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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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보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보석이 소르디아에 맡겼던 블랙 오팔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그 어떤 오팔보다 크고 강한 것.
그 보석을 본 순간, 하운은 낯선 듯 낯설지 않은 감정에 휩싸였다. 처음 보는 것임에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친구를, 가족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언제나 리엘라 주변을 돌아다니던 에르첼라의 보석들처럼 블랙 오팔 역시 두 사람의 주변을 빙 돌더니 눈을 감은 채 안겨 있는 리엘라의 옆에 멈췄다.
오팔이 잘게 떨리는 모습이 보였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없지만 하운은 오팔이 리엘라를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에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도. 하운은 차가워진 리엘라를 끌어안으며 오팔에게 말했다.
“…도와줘.”
그는 알 수 있었다. 어둠과 빛을 모두 담고 있는 이 보석은 창세 시대의 순간 그 자체라는 것을. 그렇기에 자신과 가장 비슷한 힘을 느끼고 이곳으로 왔다는 것도. 또한, 이 보석은 리엘라를 도울 수 있다는 것도.
“전부 다 리엘라가 피워 낸 거야.”
하운은 세상을 가득 채울 것 같이 피어난 꽃들을 보았다. 더없이 아름다운 광경이었건만 하운의 눈에는 그저 리엘라의 숨을 앗아 간 것들로만 보였다.
네아가 가져온 수정의 영상에서 리엘라의 손목에는 이런 상처가 없었다. 날카로운 것으로 일부러 낸 것이 분명한 상처. 물이 차오르는 땅속에 갇혀 있으면서 일부러 피를 낸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리엘라는 원하지 않았는데….”
리엘라는 자신의 능력을 크게 반기지 않았다. 그게 못내 의아했던 하운은 아무도 갖지 못한 힘인데 조금은 뿌듯하지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리엘라는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런 힘이 없어도 충분히 꽃을 기르고 피워 낼 수 있는걸요.”
게다가 어릴 적에는 그녀의 특별한 힘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 거짓말쟁이라는 소리를 듣는 바람에 여태 계속 숨겨 왔다고 했다. 호슨 공작이 알아봐 주기 전까지 혹 자신이 이상한 것은 아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고민했을까. 그 힘이 결국 리엘라를 죽음으로 몰았다.
하운은 그녀의 목숨과 바꿔 피어난 꽃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하운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오팔은 알겠다는 듯 그의 손 위로 올라왔다. 하운은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 오팔이 무슨 힘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보석의 힘은 무조건 인간에게 좋은 결과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보석이 가진 힘일수록 인간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그 전에 이것의 힘을 제대로 끌어낼 수나 있을까.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다.
하운은 보석을 붙잡고 그것의 힘을 이끌어 내었다. 순식간에 몸의 모든 힘이 빨려 나가는 것 같았다. 의식이 흐려지고 맘이 휘청거렸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사라지는 것은 하운의 힘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꽃들의 빛 역시 빠르게 오팔로 모이고 있었다. 빛나는 꽃 한 송이만으로도 어지간한 보석들은 순식간에 힘을 되찾았으나 지금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오팔은 들판에 있는 꽃들의 모든 빛을 흡수하고 있었다.
동시에 하운은 아득함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
여기가 어디일까.
하운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생각’을 했다. 떠오른 의문은 또 다른 의문을 불러왔다.
여기가 어디일까. 나는 누구일까. 잠시 어떤 이름이 떠오르다 사라졌다. 정확히는 떠오른 기억을 붙잡으려 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시간도, 공간도 느낄 수가 없는 곳에서 하운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부터 그는 뛰기 시작했다. 사실 뛰고 있는지 기어가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쉬울 거야.’
제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는 자신이 있었다. 가장 밝게 빛나는 것을 찾으면 되니까. 하운은 쉬지 않고 걸었다. 어둠 속을 걷고, 또 걷고. 얼마나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보폭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마치 어린아이의 걸음에서 청년의 걸음으로. 그것이 다시 노인의 걸음으로 변하다 다시 아이의 걸음으로. 수천, 수만 번의 걸음을 떼면서 태어나고 다시 죽어 가는 것처럼 하운은 쉼 없이 걸었다. 힘들다거나 괴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곳은 시간을 포함한 어떠한 법칙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듯했으니까.
그러다 그는 어둠만이 가득했던 공간에서 한 줄기 빛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빛이 보인 순간부터 공간은 법칙을 찾기 시작했다.
