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9
31
아침에 리엘라가 찾아왔을 때, 그나마 말을 할 수 있는 상태여서 그녀를 돌려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만약 리엘라가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면.
‘그건 싫어.’
네아는 처음 인간들이 자신을 보았을 때의 표정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잡아먹었던 인간은 자신을 보자마자 기절했었다. 두 번째로 만났던 인간은 보석을 사용하면서 괴물이라 부르며 자신을 공격했다. 세 번째 인간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첫 번째나 두 번째 인간보다 더욱 짙은 혐오감을 드러냈었다.
네아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거울을 보았다. 팔뿐만이 아니라 가슴과 다리도 비늘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치마 아래로 긴 꼬리도 보였다. 아무리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 저택으로 들어오는 마차 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보아하니 리엘라와 하운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안 돼. 이런 모습으로는….’
네아는 다시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 이불 속에 제 몸을 감췄다.
‘너. 나의 흔적.’
그때 갑자기 들어 본 적 없는 목소리가 네아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누구…?”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는 목소리. 아니 목소리가 아니라 그르렁거리는 울음소리에 가까웠다.
‘기다려라.’
목소리는 거기서 끝났다.
“어?”
그리고 머릿속에 울리던 목소리가 사라진 순간 통증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너무나 순식간에 사라진 통증에 네아는 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괜찮아진 거야?”
통증이 완벽하게 사라졌음을 깨달은 네아는 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곧바로 비늘이 사라지고 피부는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거울을 보니 검은 눈도, 꼬리고 전부 사라진 것이 보였다. 멀리서 복도를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네아는 서둘러 옷을 입었다.
‘그런데 분명 소리가 들렸는데.’
머릿속에 울리던 목소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떠오르질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불렀던 것 같았는데 떠올리려 할수록 그것은 빠르게 네아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결국 네아가 그런 일이 있었던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며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네아! 저 돌아왔어요! 괜찮아요?”
리엘라의 목소리에 네아는 재빨리 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기 전, 네아는 제 손을 바라보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해진 팔이 보였다.
아픈 것은 순간적인 문제일 것이다. 아주 잠시 헬리오도르가 힘을 잃었던 것뿐이다.
‘남아 있는 꽃이 있으니까 괜찮아.’
아직 온실에는 리엘라가 기른 꽃이 남아 있다. 그것이 있다면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네아는 숨을 삼키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밖에 서 있던 리엘라가 달려와 그녀를 끌어안았다. 짙은 풀과 꽃의 향기가 네아를 감쌌다. 조금 전의 통증을 다 잊어버릴 정도로 상쾌한 향이었다.
“네아, 괜찮아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리엘라의 온기를 느끼면서 네아는 다짐했다.
조금만 더 이곳에 남아 있기로.
08. 공작이 남긴 숙제
브릭스 거리의 사람들에게는 요즘 흥미로운 수다거리가 생겼다.
길모퉁이에서 꽃을 팔던 리엘라가 갑자기 공작의 상속녀가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떠들 수 있는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엄청난 부자가 되었으니 리엘라는 평생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 말했었다. 하지만 그런 말이 무색하게 리엘라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꽃집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죽을 때까지 누워만 있어도 될 만큼의 유산을 받았는데?
사람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할 때마다 신발 가게 주인은 바람처럼 나타나서 ‘이건 비밀인데….’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리엘라는 그저 내세우는 용도에 불과하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윗분들의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데? 사실 돈도 얼마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
“…라고 신발 가게 아저씨가 떠들고 다녀.”
“그렇구나.”
리엘라는 리나가 가져온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했던 대로다. 적당히 입을 맞춰 두면 그 아저씨가 알아서 말을 퍼트려 줄 거라 생각했다.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끝까지 뻔뻔하게 사실 받은 게 거의 없다 밀고 나갈 생각이었다.
‘시키는 대로 하긴 했지만.’
변호사들이 조언해 준 대로 따른 일이지만 어쩐지 가슴 한쪽이 찔렸다.
‘공작님은 전부 다 주고 가셨는데.’
변호사들은 여기저기 묶여 있는 재산이 많은 탓에 바로 쓸 수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 했다. 하지만 그 많지 않다는 돈만 해도 이 브릭스 거리 전체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소문이 퍼질수록 공작님이 치사한 사람처럼 보일 거란 말이야.’
리엘라는 무거운 마음으로 테이블의 건너편을 보았다. 그곳에는 네아와 하운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오렌지주스는 내 거야. 넌 나가서 양동이의 물이나 마시라구.”
“저택의 하녀가 도대체 왜 주인의 식사에 손을 대는지 모르겠군.”
“넌 내 주인이 아니거든?”
“그렇다고 해서 맞먹을 수 있는 위치도 아니지.”
하운과 네아는 손에 샌드위치 하나씩을 쥐고 끊임없이 말다툼하고 있었다.
두 사람과 함께 아침에 꽃 시장을 들렀다 가게로 오는 것이 벌써 일주일째였다. 네아가 몸이 괜찮아졌다고 하길래 그럼 이제 네아와 다니면 되겠다 싶었는데 하운이 변호사들과 뭔가 이야기하더니 자신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
물론 변호사 대표인 크레이튼이 그냥 하운을 보내 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뭔가 수십 장의 문서를 작성해 오더니 하운에게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한참이나 그것을 읽던 하운이 한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누가 보면 내가 당장이라도 리엘라 양을… 아니, 알겠네. 서명하지.”
