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4
25
예상대로였다. 아니, 예상을 뛰어넘었다.
반나절이 가기도 전에 리엘라는 눈속임이고, 높으신 분들의 은밀한 사정으로 진짜 상속자는 따로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브릭스 거리에 퍼져 나갔다. 그사이 리엘라는 꽃집에 쌓인 먼지를 열심히 쓸고 닦았다.
처음에는 부러움, 질투, 경계심을 담았던 눈빛들이 이야기가 퍼지고 나자 동정하는 눈빛들로 바뀌었다.
“결국 누군가를 대신해 내세웠다 이거구만?”
“정말로 돈을 많이 받았으면 저렇게 하고 다니겠어요? 나 같으면 보석의 방인지 뭔지 거기에서 마음대로 다 꺼내다 걸고 다녔을 것 같아요.”
거기 함부로 열면 목숨이 위험하답니다….
리엘라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마저 양동이를 씻었다.
급하게 오긴 왔지만 당장 가게를 열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꽃집인데 꽃이 없으니까.
저택에 있는 꽃을 쓸 수는 없다. 워낙 비싼 꽃들이기도 하고 이 거리에서 많이 팔리는 꽃들도 아니었다. 게다가 검사를 받으려면 나오면 꽃 시장에서 거래를 했다는 영수증도 필요했다.
‘내일부터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어.’
리엘라는 고개를 돌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네아를 보았다.
“이건 정말 아무에게도 말씀하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사실은 하운 대공이 호슨 공작님의 보석을 노렸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 인성이 그다지 좋지 못하거든요. 여기 계신 분들에게만 말씀드리는 건데….”
쉴 새 없이 떠드는 것을 보니 네아는 아무래도 신난 것 같았다.
‘내일은 아침부터 움직여야겠다.’
꽃 시장은 새벽에 열린다. 새벽에 나가야 하는데 저택의 사람들이 그냥 보낼 리가 없었다. 아침은 먹어야 한다면서 또 테이블 가득 아침 식사를 차려 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네아 없이 나가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으니 네아도 함께 움직여야 했다.
‘매일 네아와 함께 나올 순 없어.’
네아는 괜찮다고 하겠지만 새벽마다 깨우는 것은 미안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 나갈 수도 없다. 언제 다시 행사 개최국에서 검사하러 올지 모르는 일이니까.
‘저번에 말했던 대로 네아 말고도 경호할 사람을 따로 구해 봐야 할까?’
항상 네아가 붙어 있을 수는 없다. 사실 네아를 보면 신기했다. 낮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네아는 언제나 무슨 일이 있으면 달려오곤 했다. 잠을 자기는 하는 건지.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정말 나쁜 고용주인 것 같은데?’
역시 네아 말고도 따로 옆에 있을 사람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물건들의 정리가 끝났다. 먼지가 좀 쌓여 있었을 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내일부터 당장 장사를 다시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행사 출품작 준비도 해야 해.’
잊고 있던 일들을 떠올리니 한숨이 나왔다. 처음에는 올해 행사 참여를 미룰까도 했었다. 하지만 역시 꽃 축제에는 참가하고 싶었다. 다시 길게 한숨을 쉬며 리엘라가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어? 어?”
밑을 제대로 보지 못한 탓에 밖에 바닥에 굴러다니던 잡동사니 하나를 밟고 말았다. 그 순간 리엘라의 몸이 크게 휘청이면서 뒤로 넘어갔다.
“으아아… 악?”
땅에 넘어졌어야 할 몸을 누군가가 뒤에서 잡아 주는 것이 느껴졌다. 바르게 선 다음 리엘라는 뒤를 돌아보았다.
“괜찮으십니까?”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긴 머리카락을 묶은 끈에도 보석. 잘 차려입은 옷의 단추도 보석. 손의 반지와 손목의 팔찌, 그리고 목걸이까지 가득한 보석. 한눈에 보아도 보석술사임이 분명한 남자가 웃으면서 서 있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네, 다행히 이분이 잡아 주셔서 다친 곳은 없어요.”
떠들고 있던 네아가 황급히 달려와 리엘라의 몸을 살폈다. 그사이에도 남자는 조용히 서서 리엘라를 보고 있었다.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며 제 잘못이라는 네아를 겨우 진정시킨 다음, 리엘라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다치지 않았습니다.”
“무사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리엘라 양. 저는 루시안 모리스라고 합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 같다고 리엘라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당신에게 청혼을 하러 왔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말이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처음 리엘라는 제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가씨, 뒤로 물러서세요.”
하지만 네아가 자신을 감싸며 루시안을 노려보자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녕, 오랜만이네. 네아.”
“오랜만입니다, 루시안 님. 그런데 방금 우리 아가씨께 이상한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요.”
두 사람의 인사에 리엘라가 물었다.
“어? 아는 분이세요?”
“네. 저택에 자주 오셨던 분이니까요. 이분은….”
“그만. 내 소개는 내가 직접 하고 싶어.”
루시안은 네아의 말을 부드럽게 끊고 리엘라의 앞으로 다가와 살짝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갑작스러운 말로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루시안 모리스. 현 26대 원탁회의의 의장입니다.”
“아!”
원탁회의라는 말이 나온 순간 리엘라는 그 이름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기억해 냈다.
‘신문에 자주 나오던 보석술사야!’
