 때, 처음 보는 아름다운 것이 떨어져 세상을 밝혔다. 모두가 그것을 빛이라 불렀고, 땅으로 떨어진 빛은 찬란하게 부서져 색으로 변했다.
“어떻게 다시…!”
그 광경이 재현되고 있단 말인가.
네이판타는 정신을 차렸다. 나쁜 일은 아니다. 한 송이만으로도 드래곤 로드를 삼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죄다 먹어 버리면 된다. 찢긴 날개의 통증을 삼키며 네이판타는 땅으로 내려와 입을 벌렸다. 그리고 땅을 통째로 제 입에 밀어 넣었다.
팟!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입 안에 들어갔던 꽃들의 빛이 사라졌다. 네이판타는 흙과 순식간에 시들어 버린 꽃만을 입에 가득 물게 되었다. 삼킨 것을 뱉어 내지도 못한 채, 네이판타는 다시 다른 꽃들을 삼켰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꽃들이 네이판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언덕 위에 있던 네멘테스는 제 뒤의 공간이 열리고 있음을 알았다. 당장이라도 이걸 통해서 소르디아로 가 버릴까 잠시 고민하던 그는 고개를 젓고 건너편에서 건너올 이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곧 인기척이 느껴졌고, 네멘테스가 놀라 말했다.
“소르디아 의장님? 여기에는 왜….”
“이걸… 어서….”
미친 듯이 달려오기라도 한 것일까. 그는 헉헉거리며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의장의 손으로 향했다. 네멘테스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블랙 오팔? 힘을 알아냈습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하운이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했던 보석이다. 보석 중에 가장 까다로운 것이었으며 가장 강력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힘을 갖고 있는지 알아낼 수 없었기에 위험이 커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다.
“모르네.”
“네?”
“나도 몰라! 그런데 이게 보내 달라고… 어!”
블랙 오팔이 의장의 손에서 둥실 떠오르더니 빠르게 날아갔다. 보석들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기절할 일이었다. 원석에서 세공되어 나와 지금까지 사람의 손을 한 번도 거치지 않은 보석이 저렇게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 대단한 에르첼라의 보석들도 에르첼라가 살아생전에 하루 종일 갖고 다니며 아끼고 아낀 탓에 그렇게 강한 자아를 갖게 된 것이 아니었던가.
블랙 오팔이 지나가자 피어 있던 꽃들이 반갑다 인사라도 하듯 꽃잎을 휘날렸다.
블랙 오팔은 제가 갈 곳을 잘 알고 있었다.
창세 시대 처음으로 빛이 떨어졌던 순간을 그대로 담은 보석이었다. 그 시간 자체인 보석은 제가 느끼기에 가장 그때와 똑같은 존재에게 다가갔다. 꽃과 보석.
하늘에서 떨어진 빛을 이어받은 두 명의 상속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