시간, 거리, 무게.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구분이 가능해지면서부터 나타나는 법칙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한 줄기의 빛은 빠르게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바닥에 닿은 순간 찬란하게 부서져 세상을 가득 채웠다. 하운은 뛰기 시작했다. 그가 찾아야 하는 것은 가장 빛나는 것이었다. 셀 수 없는 빛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그는 제가 원하는 존재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달리고 달리며 하운은 빛을 헤쳐 나갔다. 그러다 보게 되었다. 빛이 떨어졌던 자리에 혼자 서 있는 존재를. 그 어떤 빛보다도 환하게 빛나고 있는 존재를.
하운은 달려가 그 존재를 붙잡았다.
“리엘라.”
그는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리엘라. 빛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너무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그의 빛.
하운이 부르자 그녀가 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단단히 잡은 손을 맞잡으며 웃었다.
세상에 빛이 퍼져 나갔다.
***
“리엘라…!”
품 안에서 가득 터지던 빛에 놀란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하운은 꽃으로 뒤덮인 북부 전선의 들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극심한 피로를 느끼며 숨을 삼켰다. 아득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백 년, 천 년… 그런 인간의 단위로 셀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이. 끝없이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오직 한 존재를 찾아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허억…허억….”
하운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 세상의 모든 빛을 흡수한 것 같은 오팔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저 보석의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것을. 제가 본 것은 창세 신화의 그 순간임을. 그리고 분명히 그곳에서 혼자 서 있던 리엘라의 손을 붙잡았었다. 자신을 보며 리엘라가 웃어 주었는데….
하운은 천천히 고개를 내려 제 품 안을 보았다. 정신을 잃기 전, 차가워진 리엘라가 눈을 감은 채 제게 안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슬픔이나 서늘함 따위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슬쩍 잡았던 손의 따뜻함과 똑같은 온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하운은 놀라움을 가득 담은 동그란 녹색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언제나 자신에게 다양한 감정을 보여 주며, 그를 담고 있었던 녹음의 색을.
“하운?”
미치도록 그리웠던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왜 울어요?”
놀라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목소리. 그만의 빛이 다시 돌아왔다.
***
네이판타는 하늘에 떠서 하운이 있는 곳을, 정확히는 오팔을 노려보았다.
‘저것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저것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저것은 그냥 보석이 아니었다. 시간과 공간의 조각이며 창세 시대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저것은 조금 전, 신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행할 수 있는 기적을 보였다.
분명히 꽃을 피워 내는 인간은 죽었었다. 하지만 오팔이 피어 있는 꽃들의 빛을 전부 가져가더니 폭발하듯 빛이 터졌고, 인간은 다시 살아났다. 저 오팔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을 가졌다.
네이판타는 알아차렸다. 저 오팔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리고….
네이판타는 하운과 리엘라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도망가지 않은 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두 사람의 앞에 떠 있던 오팔은 다시금 빛을 발했다. 조금 전과 달리 꽃에게서 받았던 모든 빛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려는 것처럼.
저것은 세상을 떠난 것을 되찾아 왔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세상에 있는 것을 영영 떠나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네이판타는 곧바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것은 도망이었다. 생명의 본능이 자신의 위험을 감지한 것이다. 그래서 네이판타는 날아오르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자신 외에 드래곤 셋을 더 잡아먹어 강해진 몸이다. 이제 이 세계의 존재 중에서 그 이상으로 강한 것은 없을 터였다. 그런 자신이 도망을 가고 있다니.
네이판타는 계속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
리엘라와 하운은 손을 잡고 자신들의 앞에 떠 있는 오팔을 바라보았다.
“신기하다.”
리엘라는 오팔에서 다시 쏟아져 나오는 빛을 만지며 웃었다. 보석술사들이 보석의 힘을 끌어낸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리엘라는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대화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각자 어떤 힘을 가졌는지를 알고 서로의 힘을 빌려 쓸 수 있겠냐고 묻는 대화. 그리고 하운과 리엘라는 오팔의 안에 있는 무한의 공간을 알고 있기에 주저 없이 부탁할 수 있었다.
도와줘.
동족을 잡아먹고, 모든 것을 삼키려 하는 네이판타가 이곳에 있는 한 어느 누구도 평온할 수 없다. 리엘라는 언제나 제가 바랐던 하루를 떠올렸다. 잠에서 깨어나 화창한 아침 하늘과 새로이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며, 아침 식사로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평범하고 조용한 삶.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그런 삶. 그 바람을 모두 삼켜 버리고 짓이기려 드는 존재가 앞에 있었다.
리엘라는 네이판타를 노려보았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동족조차 잡아먹는 존재. 저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삼켜도 만족하지 못할 터였다. 리엘라는 네이판타를 멀리 보내고 싶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그리고 이 오팔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리엘라는 제 손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하운의 손을 보면서 웃었다. 오팔이 쏟아 낸 빛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 빛은 처음 이 땅에 내려왔던 한 줄기의 빛으로 변해 그대로 공중에 있는 네이판타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