도대체 뭐라고 적혀 있길래 하운이 그런 소리를 했는지 궁금했지만 변호사들은 이건 신경 쓰지 말라 웃으며 리엘라를 내보냈다.
그날부터 아침에 일어나 네아와 하운과 함께 꽃 시장에 가고, 함께 아침을 먹고, 가게를 열고, 리나가 가져다주는 점심을 먹은 다음 3시 정도가 되면 가게를 정리하고 저택으로 돌아가는 하루가 반복되었다.
처음 가게를 다시 열었을 때는 구경 온 사람들로 주변이 시끄러웠다. 하지만 네아와 하운이 어떻게 손을 썼는지 몰라도 이제 꽃집 주변은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이 되었다.
예전과 다른 것이라면 꽃집 안에 두는 간이 테이블이 하나 더 늘었고, 그곳에서 네아와 하운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
네아는 쉴 새 없이 리엘라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가끔씩 꽃집 밖을 둘러보았다. 하운은 네아와 달리 저택에서 가져온 문서들을 테이블 위에 두고는 생각에 잠겼다.
오늘도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점심시간이 되자 리나가 바구니 가득 먹을 것을 들고 온 덕분에 리나를 포함한 네 사람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함께 점심을 먹게 된 것이다.
리나는 네아와 하운에게 주스라면 몇 병 더 가져왔으니 걱정 말라 말하며 바구니에서 끊임없이 먹을 것을 내놓았다. 그러다 리엘라에게 말했다.
“대공님께서 우리 가게 음식을 잘 드셔서 다행이야. 벌써 사람들이 얼마나 몰려들고 있는지 알아? 너와 대공님이 먹는 것과 똑같은 것을 달라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예 새로 메뉴를 만들까 고민 중이야. 그러니 이름 붙이는 걸 허락해 주면 안 돼? 수익의 5%를 줄게.”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드는 리나를 보며 리엘라는 손으로 엑스 자를 그렸다.
“돈에 눈먼 악마여, 사라져라.”
“야! 쫌!”
“안 돼! 나는 상관없지만 대공님의 이름을 팔 순 없잖아.”
그때 옆 테이블에 있던 하운이 말했다.
“마음대로 하도록.”
“대공님!”
리엘라가 놀라 하운을 불렀지만 리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허락하신 거예요! 앞으로 점심은 걱정하지 마세요! 재료 잔뜩 넣어서 매일같이 새로운 메뉴로 가져다 드릴게요! 리엘라, 많이 팔아라. 악마님은 이만 돈 벌러 간다!”
“야! 리나! 거기 서! 돌아와!”
리나는 하운의 대답을 듣자마자 바구니를 들더니 손을 흔들며 번개같이 사라졌다. 그런 리나의 뒷모습을 허탈하게 보고 있던 리엘라가 하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운은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사이 네아가 슬쩍 그의 샌드위치를 가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리엘라는 한숨을 쉬었다. 혼자가 아니라 심심하지는 않은데, 어쩐지 일이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점심시간이 지나고 리엘라가 시든 꽃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근처 식당 주인이 찾아왔다.
“저녁에 예약이 많이 들어와서 테이블 위를 꾸미고 싶은데 추천 좀 해 줄래? 물론, 싸고 예쁜 걸로.”
리엘라는 꽃 시장에서 사 왔던 꽃 중에서 꽃잎 겉 부분이 상하거나, 아니면 밑가지가 부러진 것들을 꺼내더니 다듬기 시작했다. 상했던 꽃잎을 뜯어내고 꽃들을 묶은 다음 부러진 부분을 잘라 내자 길이가 작은 꽃다발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상한 것들로 만들었으니까 반값만 받을게요.”
“고마워. 네가 없는 동안 저쪽 거리에 있는 가게로 갔었는데 설명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가격은 가격대로 얼마나 비싸던지. 역시 네가 최고라니까. 계속 가게 할 거지? 어디 가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해 주시니 저도 기뻐요. 이건 덤으로 드릴게요.”
리엘라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장미 몇 송이를 꺼냈다.
“저녁 예약이라면 역시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겠지요. 분위기 봐서 그렇겠다 싶은 예약 테이블의 음식 장식용으로 쓰세요. 먹을 수 있는 종류니까 걱정 마세요.”
“역시 리엘라밖에 없다니까. 고마워!”
식당 주인은 기분 좋은 얼굴로 값을 치르고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리엘라는 기분 좋은 얼굴로 기지개를 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들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역시 꽃을 팔고 주인을 찾아 주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 리엘라의 모습을 바라보는 하운의 맞은편에서 네아는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 계속 바라보고 있네.”
“재미는 무슨 재미. 사람들이 계속 오니 감시하는 것뿐이다.”
하운의 대답에 네아는 코웃음을 쳤다. 감시는 무슨 감시? 세상에 그런 넋 나간 얼굴로 하는 게 감시라면 지금까지 난 누구도 감시한 적 없겠다.
그때 네아의 눈에 저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이 보였다.
“어?”
네아가 일어서자 하운도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가오고 있는 것은 루시안이었다. 식당에서 그를 보았던 브릭스 거리의 사람들도 알은체를 했다. 어, 그때 리엘라에게 청혼했던 분이다. 저분이 보석술사 중에 유명한 루시안이라던데?
그는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오더니 세 사람에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리엘라 양도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루시안 님?”