원탁회의는 카르디아에 있는 보석술사 연합의 이름이었다. 이 나라에 있는 모든 보석술사들의 모임이랄까. 연합이라고는 해도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보석술사들이 원탁회의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젊은 사람인 줄은 몰랐어.’
호슨 공작은 제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가끔 원탁회의에 대한 말을 했었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많아 가입만 해 두고 회의는 맨날 빼먹고 도망 다녔다고. 그렇기에 리엘라의 생각 속에서 원탁회의라는 것은 연륜 있는 보석술사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의장이 이렇게 젊은 사람이었다니?
신기한 마음에 리엘라는 루시안을 살펴보았다. 긴 머리카락은 색이 밝은 금색이었고 눈은 저와 비슷한 녹색이었다. 하운만큼은 아니어도 꽤 큰 키에 단정한 얼굴. 위압적으로 생긴 하운과는 달리 편안함을 주는 인상이었다.
같은 보석술사이면서도 이렇게까지 다른 인상일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리엘라 양?”
“네? 앗,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빤히 바라봤네요.”
“아닙니다. 처음 만난 주제에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한 제가 더 죄송하지요.”
그 말에 리엘라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운은 만나자마자 돌려받겠다고 하더니 이 남자는 보자마자 청혼을 한다. 인상은 달라도 하는 짓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설명을 좀 드려야 할 것 같군요. 괜찮으시다면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리엘라는 네아를 바라보았다. 지금 제 곁을 지키는 것은 네아다. 그러니 아무래도 네아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루시안의 제안에 네아는 뭔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어쩐지 사악해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일단 무슨 일인지 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가씨.”
그렇게 대답한 네아가 저택 쪽을 바라보면서 ‘너에게는 시련이 필요하다.’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장 위험하신 분은 저희 앞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하지만 변호사들이 먼저 말했다.
“언제나 리엘라 양을 노려보고 계셨지요.”
“아니, 노려본 게 아니라….”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도 매번 감시하시고.”
“감시라니. 나는 그냥….”
딱히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후로도 쏟아지는 변호사들의 말을 뒤로한 채 하운은 재빨리 방을 나왔다. 그리고 저택의 하녀를 보자마자 다가가 질문했다.
“리엘라 양은 어디로 갔지?”
하녀는 하운을 경계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가씨께서는 브릭스 거리에 있는 아가씨의 가게로 가셨습니다.”
“브릭스 거리?”
수도에 거의 머물지 않기에 하운은 이름을 들어도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하운의 표정을 본 하녀가 급히 말을 덧붙였다.
“수도의 남쪽에 있는 곳입니다.”
그 말에 하운은 눈썹을 찌푸렸다. 거리의 이름까지 알 수는 없어도 수도의 남쪽이 치안이 훌륭한 곳은 아니었다. 그런 곳에 가다니.
‘아무리 네아와 함께 있다고 하지만 경각심이 너무 없는 것 아닌가?’
물론 수도 안에서 네아를 쓰러트릴 만한 사람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 네아는 공격할 수 있는 보석을 갖고 있지 않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몸으로 지켜 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놈들이 찾아올 줄 알고?’
게다가 찾아온 놈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뻔하다. 전부 공작의 보석을 노리고 오겠지. 그리고 보석의 방을 열기 전에 리엘라의 환심도 사려 들 것이 분명하다. 그 모습을 생각하자 하운은 갑자기 짜증이 났다.
‘게다가 위험하잖아!’
정확히 어떻게 빛나는 꽃을 길러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꽃집에 가 있으면 혹시 그 안의 꽃들도 변하게 될지 모른다. 가만히 있어도 절로 보석술사들이 들러붙을 판에 그런 일까지 벌어지면.
하운은 거의 날듯이 마굿간을 향해 달렸다. 어쨌든 리엘라가 위험했다. 그러니 제 옆에 데려다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야 안전할 테니까.
***
그때 리엘라는 식당에 앉아 루시안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 리엘라의 옆에서 네아는 아이스크림과 막대 과자가 예쁘게 꽂혀 있는 파르페를 신나게 먹는 중이었다.
“그럼 청혼을 하신다 하는 것은….”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원탁회의의 보석술사라는 인간들은 목적만 달성하면 방법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어찌 되었건 의장을 맡고 있는 몸이라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루시안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자리를 리나네 식당으로 옮긴 이후에 루시안은 제가 왜 갑자기 찾아와 청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호슨 공작은 예전부터 원탁회의의 마법사들에게 무상으로 자신의 보석들을 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기 몇 개월 전, 연락을 해 그 보석을 전부 회수했다고 한다. 다들 공작이 몇 주 정도 보석들을 점검한 다음 다시 빌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호슨 공작은 거둬들인 보석들을 다시 빌려주지 않았고 세상을 떠났다.
당연히 원탁회의는 비상이 걸렸다. 호슨 공작의 보석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원탁회의의 목표는 하나였다. 최대한 빨리 보석의 방에 있는 보석을 다시 빌릴 방법을 찾을 것.
“제가 안 가겠다고 하니 다른 자들이 가겠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무례를 저지르게 두느니 차라리 의장인 제가 와서 모든 걸 말하고 양해를 부탁드리는 게 낫겠다 싶어서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거기까지 듣던 리엘라는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런데 왜 갑자기 청혼을 하신 건가요? 그냥 빌려 달라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